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덕 위에 핀 한 집의 온기 ㅡ청람 김왕식
둔덕 위에 핀 한 집의 온기 2026.04.26
□ 밀양골 동화마을 둔덕 위 아름다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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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 위에 핀 한 집의 온기
청람 김왕식
둔덕 위에 핀 집 한 채의 온기
밀얌골 동화마을,
이름을 부르면 먼저 바람이 고개를 든다.
고즈넉한 둔덕 위에,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난 듯 앉아 있는 집 한 채. 그 집에는 오래된 동화의 문장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양 집사님 부부가 사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은 먼저 사람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벽은 낮고, 창은 넓다. 빛이 오래 머물다 가고, 바람은 급히 지나가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서두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 집의 주인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 단어 하나를 고르듯,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신중하고 맑다. 양 집사님은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웃음은 크지 않으나 깊다. 마치 한 줄의 시처럼 짧고, 그러나 오래 남는다.
그 미소는 남편을 향할 때 더욱 부드러워진다. 지극정성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일상의 작은 결마다 스며 있기 때문이다.

□ 양 집사님 부부
부드러움은 흔히 약함으로 오해되지만, 이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부드러움 속에는 단단한 중심이 있다. 엄정한 가정교육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보살피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방향을 함께 세우는 일임을 이 부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는 어디에서든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 남보다 앞서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들처럼 묵묵히 자기 길을 걷고 있다. 그 모습은 부모의 삶을 닮아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이라는 듯이.
몇 해 전 늦가을, 그 집을 찾았던 날이 떠오른다. 햇빛은 낮았고, 공기는 투명했다. 정원에는 밤송이가 터져 있었다. 둘러앉아 밤을 줍던 시간은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손에 쥔 밤은 둥글고 단단했다. 그 모양이 꼭 이 집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겉은 소박하지만 속은 깊고 단단한 것.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흐르는 고요한 온기가 그 안에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밤을 하나씩 주워 담을 때마다, 떨어진 열매가 아니라 익어 떨어진 시간들을 줍는 기분이었다. 삶이란 그렇게 조용히 익어가는 것임을, 이 집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봄이 오면, 다시 그곳을 찾고 싶어진다.
둔덕 위 정원에 꽃들이 만개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꽃들은 화려하게 피기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더 깊어지는 색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꽃은 사람을 닮는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머무는 집을 닮는다.
양 집사님 부부의 집은
그래서 하나의 정원이 아니라,
하나의 삶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뿌리가 이미 서로의 마음 깊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잘 산다는 것은
크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오래 따뜻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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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 위에 번지는 봄빛
청람
둔덕 위, 봄 한 장
밀얌골 바람이
하얀 종이 위에 먼저 스민다
둔덕 끝에 앉은 집 한 채
햇살이 지붕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을 건다
창가에는
소녀 같은 미소 하나
꽃잎처럼 내려앉아 있고
마당에는
오래된 발걸음들이
흙의 결을 따라 빛나고 있다
가을에 주워 담았던 밤알처럼
둥글던 시간들이
손끝에 아직 남아
봄은 그 위에
다시 꽃을 피운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 사이로 흐르는 고요가
가장 따뜻한 색으로 번진다
바람이 스쳐가도
흔들림은 소리가 되지 않고
빛으로 남는다
그 집은
한 편의 동화가 아니라
천천히 번져가는 한 폭의 수채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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