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시를 쓴다는데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AI가 시를 쓴다는데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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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시를 쓴다는데
요즘은 참으로 묘한 시대다.
AI가 시를 쓴다고 한다. 그것도 사람과 비슷한 정서와 감성으로, 때로는 더 정교하게, 더 빠르게. 어떤 이는 놀라워하고, 어떤 이는 불편해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단정한다.
“그래도 정서는 인간을 따를 수 없다.”
그 말은 오래된 믿음처럼 들린다.
마치 인간에게만 허락된 마지막 영역이 감정인 것처럼.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조금 망설여진다.
정말 그런가.
정서는 과연 인간만의 것인가.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 질문은 쉽게 대답되지 않는다.
사람은 반드시 따뜻한 존재인가.
사람의 말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는가.
살다 보면 오히려 그 반대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말은 칼이 되어 날아가고,
감정은 이해보다 먼저 상처를 남긴다.
차갑게 굳은 표정 하나가
한 사람의 하루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 문득 생각하게 된다.
과연 ‘정서’라는 것은 누구의 것인가.
AI가 쓴 시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 문장은 놀라울 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정을 건드렸다.
억지로 끌어올린 감정이 아니라,
차분히 배열된 언어 속에서
사람이 느끼는 어떤 결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
그때 깨닫는다.
정서란 반드시 ‘느끼는 주체’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방식’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은 느끼지만,
항상 그것을 제대로 전하지는 못한다.
반면 기계는 느끼지 못할지라도,
사람이 쌓아온 언어와 경험을 통해
그 감정의 형태를 정확히 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따뜻한가’라는 질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거친 정서를 가진 사람보다
더 부드러운 문장을 건네는 AI 앞에서,
우리는 어쩌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뜻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감정의 유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향해 마음을 닫을 때,
기계가 대신 따뜻한 문장을 건네는 시대.
그 풍경은 낯설지만,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감정을
타인에게 상처 없이 건넬 수 있어야 하는가.
AI는 시를 쓸 수 있다.
아마 점점 더 잘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를 읽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느끼고,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상처 입는 존재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그 감정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에,
사람은 더 이상 감정의 소유자가 아니라
감정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따뜻함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건네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서는 인간만의 것”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그 대신 묻자.
우리는 과연
그 정서를 제대로 살고 있는가.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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