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희 시인의 시 《이불 빨래》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유숙희 시인의 시 《이불 빨래》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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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빨래
시인 유숙희
아직 남아있던
겨울의 잔재들을
4월의 태양이 날린 날
그 따뜻함 그리워질 때
다시 만날날 기약하네,
햇빛 좋은 곳마다
자리한 빨랫줄들
무거운 겨울이 널려
힘겨운 하루해를 보내고
오뉴월같은 햇빛은
4월을 잊은 채
방마다 접혀있던 이불
뽀송뽀송 겨울 잠재운 날
찾아온 봄꽃 맞이 하며,
하루 종일 겨울옷과 이불
내손에서 정리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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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꿰매는 손, 계절을 완성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햇빛은 스스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을 만나야 비로소 온기가 된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봄볕이 아니라, 그 볕을 삶으로 엮어내는 한 사람의 손이다.
유숙희 시인은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이다.
섬세한 손길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삶의 방식. 그의 시에는 거창한 언어가 없다. 대신 바느질하듯 이어 붙인 생활의 결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만져진다.
《이불 빨래》는 단순한 계절의 전환을 노래하지 않는다.
겨울이 물러나는 과정을 한 사람의 손으로 완성하는 시다. “무거운 겨울이 널려” 있다는 구절에서, 이불은 단순한 세탁물이 아니라 한 집안이 견뎌온 시간의 무게로 확장된다. 그 무게를 말리고 털어내는 일은 결국 한 생을 정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시에서 계절은 자연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에서 바뀐다. 방마다 접혀 있던 이불을 펼치고, 햇빛 아래 말리고, 다시 포개어 두는 과정 속에서 겨울은 비로소 끝난다. 이는 바느질과 닮아 있다. 해어진 시간을 한 땀 한 땀 이어 붙이듯, 시인은 계절을 손끝으로 정리한다.
유숙희 시인이 ‘바느질 시인’이라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지만, 풀리지 않는다. 성긴 듯 보이면서도 단단히 엮여 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세월 가족의 시간을 돌보고, 계절을 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밀도다.
특히 “내 손에서 정리된 계절”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계절은 저절로 지나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에서 비로소 마무리된다. 그 손이 있었기에 집은 유지되고, 삶은 이어진다.
이 시를 덮고 나면, 봄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햇빛을 모아 이불을 말리던 한 사람의 손,
그리고 그 손이 지켜온 시간의 온기다.
그 온기가야말로, 이 시가 끝내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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