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의 귀 속에는 시간이 산다 ― 김미루 작가의 《유월 눈 앞에서》를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미루 작가
□ 김미루 작가의 《독약 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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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눈 앞에서
소설가 김미루
갑자기 산꿩 한 마리가 날개를 치며 날아올랐다.
눈부시게 푸른 물결처럼 흔들리던 그 청보리밭에서였다.
살랑살랑 바람이 일던 맑고 푸르른 그날,
그 청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들판을 하마 잊을 수 있을까.
정말, 청록의 익은 얼굴을 한껏 내밀던 보리밭은 한 폭의 그림처럼 유난히 푸르렀다.
지금이 그때처럼 그랬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그 걸쭉한 노랫소리와
“꿈속에 그려보는 머나먼 고향아, 옛 모습 변치 않고 지금도 잘 있느냐”
그 잊지 못할 감미로운 가사가 나의 기억을 부드럽게 옥죄어온다.
지금쯤 고향 땅은 온통 묵정밭이 되어 잡초가 무성할 거야.
까마득한 내 기억처럼.
간밤엔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독약 같은 여자’
밀린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깊은 곳에서 회한의 감정이 울컥 솟구쳤다.
“다 읽고 난 뒤 더 오래 남는다. 독은 사라졌는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도록 따뜻한 체온 하나가 남아 있는 것처럼.”
평론가의 예리한 문장이 뇌리에 남는다.
석가탄신일. 다시 길상사를 찾았다.
다섯 가지 채소로 곁들인 비빔밥의 점심 공양
햇살 가득한 복도에 기대어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제서야, 부처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 따라 춤을 추던 풍경소리가 사뭇 눈을 감기게 한다.
유월도 코앞이다.
그럭저럭, 할 일도 많은데, 마음은 급하기 마련,
조용히 클래식 음악 하나를 켜놓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창가에는 오전부터 한바탕 쏟아질 듯 먹구름 떼가 우중충한 바람을 일으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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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의 귀 속에는 시간이 산다
― 김미루 작가의 《유월 눈 앞에서》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월은 달력이 아니다.
봄이 벗어놓고 간 푸른 옷 한 벌이다.
김미루 작가의 《유월 눈 앞에서》를 읽는 동안 오래된 바람 하나가 문득 가슴을 통과한다.
그 바람에는 청보리 냄새가 섞여 있다.
젊은 날의 냄새이기도 하고,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냄새이기도 하다.
작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산꿩은 단순한 새가 아니다.
청보리의 심장에서 튀어 오른 기억의 화살이다.
푸른 들판을 찢으며 날아오르는 그 날갯짓은 한 마리 새의 비상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시간의 기립이다.
한순간 고요하던 들판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보리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세월을 따라 흔들린다.
청보리밭은 식물이 자라는 곳이 아니다.
유년이 익어가는 곳이다.
어머니의 그림자가 자라고, 맨발의 발자국이 자라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자라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자라는 곳이다.
김미루 작가의 청보리는 곡식이 아니다.
시간이 푸르게 자란 모습이다.
작품 속에 흐르는 노랫가락도 특별하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한 줄의 노래가 등장하는 순간 풍경은 귀를 갖는다.
노래는 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 부르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사라진 오후 하나가 목소리를 얻어 되돌아온다.
사람은 과거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반대다.
기억이 사람을 붙잡고 살아간다.
가끔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눈시울을 적시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잊었다고 생각한 시간이 사실은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는 묵정밭이다.
참 이상한 풍경이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땅이다.
김미루에게는 세월의 초상화다.
농부가 떠난 밭에는 잡초가 자란다.
사람이 떠난 기억에는 그리움이 자란다.
잡초는 땅의 외로움이 피워낸 식물이다.
묵정밭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고향을 향해 있는 듯 보인다.
실상은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있다.
한때 푸르렀던 마음의 들판.
한때 수많은 꿈들이 자라던 영혼의 밭.
