비평

문고리를 잡고 선 모성의 원형 — 박송희 시인의 삶과 시 《엄마 문고리》의 미의식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문고리를 잡고 선 모성의 원형 — 박송희 시인의 삶과 시 《엄마 문고리》의 미의식 2026.03.12
문고리를 잡고 선 모성의 원형 — 박송희 시인의 삶과 시 《엄마 문고리》의 미의식

□ 박송희 시인 시집 《엄마 문고리》

엄마 문고리

시인 박송희

어머니 앞 백 년 어린애

한가로우니 불현듯 치달려 가는

거기 살고 있는 요람의 그넷줄

발 구르는 바람 가르기 한다

그리움이 휘날리는 머리카락

앞 구름 뒤 구름 하늘 구르는 가슴 폭

부를세라 미리 튀어나오는 엄마는

꿈을 지키는 만년 파수꾼

누가 짓고 이름 불렀나

바꿀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자리

핏줄 언어 뱃속 가르침이다

세상이 다 잊고 버려라 해도 누가 따를까

태반 유영 배꼽젖줄

아이 어른 구별 없는 이름 엄마는 하나다

아쉬울 때 놀라울 때 슬퍼도 기뻐도 튀어나오는

자동 여닫이 천작의 걸작 신의 작품

언제고 살아 열리는 시공 발아다

박송희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수상

계간 《서울문학》 신인상 수상

세종문학상 수상

문학신문공로상 수상

시집

《머리털에 깃발 달고》, (2002)

《별들의 허밍코러스》, (2009)

《목어별곡》’ (2017)

《이랑나비》, (2020)

《용달사랑》, (2022)

《엄마야 1》, (2024)

《엄마야 2》, (2024)

《엄마야 3》, (2024)

《엄마 문고리》, (2025) 외 다수

차茶꾼으로 40여 년

효동원 다선회 편역 공동 편집

《다향선미》1권 (1986)

《다향선미》2권 (1986)

문고리를 잡고 선 모성의 원형

— 박송희 시인의 삶과 시 《엄마 문고리》의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송희 시인의 《엄마 문고리》는 모성을 감정의 대상이나 회상의 서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를 존재의 기원이며 언어 이전의 언어로 파악한다.

이 시에서 ‘엄마’는 개인적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처음 맺는 관계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모성 찬가를 넘어 존재의 구조를 탐문한 시로 읽힌다.

첫 행 “어머니 앞 백 년 어린애”는 시간의 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백 년은 생애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무게이며, 어린애는 인간의 원형이다. 이어지는 “요람의 그넷줄 / 발 구르는 바람 가르기”는 생의 최초 운동을 감각적으로 환기한다.

박송희 시인은 보이지 않는 감정을 촉각적 장면으로 바꾸는 데 능하다. 이는 40여 년 길 위에서 몸으로 익힌 삶의 감각이 언어로 전이된 결과다. 그의 시는 관념이 아니라 체험에서 출발한다.

둘째 연에서 “그리움이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하늘 구르는 가슴 폭”은 감정을 공간으로 확장한 이미지다.

특히 “부를세라 미리 튀어나오는 엄마는 / 꿈을 지키는 만년 파수꾼”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서 어머니는 응답하는 존재가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존재다. 이는 모성을 반응이 아니라 본능적 개입으로 이해하는 시인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셋째 연의 “핏줄 언어 뱃속 가르침이다”는 이 작품의 핵심 문장이다. 박송희에 시인에게 모성은 도덕적 관념이 아니라 생리적 사실이다. 언어 이전에 몸으로 전해지는 문법이며, 이름 이전의 기억이다.

“세상이 다 잊고 버려라 해도 누가 따를까”라는 반문은 모성이 사회적 명명이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임을 단정한다.

넷째 연의 “태반 유영 배꼽젖줄”은 시 전체에서 가장 육체적인 이미지다. 이는 모성을 추상화하지 않고 생명의 물질적 근거 위에 세운다. 그의 시가 울림을 갖는 이유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제된 문장 속에서 외려 더 깊은 울림이 형성된다.

마지막 연의 “자동 여닫이 천작의 걸작 신의 작품”은 직설적이지만 설득력이 있다. 제목의 ‘문고리’는 사물이 아니라 경계다. 닫힘과 열림, 떠남과 돌아옴의 구조다.

“언제고 살아 열리는 시공 발아다”라는 결말에서 모성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동하는 생명의 원리로 확장된다.

박송희 시인의 시세계는 화려한 수사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오랜 노동과 생의 체험 속에서 단련된 절제의 언어다. 차茶꾼으로 살아온 세월, 길 위에서 체득한 반복과 인내의 시간이 그의 시를 관념이 아닌 실존의 자리에서 출발하게 만든다.

또한 다선회 편역 작업과 시집들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그의 태도는 하나다. 삶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견디며 기록하는 일이다.

시 《엄마 문고리》는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의 이름을 묻는다.

박송희 시인은 문고리를 잡고 선 채 말하지 않는다.

살포시 미소지으며

묻는다.

인간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돌아가는가. 그의 시는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게 한다.

이는 모성에 대한 찬가를 넘어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는 시인 박송희 시세계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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