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김미루 장편 산문집 《독약 같은 여자》 출간 ㅡ도서출판 청람서루

김미루 장편 산문집 《독약 같은 여자》 출간 ㅡ도서출판 청람서루 2026.05.20
김미루 장편 산문집 《독약 같은 여자》 출간  ㅡ도서출판 청람서루

□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사랑은 독이었고, 동시에 마지막 생의 체온이었다”

김미루 장편 산문집 《독약 같은 여자》 출간

《독약 같은 여자》가 2026년 5월 20일 도서출판 청람서루(대표 김왕식)에서 출간됐다.

이번 작품은 단순한 연애 서사나 관능적 고백록의 범주를 넘어,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끝내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처절한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 김미루는 인간 내면의 고독과 결핍, 욕망과 그리움의 심연을 깊이 응시해온 작가다. 그의 문장은 때로 재즈 선율처럼 몽환적이고, 때로는 비 내리는 새벽 골목처럼 음습하며, 때로는 마지막 사랑 앞에 선 사람의 떨림처럼 절절하다.

□ 김미루 작가

■ 작가 소개

죽음의 가장자리에서도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 김미루

김미루는 인간 내면의 가장 은밀한 고독과 욕망, 그리고 존재의 결핍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가다. 그의 문장은 때로는 재즈처럼 몽환적이고, 때로는 비 오는 골목처럼 음습하며, 때로는 마지막 사랑을 붙드는 사람의 떨림처럼 절절하다.

그의 대표작 《독약 같은 여자》는 단순한 연애 서사나 관능의 기록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한 여인과 글로 서로를 끌어안았던 시간의 흔적이며, 인간이 끝내 무엇으로 살아남는 존재인가를 묻는 처절한 산문이다.

김미루 작가의 문학 세계에는 늘 세 가지 정조가 흐른다.

첫째는 ‘고독’이다.

그의 인물들은 대부분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끝내 세상에 정착하지 못한다. 도시의 네온 아래서도 외롭고, 사랑 속에서도 고독하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깊이 응시하게 만드는 문학적 통로가 된다.

둘째는 ‘육체의 언어’다.

그는 성(性)을 단순한 자극이나 소비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가장 연약할 때 드러나는 존재의 본능으로 바라본다. 그의 작품 속 육체는 욕망의 도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의 마지막 체온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때로 도발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슬프다.

셋째는 ‘그리움’이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한다. 만나지 못한 사람, 잃어버린 시간, 지나간 청춘, 돌아갈 수 없는 골목과 바다를 끝없이 불러낸다. 그래서 김미루의 문장은 읽는 이의 오래된 기억까지 함께 흔들어 깨운다.

특히 《독약 같은 여자》에서 보여준 메일 형식의 서사는 독특하다. 서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이 오직 언어로만 서로를 껴안고 사랑하며 버텨내는 과정은 현대 문학에서 보기 드문 감성의 결을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 육체와 영혼, 욕망과 순결이 뒤섞이며 독자에게 묘한 중독성을 남긴다.

김미루 작가는 화려한 수사를 앞세우기보다, 인간의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누군가에게는 위험하고 낯설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대신 울어주는 언어처럼 다가온다.

그의 문장은 늘 묻는다.

“사람은 왜 끝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독자는 조용히 깨닫게 된다.

김미루 작가는 독자에게 슬며시 다가와

“사랑은 완성되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끝내 다 이루지 못했기에 더 오래 남는다”라고

귀띔한다.

■ 독약 같은 여자

목차

프롤로그

  1. 그 바다에 두고 온 말

  2.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3. 시애틀로 떠난 사랑

  4. 서울에서의 첫사랑

  5. 그 사람 이야기

  6. 하고 싶었는데

  7. 사랑하지만

  8. 그해 그 겨울

  9. 사랑해

  10. 사랑의 독, ‘쁘아종’

  11. 날 보고 ‘캔디’래

  12. 넌 독이야, 독이라고

  13. 맨날 가래

  14. 다시 사랑하게 된 남자

  15. 내가 너무 들떠서

  16. 가만히, 가만히

  17. 그거 해보고 싶었어.

