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침묵이 자라는 자리 ㅡ청람 김왕식

침묵이 자라는 자리 2026.06.10
침묵이 자라는 자리

침묵이 자라는 자리

사람은 말을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생각을 전하고 마음을 건네며 관계를 이어간다.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하나다.

어느 순간부터 다리는 건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점령하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상대를 설득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끝내 이기려 한다.

말은 점점 많아지는데 이해는 오히려 줄어든다.

침묵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침묵은 소리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마음 한가운데 빈 뜰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봄이 오면 새가 찾아드는 숲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햇빛이 들어올 공간이 있어야 하고, 바람이 지나갈 길이 있어야 하며, 뿌리가 숨 쉴 흙이 있어야 한다.

마음도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가득 채우려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이미 결론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새로운 생각이 머물지 못하고, 이미 확신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침묵은 그 빽빽한 숲 사이에 작은 공터를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려앉을 자리.

누군가의 아픔이 잠시 쉬어갈 자리.

누군가의 침묵조차 이해받을 자리.

그 자리가 생길 때 비로소 사람은 남의 말을 듣게 된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다.

존중의 다른 이름이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삶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다.

그 순간 사람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듣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깊은 강은 자신의 물소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외려 수많은 지류를 받아들이며 더욱 깊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많은 사람을 품어본 마음일수록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사정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침묵이 귀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남을 만나게 하는 동시에 자신과도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생 밖을 향해 걷는다.

명예를 향해 걷고, 성공을 향해 걷고, 관계를 향해 걷는다.

정작 자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은 많지 않다.

침묵은 내면으로 향하는 오솔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인다.

선의라고 믿었던 말 속에 숨어 있던 자만.

정의라고 생각했던 분노 속에 섞여 있던 욕심.

배려라고 여겼던 행동 뒤에 기대어 있던 인정 욕구.

침묵은 그것들을 들춰내지 않는다.

다만 햇빛 아래 놓아둘 뿐이다.

그 앞에서 변명은 힘을 잃는다.

성찰은 꾸짖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정직한 마주봄에서 시작된다.

하여,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익어감에 가깝다.

열매가 익는 동안 숲이 소란을 피우지 않듯,

눈이 내리는 동안 들판이 소리를 내지 않듯,

사람의 정신 또한 고요 속에서 깊어진다.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배움은 대부분 조용한 순간에 찾아왔다.

누군가의 긴 강연보다 한 사람의 묵묵한 뒷모습에서 배웠고,

화려한 문장보다 오래 머문 침묵 하나에서 깨우침을 얻었다.

오늘도 침묵을 배우고 싶다.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을 더 넓게 품기 위해서다.

남의 이야기가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늘 하나를 마음에 만들기 위해서다.

세월이 흐를수록 웅변보다 여백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큰 나무가 아름다운 까닭은 높이 때문만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이 쉬어갈 그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침묵 또한 그런 그늘일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안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작은 숲이 된다.

그 숲은 오늘도 말 대신 공간을 키운다.

사람 하나가 들어와 앉을 만큼의 공간,

진실 하나가 조용히 뿌리내릴 만큼의 공간을.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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