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권 사상계 발행인의 《돌베개 위의 별빛》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호권 사상계 발행인의 《돌베개 위의 별빛》 2026.03.15
□ 장호권 사상계 방행인

□ 복간된 사상계

□ 사상계 초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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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위의 별빛
장호권
어느 계절인가,
길을 걷다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머리 밑의 돌덩이를 베개 삼아 밤하늘의 별을 헤던 한 남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어둠을 가로지르고,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마저 온몸으로 밀어냈던 이름,
장준하선생.
그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은 마치 잊고 지낸 오래된 약속을 찾아가는 순례와도 같습니다.
경기도 파주의 장준하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람의 소리가 다르게 들려옵니다. 선생의 안식처가 된 이곳은 세상의 소란을 등지고 오직 선생의 숨결만이 머무는 고요한 섬 같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정갈한 글귀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더듬다 보면,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차가운 돌 틈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합니다. 그곳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선생이 베고 누웠던 차가운 돌의 감촉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는 풍경이 그려집니다.
한신대학교 교정에 자리한 ‘돌베개 공원’은 기억의 정원입니다. 광복군 시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결코 버리지 못했던 ‘조국의 내일’이라는 꿈. 그 꿈의 씨앗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푸른 교정에 단단히 뿌리 내렸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이 서걱일 때마다, 그 소리는 마치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당부처럼 들려옵니다.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 “정의의 곁을 지켜라”
그가 남긴 글들은 때로 폭풍우가 치는 밤의 등불 같았고, 때로는 꽁꽁 언 땅을 녹이는 첫봄의 온기 같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베고 누운 것은 차가운 돌덩이였으나, 그 위에서 꾼 꿈은 조국의 따뜻한 내일이었습니다.”
이제 그 돌베개는 우리 가슴 속에서 하나의 별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은 변해간다 하지만, 선생이 걸었던 그 곧고 정직한 길만큼은 여전히 우리 현대사의 가장 맑은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이 남긴 그 돌베개를 가만히 어루만져 봅니다. 우리 또한 각자의 삶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저마다의 소중한 꿈을, 그 단단한 희망을 다시금 품어봅니다.
그의 발자취는 이제 그치지 않는 강물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진실 앞에 무릎 꿇고 정의 앞에 당당했던 그 기개, 《사상계》의 잉크 향은 마르지 않고 오늘날 우리의 양심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이 남긴 그 단단한 희망을 이제 우리가 이어가려 합니다.
당신께서 오셔야 사상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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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위의 별빛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상계 장호권 발행인의 글 《돌베개 위의 별빛》은 단순한 회고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물을 기리는 헌사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윤리적 좌표를 다시 묻는 성찰의 기록이다.
글은 개인적 회상에서 출발하지만, 곧 공동의 기억과 역사적 책임의 자리로 확장된다. 이 글이 지닌 울림은 서술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조용히 이어지는 사유의 깊이에 있다.
첫머리에서 “어느 계절인가, 길을 걷다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이미 작품 전체의 방향을 예고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행위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기억과 역사에 대한 응시이며, 그 응시는 곧 장준하라는 이름으로 수렴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머리 밑의 돌덩이를 베개 삼아 별을 헤던 한 남자”라는 형상은 장준하 선생을 설명하는 가장 절제된 은유다. 여기서 돌베개는 고통의 표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형식이다.
파주의 장준하 공원을 묘사하는 대목은 이 글의 서정적 중심을 이룬다. 바람의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 진술은 단순한 감각의 변화가 아니라 기억의 변주다. 비석의 글귀를 눈으로 더듬는 행위는 읽기가 아니라 체험이며, 그 체험 속에서 자유는 차가운 돌 틈에서 피어오르는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이 지점에서 장호권 발행인의 문장은 사실의 서술을 넘어 상징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한신대학교 ‘돌베개 공원’을 다룬 부분은 작품의 사유를 한층 깊게 만든다. 광복군 시절의 기억과 오늘의 젊은 세대가 머무는 교정이 겹쳐지며,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으로 제시된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를 “다정한 당부”로 듣는 순간,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윤리적 목소리로 변모한다.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 정의의 곁을 지켜라”는 문장은 과거의 유언이 아니라 현재의 명령으로 울린다.
특히 “비록 우리가 베고 누운 것은 차가운 돌덩이였으나, 그 위에서 꾼 꿈은 조국의 따뜻한 내일이었습니다.”라는 구절은 이 산문의 정점이다. 돌과 꿈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장준하 선생의 생애가 지닌 비극성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문장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이 글을 읽을 때 반드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것이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발행인의 글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상 때문에 청소년기부터 외국으로 떠나야 했고, 수십 년간 망명에 가까운 삶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민초처럼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 광복회장을 맡아 역사적 책무를 수행했고, 지금은 장원 편집인과 함께 《사상계》 복간이라는 중대한 과업을 이루어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순한 추모문이 아니라 한 인간이 감당해온 시간의 응축이다. 장호권 발행인의 문장은 아버지를 향한 사적인 기억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를 향한 공적인 요청이다.
그의 글에서 장준하 선생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양심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장호권 발행인의 글은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은 조용히 흐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나 깊이는 더해진다.
그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이 현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묻는다.
종결부의 “당신께서 오셔야 사상계입니다.”라는 문장은 이 산문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초대이자 요청이며, 동시에 선언이다. 사상계는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향한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믿음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글은 ‘장준하’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떤 별을 바라보고 있는가.
장호권 발행인의 글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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