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그대 향기에 영혼이 춤추다ㅡ 임솔내 시인

그대 향기에 영혼이 춤추다ㅡ 임솔내 시인 2026.04.24
그대 향기에 영혼이 춤추다ㅡ 임솔내 시인

□ 임솔내 시인

□ 김미루 시인의 산문집

인사동 시가연에서 마주한 한 줄의 불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언젠가 인사동 시가연에 들렀다.

오래된 나무 향이 은은히 번지는 공간, 빼곡히 꽂힌 책들 사이에서 한 권이 유난히 시선을 붙잡았다.

김미루 작가의 《그대 향기에 영혼이 춤추다》였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이어도문학회 (회장 황성구) 에서 뵌 임솔내 시인의 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그 남자 나는 목놓아 사랑하리라.”

단 한 줄이었다.

그 한 줄은 문장을 넘어선 어떤 결기로 다가왔다. 단숨에 읽었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은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선택을 마주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 여운 속에서 몇 줄을 적게 되었다.

그 문장은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향한 태도였고,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님을, 때로는 상처와 균열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이름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결기. 그 한 줄에는 그런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그 문장은 오래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그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드물다. 쉽게 시작하고 쉽게 잊는 시대일수록, 끝까지 남겠다는 말은 오히려 낯설고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 낯섦이 마음을 붙잡았다. 그것은 감정의 과장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시가연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그 문장은 더 또렷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누구를 기다리듯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비로소 한 사람의 눈에 닿은 것처럼 느껴졌다. 시란 어쩌면 그렇게 도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준비된 마음 앞에서,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 스며 있다.

그날 이후로, 그 한 줄은 하나의 질문처럼 남았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정의 지속인가, 아니면 존재의 선택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문장이 단순한 시어를 넘어 한 인간의 태도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 시심, 끝까지 밀어 올린 한 줄의 진실

임솔내의 시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의 자리는 언제나 감정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을 해석하거나 정리하는 대신, 그것을 끝까지 밀어 올린다. 흔들림을 숨기지 않되, 그 흔들림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떨림을 더 깊은 자리로 밀어 넣어, 마침내 스스로를 넘어서는 지점까지 이르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멈춤이 없다. 하나의 감정이 끝나는 순간, 그 다음의 층위가 다시 열리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의 언어는 안전한 자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욕망과 절제가 충돌하는 가장 날 선 경계, 그 불안정한 자리 위에 스스로를 세운다. 이때 그는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균열을 그대로 드러낸 채, 그 틈을 통과한다. 그 통과의 과정에서 언어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선다.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결로 바뀌며, 독자의 내면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를 통과하는 일에 가깝다.

임솔내의 시심은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읽는 순간의 인상보다, 읽고 난 뒤의 시간이 더 길다. 문장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울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려한 수사에서 오는 감탄이 아니라, 오래 머물며 스며드는 힘이다. 독자는 시를 덮은 뒤에도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다시 되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그의 시심은 하나의 결기로 수렴된다. 감정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태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자신을 직면하려는 용기. 이 세 가지가 그의 시를 이루는 중심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묻는다. 어디까지가 감정이며, 어디부터가 삶인가. 그 질문 앞에서 독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그 물음과 함께, 조금 더 깊어진 자리로 조용히 옮겨가게 된다.

□ 인격,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태도

그의 시가 가볍지 않은 까닭은 기교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 곧 인격에서 비롯된다. 임솔내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감정을 다룰 때에도, 그것을 쉽게 말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감상에 기대지 않고,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미화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한 번 떠오른 감정은 반드시 자신의 내면을 통과해야 한다. 그 통과의 과정에서 감정은 걸러지고, 덜어지고, 끝내 남은 것만이 언어로 남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가볍게 소비되지 않는다. 그것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언어는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더 가까운 결단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불필요한 장식이 없다. 대신 남겨진 문장은 단단하다. 그 단단함은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끝까지 직면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인격은 시로 드러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 엄격함이 자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을 향해서는 온기를 놓지 않는다.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쉽게 단정하지 않고, 삶의 복잡함을 알기에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이 두 태도는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 속에서 균형을 이룬다.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힘과, 타인을 품으려는 마음이 함께 존재할 때, 그의 시는 비로소 깊이를 얻는다.

결국 그의 인격은 하나의 중심으로 모인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태도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겠다는 결심, 감정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얻어진 언어를 독자에게 내어놓는 용기. 이 세 가지가 그의 시를 지탱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다루고, 어떻게 삶을 견디며, 어떻게 끝내 진실에 다가가려 했는지를 마주하는 일이 된다.

□ 내공, 시간으로 다져진 언어

임솔내의 언어는 순간의 번뜩임에 기대지 않는다. 번쩍이는 감각은 빠르게 눈을 사로잡지만,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서두르지 않는다. 한 줄의 문장을 얻기 위해, 그는 하루를 스물다섯 시간처럼 살아낸다. 스쳐가는 시어 하나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붙잡아, 다시 보고, 다시 다듬는다. 그 반복은 고단한 노동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고단함 속에서 언어는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이 집요함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를 대하는 태도이며,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사실, 깊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시간을 거부하지 않는다. 외려 시간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든다.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남겨야 할 것만 남긴 뒤에야 비로소 한 줄로 서는 언어. 그 절제의 과정이 그의 시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의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밀도는 바로 이 축적에서 비롯된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난해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깊은 층위를 통과해 왔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문장보다, 그 뒤에 놓인 시간의 무게가 더 크다. 그래서 독자는 한 번에 이해하기보다, 머물러야 한다. 읽고 나서도 곱씹게 되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그의 시는 그렇게 작용한다.

