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달빛이 늙지 않는 이유 —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을 읽으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달빛이 늙지 않는 이유 —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을 읽으며 2026.05.12
달빛이 늙지 않는 이유 —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을 읽으며

□ 윤계 손현수 시인

혼란

시인 윤계 손현수

스쳐간 혼란의 바람 같은 그 이름 섬섬한 사랑

그가

불어주던 젊음의 멋 낭만을 띄운 하모니카 소리

한번 더 듣고 싶은

추억의 입김

아련히 성큼 지나갑니다

조용한 대숲 뒤 이지러진 달빛 사이로 이미 감춘 님의 기척

적막이 흐르는 깊은 저 하늘 끝에 쓸쓸히 웃는 별 하나

아슬히 보이는듯 오늘밤도 느리게 깜박입니다

달빛은 왜 오래 사람 곁에 머무는가

—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을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떠나도 어떤 숨결은 오래 남는다.

목소리는 사라져도, 그 사람이 불어 넣던 공기의 온도만은 이상하게 삶의 구석에 남아 있다.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은 바로 그 남겨진 숨결을 따라가는 시다. 단순한 그리움의 노래가 아니다. 먼저 하늘로 떠난 남편을 향한 순애보이며, 세월이 지나도 끝내 마르지 않는 사랑의 기록이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시 속 “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는 단순한 추억 속 인물이 아니다. 윤계 시인의 삶 한복판을 오래 걸어온 남편이다. 생전 그는 참 젠틀한 신사였다고 한다. 하모니카와 트럼펫을 연주하며 가수 백년설의 노래를 즐겨 불렀고, 그 멜로디로 아내와 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주던 사람이었다. 집 안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그 음률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한 가정의 온도였고, 사랑의 방식이었다.

하여, 시인은 첫 구절에서 “섬섬한 사랑”이라 썼다.

이 표현은 참 아프도록 아름답다.

섬섬하다는 것은 선명히 붙잡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 바람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감촉이다. 윤계 시인의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이었다. 소란스럽지 않았고 과장되지도 않았다.

오래 스며들었다. 한 사람의 평생을 다 적시고도 남을 만큼 깊고 은은한 사랑이었다.

“그가 불어주던 젊음의 멋 낭만을 띄운 하모니카 소리”

이 대목에 이르면 시는 갑자기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독자는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저녁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젊은 남편이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백년설의 노래를 부른다. 아내는 그 곁에서 웃고, 아이들은 숨죽여 그 소리를 듣는다. 세월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 음악만은 아직 집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모니카는 사람의 숨으로 우는 악기다.

해서, 더 절절하다. 그 악기 속에는 한 남자의 성품과 온기와 사랑이 그대로 스며 있다.

윤계 시인은 그 숨결을 잊지 못한다.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뒤에도 남편은 시인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외려 달빛이 되어 더 오래 곁에 머문다.

“조용한 대숲 뒤 이지러진 달빛 사이로 이미 감춘 님의 기척”

이 구절의 달빛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바로 남편이다.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던 시인은 문득 창밖의 새벽달을 바라보다가 이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 걸린 희미한 달빛 하나가 순간 남편의 얼굴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이 시의 달은 천체가 아니라 사랑의 현현이다. 떠난 사람의 영혼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동행이다.

지금도 윤계 시인은 남편 이야기를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그 눈물은 슬픔만은 아니다.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사랑할 수 있었다는 축복의 눈물이다. 세상에는 함께 살아도 끝내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하는 부부가 많다. 그러나 윤계 시인은 사랑을 끝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어쩌면 축복받은 시인이다. 사랑이 끝나지 않은 사람,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은 영혼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쓸쓸히 웃는 별 하나 / 오늘밤도 느리게 깜박입니다”는 구절은 그래서 더 깊다.

그 별은 남편의 혼이고, 동시에 시인 자신의 마음이다. 울지 않고 깜박이는 별. 조용히 밤하늘을 지키는 별. 윤계 시인의 노년 또한 그렇다. 그는 늙음을 체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춤을 추고, 시를 낭송하고,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 세월을 통과한 뒤 오히려 더 맑아진 달빛 같다.

좋은 시는 사람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비춘다.

윤계 손현수 시인의 《혼란》은 바로 그런 시다.

이 시를 읽노라면

어느새

마음속에 작은 별 하나 켜진다.

윤계 시인은 슬며시 독자에게 다가가

소색인다.

“아름다운 노년이란

세월에 닳아가는 삶이 아니라,

점점 더 맑은 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일이라고”

ㅡ청람 김왕식

□ 윤계 손현수 선생님 산책 모습

달빛을 끝내 놓지 않은 사람께

— 윤계 손현수 시인께

청람 김왕식

새벽은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의 이름으로

인온히 밝아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잠결처럼 흔들리던 달빛 하나

창가에 걸려 있던 밤

선생님은 문득

먼저 하늘로 간 한 사람의 숨결을

다시 만지셨습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지워도

끝내 지우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모니카 속에 남아 있던 입김

트럼펫 끝에서 떨리던 저녁놀

백년설 노래 한 자락 따라

가만히 번지던 한 남자의 젊음

그 사람은

아마 생전에

선생님의 삶 속으로

달빛처럼 걸어왔던 사람일 것입니다

크게 소리내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밝히던

그런 신사였을 것입니다

하여,

선생님은

사랑을 불꽃이라 쓰지 않고

“섬섬한 사랑”이라 부르셨나 봅니다

손끝에 닿을 듯

이내 멀어지는 바람처럼

아프도록 맑은 사랑

떠난 뒤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람의 체온 같은 말

선생님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알게 됩니다

사람은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달빛으로 남는다는 것을

대숲 뒤 이지러진 달 하나에도

아직 그이의 발자국이 남아 있고

적막한 하늘 끝

느리게 깜박이는 별 하나에도

선생님의 눈물이 오래 고여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은

선생님이 그 슬픔마저

시로 피워 올린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에 무너지지 않고

외려 더 맑아지는 사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은 달빛이 되어가는 사람

선생님의 시는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들의 가슴에

늦은 밤 조용히 걸려오는 등불 같습니다

오늘도 세상 어디선가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 하나가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잊고 있던 사랑을 떠올릴 것입니다

불현듯

눈시울 붉히며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한 마음은

죽음조차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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