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의를 세우고, 문학은 인간을 세운다 ― 주광일 시인과 양승국 변호사의 아름다운 문학적 대화를 읽으며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법은 정의를 세우고, 문학은 인간을 세운다 ― 주광일 시인과 양승국 변호사의 아름다운 문학적 대화를 읽으며 2026.07.14
□ 양승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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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광일 시인 시집 《겨울엽서》

□ 주광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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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정의를 세우고, 문학은 인간을 세운다
― 주광일 시인과 양승국 변호사의 아름다운 문학적 대화를 읽으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권의 시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한 권의 시집을 읽어 내는 한 사람의 마음이다.
주광일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겨울엽서》와, 이를 읽은 후배 법조인 양승국 변호사의 따뜻한 서평을 마주하며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단순한 독후감도 아니고 문학비평도 아니다. 한 사람의 시가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 도착하여 다시 하나의 문학이 되는 아름다운 왕복 엽서이다.
더욱 깊은 감동은 두 사람이 모두 평생 법을 다루어 온 법조인이라는 사실이다.
법은 사실을 분별하는 학문이다. 문학은 존재를 이해하는 예술이다. 하나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옳고 그름 이전의 인간을 품는 일이다. 이 두 길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진정한 법조인은 끝내 인간을 향해 가고, 진정한 문학은 끝내 정의를 향해 간다. 주광일 시인과 양승국 변호사는 바로 그 두 길이 하나로 만나는 드문 풍경을 보여 준다.
주광일 시인은 《겨울엽서》』에서 시마다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오직 〈겨울엽서 1〉에서 〈겨울엽서 83〉까지 번호만 남겼다. 이것은 시를 독립된 작품으로 세우기보다 하나의 긴 생애로 엮으려는 선택처럼 읽힌다. 날짜를 따라 이어지는 여든의 겨울은 어느 한 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삶을 기록한 영혼의 일기장이 된다. 번호는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나이테이며, 날짜는 달력이 아니라 생명의 호흡이다.
양승국 변호사는 이 점을 톺아 읽어 낸다. 그는 시집을 해설하기보다 시인이 왜 엽서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린다. 작품을 분석하기보다 사람을 먼저 읽는다. 문학을 향한 이런 태도는 법조인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양 변호사가 시인의 세계관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도, 다른 부분도 담담하게 인정한다는 점이다. 시인의 시대 인식과 정치적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작품을 재단하지 않는다.
외려 그 너머에 있는 서정과 인간애를 함께 바라본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이다. 문학은 동의의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한 사람은 시를 통해 자신의 겨울을 세상에 건네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겨울을 읽으며 따뜻한 체온으로 답장을 쓴다. 그 사이에는 논쟁도 없고 과장도 없다. 오직 오래 살아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품격과 절제가 흐른다.
오늘 우리는 빠르게 판단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읽기도 전에 평가하고,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 그럴수록 주광일 시인과 양승국 변호사가 보여 준 이 조용한 문학적 대화는 더욱 귀하다. 상대를 이기려는 글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글, 자신의 주장을 세우기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존중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법은 사회의 질서를 세운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세운다.
주광일 시인은 평생 정의를 다루던 손으로 시를 썼고, 양승국 변호사는 평생 법을 연구한 눈으로 시를 읽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지만,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며, 승패가 아니라 사람이며, 논리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이었다.
나는 이 두 법조인을 보며 새삼 확신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법조인은 판결문만 남기지 않는다. 시대를 향한 성찰도 남긴다.
학문을 사랑하는 시인은 아름다운 문장만 쓰지 않는다. 한 시대의 양심도 기록한다.
하여,
주광일의 《겨울엽서》와 양승국의 서평은 각각 한 편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대화이다. 시인이 보낸 겨울 엽서는 후배의 마음에 도착했고, 후배가 써 내려간 답장은 다시 문학이 되어 우리에게 도착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학의 순환이 또 있을까.
한 사람은 시로 사람을 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비평으로 그 사람을 품었다.
그 풍경은, 법보다 먼저 인간을 생각하고 문학보다 먼저 삶을 존중하는 두 법조인의 깊은 인격이 빚어 낸, 우리 시대에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품격의 기록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주광일 시인 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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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루 겨울나무에게
― 주광일 변호사와 양승국 변호사께
한 분은
겨울을 시로 적으셨고,
한 분은
그 겨울을 가슴으로 읽으셨습니다.
한 사람은 엽서를 띄웠고,
한 사람은
그 엽서가 닿은 자리에서
따뜻한 답장을 쓰셨습니다.
법은
사람의 행위를 묻는 일이라면,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끝내 믿는 일임을
두 분께서는
평생의 삶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법정에서는
정의를 세우셨고,
시 앞에서는
인간을 세우셨습니다.
차가운 법전의 페이지를 넘기던 손끝이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어루만질 줄 아는 손이 되었다는 것은
한 시대의 축복입니다.
겨울은
나무의 잎을 거두어 가지만,
사람의 품격까지는
거두어 가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일수록
눈보라 속에서도
새들이 쉬어 갈 가지를 남겨 두듯,
두 분의 생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위로를 함께 얻어 갔습니다.
한 분의 시는
눈 덮인 강 위에
조용히 놓인 징검다리 같고,
한 분의 글은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의 발걸음을
따뜻하게 붙잡아 주는 등불 같습니다.
시와 평론은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이 아니라,
한 하늘을 바라보는
두 개의 창입니다.
그 창을 열어
두 분께서는
사람이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양심이며,
명예가 아니라 품격이며,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대한민국 법조계의 큰 나무로,
대한민국 문단의 맑은 숲으로
함께 서 계십시오.
두 분이 걸어오신 길은
법의 길이면서도 사랑의 길이었고,
문학의 길이면서도 사람의 길이었습니다.
세월은 언젠가
모든 발자국을 지울지라도,
사람을 향해 걸었던 두 분의 마음만은
한 편의 시가 되어
겨울이 올 때마다
우리 가슴속에
안온히 눈처럼 내려올 것입니다.
ㅡ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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