임솔내의 내공은 보이지 않는 시간에서 완성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축적의 힘. 그 힘이 그의 언어를 지탱하고, 그의 시를 오래 남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 순간 독자의 안쪽에서 다시 살아난다.

시간을 견디지 않은 언어는 가볍고, 시간을 통과한 언어는 무겁다.

임솔내의 시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코 부담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힘으로 작용한다.

□ 사랑, 상처를 넘어서는 선택

“그래도 그 남자 나는 목놓아 사랑하리라.”

이 문장은 감정의 고백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순간의 격정이 아니라, 끝내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이며, 상처를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언어다.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게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태도.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문장은 시가 아니라 삶의 선언이 된다.

임솔내의 시에서 사랑은 감정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것은 견뎌야 할 시간이며,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흔들림과 균열을 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 무너짐의 경험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힘. 그의 시에서 사랑은 바로 이 반복 속에서 깊어진다. 한 번의 선택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되풀이되는 결심을 통해 점차 자신의 형태를 갖춘다.

그의 사랑은 이상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무게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리움은 때로는 고통으로, 애틋함은 때로는 결핍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다.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그 불편함까지 끌어안는다. 그 결과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상태를 넘어, 인간을 단련하는 하나의 길이 된다. 그래서 그의 시 속에서 사랑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는 곧 삶을 더 깊게 만드는 통로로 작용한다.

또한 그의 사랑은 타인을 향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다.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세우며, 또다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후퇴가 아니라,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임솔내에게 사랑은 선택이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감정이 아니라, 끝까지 붙들겠다는 의지의 형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묻는다. 사랑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고.

이 질문 앞에서 독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사랑은 상처를 피하는 일이 아니라, 그 상처를 끌어안고도 다시 걸어가는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랑은 비로소 자신의 깊이를 드러낸다.

□ 두 세계를 끌어안는 존재

임솔내는 두 개의 세계를 나누어 사는 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한 몸 안에 끌어안고 끝내 화해시키지 않은 채 살아내는 사람이다. 질서와 욕망, 고요와 격렬함, 절제와 파열이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맞부딪힌다. 그러나 그는 그 충돌을 봉합하지 않는다. 억지로 균형을 맞추지도 않는다. 그 긴장 자체를 자신의 자리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그의 시는 안정된 조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긴장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의 내면에서 질서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힘으로 작용하고, 욕망은 그 경계를 넘어가려는 충동으로 작동한다. 고요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격렬함은 끝까지 붙잡으려 한다. 이 상반된 힘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견디며 함께 존재한다.

이때 그의 시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 흔들림 자체를 언어로 바꾼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존재의 상태를 드러내는 형식이 된다.

임솔내에게 이중성은 갈등이 아니라 조건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모순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안고 간다. 그 과정에서 시는 해결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다.

무엇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독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걸어가게 만든다. 그 물음의 길 위에서, 독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삶의 경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그 물음 앞에서 임솔내는 멈추지 않는다. 흔들리면서도, 때로는 돌아서면서도, 끝내 걸음을 놓지 않는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멈춤이 없다. 말없이 이어지는 그 걸음 속에서, 두 세계는 여전히 충돌하고, 동시에 하나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그의 시는 다시 태어난다.

□ 한 인간의 깊이가 한 시대의 울림이 되는 자리

임솔내의 시를 따라 걸어온 길은 단순한 문학적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끝내 스스로를 넘어서는지를 목격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시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았고, 삶을 쉽게 정리하지도 않았다. 대신 끝까지 밀어 올리고, 끝내 책임지며, 그 과정 자체를 언어로 남겼다. 그 결과 그의 시는 읽히는 순간보다, 읽은 뒤에 더 오래 머무는 힘을 갖는다.

그의 시심은 단순한 감각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결기에서 비롯된다. 인격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태도에서 드러나고, 내공은 시간을 견디며 축적된 언어 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사랑은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끝에서 남는 하나의 선택으로 자리한다. 이 네 가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지며, 임솔내라는 한 존재를 구성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그가 끝내 ‘두 세계’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질서와 욕망, 고요와 격렬함, 절제와 야성은 그의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그 충돌은 해소되지 않는다. 외려 그 긴장 속에서 그의 시는 더 깊어진다. 그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양쪽을 끝까지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모순을 견디는 힘으로 자신의 언어를 세운다. 이때 시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존재의 방식이 된다.

임솔내의 시가 지닌 또 하나의 힘은 ‘시간’에 있다. 그의 언어는 서두르지 않는다. 스쳐가는 감정을 붙잡아 오래 다듬고, 끝내 남겨야 할 것만 남긴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가벼움을 벗고 무게를 얻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그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견디고 축적된 시간의 힘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상처를 피하지 않고, 그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끝내 사랑을 선택한다. “그래도 사랑하리라”는 그의 선언은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삶을 향한 태도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심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수행에 가깝다.

흔들리고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반복 속에서,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임솔내의 시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삶은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가. 사랑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이 통과해온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 질문은 가볍지 않고, 쉽게 외면되지 않는다. 독자는 그 물음 앞에서 멈추게 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한 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의 태도를 마주하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시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물음 속에서, 독자는 조금 더 깊어진 자리로 이동한다.

임솔내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완성된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묻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말없이 이어지는 그 걸음 속에서, 그의 시는 계속해서 새로운 울림을 낳는다.

그 울림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 오래 남는 힘이야말로, 한 인간의 깊이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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