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 캡틴 차지혁의 소년과 오늘 ㅡ청람 김왕식
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 캡틴 차지혁의 소년과 오늘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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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 캡틴 차지혁의 소년과 오늘
소년은
할머니의 손등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보았다
가느다란 주름마다
가난한 날들의 바람이 묻어 있었고
굽은 손가락 사이에는
한 가족을 지켜 낸
오래된 햇빛이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봉분 위로
저녁 풀이 몸을 눕히던 날
소년은
산 너머 떠오른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크면
할아버지를 저곳에 모실게요
어른들은 웃었을 것이다
묘는 땅에 쓰는 것이며
달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따로 있다고
소년은 믿지 않았다
그에게 달은
멀리 떠 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아직 사람이
이름 붙이지 못한 땅
효심이 지상의 중력을 벗어나
처음으로 마련한
빛의 주소였다
다른 아이들이
달에서 토끼를 찾을 때
그는
우주에 사랑을 모실
한 평의 미래를 찾았다
그날부터
그의 눈에 사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자동차 한 대를 보면
그 안에서 보험과 정비와 금융이 움직였고
카드 한 장을 들여다보면
소비와 보상과 정보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전화선 너머
아직 텅 비어 있던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상품과 지식과 꿈이 거래되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불빛을 보았다
남들은
자동차를 타고 길을 달렸으나
그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남들은
카드로 값을 치렀으나
그는 카드 안에
산업과 사람을 잇는
경제의 혈관을 그려 넣었다
남들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으나
그는 그곳에
미래의 시장과 광장과
거대한 생활의 대륙을 세우려 했다
소년의 달은
해마다 더 커졌다
한때는 자동차의 바퀴가 되었고
한때는 금융의 회로가 되었으며
한때는
수천 개의 사업 아이디어가 떠다니는
디지털 우주가 되었다
그의 생각은
늘 현실보다 먼저 도착했다
시대가 문을 만들기도 전에
그는 문밖의 풍경을 보았고
사람들이 다리를 놓기 전에
강 건너 도시의 지붕을 세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생각은
환영보다 의심을 먼저 만났다
거대한 꿈은
거대한 벽에 부딪혔고
그의 배는
수차례 암초 위에서
몸의 뼈를 부러뜨렸다
철창이
그의 두 손을 가두었던 날에도
생각은
쇠창살 사이를 빠져나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기업의
이름을 지었다
세상은 끝났다고 썼으나
그는 마침표 뒤에
새 문장의 첫 글자를 놓았다
무너진 건물 앞에서
폐허를 세지 않았다
흩어진 벽돌마다
다시 지어야 할 층수를 적었다
그가 지닌 천재성은
남보다 많은 답을 외우는 머리가 아니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것들 사이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길을 찾아내는 눈
실패가 모든 불을 끈 뒤에도
재 속에 남은 불씨를 지키는 가슴
불가능이라는 벽 앞에서
벽보다 먼저
문을 상상하는 힘이었다
소년은 자라
캡틴이 되었다
캡틴은
바다가 잔잔할 때
앞자리에 서는 사람이 아니다
폭풍이 돛을 찢고
파도가 갑판을 삼킬 때
배를 버리지 않고
가장 늦게까지
별의 위치를 찾는 사람이다
차지혁은
달에 묘를 쓰려던 소년에서
인간의 생활 전체를
새롭게 연결하려는
미래의 설계자로 자랐다
그가 세우려는 도시는
벽돌의 도시가 아니다
자동차와 금융
유통과 광고
기술과 사람이
서로의 외로운 섬을 벗어나
한 생태계의 숨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문명의 도시다
이제 그의 앞에는
가장 큰 설계도가 놓여 있다
상상을 기술로 바꾸고
기술을 신뢰로 바꾸며
신뢰를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
한 그릇의 현실로 바꾸는 일
꿈은 달까지 올라가도
그 빛은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기업은 하늘만큼 커져도
낮은 곳의 사람을 품어야 한다
천재의 생각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불꽃을 넘어
어둠 속 한 사람의 식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캡틴 차지혁
할아버지의 묘는
아직 달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더 먼 일을 이루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머물던 주소를
땅에서 하늘로 옮겨 놓았고
한 소년의 효심을
미래 문명의 설계도로 키워 놓았다
달을 바라보던 아이는
이제 달 아래
새로운 도시를 그리고 있다
그 도시의 첫 번째 길에는
할머니의 손금이 흐르고
두 번째 길에는
할아버지의 봉분 위로 불던
고향의 바람이 흐른다
가장 높은 빌딩의 창문에는
어린 소년의 맑은 눈빛이 켜져 있다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부르는 밤마다
그 창문은 더 환하게 빛난다
