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의 칼날, 도면 위의 침묵 ― 추원호 시인의 시《면도 칼의 한숨》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먹빛의 칼날, 도면 위의 침묵 ― 추원호 시인의 시《면도 칼의 한숨》을 읽다 2026.05.10
□ 추원호 시인의 서예작품
□ 추원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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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칼의 한숨
시인 추원호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또 한 번
검은 수염의 숲으로 들어간다
번뜩이는 칼날 하나 믿고
밤새 자라난 턱의 시간들을
밀어내려 하지만
밤새 자란 수염은
어제 베어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싹처럼 다시 돋아나고
다시 피곤한 전쟁을 이어간다
거울 속 뽐내는 남자는
말없이 턱을 문지르고
한때 번쩍이던 나는
작은 휴지통 안으로
패배한 병사처럼 던져진다
나는 안다
내가 던져지는 순간마다
거울 속의 남자의 하루는
단정해지는 시간의 시작임을
그러나 그 남자는 알까
아침마다 태어난 생명들을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고통스러운 나의 마음을


■
먹빛의 칼날, 도면 위의 침묵
― 추원호 시인의 시《면도 칼의 한숨》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정좌하여 마주하게 된다.
문장 앞에 앉는 순간, 독자는 마치 아직 아무 글씨도 오르지 않은 화선지 앞에 놓인 사람처럼 숨을 고르게 된다.
추원호 시인의 《면도 칼의 한숨》이 그렇다.
이 작품은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오래 갈아낸 먹처럼 천천히 번져 나온다. 거기에는 서두름이 없다. 대신 절제와 수행에 가까운 밀도가 있다.
추원호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시의 결이 왜 이토록 단단한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그는 서예가이며 건축사다. 한 손으로는 벼루에 먹을 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오차 없는 도면을 그려온 사람이다.
목욕재계沐浴齋戒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정좌한 채 붓끝 하나에 정신을 모으는 시간, 그리고 단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되지 않는 설계 도면 앞에서 긴 숨으로 선을 그어온 시간이 그의 시어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하여, 그의 시는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한 줄 한 줄이 마치 화선지 위에 내려앉는 붓놀림 같다. 불필요한 획이 없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제된 문장 사이에는 오래 벼린 정신의 결이 살아 있다.
“검은 수염의 숲”이라는 첫 구절부터 그렇다.
평범한 아침의 면도 시간이 시인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하나의 존재론적 풍경으로 변모한다. 그는 수염을 단순한 털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밤새 자라난 턱의 시간들”이다. 이 표현에는 건축사의 시선이 숨어 있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구조를 만든다. 건물의 골조처럼 인간의 삶 또한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형성된다.
시인은 그 감춰진 시간을 턱 위의 수염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사물로 가시화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교한 구조감이다.
건축 도면처럼 시의 배치가 치밀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면도의 풍경처럼 시작되지만, 점차 반복되는 생의 피로와 존재의 소모로 확장된다.
“어제 베어낸 자리에서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 새싹처럼 다시 돋아나고”라는 대목은 인간 삶의 순환 구조를 정확히 관통한다.
여기에는 건축사의 감각과 서예가의 인내가 동시에 살아 있다.
건축이 무게를 견디는 예술이라면, 서예는 침묵을 견디는 예술이다. 추원호의 시는 바로 그 두 힘의 교차점에서 태어난다.
“패배한 병사처럼” 휴지통 안으로 던져지는 면도칼의 모습 또한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다.
이 장면에는 역할을 다한 존재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 사회는 늘 단정한 얼굴을 원하지만, 그 단정함을 위해 닳아가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시인은 바로 그 버려지는 자리까지 시선의 윤리를 확장한다. 이것이 시인 추원호 시의 깊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연이다.
“아침마다 태어난 생명들”이라는 표현에서 시인은 수염조차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시선이다.
서예가가 한 획을 허투루 긋지 않듯, 건축사가 작은 오차 하나에도 긴장하듯, 그는 사소한 것 하나도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다.
시 《면도 칼의 한숨》은 면도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는 인간 삶의 구조를 말한다.
누군가의 단정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존재하고, 세상의 질서는 수많은 소모와 침묵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추원호 시인의 시에는 공력이 있다.
오랜 시간 마음을 갈아 만든 먹빛의 깊이, 그리고 삶의 균형을 끝까지 계산해온 설계자의 치밀함이 함께 살아 있다.
그의 시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오래 남는다.
마치 잘 그려진 도면처럼, 처음에는 단순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의 정밀한 구조가 서서히 드러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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