  18. 그 햇살이

  19. 그 여자 어때요?

  20. 재즈가 죄

  21. 나 좀 안아줄래요?

  22. 오늘 밤, 나를 품어요.

  23. 섹스를 꿈꾸는 여자

  24. 창밖의 女子

  25. 거기 당신한테 가서 그렇게 살다 올까?

  26. 바람의 여자가 되어

에필로그- 생각의 날들

부록.

헛된 망상과 오래된 기억

□ 서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도서출판 청람서루 서평

육체의 언어를 넘어 존재의 심연으로

― 김미루 장편 산문집 《독약 같은 여자》

사랑은 때로 사람을 살리고, 때로는 사람을 폐허로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하게도 그 폐허 속에서 다시 사랑을 꿈꾼다.

김미루의 《독약 같은 여자》는 바로 그 모순의 심연에서 피어난 기록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담도 아니고, 자극적인 성애 고백록도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한 여자가 마지막 남은 생의 체온으로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처절한 문학적 독백에 가깝다.

이 책을 처음 펼치면 독자는 다소 당황할 수 있다.

노골적이고 관능적인 언어들이 거침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읽어 내려가면 곧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의 본질은 ‘성(性)’이 아니라 ‘고독’이라는 사실을.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교포 여성 쥴리아.

말기 암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첼로를 켜고, 도예를 하고, 꽃을 돌보며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글을 통해 한 남자를 만난다. 만나지 못한 채 오직 메일과 언어로만 서로를 껴안았던 두 사람.

그들의 사랑은 현실 속 육체가 아니라 상상과 결핍 속에서 더욱 뜨겁게 자라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강렬한 이유는 ‘몸’을 통해 오히려 ‘영혼의 결핍’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쥴리아는 끊임없이 섹스를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 순간 그것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 좀 안아줄래요?”

이 반복되는 문장은 사실상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론적 절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육체의 쾌락이 아니다.

죽어가는 존재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느껴지고 싶었던 간절함이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여자로 기억되고 싶었던 처연한 몸부림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성애는 퇴폐가 아니라 슬픔이다.

욕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녀는 섹스를 통해 죽음을 잊으려 했고, 사랑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 했다.

특히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쁘아종(POISON)’의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향수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은유이고, 생을 갉아먹는 독이며, 또한 살아 있게 만드는 마지막 환각이다.

김미루는 이 향기의 이미지를 통해 사랑의 양면성을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사랑은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동시에 그 병든 존재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기도 하다.

문장 또한 독특하다.

김미루의 문체는 정제된 문학어와 날것의 육체 언어가 기묘하게 뒤섞인다.

어떤 순간에는 한 편의 산문시 같다가도, 어떤 대목에서는 상처 입은 인간의 신음처럼 거칠다.

그 문장들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오히려 슬프다.

특히 바다와 비, 재즈와 골목, 낡은 여인숙과 새벽의 불빛 같은 이미지들은 이 작품의 정조를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다.

현실과 환상, 욕망과 고독,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하게 흔들리며 독자를 깊은 감정의 늪으로 끌고 들어간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의 구조다.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 구조와 다르다.

편지와 독백, 회상과 응답이 교차하면서 두 인물의 내면이 점점 서로에게 잠식되어 간다.

독자는 어느 순간 쥴리아의 목소리와 화자의 목소리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것은 결국 사랑이란 서로의 영혼 속으로 스며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이 모든 사랑이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점이다.

끝내 만나지 못한 두 사람.

그녀는 죽었고, 남자는 기억 속에 남겨졌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 서사가 아니라 ‘부재의 문학’이 된다.

《독약 같은 여자》는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책일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책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지금 시대의 메마른 관계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결핍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안기고 싶어 했던가.

얼마나 오래 사랑받고 싶었던가.

얼마나 오래 “당신 덕분에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가.

김미루는 그 질문을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독자 앞에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더 깊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이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를

단숨에 읽고

한 권의 책이 사람을 끝까지 흔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작품은 읽는 동안 감탄을 남기고 지나가지만, 어떤 작품은 책장을 덮은 뒤 비로소 시작된다.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고, 문득 새벽의 적막 속이나 늦은 저녁의 고요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오래전에 들은 음악처럼, 한 번 스쳐 간 사람의 체온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독자를 천천히 흔든다.