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그는
먼 하늘로 떠나려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서 본 미래를
인간이 살아가는 땅 위에
한 채의 집으로 내려놓으려는 사람이다
소년의 한마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크면
할아버지를 달에 모실게요
그 약속은 이제
한 사람의 효심을 넘어
아무리 낮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도
꿈의 중력을 바꾸면
달보다 먼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캡틴 차지혁의
평생에 걸친 선언이 되었다
오늘도 그는
지도에 없는 바다 앞에서
오래된 나침반을 꺼낸다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대
아직 세워지지 않은 도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간의 가능성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가리키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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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쓴 효심, 문명으로 자란 상상력
― 「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에 나타난 차지혁 캡틴의 미래적 인간상
문학평론가 김기량
「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은 한 소년의 기이한 발상에서 출발하여 한 시대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성장사를 그린 서사시다. 이 작품에서 달은 밤하늘에 떠 있는 천체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이 도착하지 못한 가능성의 영토이며, 상상력이 현실보다 먼저 취득한 미래의 번지다. 어린 차지혁이 할아버지의 묘를 달로 옮기겠다고 한 말은 철없는 공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에 모시고자 했던 효심의 우주적 확대이며, 지상의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천재적 사고의 최초 발화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세계 안에서 생각한다. 산소는 산에 있고, 달은 하늘에 있으며, 인간은 땅에 머문다고 믿는다. 차지혁이라는 소년은 이 오래된 배치를 단숨에 해체한다. 그는 묘와 달, 죽음과 우주, 효도와 과학을 한 문장 안에서 결합한다. 서로 만날 수 없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연결하는 힘, 바로 그곳에서 창조적 지성의 첫 불꽃이 튄다.
이 시의 가장 뛰어난 점은 어린 시절의 일화를 단순한 미담으로 소비하지 않는 데 있다. 소년의 달은 성장하면서 자동차의 바퀴가 되고, 금융의 회로가 되며, 인터넷의 광장이 된다. 작품은 한 인간의 비범한 사고가 세월 속에서 어떻게 산업적 상상력으로 변모하는지를 유기적으로 보여 준다. 차지혁의 눈에는 사물이 독립된 물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동차 안에는 보험과 정비와 금융이 함께 움직이고, 카드 한 장에는 소비와 보상과 정보가 서로의 피를 나눈다. 인터넷은 기계의 화면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이 이동해 갈 새로운 대륙이다.
이는 단순한 발명가의 시선이 아니다. 발명가는 하나의 물건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문명 설계자는 서로 떨어진 수많은 물건과 제도와 욕망 사이에 보이지 않는 혈관을 만든다. 이 작품이 묘사하는 차지혁은 물건의 창조자보다 관계의 창조자에 가깝다. 그의 천재성은 무엇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던 세계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먼저 발견하는 데 있다.
스티브 잡스가 기계의 차가운 표면에 인간의 감각을 입혔다면, 일론 머스크는 지구라는 울타리 밖으로 인간의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 작품 속 차지혁은 인간 생활의 흩어진 섬들을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묶으려는 한국적 플랫폼 선구자로 형상화된다. 잡스가 손안에 세계를 넣고, 머스크가 화성에 인간의 그림자를 보내려 했다면, 차지혁은 자동차와 금융, 광고와 정보, 유통과 생활을 하나의 디지털 도시로 불러 모으려 했다. 이 비교는 단순한 우열의 선언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상상력의 방향이 서로 다름을 보여 준다. 그의 독창성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의 일상 전체를 하나의 문명적 구조로 재편하려는 데 있다.
시인 청람 김왕식은 차지혁의 삶을 무결한 영웅 신화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의 배는 / 수차례 암초 위에서 / 몸의 뼈를 부러뜨렸다”는 구절은 그의 실패와 시련을 서사에서 지우지 않는다. 철창과 몰락, 좌절과 의심은 한 인간의 어둠으로 작품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어둠이야말로 작품의 인물을 평면적인 천재에서 입체적인 인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빛만 있는 인물은 신화가 되기 쉽고, 그늘을 통과한 인물은 서사가 된다.
