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비워내는 마음의 자리 — 박송희 《만개 滿開》를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빛으로 비워내는 마음의 자리 — 박송희 《만개 滿開》를 읽으며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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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 滿開
시인 박송희
꽃핀 솔잎 빛부신 송이송이
숲이 햇살로 만개滿開했다
새는 덩달아 황금빛 빛난 날갯짓
하늘 어디 나는가
살아온 이런 날들
진즉 가벼울 걸
늦기전 알아낸 이 아침
빛살되고 새가 되는 이열怡悅
내세 천국 즐길 여기
치데인 전부 금빛 헹기래
사바에 끼친 온갖 장끼자랑
쏘아 올리는 하늘 저켠 눈길 난다
- 4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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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비워내는 마음의 자리
— 박송희 《만개 滿開》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을 줄일수록 더 멀리 닿는 언어가 있다. 박송희 시인의 시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은 무엇을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한순간의 밝음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깨달음에 가깝다.
첫 행에서부터 이미 세계는 가볍다. 솔잎에 맺힌 빛이 꽃처럼 피어나고, 숲 전체가 햇살로 열리는 장면은 외부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상태다. 자연은 그대로 놓여 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시는 이 변화를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비워냄의 기쁨이 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진즉 가벼울 걸”이라 말하는 대목은 후회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늦게라도 도달한 깨달음의 언어다. 무겁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순간, 삶은 비로소 밝아진다. 그때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고, 다만 빛과 새의 이미지로 드러날 뿐이다.
‘빛살이 되고 새가 된다’는 표현은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을 말한다. 이 시에서 변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인식이다. 그 인식이 열리는 순간, 지금 이 자리 자체가 넉넉한 충만으로 바뀐다.
박송희 시인의 시어는 절제되어 있다. 한 글자도 넘치지 않는다. 덧붙이지 않고,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 두어야 할 말만 남긴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일은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고요 속에 함께 머무는 일에 가깝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깊은 신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교리를 설명하지 않고, 깨달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맑아진 시선 하나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마치 오래 수행한 선승이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하듯, 그의 시 또한 그러하다.
이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덜어낸 자리에서 스스로 밝아지는 힘에 있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고, 마음을 가볍게 하는 데서 시작되는 변화다.
하여, 이 시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든다.
이 시가 남기는 울림은 하나다.
비워낸 자리에서 비로소 만개가 시작된다는 사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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