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가 시조의 옷을 입고 다시 걸어오다 ― 김상홍 교수의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에 관한 소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목민심서가 시조의 옷을 입고 다시 걸어오다 ― 김상홍 교수의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에 관한 소고 2026.07.23
□ 김상홍 교수님의 저서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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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가 시조의 옷을 입고 다시 걸어오다
― 김상홍 교수의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에 관한 소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한 학자의 오십 년이 한 권의 시조집으로 피어나다
며칠 전, 김상홍 교수께서 귀한 저서 한 권을 보내오셨다.
책을 펼치는 순간, 종이의 냄새보다 먼저 한 학자의 긴 세월이 밀려왔다. 단순한 신간 한 권이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을 향해 오십 년 넘게 걸어온 학문의 발자국이었고, 청렴이라는 한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십 년 동안 전국의 강단을 누빈 노학자의 숨결이었다.
그 책의 이름은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이다.
책은 때로 한 사람의 지식을 담는다.
어떤 책은 한 사람의 생애를 담는다.
김상홍 교수의 이 저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한 시대의 도덕적 허기를 담고 있다.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공주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상홍 교수는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부임한 뒤 교무처장,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대학원장, 부총장,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학문의 깊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육부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위원,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한국한문교육학회장과 한국한문학회장을 맡아 학계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럼에도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은 직함이 아니다.
김상홍 교수는
다산을 오래 읽은 사람이며,
청렴을 오래 말한 사람이고,
끝내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낸 사람이다.
Ⅱ. 다산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다산과 함께 늙다
김상홍 교수에게 다산 정약용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그는 다산을 학문적으로 해부하지 않았다. 다산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 함께 숨 쉬었고, 유배지의 바람을 함께 맞았으며, 목민의 길을 따라 걸었다.
『다산시선집』, 『유형지의 애가』, 『다산 정약용 문학연구』, 『다산학연구』, 『다시 읽는 목민심서』, 『다산 문학의 재조명』, 『다산학의 신조명』, 『아버지 다산』, 『다산의 꿈 목민심서』 에 이르기까지, 다산을 다룬 저서만 아홉 권에 이른다.
이것은 한 학자의 연구 실적을 넘어선다.
한 사람의 정신을 평생 붙들고 살아온 동행의 기록이다.
다산이 강진의 긴 유배지에서 백성을 생각했다면, 김상홍 교수는 대학 강단과 전국의 수많은 공공기관에서 다산의 정신을 오늘의 공직자에게 전했다.
2024년 12월 현재, 그가 국가기관에서 진행한 청렴 강의는 2,074회에 이른다.
숫자는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숫자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이다.
한 강의마다 한 번씩 정의를 말했고,
한 강의마다 한 번씩 탐욕을 꾸짖었으며,
한 강의마다 한 번씩 목민의 마음을 일깨웠을 것이다.
사십 년 동안 청렴을 강의했다는 것은, 한 문장을 사십 년 동안 지키며 살았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은 오래 반복될수록 낡는다.
신념은 오래 지킬수록 사람을 새롭게 한다.
김상홍 교수의 청렴 강의는 단순한 윤리 교육이 아니다. 다산의 정신을 현대 행정과 공직 사회의 심장에 다시 이식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학문을 서재에 가두지 않았다.
목민심서를 책장에 재우지 않았다.
고전을 깨워 강단으로 데려갔고,
강단에서 다시 현실의 거리로 내보냈다.
Ⅲ.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고전을 우리 가락으로 되살리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다.
목민심서를 요약한 해설서도 아니며, 다산의 사상을 시조의 형식에 억지로 끼워 맞춘 실험도 아니다.
이 책은 고전의 사유와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 만난 자리다.
다산의 목민 사상을 시조라는 겨레의 그릇에 담아낸, 이 세상에 없던 문학적 변환이다.
김상홍 교수는 목민심서의 정격표현을 시조로 옮기고, 변주를 더하여 팔백 수의 연시조로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각 수는 일정한 율격과 글자 수를 지키며 쓰였고, 각 장의 앞과 뒤에는 저자의 소회가 덧붙었다.
이 작업은 두 겹의 난제를 품는다.
첫째는 다산의 사상을 훼손하지 않고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시조의 율격과 문학성을 동시에 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만 남으면 교훈서가 되고,
율격만 남으면 장식적인 노래가 된다.
김상홍 교수는 이 둘 사이에 좁고 험한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 위에서 목민심서는 더 이상 조선 후기의 행정 지침서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독자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시가 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윤리의 노래가 된다.
