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길에서 만난 철학가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길에서 만난 철학가 2026.07.16
길에서 만난 철학가

길에서 만난 철학가

사람은 종종 옷을 먼저 보고 사람을 읽습니다.

주소를 보고 삶을 짐작하고,

직업을 보고 존재의 무게를 재려 합니다.

세상은 이름을 붙이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이름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는 일에는 서툽니다.

‘걸인’이라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그 말은 가난과 결핍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어린 적, 거리에서 만났던 傷痍軍人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의 몸은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갈고리로 대신한 손,

깊게 패인 상처,

허공을 바라보던 눈빛.

그들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한 시대가 남긴 상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두려워했고,

사실은 전쟁의 얼굴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세월은 풍경을 바꾸었습니다.

전쟁은 멀어졌고,

거리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노숙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병으로 삶의 균형을 잃었고,

누군가는 관계가 끊어졌으며,

누군가는 경제적 파도에 삶의 닻을 놓쳤습니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가 아닙니다.

사람의 생애가 모두 다르듯,

거리까지 이르게 된 길도 모두 다릅니다.

얼마 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 생각을 오래 붙들어 놓았습니다.

무료 급식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잠도 길 위에서 청합니다.

그런데 커피만은 달랐습니다.

커피만큼은 구걸한 돈으로 직접 사 마신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묻자 그는 웃었습니다.

“커피만은 제가 원하는 커피로.”

짧은 한마디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오래 내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에게 커피는 음료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마지막 자유였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그것을 존엄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그를 노숙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삶의 방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순간 든 생각이었습니다.

가난은 돈이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넓은 집에서 살아도

더 좁은 마음으로 살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져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일까요.

그에게서 삶의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질문 하나를 선물받았습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철학은 대학 강단에서만 태어나지 않습니다.

두꺼운 책에서만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길모퉁이에서,

종이컵 하나를 앞에 둔 사람에게서도

삶의 가장 오래된 질문은 시작됩니다.

이후 ‘걸인’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짧고,

한 사람의 생애를 담기에는 너무 얕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걷는 존재입니다.

누군가는 사무실에서,

누군가는 시장에서,

누군가는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삶의 장소는 다를지라도,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만큼은 모두 같습니다.

그날

걸인을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잊고 있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커피 한 잔을 들고 웃고 있었습니다.

그 미소 하나가,

오랫동안 읽었던 철학책보다

더 깊은 질문을 내 삶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를 만난 이후,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먼저 입은 옷을 보지 않습니다.

먼저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오래 품고 살아온 삶의 문장을 먼저 떠올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생애를 끝까지 써 내려가는 작가들인지도 모릅니다.

길에서 만난 그는,

노숙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철학자였습니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