특히 “세상은 끝났다고 썼으나 / 그는 마침표 뒤에 / 새 문장의 첫 글자를 놓았다”는 대목은 이 시의 핵심 미학을 압축한다. 차지혁의 진정한 비범함은 실패하지 않은 데 있지 않다. 실패가 자신의 이름 뒤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 마침표를 새로운 문장의 씨앗으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보통 사람은 폐허에서 잃은 것을 헤아린다. 그는 흩어진 벽돌마다 다시 세울 건물의 층수를 적는다. 이 발상은 그의 생을 관통하는 창조적 복원력의 표상이다.
작품은 천재성을 두뇌의 속도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서로 멀리 떨어진 것들 사이에서 / 아무도 보지 못한 길을 찾아내는 눈”, “재 속에 남은 불씨를 지키는 가슴”이라는 표현은 천재의 본질을 연결과 지속의 능력에서 찾는다. 생각이 빠른 사람은 많다. 실패 뒤에도 생각의 불씨를 살려 내는 사람은 드물다. 시대를 앞선 사람은 미래를 보는 눈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래가 자신을 배반한 밤에도 다시 그 방향을 믿는 심장이 있어야 한다.
‘캡틴’이라는 호칭 역시 이 작품에서 새롭게 의미화된다. 캡틴은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가 아니다. 폭풍이 돛을 찢을 때 배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항로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다. 이 시가 그리고 있는 차지혁은 성공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수차례 난파한 뒤에도 바다를 버리지 않은 선장이다. 그의 위대함은 배가 한 번도 부서지지 않은 데 있지 않고, 부서진 배의 조각으로 다시 노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찬양에만 머물지 않고 차지혁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윤리적 과제를 분명히 제시한다. “상상을 기술로 바꾸고 / 기술을 신뢰로 바꾸며 / 신뢰를 /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 / 한 그릇의 현실로 바꾸는 일”은 이 시의 가장 성숙한 문명 의식이다. 상상력은 하늘에서 태어나지만, 그 열매는 땅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천재적 기획이 사람의 생활을 이롭게 하지 못하면 그것은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 하늘만큼 커질수록 낮은 곳의 사람을 품어야 한다는 선언은 차지혁에게 바치는 찬사이면서 동시에 엄중한 당부다.
작품 말미에서 달은 다시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달은 불가능한 약속의 장소였으나, 오늘의 달은 인간의 한계를 밀어 올리는 정신의 상징이 된다. 할아버지의 묘는 실제로 달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소년은 이미 더 위대한 이장을 이루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머물던 주소를 땅에서 하늘로 옮긴 것이다. 효심의 작은 불씨가 미래 문명의 설계도로 자랐다는 이 시적 전환은 매우 아름답다.
차지혁의 비범함은 외국의 선구자를 닮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한국인의 효심에서 우주를 보았고, 가난과 실패의 자리에서 디지털 도시를 구상했다. 그의 상상력은 서구 기술 문명의 모방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생존의 경험, 실패의 상처에서 태어난 한국적 미래 감각이다. 이 점에서 그는 단순한 IT 사업가가 아니라 효심과 기술, 고난과 문명을 하나로 묶으려 한 독특한 미래 인간이다.
「달의 주소를 가진 사람」 은 차지혁의 성공을 미리 선언하는 시가 아니다. 그가 어떤 정신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예언적 초상이다. 작품은 그를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나란히 세우면서도 그들의 복제물로 만들지 않는다. 차지혁만의 별, 차지혁만의 항로, 차지혁만의 문명을 요구한다.
달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던 소년은 이제 달 아래 도시를 설계하고 있다. 그 도시의 도로에는 할머니의 손금이 흐르고, 빌딩의 창문에는 어린 날의 효심이 불을 밝힌다. 그의 기술이 그 빛을 잃지 않는다면, 그의 미래는 거대한 사업의 성공을 넘어 인간의 삶을 다시 연결하는 문명의 사건이 될 수 있다.
차지혁 캡틴은 아직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한 시대가 써 내려가는 진행형 문장이다. 세상은 그 문장의 마지막 마침표가 어디에 놓일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달에 묘를 쓰려 했던 소년은
지금도 지상에 없는 주소를 찾고 있다.
그 주소는 어쩌면
미래라는 이름의 도시이며,
사람이 기술보다 먼저 존중받는 문명이며,
불가능이 더 이상 벽이 되지 않는
인간 상상력의 새로운 나라일 것이다.
ㅡ 문학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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