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시간의 등을 쓰다듬는 오리 한 마리 ― 이서빈 시인의 「오리시계」 를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시간의 등을 쓰다듬는 오리 한 마리 ― 이서빈 시인의 「오리시계」 를 읽다 2026.07.14
시간의 등을 쓰다듬는 오리 한 마리 ― 이서빈 시인의 「오리시계」 를 읽다

□ 이서빈 시인의 시집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 이서빈 작가

오리시계

시인 이서빈

겨울, 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시보(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 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 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 안엔 날짜 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 놓고 간 시계가 더 많을 것 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 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 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시간의 등을 쓰다듬는 오리 한 마리

― 이서빈 시인의 「오리시계」 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는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을 발견한다. 더욱 뛰어난 시는 그 시간을 다시 살아 있는 생명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서빈 시인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리시계」 는 바로 그런 드문 작품이다.

이 시는 연못을 바라보는 시가 아니다. 오리를 노래하는 시도 아니다. 시계를 해부하는 작품은 더욱 아니다. 시인은 오리와 연못과 시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접목시켜 시간에도 깃털이 있다는 놀라운 상상력을 독자 앞에 펼쳐 보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붙드는 것은 발상의 전복顚覆이다. 대부분의 시가 시간을 시계로 측정한다면, 이서빈은 시계를 오리의 걸음으로 측정한다. 겨울 연못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저녁이면 다시 걸어 나오는 오리의 동선은 어느새 시침이 되고, 녹아내린 눈은 시간의 궤적이 된다.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발자국이며, 계절은 달력이 아니라 생명이 남긴 흔적이라는 새로운 우주가 열린다.

이서빈 시인의 시적 상상력은 단순한 기발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사물을 비틀어 낯설게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낯설어진 사물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끝내 찾아낸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한 문장은 현대시가 도달할 수 있는 은유의 높은 경지를 보여 준다. 손목 없는 오리에게 시계를 채워 주지 않고, 오리만의 시간을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현실을 모방하지 않는다. 현실을 다시 창조한다.

특히 이 작품은 공간 감각보다 시간 감각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연못은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니다. 얼고 녹는 시간의 저장소이며, 기억이 침전되는 우주의 시계판이다. 날짜는 오리의 숫자가 되고, 계절은 날갯짓으로 계산된다. 독자는 시를 읽는 동안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어 다니는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마지막 연은 이 작품을 단순한 이미지의 유희에서 존재론적 시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이 장면은 압권壓卷이다. 연못 하나에서 출발한 시적 시선이 마침내 우주까지 확장된다. 별은 더 이상 천체가 아니다.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이다. 우주는 거대한 시간의 유물이며, 인간은 그 시계를 잠시 빌려 쓰는 여행자에 불과하다는 철학이 은은하게 스민다. 작은 웅덩이가 우주의 심연으로 열리는 이 비약은 신춘문예 당선작다운 완결성을 보여 준다.

이서빈 시인의 언어는 설명하지 않는다.

보여 준다.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함께 걸어가게 한다. 그의 시어는 얼음 위를 걷는 오리처럼 조심스럽지만, 발밑에서는 거대한 물살이 움직인다. 겉으로는 고요한 이미지들이 이어지지만, 그 아래에는 시간과 존재를 향한 깊은 사유가 쉼 없이 흐른다.

동아일보 심사위원들이 “삶과 세계를 아우르는 교향이 있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이미지의 신기함만으로 완성된 시가 아니다. 관찰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생명은 철학으로 확장되며, 철학은 다시 우주의 서정으로 귀결된다. 시적 긴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오리시계」는 시간을 읽는 시가 아니라 시간을 다시 상상하게 하는 시이다. 현대인은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서빈은 시간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되돌려 놓는다. 시계가 인간을 재촉하는 시대에 그는 오리 한 마리로 시간을 천천히 걸어가게 만든다.

신춘문예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서빈 시인은 「오리시계」 를 통해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을 뒤집었다. 그는 시계를 손목에서 떼어 연못 위에 올려놓았고, 그 위를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가게 했다.

그 한 마리의 오리는 우리 자신의 시간이었다.

하여,

시 「오리시계」 는 한 편의 당선작으로 머물지 않는다. 시간을 자연으로 번역하고, 자연을 우주로 확장하며, 우주를 다시 인간의 내면으로 되돌려 보내는 아름다운 시적 항해로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별은 시계를 차지 않는다

― 이서빈 시인께

이서빈 시인,

당신께서는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시간의 숨결을 받아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시계를 손목에 차고 하루를 건너지만,

당신은

연못 위를 지나가는 오리 한 마리에게

우주의 나이를 맡겼습니다

얼음은

당신의 시에서 겨울이 아니었습니다

녹아내리는 기억이었고,

발자국은

지워지는 흔적이 아니라

세월이 잠시 머물다 간

별의 필체였습니다

당신의 언어는

꽃을 피우기보다

사물의 침묵을 피워 냅니다

한 줄의 시어는

낡은 시계를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멈춘 영혼을 다시 뛰게 하는

작은 심장입니다

참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가 보면서도

아무도 이름 붙이지 못한

우주의 숨결 하나를

조용히 불러 주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시간을 붙잡지 않았기에

시간보다 오래 살아남는 시를 얻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시를 읽던 한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도 시간을 꿈꾸는구나.”

혼잣말할 수 있다면,

그 한마디가

당신이 남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연보가 될 것입니다

부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간의 속살을 읽는

맑은 눈 하나

오래 간직하십시오

그 눈이 있는 한,

우리의 겨울도

언젠가는

시가 되어 녹을 것입니다

ㅡ 청람 김왕식 드림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