세월은 그곳에도 풀씨를 날려 보냈다.
그 풀씨가 자라 오늘의 그리움이 되었다.
《독약 같은 여자》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또 다른 문이 열린다.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겉으로는 종이 묶음이다.
안쪽에는 작가가 지나온 밤들이 눌려 있다.
원고는 잉크로 쓰이지 않는다.
잠 못 이룬 새벽으로 쓰인다.
후회로 쓰이고,
그리움으로 쓰이고,
견딤으로 쓰인다.
책 한 권의 출간은 탄생이라기보다 탈피에 가깝다.
허물을 벗은 뱀처럼 한 시대의 고통이 종이 위에 남는다.
길상사 장면은 이 작품의 숨은 백미다.
햇살이 복도에 앉아 있고, 풍경 소리가 허공을 천천히 건너간다.
그 풍경風磬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는 빗자루 소리다.
도시는 늘 사람을 밖으로 밀어낸다.
길상사는 사람을 안으로 걷게 만든다.
나무는 위로 자라지만, 사유는 아래로 뿌리를 내린다.
김미루 작가의 문장은 그 뿌리를 따라 걷는다.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천천히 스민다.
장작불처럼 번쩍 타오르지 않는다.
숯불처럼 오래 남는다.
유월은 작품 속에서 계절이 아니다.
하나의 문턱이다.
봄이 손을 놓는 자리.
여름이 발을 들이는 자리.
젊음이 뒤를 돌아보는 자리.
기억이 현재를 불러 세우는 자리.
창밖의 먹구름도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구름은 비를 품은 하늘의 주름이다.
하늘에도 생각이 많아지면 구름이 낀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렇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몇 번의 유월이 있을까.
청보리밭이 눈부시게 푸르던 유월.
사랑이 처음 시작되던 유월.
누군가를 떠나보내던 유월.
한 권의 책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던 유월.
김미루 작가의 《유월 눈 앞에서》는 유월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푸른 뒷모습을 쓰고 있다.
청보리는 머지않아 황금빛으로 익어 고개를 숙일 것이다.
구름은 비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풍경 소리는 바람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사람 또한 언젠가 기억 속 풍경이 된다.
김미루 작가는 그 사라짐 앞에서 울지 않는다.
안온히 바라본다.
그 바라봄의 깊이가 문장을 시로 만들고, 시를 다시 삶으로 돌려보낸다.
《유월 눈 앞에서》는 한 편의 산문이 아니다.
푸른 보리 한 포기가 세월의 귓가에 대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초록빛 독백이다.
□
청보리의 바람은 왜 오래도록 사람을 붙드는가
― 김미루 작가의 《유월 눈 앞에서》를 읽고
김미루 작가님께
유월의 문턱에 선 작가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읽었다기보다 한동안 청보리밭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문장 몇 줄이었는데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눈은 활자를 따라가고 있었으나 마음은 오래전 들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세월은 수십 년을 데려가도 바람 하나는 끝내 가져가지 못합니다.
냄새 하나, 노래 한 소절, 저녁빛 한 조각은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생애 전체를 흔들어 놓곤 합니다.
작가님의 《유월 눈 앞에서》는 바로 그런 글입니다.
요란한 사건도 없습니다.
극적인 갈등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비극적인 운명도 없습니다.
산꿩 한 마리 날아오르고, 청보리밭이 흔들리고, 오래된 노랫가락이 지나가고, 길상사의 풍경소리가 들릴 뿐입니다.
이상하게도 글을 덮은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푸르게 젖어 있습니다.
좋은 문학이란 대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귓가에 대고 속삭입니다.
독자의 가슴속에서 나머지 이야기가 자라도록 자리를 비워줍니다.
작가님의 글이 가진 힘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산꿩은 새가 아닙니다.
읽는 동안 제게 산꿩은 청보리밭이 품고 있던 기억의 씨앗처럼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시간이 어느 순간 날개를 얻어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장면.