다산의 문장이 시조의 장단을 입는 순간, 목민심서는 책상 위의 고전에서 사람의 입으로 옮겨 간다.
읽히는 책에서
불리는 책으로 바뀐다.
이 점에서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문학사적 의미가 깊다.
고전을 연시조로 옮긴 작업은 매우 드물다. 목민심서 전체의 정신과 구조를 시조의 형식으로 재창조한 일은 더욱 찾기 어렵다.
김상홍 교수 스스로도 이 작업을 두고 “남들이 가지 않은 새길”이라 표현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새 길은 언제나 기존의 지도 바깥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고전을 번역했고,
누군가는 고전을 해설했으며,
누군가는 고전을 강의했다.
김상홍 교수는 고전을 시조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는 다산을 연구한 한학자에서 멈추지 않고, 다산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재창조한 시조 시인이 되었다.
Ⅳ. 공렴이 무너진 시대에 다시 울리는 목민의 종
이 책의 가장 깊은 문제의식은 청렴이다.
김상홍 교수는 “공렴이 죽은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라고 탄식한다.
공렴은 공정함과 청렴함이다.
공정이 무너지면 백성은 법을 믿지 못하고,
청렴이 무너지면 관리는 권력을 사유물로 여긴다.
목민심서가 쓰인 지 이백 년이 훌쩍 지났지만, 다산의 경고는 낡지 않았다.
외려 더 날카롭다.
김상홍 교수는 오랜 청렴 강의에도 불구하고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자책에 가까운 탄식을 토한다.
“강의를 잘못했나, 세상이 썩었는가.”
이 물음은 노학자의 허탈함이 아니다.
자신이 평생 바친 학문과 교육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돌아보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그는 남을 꾸짖기에 앞서 자신의 강의를 돌아본다.
이 태도야말로 참된 학자의 자세다.
가르친 사람이 세상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가르침을 살피고, 학문한 사람이 현실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학문이 현실에 닿았는지 되짚는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찌하면 좋으냐”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노쇠함이 없다.
한 나라의 도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청년의 심장이 뛰고 있다.
김상홍 교수는 현대판 탐관오리를 대청소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 표현은 거칠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백성을 향한 깊은 연민이 있다.
부패는 단순한 개인의 비위가 아니다.
가난한 이의 밥을 빼앗고,
약자의 기회를 지우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썩게 하는 사회적 폭력이다.
그가 목민심서를 다시 시조로 옮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다산을 어렵게 여기지 않도록,
누구나 쉽게 읽고 실천하도록,
청렴을 지식이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Ⅴ. 법학에서 한문학으로, 학문에서 문학으로
김상홍 교수의 학문적 여정은 독특하다.
그는 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한문학으로 길을 넓혔고, 대학에서 한문교육을 가르쳤으며, 다산학과 한국 한시 연구의 권위자가 되었다.
『한국 한시론과 실학파 문학』, 『한시의 이론』, 『중국 명시의 향연』, 『한국 한시의 향기』, 『조선조 한문학의 조명』, 『꽃에 홀려 임금을 섬기지 않았네』, 『선비의 보물상자』 등 4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의 저술은 여러 차례 문공부 추천도서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다산학술상 학술대상, 일석학술상, 모범스승상, 연구업적상, 교육공로상, 최우수 강사상, 유공강사상,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베스트 강사상 등을 받았으며,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이 화려한 수상 이력보다 더 귀한 성취는 후학이다.
한 학자가 남긴 가장 오래된 저서는 책이 아니다.
그에게 배운 사람들이다.
김상홍 교수는 단국대학교 강단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교무처장과 학장, 대학원장과 부총장을 지내며 교육 행정의 책임도 감당했다.
그에게 학문은 혼자 깊어지는 우물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마시는 샘이었다.
정년 뒤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한양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한국시조협회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며 시조 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조 신인상과 우수상, 최우수상, 한국문학상 시조 특별창작상, 한용운문학상 중견 부문 시조 우수상 등을 받았다.
한학자가 시조 시인으로 나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학문 속에는 이미 시가 흐르고 있었다.
한문학을 오래 연구한 사람은 글자의 뜻만 읽지 않는다. 글자 사이의 숨과 행간의 울림을 읽는다.
김상홍 교수는 학문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바꾸었다.
이제 그는 다산을 설명하는 학자이면서, 다산의 꿈을 시조로 다시 부르는 시인이다.