독약 같은 여자는 바로 그런 드문 울림을 지닌 작품이다.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단숨에 읽혔다고 해서 가벼운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문장이 독자를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작품 속 깊은 정서의 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이 단순히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은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연약하고도 본질적인 부분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문학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어뜨린 데 있다.

오늘날 많은 작품들이 ‘문학적 장치’를 앞세우며 독자를 놀라게 하려 하지만, 《독약 같은 여자》는 오히려 반대의 길을 택한다. 꾸며내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비극을 확대하지도 않는다. 줄리아의 메일은 작가가 만들어낸 과장된 허구의 언어가 아니다. 너무도 평범하고, 너무도 인간적인 언어다. 그래서 더 아프다. 더 진실하다.

삶에 지친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고백들은 문학적 수사보다 더 깊은 힘으로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서툴기까지 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인간은 완벽하게 정제된 언어보다, 떨리는 손끝으로 적어 내려간 진심 앞에서 더 오래 멈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꾸미지 않은 문장이 때로 가장 강한 문학이 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해낸다.

반면 김미루 작가의 「미루 답변」과 「나의 생각」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그곳에서는 작가 특유의 밀도 높은 문장력과 사유의 깊이가 본격적으로 살아난다. 감정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랑과 상처, 존재와 고독, 인간 내면의 공허를 문학적 메타포와 철학적 사유로 확장시킨다. 마치 한 사람의 현실이 다른 한 사람의 언어를 통과하며 예술로 변모하는 과정 같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일반인의 삶의 언어와 작가의 문학적 언어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두 언어는 절묘하게 기대어 서 있다. 줄리아의 메일이 흙냄새 나는 현실이라면, 김미루 작가의 문장은 그 현실 위에 드리워진 늦은 저녁의 그림자 같다. 현실과 예술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체온이 되어준다. 그래서 독자는 어느 순간 ‘읽고 있다’는 감각보다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워진다.

특히 이 작품의 구조는 매우 인상적이다.

단순한 이메일 형식의 교환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은 메일과 답변, 사유와 부록, 그리고 마지막 서평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감정 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부록》은 단순한 덧붙임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 전체를 다시 한 번 깊게 숨 쉬게 만드는 또 하나의 문학적 장치다. 본문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의 잔향들이 부록을 지나며 비로소 하나의 예술적 구조로 완성된다.

독자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결국 인간 존재가 끝내 붙들고 싶은 ‘생의 온기’에 대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지막 서평은 흩어질 수 있었던 감정과 의미들을 다시 단단히 묶어낸다.

자칫 감상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작품 전체를 다시 문학적 중심축 위에 세워놓는다. 그 덕분에 《독약 같은 여자》는 단순한 감성적 고백록이나 실험적 형식의 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문학, 사랑과 상처, 존재와 죽음 사이를 오가며 하나의 완결된 문학적 세계를 구축해낸다.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사랑 때문에 상처받으며 살아가고, 동시에 누군가의 체온 하나 때문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독약 같은 여자》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 안의 독성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독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날 많은 작품들이 빠르게 소비되고 빠르게 잊힌다.

강렬한 설정과 자극적인 문장으로 순간의 시선을 붙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독약 같은 여자》는 다르다. 이 작품은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 더 깊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인간을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끝내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선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김미루 작가의 가장 큰 역량은 ‘문장을 잘 쓰는 능력’에만 있지 않다.

진짜 힘은 인간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독자의 심장을 건드리는 데 있다.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관념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현실과 철학, 감성과 절제를 동시에 끌고 가는 균형감각이 놀랍다. 또한 일반인의 언어를 함부로 문학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 진솔함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존중하는 태도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김미루 작가는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다.

인간의 상처와 체온, 고독과 그리움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작가다. 그리고 그 오래 바라본 시간들이 그의 문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문장마다 지나온 삶의 그림자가 배어 있고,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사유의 밀도가 스며 있다.