그 장면 속에서 보리밭은 풍경이 아니라 생애가 됩니다.
늘
생각합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늙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잃으며 늙는다고.
어릴 적 개울을 잃고,
동네 느티나무를 잃고,
어머니의 부엌을 잃고,
고향의 들길을 잃으며 늙어갑니다.
작가님의 청보리밭은 단순한 농촌의 풍경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박물관입니다.
그 안에는 유년이 있고,
꿈이 있고,
돌아갈 수 없는 오후들이 눕혀져 있습니다.
“지금쯤 고향 땅은 온통 묵정밭이 되어 잡초가 무성할 거야.”
이 문장을 읽으며 한참 동안 멈추었습니다.
묵정밭은 참 슬픈 단어입니다.
농부의 발길이 끊어진 땅.
돌봄이 사라진 자리.
한때 생명이 자라던 공간.
또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묵정밭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한때 꿈이 자라던 자리.
한때 사랑이 머물던 자리.
한때 설렘이 뛰놀던 자리.
세월이 지나면 그곳에도 잡초가 자랍니다.
후회라는 이름의 잡초.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잡초.
회한이라는 이름의 잡초.
작가님은 고향의 묵정밭을 바라보며 사실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이 작품을 단순한 회상문에서 문학으로 끌어올립니다.
문학은 풍경을 설명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내면을 발견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님은 그 일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길상사’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은 절을 찾아가 부처를 찾습니다.
작가님은 비빔밥을 먹고 햇살을 바라보고 풍경소리를 듣다가 부처를 만납니다.
그 순서가 참 좋았습니다.
삶의 진실도 대개 그런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깨달음보다 따뜻한 한 끼 식사가 더 큰 위로가 되는 날이 있습니다.
심오한 철학보다 창가에 앉은 햇살 한 조각이 더 큰 진실이 되는 날이 있습니다.
부처는 높은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평온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작가님의 문장은 보여줍니다.
또 하나 반가웠던 것은 《독약 같은 여자》의 출간 소식입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원고를 묶는 일이 아닙니다.
작가 자신의 일부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일입니다.
책 한 권에는 문장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잠 못 이루던 밤.
지워버린 문장들.
끝내 쓰지 못한 문장들.
후회와 망설임.
기다림과 견딤.
그 모든 시간이 종이 위에 겹겹이 눌려 있습니다.
독자는 책을 읽습니다.
작가는 시간을 읽습니다.
그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밀린 숙제를 끝낸 느낌”이라는 표현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유월은 참 묘한 계절입니다.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닙니다.
떠남과 시작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계절입니다.
푸른 것은 가장 푸르러지고,
그 푸름 속에서는 이미 익음이 시작됩니다.
청보리도 그렇습니다.
눈부시게 푸른 순간부터 황금빛으로 향하는 길을 걷습니다.
사람의 생애도 다르지 않습니다.
젊음의 한복판에서도 늙음은 자라고,
늙음의 한복판에서도 꿈은 자랍니다.
작가님의 《유월 눈 앞에서》는 바로 그 경계의 시간을 아름답게 붙잡아 놓은 작품입니다.
청보리밭의 바람과 길상사의 풍경소리, 묵정밭의 그리움과 새 책의 체온이 한 편의 글 속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 만남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소박합니다.
소박하기에 오래 남습니다.
유월은 이제 시작입니다.
청보리는 더 익어갈 것입니다.
작가님의 문장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
부디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상의 큰 소리보다 바람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를 씁니다.
드물게 시간의 냄새를 쓰는 작가가 있습니다.
김미루 작가님의 글에서는 늘 시간의 냄새가 납니다.
청보리 냄새.
고향 냄새.
사람 냄새.
그 냄새가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월의 바람이 청보리밭을 흔들 듯,
작가님의 문장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 들판을 오래 흔들어 주기를 기대합니다.
김왕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