Ⅵ. 다산의 꿈과 노벨문학상의 꿈
김상홍 교수는 시조가 팔백 년 역사를 지닌 겨레의 시이며, 우리가 함께 천착하고 발전시킨다면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 꿈을 단순한 낭만적 포부로 볼 수 없다.
그는 시조의 가능성을 믿는다.
시조는 짧다.
그 짧음 속에 긴 사유를 넣는다.
형식은 단정하지만 정신은 자유롭다.
몇 줄 안에서 계절과 인간, 윤리와 역사를 함께 품는다.
김상홍 교수는 목민심서를 시조로 옮김으로써 시조가 자연과 사랑만을 노래하는 장르가 아님을 보여 주었다.
시조는 행정과 윤리도 담을 수 있고,
청렴과 민생을 말할 수 있으며,
한 나라의 도덕적 위기를 꾸짖을 수도 있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시조의 외연을 넓힌다.
개인의 서정에서 사회적 윤리로,
자연의 노래에서 목민의 철학으로,
짧은 단형시에서 거대한 연작 서사로 나아간다.
이 책은 시조가 현대의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장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국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서구 문학을 닮을 필요는 없다.
우리 고유의 형식 안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담으면 된다.
청렴, 공정, 애민, 책임, 절제는 어느 한 시대와 민족에만 속한 가치가 아니다.
김상홍 교수는 다산의 목민 정신을 시조로 옮기며 한국적 형식과 세계적 윤리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문학으로 향하는 한 가지 길이다.
Ⅶ. 맺음말
ㅡ 서가에서 잠자던 목민심서가 다시 백성 곁으로 돌아오다
김상홍 교수의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한 권의 책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이 책에는 세 겹의 시간이 들어 있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집필한 조선 후기의 시간,
김상홍 교수가 다산을 연구해 온 오십 년의 시간,
청렴을 갈망하는 오늘의 시간이 한데 겹쳐 있다.
다산은 백성을 생각하며 목민심서를 썼다.
김상홍 교수는 그 목민심서가 서가에서 잠들지 않도록 시조로 깨웠다.
그는 고전을 오늘의 강물에 다시 띄웠다.
한문으로 된 옛 책을
겨레의 가락에 실어
현대인의 마음까지 흘려보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팔백 수라는 방대한 분량에만 있지 않다.
다산의 사상을 쉬운 언어로 전달하고,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부패한 시대를 향해 청렴의 종을 울렸다는 데 있다.
김상홍 교수는 일생 동안 다산을 연구했다.
이제는 다산이 김상홍 교수의 삶을 설명한다.
두 사람은 시대를 달리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본다.
백성이 울지 않는 나라,
관리가 탐욕에 물들지 않는 나라,
권력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쓰이는 나라다.
그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김상홍 교수께서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기를 기원하듯, 우리 사회의 탁한 물도 언젠가는 맑아져야 한다.
그 맑음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실천해야 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하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우리에게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거울 한 면을 건넨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공정한가.
나는 청렴한가.
나는 약한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김상홍 교수께서 보내오신 이 귀한 저서를 가슴에 품으며, 나는 오래 책장을 넘겼다.
책장마다 다산의 목소리가 들렸고,
행간마다 노학자의 숨이 배어 있었다.
오십 년 학문이 시조가 되고,
사십 년 강의가 한 권의 경전이 되었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다산을 위한 헌사이자, 시조를 위한 탑이며, 청렴한 나라를 향한 한 학자의 마지막까지 뜨거운 기도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든 일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
아울러 김상홍 교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교수님의 학문은 높되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았고,
교수님의 문장은 준엄하되 백성을 향해 따뜻했으며,
교수님의 시조는 짧되 한 시대의 양심을 길게 울린다.
서가에서 잠들어 있던 목민심서가
이제 시조의 신을 신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 길 앞에
청렴한 나라의 새벽이 기다리고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맑은 물이 흐르는 쪽으로 평생을 걸어오신 분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존경하는 김상홍 교수님.
며칠 전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저서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를 받아 들었습니다.
책을 손에 얹는 순간, 한 권의 무게가 아니라
한 학자가 평생 걸어오신 시간의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표지를 넘기기 전부터 마음이숙연해졌습니다.
책 속에는 다산 정약용의 문장이 있었고,
문장 뒤에는 교수님의 오십 년 학문이 서 있었습니다.
