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저녁의 체온」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저녁의 체온」 2026.05.13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저녁의 체온」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저녁의 체온」

ㅡ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왜 온도가 오래 남는가

시인 김미루 인물칼럼니스트

사람은 사라져도 체온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오래 함께 살았던 방 안에는 말보다 늦게 식는 공기가 있고, 자주 앉던 의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기척이 남는다. 어떤 기억은 얼굴보다 먼저 냄새로 돌아오고, 어떤 사랑은 끝내 한 그릇의 온도로 남는다.

청람 김왕식 시인의 「저녁의 체온」은 바로 그 ‘남겨진 온도’를 다루는 시다.

이 시를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마음에 닿는 것은 절제다.

시인은 울지 않는다. 외롭다고 직접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빈 의자와 벗어둔 신발, 국그릇 가장자리와 식지 못한 컵 하나를 방 안에 조용히 놓아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물들 사이를 지나고 나면 독자의 마음 안에서 늦은 저녁처럼 서늘한 그리움이 번져 나온다.

첫 행은 매우 뛰어나다.

“저녁은 / 늦게 돌아온 방 안에서 / 먼저 식고 있었다.”

여기서 저녁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살아 있는 감정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먼저 식고 있었다”라는 표현이다. 사람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식어버린 저녁. 이 한 문장 속에는 기다림과 피로, 늦은 귀가와 적막한 생활의 결이 동시에 배어 있다. 설명은 짧지만 정서는 깊다.

이어지는 “빈 의자 하나 / 오래 침묵을 기대고”라는 구절은 특히 아름답다. 보통 사람은 의자에 기대지만, 여기서는 침묵이 의자에 기대어 있다. 사물에 감정을 얹는 방식이 매우 자연스럽고, 과장 없이 시적이다.

또한

“벗어둔 신발 속엔 / 골목 몇 개를 건너온 하루가 / 아직 따뜻하다”

는 대목은 이 시의 가장 생활적인 동시에 가장 서정적인 부분이다. 신발 속의 남은 체온을 통해 시인은 한 인간의 하루 전체를 환기한다. ‘골목 몇 개를 건너온 하루’라는 표현에는 도시의 피로와 서민적 삶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생활의 미세한 온도를 통해 인간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는 매우 성숙한 감각을 보여준다.

중반부의

“국그릇 가장자리 / 말이 되지 못한 / 어머니의 저녁이 / 옅은 김으로 흔들리고”

는 이 작품의 정서적 중심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그릇 가장자리에 남은 김만으로도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특히 “말이 되지 못한 어머니의 저녁”이라는 표현은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대개 언어보다 먼저 식탁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그것을 과장 없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보여준다.

“사람은 떠난 뒤에도 / 물건들 속에 체온을 남긴다”는 구절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다. 인간은 결국 사물 속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오래 쓰던 컵, 낡은 의자, 닳은 신발 같은 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이 스며든 작은 기억의 그릇들이다. 김왕식 시인의 시는 바로 그 사물의 체온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의

“외로움도 천천히 / 사람의 얼굴을 닮아간다”

는 결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보통 외로움은 감정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외로움은 하나의 존재처럼 방 안에 앉아 있다. 오래 혼자 지낸 사람 곁에서 천천히 사람의 얼굴을 배우는 또 다른 그림자 같다. 이 마무리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문학적 여운을 남긴다.

청람 김왕식 시인의 「저녁의 체온」 은 화려한 비유나 난해한 언어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사물들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체온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 체온은 사랑의 흔적이고, 기다림의 흔적이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삶의 잔열이다.

좋은 시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다 읽은 뒤, 불 꺼진 방 안에서 오래 식지 못하는 컵 하나처럼 독자의 마음 곁에 가만히 남아 있는 법이다.

ㅡ 시인 김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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