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함박꽃처럼 맑은 목소리, 한 시인을 만나다 ㅡ청람 김왕식

함박꽃처럼 맑은 목소리, 한 시인을 만나다 2026.04.26
함박꽃처럼 맑은 목소리, 한 시인을 만나다

□ 고정애 시인

함박꽃처럼 맑은 목소리, 한 시인을 만나다

청람 김왕식

어제였다.

고정애 시인의 《어머님 전》을 읽고,

어줍잖은 시평 몇 줄을 조심스레 건넸다.

잠시 뒤, 전화 한 통이 왔다.

과분한 칭찬의 말씀이

수화기 너머로 조용히 흘러나왔다.

1934년생, 아흔셋의 연세.

그러나 그 목소리는

시간을 비켜 선 듯 맑고 또렷했다.

낭랑하고 청아한 음색 속에

세월은 쌓이지 않고

오히려 더 투명해진 것만 같았다.

목포여고 1회 졸업생이시라며

조용히 웃으시던 그 순간,

한 소녀가 아직도 그 안에 살고 있음을 느꼈다.

아흔을 넘긴 지금에도

그때 그 여학생의 고운 마음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채

그 음성 속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었다.

순간,

내가 드린 시평을

당신의 블로그에 올리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이 나와 동갑이라는 말에

나는 그저 머뭇거리다

“어머니”라 불렀다.

그 한마디에

밝은 웃음이

봄빛처럼 번져 나왔다.

지금은 서울 신당동의 오래된 집을 떠나

양평,

황순원 소나기마을

근처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조용한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햇살은 부드럽게 번지고

바람은 낮게 스쳐가는

한 폭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당신께서 가슴에 품고 계신 김선영 시인을 모시고

그곳으로 찾아가겠노라 말씀드리니

전화기 너머로

작은 기쁨이 잔잔히 흔들렸다.

어머니 같은 시인,

고정애 선생님과의 이 짧은 소통은

마치

봄날 뒤뜰에 피어난

함박꽃 한 송이를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과 같았다.

환하게 피어 있으면서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꽃,

그 고요한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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