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송희 시인의 시 《관훈동 길목》 ㅡ시간의 껍질을 비집고 피어나는 만남의 향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송희 시인의 시 《관훈동 길목》 ㅡ시간의 껍질을 비집고 피어나는 만남의 향기 2026.04.11
박송희 시인의 시 《관훈동 길목》 ㅡ시간의 껍질을 비집고 피어나는 만남의 향기

□ 박송희 시인

관훈동 길목

시인 박송희

꽃비 젖은 쌀쌀 딛고

벼르던 연븐홍 만남

온년 넘어 두꺼운 살갗 비집은

고옥의 처마끝 매화

벅찬 가슴 설렘 어딜갈까

말문 연 는개비 전언

농후한 향기 빗장을 풀었다

쌓인 궁금 살포시 젖어내리는

가슴 말 거침없는 진솔

아마도 꽤는 먼 인연의 자락

화사히 나뉠 기약 나오르는 어깨깃

  1. 4 . 11

박송희 시인의 시 《관훈동 길목》

ㅡ시간의 껍질을 비집고 피어나는 만남의 향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봄은 늘 먼저 몸이 아니라 시간의 속살에서 시작된다.

이 시는 그 가장 은밀한 시작을 ‘젖은 꽃비’와 ‘쌀쌀함’ 사이에 세워둔다. 따뜻함으로 곧장 가지 않는다. 외려 스산함을 딛고 올라서는 감각을 택한다.

이 첫 행에서 이미 시인의 태도는 분명하다. 아름다움은 온전히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견딘 자리에서 스며 나온다.

“벼르던 연분홍 만남”은 단순한 계절의 도래가 아니다. 오래 준비된 인연의 도착이다. ‘벼르다’는 말은 칼을 가는 시간처럼 긴장과 기다림을 품는다.

그 뒤를 잇는 “온년 넘어 두꺼운 살갗 비집은 / 고옥의 처마끝 매화”는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밀어 올린다.

매화는 꽃이 아니라 시간의 결실이다. 고옥古屋의 처마 끝에서 피어났다는 설정은,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임을 조용히 증명한다.

이 지점에서 시는 향기로 전환된다. “말문 연 는개비 전언 / 농후한 향기 빗장을 풀었다.”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향기다. 말은 뒤따르고, 감각이 앞선다.

시인은 이를 ‘전언傳言’이라 부른다. 말로 다 건네지 못한 것들이 향기로 번역되어 건너온다.

여기서 시의 결은 더욱 깊어진다. 이 만남은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풀어주는 사건이다.

후반부에 이르면 시는 내면으로 스며든다.

“쌓인 궁금 살포시 젖어내리는 / 가슴 말 거침없는 진솔”에서 ‘궁금’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의 결이다. 젖어내린다는 표현은 해소가 아니라 스며듦에 가깝다. 감정은 터지지 않고, 조용히 번진다.

이 절제된 번짐이 이 시의, 고아高雅한 품격을 만든다.

“아마도 꽤는 먼 인연의 자락”이라는 구절에 이르면, 만남은 현재를 넘어선다. 지금의 만남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의 일부로 확장된다.

마지막의 “화사히 나뉠 기약 나오르는 어깨깃 ”은 이별의 예감이 아니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의 가벼운 예고처럼 읽힌다. 어깨깃에 맺히는 것은 꽃잎이 아니라 시간이다.

박송희 시인의 언어는 꾸미지 않는다. 대신 오래 묵힌다. 고아高雅함은 여기서 힘이 된다. 단순한 어휘들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깊이를 만든다. 그 결과 이 시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집 처마 끝에 매달린 한 송이 매화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조지훈의 시가 그러했듯, 이 시 또한 멋을 부리지 않고 품위를 지킨다. 그것은 흉내가 아니라, 삶에서 이끌어낸 결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시인의 삶이 언어보다 먼저 다듬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만남은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이어져 온 시간을 비로소 알아보는 순간이라는 것.□

□김청 시인

■□

꽃비 속 차담, 시로 남은 오후

청람

봄은 때로 약속 없이 찾아오지만, 그날은 기다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인사동 뒤켠, 관훈동의 좁은 골목은 사람의 발걸음보다 먼저 계절의 기척으로 젖어 있었다.

는개비가 조용히 내려앉고, 벚꽃은 그 비를 빌려 스스로를 흩뿌리고 있었다. 꽃잎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한 장씩 펼쳐 보이듯이.

그 길목에서 몇몇 문우 (김청, 청강, 청람 )가 마주 앉았다. 말은 많지 않았고, 웃음은 낮았다. 차를 따르는 손길이 먼저였고, 시선은 서로를 지나 골목의 끝으로 흘렀다.

차향은 공기 속에 번지고, 젖은 꽃잎은 발치에서 조용히 스러졌다.

그 순간은 특별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평범한 한때였다. 그저 사람들이 만나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흔히라면 아무 일 없이 흘러가 버릴 오후였다.

그 자리에 박송희 시인이 함께 있었다.

대개 이런 자리에서의 시간은 말과 여운으로 끝난다.

좋은 이야기가 오가고, 각자의 감상이 남으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긴다.

웬만한 시인이라면 그날의 분위기를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으로 그친다. 기억은 기억으로 머물고, 풍경은 그저 지나간 장면으로 남는다.

박송희 시인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그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다. 차담의 온기, 젖은 골목의 빛, 꽃비의 낙하,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기류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붓끝에서 다시 배열된다. 말로 다 건네지 못한 감정들이 언어의 결로 다듬어지고, 순간의 공기가 시의 구조 속으로 들어앉는다.

한낱 차담은 작품으로 바뀐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하루의 한 장면이, 그에게는 오래 준비된 한 편의 시가 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다.

세계를 그냥 두지 않는 시선, 흘려보내지 않고 끝내 붙잡아 의미로 환원시키는 내면의 힘이 그를 시인으로 만든다.

그날 관훈동의 골목에서 떨어지던 벚꽃은, 아마도 그저 봄의 한 장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고아高雅한 성품의 박송희 시인은 그것을 알아본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는개비 속에서 꽃잎이 젖어 내려오던 그 순간, 그는 계절을 본 것이 아니라, 시간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시에는 과장이 없다. 대신 스며든 시간이 있다. 고아高雅하다는 말은, 어쩌면 그가 살아온 방식에 더 가까운 설명일 것이다. 삶을 서두르지 않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며, 다만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그 태도가 곧 시가 된다.

시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날의 차담처럼,

그저 함께 앉아 있었던 시간 하나를

끝내 놓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허태기 시인

는개비 속에 피운

관훈동 뒷골에

는개비 꽃비 스민다

찻잔 속 흩어진 봄

말보다 먼저 젖고

흘려보낼 하루 하나

시로 붙들어

ㅡ 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