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 ㅡ 청람 김왕식
황포돛배 2026.06.21

■
황포돛배
청람 김왕식
임진강은
강물이 아니라
흐르는 세월이었다
파주와 연천 사이
황토빛 돛 하나 달고
목선은 물살 위를 미끄러진다
수십만 년
비바람에 깎인 주상절리
돌기둥들은
하늘의 무게를 떠받친 채
말 없는 연대기를 읽고 있다
배가 지나자
허공에 던져진 새우깡 몇 조각
갈매기들은 흰 꽃잎처럼 흩날리며
배 곁에 나란히 길을 만든다
푸른 하늘
흰 구름
강은 하늘을 비추고
하늘은 강물에 몸을 눕힌다
객실 한쪽에서
이미자의 《황포돛배》가
낮고 아련하게 흐른다
노랫가락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데
어찌된 일인지
강물보다 먼저 가슴에 닿는다
젊은 날 떠나보낸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
가슴속 깊이 묻어 둔 이름 하나가
노래를 따라 물결처럼 흔들린다
주상절리 끝자락
강을 내려다보는 여인상 하나
수많은 소원과 기다림이
돌이 되어 서 있는 자리
누군가는 사랑을 빌고
누군가는 건강을 빌고
누군가는 그리운 사람의 안부를 빈다
강물은 아무 말 없이
그 기도들을 받아
먼 곳으로 흘려보낸다
돌은 수십만 년을 견디어
절벽이 되었고
물은 수억만 년을 흘러
강이 되었으며
사람은
잠시 머물다 가는
한 점 물안개
황포돛배 한 척
주상절리의 침묵과
갈매기의 흰 날갯짓 사이를 지나
오늘도
한 생애처럼 흘러간다
돛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강은 바다를 향해 흐르고
노래는 추억을 향해 흐른다
돌아보니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물이 되었고
노래가 되었고
그리움이 되었을 뿐
황토빛 돛은 멀어지는데
가슴속에서는 아직도
황포돛배 한 척
천천히
천천히 떠나가지 못하고 있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