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변수남 시인의 시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ㅡ달빛 아래 끝내 지워지지 않는 숨결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변수남 시인의 시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ㅡ달빛 아래 끝내 지워지지 않는 숨결 2026.05.13
변수남 시인의 시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ㅡ달빛 아래 끝내 지워지지 않는 숨결

□ 월산사 와편

ㅡ변수남 시인이 직접 발견한 글씨 새겨진 진귀한 와편

□ 월산사 전경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시인 변수남

.

낮의 해로 살기에는

운명이 기구해

달이 되어 달빛에 숨은

사내

월산사(月山寺) 새긴 와편

혓바닥으로 핥아 달을 마신다

들려온다, 삐그덕 삐그덕 빈 배 저어 온다

말한다, 탐원자

이것은 왕실 사찰 뚜렷한 증거

맞춰봐야겠다, 문헌에도 없는 문헌

낮으로는 절대 살 수 없었기에

살아서는 안 되었기에

밤을 걸은 사내

달을 밟은 사내

깨진 와편 속에서

듣는다, 대군의 숨소리

권력보다 더 힘있는 달의 외침

바다를 이룬 달빛 향연

햇빛 차노매라, 감기 들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낮지만 웅장히 울리는

음성이 진찰한다

그윽히

변수남 시인의 시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ㅡ달빛 아래 끝내 지워지지 않는 숨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밤은 때로 역사의 뒷면을 먼저 읽는다.

대낮의 기록이 지워버린 이름들,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끝내 그림자로 살아야 했던 존재들은 외려 달빛 아래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시인 변수남의 《월산사에서 와편을 집어 들고》 는 바로 그 지워진 존재의 체온을 더듬어가는 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유적 답사의 감상이 아니다. 깨진 기왓장 하나를 통해 사라진 인간의 운명과 권력의 음영, 그리고 기록되지 못한 생의 비애를 불러내는 깊은 정신의 순례다.

무너진 절터에는 늘 침묵이 먼저 앉아 있다.

변수남 시인은 그 침묵을 폐허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금 간 와편 속에서도 아직 식지 않은 숨결을 듣는다. “낮의 해로 살기에는 / 운명이 기구해 / 달이 되어 달빛에 숨은 / 사내”라는 첫 연은 이 시의 중심을 단숨에 열어젖힌다.

여기서 해는 드러난 권력의 세계이며, 달은 숨어 살아야 했던 인간 존재의 내면이다. 시인은 역사의 환한 중심보다 외려 달빛 아래 감춰진 이름 없는 영혼에게 더 오래 귀를 기울인다.

하여, 이 시의 밤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진실이 겨우 목숨을 유지하던 자리다.

특히 “와편 / 혓바닥으로 핥아 달을 마신다”는 표현은 이 시를 단숨에 특별한 자리로 끌어올린다. 유물을 손으로 만지는 차원을 넘어 혀끝으로 핥는다는 감각의 전이는 매우 낯설고도 강렬하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존재를 자기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일이다. 달을 마신다는 표현 또한 인상적이다. 달빛 속에 숨어 살아야 했던 인간의 비애와 기억을 자신의 몸속으로 들이는 영적 행위처럼 읽힌다. 이 대목에서 시는 역사적 상상력을 넘어 거의 무속적 직관의 경지에 이른다.

변수남 시인의 언어는 단단하다.

그 단단함은 결코 과장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 오랜 시간 문학 속에서 자신을 절제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이 문장마다 배어 있다. 그는 문학의 산실인 동국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젊은 날 미당 서정주 시인, 장호 시인을 만났다. 그 문학적 인연들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그의 언어 깊숙이 스며든 정신의 결이 되었다.

특히 이병주 교수의 《고인과의 대화》를 읽으며 얻은 사유의 깊이는 이후 그의 문학 세계를 오래 이끌어왔다. 죽은 자와 대화한다는 것은 시간의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변수남 시인의 시선이 늘 사라진 존재들에게 오래 머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늘 국토를 순례하듯 걸어온 시인이다. 이름난 풍경보다 길섶의 들꽃 하나에 오래 머물고, 무심히 밟히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체온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월산사에 흩어진 깨진 기왓장 조각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폐허는 지나간 시간의 잔해이지만, 시인에게 폐허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목소리다.

그는 와편 앞에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찾지 않는다. “문헌에도 없는 문헌”을 맞춰보려 한다.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는 기록된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다. 문헌 밖에 밀려난 사람들의 숨결, 권력의 기록에서 지워진 목소리들, 그것이야말로 인간 역사의 진짜 내부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있다.

시의 중반부에서 등장하는 “깨진 와편 속에서 / 듣는다, 대군의 숨소리 / 권력보다 더 힘있는 달의 외침”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권력은 결국 낮의 언어다.

달빛은 오래 남는다. 궁궐은 무너져도 밤하늘의 달은 여전히 인간의 슬픔을 비춘다. 시인은 바로 그 오래 남는 것의 편에 선다.

이 시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지 않는다. 외려 사라진 존재들의 dignity를 복원한다. 깨진 기왓장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읽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변수남 시인의 시에서 빛나는 것은 따뜻함이다. 깊은 사유를 지녔으되 결코 차갑지 않다. 역사와 상징을 다루면서도 끝내 사람의 체온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연 “햇빛 차노매라, 감기 들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에 이르면 시는 거대한 상징의 세계를 지나 인간의 목소리로 내려앉는다. 낮지만 웅장하게 울리는 이 음성은 오래전 누군가가 건네던 다정한 말처럼 독자의 가슴에 남는다. 권력의 기록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말 한마디라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다.

변수남 시인은 화려한 언어로 독자를 압도하는 시인이 아니다. 그는 오래 바라보고, 오래 귀 기울이며, 사라진 것들의 마지막 체온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시인이다. 폐허를 보면서도 인간을 잃지 않는 사람. 달빛 속에 숨은 이름 없는 존재들의 숨소리를 끝내 들으려는 사람. 그런 시인을 만난다는 것은 오늘의 문학이 아직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깨진 와편 하나에도 사람의 운명이 눕는다는 사실을 아는 시인.

변수남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조용한 발견 위에 오래 남을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달빛을 오래 품은 사람에게

― 변수남 시인께

사람들은 대개

큰 산의 이름만 기억하지만

선생님은

산 아래 구르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먼 길 걸어온 저녁의 체온이 있다는 걸

오래 바라보신 분입니다

깨진 와편 한 장을 주워 들고도

한 시대의 숨결을 들으시고

길섶에 핀 들꽃 하나 앞에서도

세상이 아직

다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조용히 증언하셨습니다

낮보다 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

햇빛보다 달빛의 속도를 먼저 아는 사람

선생님의 시는

크게 외치지 않으면서도

오래 사람 곁에 남아

가슴 안쪽을 천천히 밝히는 등불 같습니다

문학이 화려한 말의 기술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의 이름을

끝까지 불러주는 일임을

선생님께 배웁니다

어느 폐사터에

금 간 기와 한 장 남아 있어도

그 안에서 사람의 운명을 듣고

바람 지나간 자리에서도

누군가의 그리움을 먼저 만지는

그 섬세한 영혼 때문에

오늘 우리의 문학은

조금 더 따뜻해졌습니다

부디 오래

달빛을 품은 채 걸어주십시오

선생님의 시가 지나간 자리마다

사람의 마음들이

조용히 살아날 수 있도록.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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