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절제 속에 번지는 봄의 울림 — 정순영 시인의 시《눈시울이 봄을 타네》를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절제 속에 번지는 봄의 울림 — 정순영 시인의 시《눈시울이 봄을 타네》를 읽으며 2026.04.15
절제 속에 번지는 봄의 울림 — 정순영 시인의 시《눈시울이 봄을 타네》를 읽으며

□ 정순영 시인

눈시울이 봄을 타네

시인 정순영

산언덕을 에돌아 오는 시샘바람이 시린데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제 맵시와 향기를 뽐내네

아픈 그리움의 분홍 꽃잎 슬픈 진달래

흠 지닌 사발의 막걸리에 눈시울이 봄을 타네

절제 속에 번지는 봄의 울림

— 정순영 시인의 시《눈시울이 봄을 타네》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을 덜어낸 자리에서 감정은 더 깊어진다. 정순영 시인의 시는 그 간결함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몇 줄 되지 않는 언어 속에 계절과 기억, 그리고 오래 묻어둔 감정이 한꺼번에 스며 있다.

이 시의 첫 기운은 바람이다.

산언덕을 돌아오는 시샘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아직 덜 풀린 마음의 결을 건드리는 손길이다. 봄은 왔으되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간, 그 미묘한 경계 위에 시는 서 있다.

이어지는 꽃들의 장면은 화사하다. 그러나 그 화사함은 들뜬 것이 아니다.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 속에서도 시인의 시선은 한 곳에 오래 머문다. ‘아픈 그리움의 분홍 꽃잎’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이 봄은 기쁨과 슬픔이 함께 피어나는 계절이다. 진달래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오래 눌러둔 마음이 드러난 자리다.

이 작품의 중심은 마지막 한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흠이 있는 사발, 그 안에 담긴 막걸리, 그리고 그 위로 번지는 눈시울. 이 장면은 꾸미지 않은 삶의 형상이다. 완전하지 않은 그릇이기에 더 인간적이고, 거친 술이기에 더 따뜻하다.

그 한 사발은 학자의 삶과 농군의 삶을 함께 담아낸다. 머리로 쌓아 올린 시간과 몸으로 견뎌낸 시간이 한 자리에서 만난다.

정순영 시인의 시어는 단정하다. 한평생 대학 강단에서 길러진 사유의 결이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 시골 처녀의 수줍은 홍조가 은은히 배어 있다.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고,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는다. 그 절묘한 거리에서 시는 가장 자연스러운 얼굴을 얻는다.

이 시를 읽는 일은 설명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한 모금의 막걸리를 천천히 넘기는 일에 가깝다. 처음에는 담백하고, 뒤늦게 따뜻함이 퍼진다. 그 여운 속에서 비로소 눈시울이 젖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절제의 힘이다. 많이 말하지 않으면서도, 더 깊이 닿는 언어.

덜어냈기에 외려 가득 차는 순간.

정순영 시인의 시는 그 자리에서 슬며시 귀띔한다.

“봄은

꽃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풀리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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