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 — 청연 김상희 시인의 《무제》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알 수 없음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 — 청연 김상희 시인의 《무제》를 읽다 2026.05.09
□ 청연 김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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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시인 청연 김상희
사람이 지저귄다
새가 말을 한다
지저귀다 웃는다
말을 하다 운다
어떻게 된 세상이냐고 묻지말자
서로 모르니까
철로를 걷는다
기차소리 하늘 찌른다
피가 흐른다
왜 그랬냐고 묻지마라
우리도 모르니까
비둘기가 주워먹는 거짓들
진실로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 하는 말들
진실과 거짓 사이
바람이 웃는 이유
나무가 우는 이유
묻지 말자
우리 서로 모르니까
■
알 수 없음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
— 청연 김상희 시인의 《무제》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를 읽다가 문득 고개가 숙여질 때가 있다.
감탄 때문이 아니다. 외려 너무 쉽게 세상을 안다고 말하며 살아온 자신의 성급함이 부끄러워질 때다. 청연의 《무제》는 바로 그런 시다. 짧고 담담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읽고 나면 독자는 자기 안의 소란과 마주하게 된다.
첫 행부터 세계는 뒤집혀 있다.
“사람이 지저귄다
새가 말을 한다”
이 낯선 전도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시인은 이미 인간의 언어가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린 시대를 보여준다. 사람은 수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진심은 사라지고, 새의 짧은 울음 속에서 더 인간다운 슬픔이 들린다. 말은 넘치는데 이해는 사라진 시대. 시인은 그 불안한 현실을 단 네 줄로 압축해 놓는다.
이어지는 “지저귀다 웃는다 / 말을 하다 운다”는 더욱 깊다.
웃음과 울음의 경계가 무너진다. 인간은 웃고 있으나 실은 울고 있고, 말을 하지만 끝내 마음에 닿지 못한다.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이보다 더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이 시의 핵심은 반복되는 한 문장에 있다.
“우리 서로 모르니까”
이 문장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실은 인간 존재를 향한 가장 낮고 깊은 연민이다. 사람은 서로를 안다고 믿는다. 정작 타인의 슬픔도, 침묵도, 상처의 깊이도 제대로 모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다 알지 못한다. 시인은 함부로 묻지 말자고 한다. 그 말 속에는 냉소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겸허가 있다.
“철로를 걷는다 / 기차소리 하늘 찌른다 / 피가 흐른다”
여기서 시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시대의 상처로 나아간다.
철로는 그저 배경이 아니다. 멈추지 않는 문명의 속도이며, 인간을 끝없이 몰아가는 삶의 압박이다.
그 위를 위태롭게 걷는 존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기차소리가 “하늘 찌른다”는 표현에서는 인간의 비명이 들린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영혼은 더 고독해진 시대의 절규다.
시인은 끝내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
“왜 그랬냐고 묻지마라
우리도 모르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김상희의 시 세계는 특별해진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면서도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차갑지 않다. 외려 모든 존재의 연약함 앞에서 함께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이 시가 지닌 윤리이며 품격이다.
특히 “비둘기가 주워먹는 거짓들”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壓卷이다.
거짓은 이제 거리의 먹이처럼 흩어져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무심히 삼킨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흐려지고, 말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의 시대를 이보다 더 간결하게 드러낸 시어는 드물다.
무엇보다 이 시가 오래 남는 이유는, 시인의 심성이 맑기 때문이다.
맑다는 것은 단순히 순하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의 혼탁을 보면서도 끝내 증오로 물들지 않는 힘이다. 청연의 시에는 바로 그 투명한 슬픔이 있다. 해서, 그의 언어는 날카롭지 않아도 깊다. 조용하지만 오래 흔든다.
마지막 연은 마치 선문답처럼 다가온다.
“바람이 웃는 이유
나무가 우는 이유
묻지 말자”
세상에는 끝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 인간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만, 어떤 존재의 깊이는 설명보다 침묵 속에 머문다는 것. 시인은 바로 그 자리까지 걸어간다.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서로를 다 안다고 믿는 오만일지도 모른다.
하여, 청연 김상희 시인의《무제》는 끝내 묻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 존재를 더 깊고 아프게 묻고 있는 지도 모른다.
■
맑은 울음 하나 오래 품고 사시는 분,
청연 김상희 선생님께
청람 김왕식
청연 선생님
선생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세상이 잠시 소리를 낮춥니다
사람들은
더 크게 말하려 애쓰는데
선생님의 언어는
외려 조용히 물러앉아
사람의 상처 곁을 오래 지켜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를 읽는 동안
문득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했던 마음
끝까지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믿었던 오만들이
행간마다 조용히 드러납니다
“우리 서로 모르니까”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어찌 그리 깊은 슬픔이 되는지요
선생님은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상처 입은 사람들 곁에
함께 고개 숙여 주십니다
하여, 선생님의 시에는
비판보다 더 깊은 연민이 있습니다
거짓이 거리를 떠다니고
사람의 말들이 서로를 찌르는 시대에도
선생님은 끝내
맑은 심성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맑다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의 시를 통해 배웁니다
세상이 거칠어질수록
더 투명해지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바람 한 줄에도
사람의 슬픔을 듣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
시인은 말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아픔을 오래 들어주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고 나면
말이 줄어듭니다
대신 마음속 어딘가에
맑은 물 한 그릇이 놓인 듯
조용해집니다
부디 오래도록
그 투명한 시심으로
이 시대의 메마른 마음들을
가만히 적셔 주십시오
선생님의 시는
큰 목소리로 세상을 흔들지 않지만
사람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오래 남는 작은 종소리 같습니다
맑아서 슬프고
슬퍼서 더욱 따뜻한
그 울림처럼 말입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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