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비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았다 ― 이서빈 시집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았다 ― 이서빈 시집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을 읽다 2026.07.14
비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았다 ― 이서빈 시집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을 읽다

□ 이서빈 작가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시인 이서빈

비요일

유리창에서 운쟁이가 끊임없이 태어난다

한 마리 두 마리

끝없이 줄지어

눈썹 휘날리며 곤두박질치며 헤엄치는 올챙이

다리는 뱃속에서 속도를 굴린다

볼록한 비밀에 싸여있던

앞다리 뒷다리

뿅알 뿅알 뿅알 뿅알

우주 깨고 밖으로 나오면

전생을 까맣게 있는 순간이다

뱀눈알 냄새가 번지는지

체온보다 뜨거운 속도로

휘릭휘릭 유리창 거침없이 질주하는 올챙이

겨우내 땅속에서 어미 젖꼭지 빨며

촉촉한 휘파람 조용히 불어주던 아비 정이 아니라

올챙이는

뱃속에 두고온

다리를 찾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투명한 헤엄은 올챙이 울음이었다

마음심지 낮추고 보니

개구리는 눈속에 붓다의 염주알 굴리며

올챙이의 무사함을 비는 게 보였다

올챙이국수가 되지 말고

제발, 개구리가 되라고

비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았다

― 이서빈 시집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좋은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사물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름을 먼저 불러 주는 사람이다. 이서빈의 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비를 비라 부르지 않는다.

올챙이를 산란하는 날이라 부른다. 그 순간 비는 기상이 아니라 생명이 되고,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거대한 산란장이 된다.

이서빈 시인은 세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세상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시집 제목부터 독자를 멈춰 세운다.

시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우리는 흔히 비 오는 요일을 기억하지만, 그는 비가 생명을 낳는 요일을 본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현실은 시가 되고, 시는 우주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이서빈 문학의 첫 번째 미학이다. 그는 현실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숨어 있던 생명의 원형을 드러낸다.

표제시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은 그러한 상상력이 가장 아름답게 꽃핀 작품이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어느새 올챙이가 되고, 그 올챙이는 다리를 찾아 질주한다. 생명의 진화가 물리학이 아니라 시학으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특히 “투명한 헤엄은 올챙이 울음이었다.”라는 구절은 시인 이서빈 시 세계의 핵심을 보여 준다. 그는 보이는 것을 노래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울음의 형태를 언어로 빚어낸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올챙이국수가 되지 말고

제발, 개구리가 되라고.”

얼핏 유머처럼 읽히는 이 구절은 사실 이 시집 전체를 떠받치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올챙이는 미완의 존재이고, 개구리는 완성된 생명이다. 시인은 인간에게도 같은 기도를 건넨다. 현실에 휩쓸려 소비되는 존재로 끝나지 말고, 끝내 자기 생명의 완성을 이루라는 간절한 축원이다.

이 정신은 시집의 「작가의 말」 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인생 사용 설명서를 동봉해 주지 않아… 목적어를 찾기 위해 두근두근.”

이 한 문장은 시인 이서빈 문학의 출발점이다. 그는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평생 목적어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서성이는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방황마저 생명의 성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여,

그의 시에는 완성보다 과정이, 결론보다 질문이 더 많이 흐른다.

특히 “마음심지 낮추고 보니”라는 표현은 이서빈 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다. 세상을 높이 올라가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출 때 비로소 생명의 진실이 보인다는 깨달음이다. 그 낮아진 시선 끝에서 개구리는 붓다의 염주알을 굴리고, 올챙이는 무사히 세상을 건너기를 기도한다. 불교적 상징은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자비의 언어로 승화된다.

이서빈 시인의 시는 발상이 기발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기발함은 금세 낡는다.

그의 상상력은 생명의 본질에 닿아 있기에 살아남는다. 그는 비를 통해 탄생을 보고, 시간을 통해 생명을 읽으며, 작은 올챙이 한 마리에서 인간 존재의 운명을 바라본다. 작은 사물은 그의 손에서 거대한 우주가 된다.

그의 문장은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와 이미지가 서로를 비추며 독자의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시를 태어나게 한다. 이것이 시인의 언어가 가진 힘이다.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가 독자의 내면에서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서빈 시인은 사물을 의인화하는 시인이 아니다. 생명을 우주화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속에서는 빗방울도 태어나고, 시간도 헤엄치며, 침묵마저 숨을 쉰다.

그의 시는 자연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본성을 노래한다.

이 시집을 놓으며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서빈 시인의 문학은 언어를 잘 다루는 기술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한 생명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에서 태어난 문학이다.”

하여,

시 『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은 한 권의 시집을 넘어, 미완의 존재인 인간에게 보내는 가장 따뜻한 생명의 기도이며,

우리 모두에게 슬며시 다가와 귀띔한다.

“올챙이로 머물지 말고, 끝내 자신의 생명을 완성하라.” 고

이서빈 시인님께 드립니다

시인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저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인님께서는 평범한 사물을 특별하게 꾸미지 않으십니다. 외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 속에서 생명의 가장 깊은 떨림을 발견하시고, 그 떨림을 한 편의 시로 되살려 주십니다.

비를 바라보면서 올챙이의 탄생을 떠올리고, 유리창을 흐르는 빗방울에서 생명의 헤엄을 읽어 내는 시인의 상상력은 단순한 발상의 신선함을 넘어, 존재를 사랑하는 깊은 시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저를 감동하게 한 것은 시인님의 따뜻한 생명관입니다.

시인님의 시에는 작은 생명 하나도 홀대받지 않습니다. 올챙이 한 마리에도 우주의 시간이 깃들어 있고, 개구리의 눈동자에도 자비의 기도가 머물러 있습니다. 그처럼 생명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기에 시인님의 시는 읽을수록 더욱 깊어지고,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시집의 작가의 말씀 또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생 사용설명서를 동봉해 주지 않아…”라는 고백은 한 시인의 독백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습니다.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평생 질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시인님의 문학은 사물을 묘사하는 문학이 아니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본질을 톺아보는 문학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웅덩이에서 우주를 발견하시고, 한 방울의 빗물에서 한 생애를 읽어 내시는 시인의 시선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도 시인님께서 지금처럼 생명을 사랑하는 맑은 언어로 우리 문단에 오래도록 향기를 전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시인님의 시는 계절이 바뀌어도 쉽게 시들지 않는 들꽃처럼, 읽을수록 새로운 빛을 품는 문학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귀한 작품을 통해 많은 감동과 배움을 얻게 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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