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해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랑 ― 강화의 《해오름》에서 홍천의 작은 천국까지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해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랑 ― 강화의 《해오름》에서 홍천의 작은 천국까지 2026.05.18
해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랑 ― 강화의 《해오름》에서 홍천의 작은 천국까지

□ 이영범 목사님

해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랑

― 강화의 《해오름》에서 홍천의 작은 천국까지

사람의 삶에는 두 채의 집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몸이 쉬는 집이고, 또 하나는 영혼이 쉬는 집이다.

그러나 세상을 오래 살아보면 안다.

몸을 눕힐 집은 많아도 마음까지 편히 기대어 울 수 있는 집은 드물다는 것을.

강화도의 낮은 언덕 위에는 그런 집 하나가 있다.

이름은 《해오름》

참 따뜻한 이름이다.

마치 해가 세상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집 같다.

강화의 바람은 오래된 사람 같다.

성급하지 않고,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는다.

바다 건너온 짠 내음과 들꽃 냄새를 함께 품은 채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그 바람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에서 묻어온 조급함이 조금씩 벗겨진다.

《해오름》은 그 언덕 끝에 조용히 앉아 있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된다.

창가에는 햇살이 늦도록 머물고,

문 앞 작은 화분들조차 누군가의 사랑을 먹고 자란 듯 환하다.

그 집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은 먼저 커피 향보다 체온을 느끼게 된다.

그곳의 주인은 이영범 목사님이다.

한평생 교단에 서서 아이들의 미래를 가르쳤고,

강대상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던 사람.

분필 가루 날리던 교실의 시간과

기도로 새벽을 열던 세월이

그의 얼굴에 잔잔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사람은 대개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한다.

명예를 붙들고, 자리를 놓지 못하고, 세상이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끝무렵에서야 비로소 내려놓음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이영범 목사님도 그런 사람이었다.

높은 이름보다 낮은 평안을 선택했고,

세상의 박수보다 사람의 눈물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사모님이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빨간 머리 앤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햇살을 머리칼에 묶어둔 듯 환하게 웃고,

누군가를 바라볼 때 먼저 눈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

그녀가 내리는 커피는 이상하다.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오래 지친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풀어주는 위로에 가깝다.

손님들은 처음엔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나중에는 사람의 온기를 만나러 다시 찾아온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질수록 《해오름》 같은 공간은 더 귀해진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카페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작은 피난처가 된다.

그런데 《해오름》의 따뜻함은 단순한 친절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 깊은 온기의 뿌리에는 한 아버지의 오래된 눈물이 숨어 있었다.

목사님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딸이 있다.

꽃처럼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했다.

사십 년이 넘도록

“아빠”라는 말을 또렷하게 불러본 적이 없었다.

“엄마”라는 말도 맑게 피어나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안타까움이라 말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조금 달랐다.

아픔 속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다만 밤마다 가슴이 저렸을 뿐이다.

아이의 손끝을 붙잡고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을까.

잠든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얼마나 오래 묻고 또 기도했을까.

그러나 진짜 사랑은 신기하다.

상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낮아지고, 더 따뜻해진다.

어느 날 목사님은 깨달았다고 한다.

내 딸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에는 몸과 마음이 불편한 채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누군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고,

누군가는 차가운 시선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아간다.

그 순간 그는 결심했다.

내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약한 영혼들을 품어야겠다고.

그렇게 홍천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 세워졌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그곳은

시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작은 낙원에 가까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재촉당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고,

오래 말이 없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러주고,

작은 웃음 하나에도 함께 기뻐한다.

햇살은 창문 위에 오래 머물고,

바람은 상처 난 마음을 쓰다듬듯 지나간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먼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마음속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사랑은 이제 아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나님 사역의 길을 걷는 귀한 아들.

세상은 자꾸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이 가족은 오히려 낮아지는 길을 선택했다.

상처 있는 사람 곁으로 더 가까이 내려가고,

외로운 사람 곁에 더 오래 머무는 삶.

어쩌면 그것이 예수가 가장 기뻐하는 삶인지도 모른다.

강화도의 《해오름》에서는 오늘도 커피 향 속에 사람의 온기가 피어나고,

홍천의 치유 공간에서는 누군가의 느린 걸음이 사랑 속에서 다시 숨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밝히는 것은 거대한 빛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끌어안는 작은 사랑 하나다.

그래서 해는 하늘에서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강화의 작은 언덕에서도 떠오르고,

홍천의 조용한 치유 공간에서도 떠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처 입은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한 가족의 따뜻한 가슴속에서

오늘도 해보다 먼저 사랑이 떠오르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 빨간머리앤 사모님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먼저 해가 됩니다

― 이영범 목사님께

강화의 바다는

오래 바라볼수록

사람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 속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따뜻한 숨결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한평생

사람의 영혼을 품으며 사셨습니다

분필 가루 날리던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내일을 가르치셨고

새벽 기도 조용한 강단에서는

상처 난 마음들의

무너진 등을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사님께

조금 더 깊은 사랑을 가르치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 자라는

귀한 딸 하나를

품에 안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십 년 넘는 세월 동안

또렷한 “아빠” 한마디 듣지 못했어도

목사님의 사랑은

한 번도

아이보다 먼저 지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아픔은

목사님의 가슴 안에서

더 큰 사랑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홍천의 산 아래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위한

작은 천국 하나를 세우셨습니다

세상은 자꾸

빠르게 걷는 사람만 사랑하지만

그곳에서는

느린 걸음도 꽃이 되고

서툰 웃음도 별빛이 됩니다

누군가의 떨리는 손끝을

끝까지 잡아주는 마음

그것이

하나님께서

목사님 삶에 써 내려가신

가장 아름다운 설교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곁에는

햇살 같은 웃음으로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는

사모님이 계십니다

빨간 머리 앤처럼 맑은 영혼으로

커피 향 속에 사랑을 내리는 사람

그 따뜻한 손끝 덕분에

강화의 《해오름》에는

오늘도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웃음을 되찾아 갑니다

목사님

천사는

멀리 하늘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생처럼 품고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천사라는 것을

오늘도 강화의 언덕에서는

해보다 먼저

목사님의 사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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