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 시인의 시 《어머님 전》 ㅡ말을 줄이고 삶을 남긴 어머니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고정애 시인의 시 《어머님 전》 ㅡ말을 줄이고 삶을 남긴 어머니 2026.04.25
□ 고정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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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전
시인 고정애
더워라 더워라 하면
너만 덥냐?
추워라 추워라 하면
너만 춥냐?
앞뒤 생각 없이
함부로 쏟아낸 나의 수다를
담담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나무라던
나의 어머니
마을에서 첫째로 무서웠다는 외 할아버지의
장녀로 태어나 열여덟에
열아홉 아버지의 아내가 되었던 나의 어머니
밝으면서도 말 수가 적었던 무학의 어머니는
욕심쟁이 떼쟁이 둘째 딸 내 거동이
은근히 마땅찮고 걱정되었나 보디
그 자리에선 눈 흘기며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왜 그런지 끝내 잊히지 않는
어렸던 그날의 선명한 한 컷
그래서 내 말 수가 조금은 줄었을까
그래서 세상이 조금은 잠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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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시인의 시 《어머님 전》
ㅡ말을 줄이고 삶을 남긴 어머니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내가 섬기는 시인 김선영 선생께서 며칠 전 들려주신 한 말씀이 오래 남아 있다. 고정애 시인의 시심은 맑고, 그 숨결은 사람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고 스며든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마음에 품은 채 그의 시 《어머님 전》을 펼쳤을 때, 전해 들은 성품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언어를 마주하게 되어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그래서 몇 줄, 그 느낌을 조심스레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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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먼저 들리는 것은, 한 어머니의 숨결이다.
고정애 시인의 《어머님 전》은 기억을 말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관계를 다시 세우는 언어다. 시는 설명하지 않고, 한 장면을 남긴다. 그 장면은 독자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더워라 더워라 하면 / 너만 덥냐?”
“추워라 추워라 하면 / 너만 춥냐?”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꾸중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한 방식이다. 자기 감정에 갇히지 말라는, 그러나 강요하지 않는 훈계. 어머니의 말은 길지 않지만, 그 짧음 속에 삶의 균형이 들어 있다. 여기서 언어는 설명이 아니라 방향이다.
시의 중심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짤막하게 나무라던’이라는 구절에 있다. 길게 말하지 않는 태도, 그러나 정확히 닿는 말. 이 절제는 시 전체를 지탱하는 미학이다. 고정애 시인의 시는 덜어냄으로 완성된다. 남겨야 할 것만 남기는 방식, 그것이 더 오래 남는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서술 또한 과장되지 않는다.
“열여덟에 / 열아홉 아버지의 아내가 되었던 나의 어머니”
이 한 줄에는 시대가 들어 있고, 한 인간의 운명이 들어 있다. 그러나 시는 그 고단함을 확대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두고 지나간다. 그 절제는 독자로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더 큰 울림을 만든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무학의 어머니’라는 표현이다. 배움이 없다는 사실을 결핍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외려 그 안에서 더 본질적인 삶의 지혜가 드러난다. 욕심 많은 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판단보다 걱정이 먼저 있다.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이 이 시의 깊이를 만든다.
“그 자리에선 눈 흘기며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반응과, 현재의 이해가 동시에 겹쳐진다.
하여, 이 시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통과해 현재의 인식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질문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 말 수가 조금은 줄었을까
그래서 세상이 조금은 잠잠했을까”
이 질문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 자체가 하나의 성찰이 된다. 어머니의 짧은 말이 한 사람의 언어를 바꾸었고, 그 언어가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을 가능성. 시는 그 변화를 암시한다.
고정애 시인의 이 작품은 ‘효’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관계의 결을 통해 그것을 드러낸다. 꾸짖음 속에 담긴 사랑, 짧은 말 속에 남은 시간,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기억.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깊은 울림을 만든다.
이 시가 도달하는 자리는 크지 않다. 그러나 깊다.
말을 줄이는 법을 배운 자리,
그 줄어든 말 속에서 더 멀리 닿는 삶의 방식.
그 안온한 변화가, 이 시가 오래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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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덜어 맑음을 남기신 분께
— 고정애 시인께
청람 김왕식
소리 높이지 않아도
먼저 닿는 숨결이 있습니다
짧은 한마디가
한 생의 방향이 되는 순간,
말은 비로소 빛을 얻습니다
시인께서는
말을 더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덜어내심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밝히십니다
꾸짖음처럼 들리던 그 음성 속에
세상을 고르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고,
침묵처럼 남겨진 그 여백 속에
사랑은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배움으로 얻지 않은 지혜가
삶으로 스며들어
한 줄의 시가 되고
한 사람의 길이 되는 것을
당신의 시에서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지나
사람의 본성을 비추는 언어,
그 고요한 힘 앞에서
마음은 스스로 낮아집니다
시인께서 남기신 문장들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는
페이지를 넘긴 뒤에도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사람 곁에 머무릅니다
말을 줄여
삶을 남기신 분께
늦은 인사를 올립니다
그 맑은 숨결이
오래, 그리고 깊이
이 세상을 적셔가기를 바랍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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