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구 시인의 《손이 많이 가는 남자》 ㅡ돌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사랑은 비로소 웃음을 닮는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현구 시인의 《손이 많이 가는 남자》 ㅡ돌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사랑은 비로소 웃음을 닮는다 2026.05.29
□ 박현구의 시인의 시집 《손이 많이 가는 남자》

■
손이 많이 가는 남자
시인 박현구
여윈 남자가 있습니다.
제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 남자는
냉장고의 음식도 찾아 먹지 못해
차라리 굶습니다
마음 편히 외출을 할 수 없어요
그래도 가족들을 먹여살려 왔습니다
얼굴 검버섯을 빼며
테이프를 갈아붙일 때도
보호크림을 바를 때도
밉상스레 얼굴을 열흘 내내 갖다 댑니다
시골의 동서가
시숙이 좋아한다며
살짝 말린 가자미를 보내 왔어요.
구운 걸 좋아하는 남자라
흥겨운 마음에 몇 마리를 구워내자
이번엔 알아서 먹어 보겠다고
돋보기를 챙기며 결기를 보이는
그 남자의 접시 위에서
가시를 발라주는 내 손이
꿀밭의 나비처럼 제 먼저 춤을 추네요
딸과 함께 웃으며 흉을 보던
참 ‘손이 많이 가는 남자’를
50 년이나 공을 들여 내가 키웠나 봅니다.

■
박현구 시인의 《손이 많이 가는 남자》
ㅡ돌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사랑은 비로소 웃음을 닮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대부분의 사랑은 고백으로 시작되지만, 오래된 사랑은 대개 ‘가시를 발라주는 손끝’에서 완성된다.
박현구 시인의 《손이 많이 가는 남자》는 부부애를 노래한 시이지만, 흔한 사랑의 찬가와는 결이 다르다. 이 작품에는 눈물겨운 희생도 없고, 장엄한 헌신도 없다.
대신 “냉장고의 음식도 찾아 먹지 못해 차라리 굶는” 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마치 아이처럼 돌보는 아내가 있다. 헌데, 이상하게도 이 모습은 안쓰럽기보다 따뜻하고, 무겁기보다 유쾌하다.
시의 중심에는 ‘무능력’이라는 역설적 장치가 놓여 있다. 가족을 먹여 살려 온 가장이지만 정작 자신의 식사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얼굴에 보호크림을 바를 때도, 검버섯을 뺄 때도 아내의 손길을 기다린다. 사회에서는 책임감 강한 가장이지만 집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시인은 이 상황을 비극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외려 해학의 무대로 전환한다. 경상도 마산 사나이 특유의 눌러 담은 유머가 시 전체에 은은하게 배어 있다.
특히 “이번엔 알아서 먹어 보겠다고 / 돋보기를 챙기며 결기를 보이는” 대목은 절묘하다. 독자는 이미 그 결기의 결말을 안다. 아내의 손이 먼저 움직일 것을 알고 있다.
하여, 웃음이 난다.
이 시의 백미는 단연 “그 남자의 접시 위에서 / 가시를 발라주는 내 손이 / 꿀밭의 나비처럼 제 먼저 춤을 추네요”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사랑은 의무가 아니다. 습관도 아니다. 그것은 몸에 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꽃을 보면 날아가는 나비처럼, 남편의 접시를 보면 먼저 움직이는 손. 이 비유는 돌봄을 노동이 아니라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화자의 위치다. 시인은 자신을 직접 말하지 않고 아내의 입을 빌려 자신을 바라본다. 이는 일종의 거울 기법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면서도 동시에 아내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시는 남편 이야기 같지만 실은 아내 이야기다.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주인공인 듯 보이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의 마음에는 남편보다 아내의 따뜻한 손이 오래 남는다.
마지막 행은 이 작품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남자’를 / 50년이나 공을 들여 내가 키웠나 봅니다.”
보통 자식에게 쓰는 표현인 “키웠다”를 남편에게 적용한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여기에는 타박도 있고 자랑도 있다. 흉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고백하는 문장이다. 부부가 함께 살아낸 세월의 두께가 웃음 속에 녹아 있다.
박현구 시인의 시 세계에는 늘 사람 냄새가 난다. 거창한 관념보다 생활의 체온을 먼저 품는다.
특히 이 작품은 노년의 부부애를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는다.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사랑은 불꽃이 아니라 습관이 되고, 설렘은 책임이 되며, 책임은 다시 다정한 손길이 된다.
시를 덮고 나면 한 장면이 오래 남는다. 가자미 한 마리 앞에 놓인 남편, 그리고 그보다 먼저 움직이는 아내의 손.
어쩌면 부부란 서로를 완벽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기꺼이 떠맡으며 살아가는 동행에 가깝다.
해서, 사랑의 가장 깊은 모습은 누군가를 위해 꽃을 꺾어 오는 일이 아니라,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박현구 시인의 《손이 많이 가는 남자》는 그 평범한 진실을 웃음 한 줌과 함께 건네는 유쾌한 작품이다.
독자는
슬며시 지은 웃음 끝에서
불현듯
듣는다.
“오래된 사랑은
대개
말보다 손이 먼저
알고 있음을”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