시조의 장단마다 사십 년 청렴 강의의 발걸음이 들렸으며,
행간마다 이 나라가 조금 더 맑아지기를 바라신
노학자의 간절한 숨이 배어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공주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부임하신 뒤
교무처장과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과 대학원장,
부총장과 석좌교수를 지내셨고
이제 명예교수로 학문의 깊은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 이력만으로도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높고 넓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더욱 깊이 바라보게 되는 것은
교수님께서 오르신 자리의 높이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늘 낮은 곳의 백성을 생각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직함은 사람을 높일 수 있으나
마음까지 높여 주지는 못합니다.
교수님의 학문은 높은 강단에서 출발했으되
언제나 민생의 낮은 마당으로 흘러갔습니다.
마치 산에서 태어난 물이
자신의 고도를 자랑하지 않고
메마른 논과 밭을 적시기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듯,
교수님의 지식은 사람을 내려다보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살피는 목민의 눈이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산을 연구하신 것이 아니라
다산과 함께 한 생애를 걸어오셨습니다.
『다산 정약용 문학연구』를 비롯해
『다산학연구』, 『다시 읽는 목민심서』,
『다산 문학의 재조명』, 『다산학의 신조명』,
『아버지 다산』, 『다산의 꿈 목민심서』 에 이르기까지
다산을 향한 연구는 아홉 권의 저서로 쌓였습니다.
오십 년 동안 한 인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의 사상을 머리로 이해하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을 함께 바라보고,
그가 아파한 백성의 신음을 함께 들으며,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의 시대에서
다시 이어 가는 일일 것입니다.
강진의 유배지에서 다산이 백성을 생각했다면,
교수님께서는 전국의 수많은 강의장에서
다산의 청렴 정신을 오늘의 공직자들에게 전하셨습니다.
2024년 12월 현재 국가기관에서 행하신
청렴 강의가 2,074회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이 숫자 앞에서 저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천 번이 넘는 강의는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이천 번이 넘도록 탐욕을 경계하고,
이천 번이 넘도록 공직의 책임을 일깨우며,
이천 번이 넘도록 한 나라의 양심을
잠에서 깨우려 하신 시간입니다.
말 한마디를 수십 년 동안 지킨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쓰는 일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에 먼저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말은 때로 삶과 멀어지기 쉽습니다.
교수님의 청렴은 입술에서만 울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학문과 교육, 공직 자문과 저술을 통해
한 방향으로 걸어오신 생애의 문법이었습니다.
그 긴 강의의 끝에서 교수님께서는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며
“강의를 잘못했나, 세상이 썩었는가”라고
스스로를 돌아보셨습니다.
저는 그 문장에서
참된 학자의 등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자신의 가르침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살피는 사람,
남의 허물을 헤아리기 전에
자신의 책임부터 가슴에 올려놓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귀하게 모셔야 할 스승입니다.
교수님께서 이번에 펴내신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그 오랜 학문과 실천이 마침내 한 그루의 나무로
결실을 맺은 역작이라 생각합니다.
목민심서는 오랫동안 서가에 놓여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알고 있으나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드뭅니다.
한문 고전이라는 벽과 방대한 분량,
낯선 시대의 제도와 어휘가
오늘의 독자를 문 앞에서 망설이게 했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닫힌 문에
시조라는 우리 겨레의 열쇠를 꽂으셨습니다.
다산의 사상을 시조의 장단에 태우고,
어려운 목민의 가르침을 누구나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우리말의 물결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고전이 시조의 옷을 입자
목민심서는 더 이상 오래된 책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먼 서가에서 내려와
오늘의 관청과 의회, 학교와 가정의 문을 두드리는
살아 있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정격과 변주를 아우른 팔백 수의 연시조.
그 방대한 작업을 생각하면
교수님의 책상 위에 얼마나 많은 새벽이 쌓였을지,
붓끝과 원고지 사이로 얼마나 많은 계절이 지나갔을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한 수의 시조에는 몇 줄의 문장만 보이지만,
그 짧은 형식 안에는 다산의 사상과
교수님의 반세기 연구가 함께 압축되어 있습니다.
시조 한 수가 작은 그릇이라면
교수님께서는 그 작은 그릇마다
목민의 큰 강을 나누어 담으셨습니다.
넘치지 않게 담으면서도
마르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학자와 시인이 함께 이루어 낸
귀한 문학적 성취일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법학에서 출발하여 한문학에 이르셨고,
한문학을 지나 다산학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셨으며,
이제는 시조의 들판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계십니다.
