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송희 시인의 시 《못배길 움찔》 ㅡ몸의 언어로 새긴 비범의 윤곽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송희 시인의 시 《못배길 움찔》 ㅡ몸의 언어로 새긴 비범의 윤곽 2026.04.15
박송희 시인의 시 《못배길 움찔》 ㅡ몸의 언어로 새긴 비범의 윤곽

못배길 움찔

시인 박송희

깃 다듬어 시치미 발목 풀어

험한 기슭 삶터를 닦으란다

푸른날 산바람 둥글게 휘젓는

오르기 날기 익힌 눈매

지상의 수다

하늘 한마디

마련 없이 넙죽

범상의 비범 견장을 단다

꽂아준 푯말

면구스레 바라보는 더 좀더

화답에 마주 잡을 그 무엇

째찍은 늘 믿음을 바탕한다

박송희 시인의 시 《못배길 움찔》

ㅡ몸의 언어로 새긴 비범의 윤곽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작품의 첫 울림은 바로 그 ‘움찔’이라는 신체의 미세한 떨림에서 시작된다. 생각 이전의 감각, 해석 이전의 직감이 시의 문을 연다. 그 짧은 흔들림은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삶을 견디고 넘어서려는 존재의 내적 긴장이다.

“깃 다듬어 시치미 발목 풀어 / 험한 기슭 삶터를 닦으란다”에서 시인은 생의 자세를 ‘깃’과 ‘발목’이라는 구체적 신체 이미지로 환원한다. 다듬고 푸는 행위는 준비이자 해방이다.

여기에는 꾸밈을 걷어내고 본연으로 서려는 결연한 의지가 스민다. ‘험한 기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경사, 즉 쉽게 오르지 못하는 현실의 각도다. 그곳을 ‘닦는다’는 표현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건널 수 있도록 다져가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어 “푸른날 산바람 둥글게 휘젓는 / 오르기 날기 익힌 눈매”는 시야의 전환을 보여준다. 바람은 직선이 아니라 둥글게 흐르고, 시선 또한 단순한 상승이 아니라 ‘오르기’와 ‘날기’를 함께 익힌다.

이는 땅과 하늘을 동시에 감각하는 존재의 균형이다. 눈매는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훈련된 인식이다. 이미 시는 기술을 넘어 존재의 품격으로 넘어간다.

“지상의 수다 / 하늘 한마디”는 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과잉과 절제의 극명한 대비. 지상의 언어가 넘칠수록, 하늘의 말은 한마디로 충분하다. 이때 “마련 없이 넙죽 / 범상의 비범 견장을 단다”는 구절은 압권이다.

준비된 위엄이 아니라, 무심히 얻어진 듯한 비범. 그러나 그 ‘넙죽’이라는 태도 속에는 오랜 내공이 숨어 있다. 꾸미지 않음이 곧 도달의 형식이 되는 역설이다.

후반부 “꽂아준 푯말 / 면구스레 바라보는 더 좀더”에서는 자기 인식의 겸허가 드러난다. 푯말은 외부가 부여한 의미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면구스레’라는 표현은 성취를 과장하지 않는 태도, 즉 절제의 윤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화답에 마주 잡을 그 무엇 / 째찍은 늘 믿음을 바탕한다”에서 시는 다시 관계로 나아간다. 화답은 단순한 응답이 아니라 서로를 붙드는 행위다. 그 바탕에 놓인 ‘믿음’은 모든 긴장과 흔들림을 견디게 하는 근원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끝까지 과잉을 허락하지 않는 데 있다. 이미지 하나, 동사 하나가 모두 갈고 닦인 결과물이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는 외려 더 깊은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의 ‘움찔’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는 말하지 않고 도달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높이 오르려는 의지가 아니라, 낮게 다져온 시간의 결이 비범으로 드러나는 순간. 박송희 시인의 언어는 그 결을 과시하지 않는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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