《독약 같은 여자》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더 깊은 곳에서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존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꺼내 보이는 일이며, 그 연약함마저 끝내 언어로 견디려는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증명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동안보다, 다 읽고 난 뒤 더 오래 남는다.

독은 사라졌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도록 따뜻한 체온 하나가 남아 있는 것처럼.

ㅡ 독자

어설픔의 미학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내용이 아니었다.

의외로 ‘작은 글씨’였다.

순간 조금 멈칫했다.

“왜 이렇게 작지?”

요즘 책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최근의 책들은 대개 독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넓은 여백, 큼직한 활자, 빠르게 넘겨지는 페이지.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해진 시대답게 문장도 점점 짧아지고, 시선도 오래 머물지 않도록 편집된다.

그런데 독약 같은 여자는 정반대였다.

글씨는 한 포인트쯤 작아 보였고, 페이지는 이상하리만큼 촘촘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의아했다.

조금 답답하기까지 했다.

“굳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더 세련되게, 더 현대적으로 편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눈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활자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래된 메일함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낮보다 밤에 더 어울리는 책.

불을 환하게 켜놓기보다 스탠드 하나 켜둔 채 조용히 읽게 되는 책.

문장 하나를 놓칠까 봐 숨을 낮추게 되는 책.

나중에 편집자를 만나 그 이유를 듣고는 더 놀랐다.

그 모든 것이 철저히 의도된 것이었다.

편집자는 말했다.

“21세기식 최첨단 편집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보통 출판은 독자의 편의를 향해 진화한다.

눈에 잘 들어오게 만들고, 빠르게 읽히게 만들고, 쉽게 소비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일부러 그 흐름을 거슬렀다.

조금은 옛날스럽게.

조금은 불편하게.

조금은 어설프게.

그 이유가 더 인상적이었다.

편집자는 당시 메일을 주고받던 정황 자체를 책 안에 숨기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 깊은 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작은 모니터 불빛 아래서 조심스럽게 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던 시간.

누군가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낮에는 꺼내지 못했던 외로움과 상처.

그 비밀스러운 정서를 편집 자체로 구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작은 활자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심리적 장치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책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게 된다.

눈을 집중하게 되고,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쉽게 넘기지 못한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 일기를 읽듯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독자는 활자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밤의 정서를 함께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불편함이 오히려 몰입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눈이 조금 피로해질 정도로 오래 응시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 독자의 감정도 문장 속으로 깊게 침잠한다.

편안하게 읽히는 책은 쉽게 지나가지만, 약간의 불편함은 독자를 오래 붙잡는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책들이 있었다.

언어의 온도와 말의 힘이었다.

그 책들 역시 작은 포인트의 글씨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조금 답답해 보였지만, 읽다 보면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큰 글씨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작은 글씨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마치 누군가 귓가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일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처럼.

《독약 같은 여자》의 편집도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표지에서부터 이미 의도된 세계관이었다.

반짝이는 세련됨보다 약간 낡은 감성을 선택했고, 매끈한 현대성보다 오래된 메일함의 체온을 선택했다.

그래서 편집자가 했던 말이 오래 남는다.

“어설픈 몰입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역설처럼 들렸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완벽한 것은 때로 사람을 긴장시킨다.

너무 잘 정리된 것은 오히려 감정이 스며들 틈을 잃는다.

그러나 약간 비어 있고, 약간 서툴고, 약간 불편한 것들 속으로 인간의 마음은 더 깊이 들어간다.

문학도 그렇다.

삶도 그렇다.

사람도 그렇다.

《독약 같은 여자》는 단지 내용만 특별한 책이 아니다.

편집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문학적 장치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시에, 오래전 누군가의 고독한 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작은 글씨들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건네던 낮은 목소리였고,

외로움이 오래 식지 못한 채 페이지 위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는 체온이었다는 것을.

ㅡ 편집자는

슬며시 다가와

귀옛말로 속삭인다!

” 출판계를 마비시켰던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말의 힘》 등을 보라고~

돋보기가 없으면 읽지 못할 정도의 작은 활자를!”

얼핏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는

독자를 내팽겨쳤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보니 ㅡ

요즘 책들은 대체로 독자에게 친절하다.

