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셈할수록 줄어든다 ㅡ청람 김왕식
봄은 셈할수록 줄어든다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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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셈할수록 줄어든다
청람 김왕식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는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우리에게 남은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올까요.”
그날 이후로, 봄을 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막연하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이와 시간을 대입해 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지 조용히 계산해 본다.
스무 번쯤 남았다고 생각해 본다. 숫자로만 보면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인다. 스무 번의 봄이라니, 적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숫자는 금세 줄어든다.
나이가 칠십을 넘기면, 몸이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무거워져 마음처럼 걷지 못할 수도 있다. 꽃이 피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봄을 느끼는 일, 그 평범한 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스무 번의 봄은 사실 열 번으로 줄어든다.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인생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우리를 불러 세운다. 갑작스러운 병, 뜻밖의 사고, 혹은 마음의 상처 하나가 계절을 느끼는 감각 자체를 앗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아 있는 봄은 또 한 번 줄어든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아니, 애초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주어지는 것일 뿐, 쌓아둘 수도 없고, 미리 당겨 쓸 수도 없는 것.
그래서일까.
요즘은 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풍경들이, 이제는 잠시라도 붙잡고 싶어진다. 길가에 핀 작은 꽃 하나에도 괜히 시선이 오래 머문다. 바람이 불면, 그저 스쳐 보내기보다 한 번 더 깊이 들이마신다.
생각해 본다.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봄의 횟수가 아니라, 그 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시간들이라는 것을.
수많은 말들 속에서 오래 남는 말은 많지 않다. 어떤 말은,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 놓는다. 그날의 질문이 바로 그랬다. 봄을 몇 번 더 맞이할 수 있는가를 묻는 말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되묻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봄을 세지 않으려 한다. 셀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신, 다가오는 봄을 하나의 선물처럼 받아들이려 한다.
다음 봄이 올 때, 그 봄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 봄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여,
오늘도 다짐한다.
“이 봄은 그냥 지나가지 않겠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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