학문이 문학을 만나고,
법의 정신이 시의 숨결을 얻으며,
청렴의 윤리가 겨레의 가락으로 태어났습니다.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는
단순히 고전을 시조로 바꾼 책이 아닙니다.
학문의 언어와 대중의 언어 사이에 놓인
오래된 벽을 허문 책입니다.
서재의 지식을 삶의 마당으로 옮겨 놓은 책이며,
다산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 사이에
튼튼한 징검다리를 놓은 책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팔백 년 역사를 지닌 시조를
우리 겨레의 고유한 문학으로 더욱 깊이 천착하고
그 경계를 넓힌다면, 언젠가 세계문학의 높은 자리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 믿고 계십니다.
저 역시 그 믿음에 마음을 보탭니다.
세계문학은 서양의 형식을 닮는 데서 탄생하지 않습니다.
우리만이 가진 그릇에
인류 모두가 마실 수 있는 물을 담을 때
비로소 세계의 문학이 됩니다.
시조라는 한국 고유의 형식 안에
청렴과 공정, 애민과 책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담아낸
교수님의 작업은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긴 세월 동안 교수님께서는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기를 기다려 오셨습니다.
세상이 쉬이 맑아지지 않아
때로는 마음 깊이 탄식하셨을 것입니다.
부패한 사람이 흰옷을 입고 청렴을 말하며,
권력을 사유물처럼 사용하는 이들이
백성 앞에서 정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실 때마다
평생의 강의가 허공으로 흩어진 듯한
허탈함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의 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의실을 떠난 문장들은
수많은 사람의 양심 한 귀퉁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당장 싹을 틔우지 못한 씨앗도
땅속에서 계절을 기다립니다.
교수님께서 뿌리신 청렴의 씨앗 가운데
얼마가 어느 날 한 사람의 결정을 바꾸고,
한 조직의 관행을 바꾸며,
한 나라의 방향을 바로잡을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맑은 물은 갑자기 강 전체를 바꾸지 않습니다.
한 방울의 맑음이 또 다른 한 방울을 만나고,
그 물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탁한 강도 제 빛을 되찾습니다.
교수님의 학문과 강의,
이번에 펴내신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가
바로 그 첫 물방울이며 오래 마르지 않는 샘이라 믿습니다.
귀한 저서를 보내주신 교수님의 마음을
저는 한 권의 선물로만 받지 않겠습니다.
학문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문학은 시대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아야 하고,
배운 사람은 더 낮은 자리에서
세상의 아픔을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겠습니다.
저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교수님의 꼿꼿한 학문 정신과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오래 본받겠습니다.
교수님의 문장은 대나무처럼 곧되
그 그늘은 넓습니다.
교수님의 학문은 추상같이 준엄하되
그 뿌리는 언제나 백성의 눈물 가까이에 있습니다.
교수님의 시조는 몇 줄로 끝나지만
그 울림은 한 시대의 양심을 오래 흔듭니다.
다산이 목민심서를 통해
백성을 위한 관리의 길을 밝혔듯,
교수님께서는 시조를 통해
그 오래된 등불에 다시 심지를 세우셨습니다.
이제 목민심서는 시조의 신을 신고
우리 시대의 거리를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 앞에서
탐욕은 잠시 얼굴을 붉히고,
권력은 자신의 손을 돌아보며,
양심은 오래 닫아 두었던 창문 하나를 열게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상홍 교수님.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어
우리 학문과 문학의 큰 어른으로 계셔 주십시오.
교수님의 지혜가 후학의 길을 밝혀 주고,
교수님의 청렴한 삶이 이 시대의 거울이 되며,
교수님의 시조가 겨레의 가슴에
맑은 종소리로 오래 울리기를 기원드립니다.
오십 년 다산 연구가 한 권의 시조로 피어나고,
사십 년 청렴 강의가 한 시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삶은 이미
한 편의 긴 목민심서입니다.
책으로 쓰인 목민심서가 관리의 길을 가르쳤다면,
교수님께서 살아오신 목민심서는
학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귀한 책을 보내주신 데 깊이 감사드리며,
교수님의 높고 맑은 학문과 문학 세계 앞에
존경의 마음을 정중히 올립니다.
맑은 물을 기다리신 교수님의 기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은 샘으로 솟아나기를 바라며,
『시조로 읽는 목민심서』 가
시조문학사와 다산학의 오래 빛나는 이정표로
길이 남기를 기원드립니다.
김왕식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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