글씨는 커졌고, 문장은 짧아졌고, 여백은 넓어졌다.

독자가 숨 쉴 공간까지 계산해준다.

눈이 피로하지 않게 만들고, 생각이 오래 머물지 않게 배려한다.

심지어 문장도 독자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상처도 순하게 설명하고, 철학도 쉽게 풀어주고, 외로움조차 카페 음악처럼 부드럽게 포장한다.

그러나 며칠 전 출간된 독약 같은 여자는 이상했다.

이 책의 작가와 편집자는 독자와 야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를 버렸다.

요즘 출판계의 금기를 정면으로 거슬렀다.

독자가 편하게 읽도록 만들지 않았다.

눈에 잘 들어오게 친절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글씨는 작았고, 페이지는 빽빽했으며, 메일과 독백과 사유는 조용히 뒤엉켜 있었다.

심지어 편집은 약간 어설퍼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

“왜 이렇게 숨 막히게 만들었지?”

“왜 독자를 배려하지 않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독자는 화를 내며 책을 덮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마치 오래된 골목 안쪽으로 잘못 들어선 사람처럼.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골목의 냄새와 침묵과 어둠이 묘하게 익숙해진다.

별안간

알았다.

자신이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으로 ‘어딘가에 도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독약 같은 여자》의 가장 위험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독자를 손님처럼 대하지 않는다.

독자를 고객으로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공범처럼 끌고 들어간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메일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남의 방 불 꺼진 새벽을 엿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독자는 편안하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 행복하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너무 친절한 것에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너무 환한 곳에서는 깊은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어둡고, 약간 불편하고, 약간 길을 잃은 곳에서 인간은 자기 속마음을 만난다.

김미루 작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독자를 배려하는 대신 독자를 방치했다.

설명하는 대신 침묵했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 길을 잃게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책임함이 묘한 몰입을 만든다.

보통의 책은 독자를 위해 길을 닦아준다.

그러나 《독약 같은 여자》는 길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남겨둔다.

독자는 문장을 읽다가 멈칫하고, 다시 돌아가 읽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 머문다.

마치 사람의 마음속 폐허를 혼자 걷는 느낌이다.

특히 작은 활자는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다.

눈을 가까이 가져가게 만들고, 시선을 오래 붙잡아둔다.

편안히 훑어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독자는 어느 순간 눈이 조금 아픈 상태로 문장을 응시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눈이 피로해질수록 감정은 더 깊이 침잠한다.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활자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의 체온을 더듬게 된다.

편집자는 그것을 ‘어설픈 몰입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 이상한 표현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것만큼 정확한 말도 없다.

완벽한 편집은 눈을 만족시키지만, 어설픈 편집은 감정을 흔든다.

매끈한 디자인은 소비를 부르지만, 약간 삐걱거리는 구조는 인간을 오래 머물게 만든다.

문학도 그렇다.

너무 잘 쓴 문장은 때로 독자를 감탄시키는 데서 끝난다.

하지만 약간의 틈과 흔들림이 있는 문장은 독자의 상처와 연결된다.

《독약 같은 여자》는 그 틈을 안다.

이 작품은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기보다, 누군가 오래 앓다가 남긴 메일함 같다.

밤마다 혼자 열어보던 편지함.

삭제하지 못한 문장들.

끝내 보내지 못한 고백들.

이미 끝난 사랑인데도 차마 지우지 못한 기록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문학작품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인간의 오래된 외로움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독자를 압도한다.

독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던 작가와 편집자의 엉뚱한 자존심.

그 불친절함.

그 어설픔.

그 시대착오적인 고집.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야말로 독자를 가장 깊이 행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완벽하게 정리된 세계보다, 조금 금 가 있고 조금 흔들리는 세계 안에서 자기 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약 같은 여자》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가 잃어버린 ‘느린 몰입’에 대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빠르게 넘기고 소비하는 시대 속에서,

이 책만 홀로 독자에게 말한다.

“천천히 아파하라.”

“천천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오래 외로워하라.”

참 이상한 책이다.

독자를 버렸는데,

독자는 그 버려진 자리에서

오히려 자기 마음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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