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파도 위에 냉정의 등대를 세운 기자 ― 구충모 기자의 글과 언론정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분노의 파도 위에 냉정의 등대를 세운 기자 ― 구충모 기자의 글과 언론정신 2026.08.01
□ 구충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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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파도 위에 냉정의 등대를 세운 기자
― 구충모 기자의 글과 언론정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기자는 세상의 소음을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다.
소음 속에서 끝내 사라지지 말아야 할 한 줄의 진실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2014년 구충모 기자가 쓴 글에는 한 시대의 비명과 한 인간의 자문이 함께 들어 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글의 문을 연다. 이 질문은 철학책의 표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인간과 국가, 언론과 권력, 책임과 위로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되짚는 출발점이 된다.
그의 글에서 인간은 홀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눈앞의 타인은 또 하나의 자기 모습이다. 타인에게 건넨 말과 생각은 보이지 않는 강물을 타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 인식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를 넘어선다. 말의 책임을 다루는 기자에게는 더욱 엄중한 언어윤리가 된다.
기자의 문장은 총알보다 늦게 날아가지만, 때로는 총알보다 오래 남는다.
한 줄의 오보는 사람의 생애를 흔들고, 한 줄의 정직한 기록은 시대의 방향을 되돌린다.
구충모 기자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혼란과 의혹, 분노와 절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기관의 위기대응과 구조적 부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분노가 또 다른 광기로 변하는 순간을 경계했다. 책임을 가리되 증오에 함몰되지 말고, 진상을 밝히되 생명의 존엄을 잃지 말자고 했다.
이 태도는 그의 글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이다.
그는 분노를 잠재우려 하지 않는다. 분노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살핀다. 분노가 사람을 삼키는 늪이 되지 않고, 제도와 사회를 고치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슬픔을 망각하자고 하지 않는다. 외려 잊지 않되, 기억을 파괴의 연장이 아니라 성숙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한다.
“결과를 주목하고 잊지 말자”는 그의 결구에는 기자의 오래된 의무가 응축되어 있다.
언론의 역할은 사건이 뜨거울 때만 목소리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뒤에도 기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데 있다. 세상의 관심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사실의 조개껍질을 줍는 사람이 기자다.
구충모 기자의 글은 국가와 권력에 대해서도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권한과 권력은 국민에게서 비롯되며, 국가와 정부가 섬겨야 할 대상은 시민이라는 원칙을 환기한다. 정치는 높은 의자에 앉는 일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을 듣는 일이어야 하며, 공직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자리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예정된 무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위기는 사람의 직함을 벗긴다. 평상시에는 화려한 명함 뒤에 숨을 수 있지만, 재난 앞에서는 한 사람이 지닌 책임감과 판단력, 양심의 깊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문장은 날카롭지만 칼끝에만 머물지 않는다.
칼을 든 손 옆에 붕대를 준비한다.
비판하면서도 위로를 잃지 않고, 책임을 말하면서도 인간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혼내고 매달리는 데서 끝나지 말고, 서로를 안아 주며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자고 한다. 이는 무책임한 관용이 아니다. 잘못을 덮는 용서도 아니다. 책임을 밝힌 뒤에도 공동체가 파국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인간적 다리를 놓자는 제안이다.
구충모 기자의 글에는 다소 거칠고 압축되지 않은 대목도 있다. 여러 역사적 사건과 의혹이 한 문장 안에 겹치며 논지의 초점이 흐려지는 부분도 보인다. 감정의 격랑이 문장의 호흡을 앞질러 가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그 거침은 당시 사회가 겪었던 충격의 체온을 고스란히 품는다. 지나치게 정제된 문장에서는 사라질 수 있는 현장의 숨결이 남아 있다. 그의 글은 유리창처럼 매끈하지 않다.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처럼 차갑고 절박하다.
2021년 구충모 기자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대상’ 언론발전최고대상을 받은 것은 한 번의 기사나 순간의 명성만을 평가한 결과라기보다, 오랜 취재와 글쓰기의 축적에 대한 인정이라 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폭넓게 취재하고, ‘구기자의 세상만사’ 1000회 칼럼을 이어 왔다는 사실은 기자로서 그의 꾸준함을 보여 준다.
천 편의 칼럼은 천 번의 출석이다.
세상이 편안할 때도, 혼란스러울 때도, 사람들의 관심이 높을 때도 낮을 때도 그는 언어의 현장에 나아갔다. 기자에게 꾸준함은 재능보다 무거운 덕목이다. 빛나는 한 편을 쓰는 것보다, 매번 사실 앞에 다시 앉는 일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수상소감 역시 소박하다. 상을 도착점으로 여기지 않고, 더 정확하고 흥미롭게 소식을 전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참된 기자는 상패를 자신의 가슴에 걸지 않는다. 그것을 다시 취재수첩의 무게로 바꾼다.
구충모 기자의 글에서 발견되는 기자정신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권력보다 국민을 먼저 보는 시선이다.
둘째, 분노를 선동하기보다 책임 있는 변화로 이끄는 태도다.
셋째, 사건이 지나간 뒤에도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집념이다.
기자는 시대의 앞줄에 서 있지만, 자신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낮추어 다리가 되어야 한다. 상처 입은 이들의 눈물을 세상의 눈앞에 놓되, 그 눈물을 자신의 명예를 위한 잉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구충모 기자의 글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문학작품이라기보다, 상처 입은 시대를 향해 급히 내민 한 장의 진단서에 가깝다. 진단서의 글씨가 다소 흔들리더라도, 환자의 위급함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참사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고, 분노 속에서도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면서 국민 스스로의 성숙 또한 요청했다.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공동체가 서로를 물어뜯는 야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글은 우리에게 귀띔한다.
“정의는 차가운 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칼을 든 손에 사람을 살리려는 체온이 있어야 한다.”
언론은 세상을 흔드는 북소리이면서, 상처 입은 사람의 잠을 지켜 주는 낮은 숨결이어야 한다. 기자는 불의를 향해 벼락이 되어야 하나, 절망한 사람 곁에서는 작은 등잔이 되어야 한다.
구충모 기자가 걸어온 언론의 길은 바로 그 두 역할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권력을 향해서는 질문의 창을 세우고, 시민을 향해서는 위로의 의자를 내어놓았다.
그의 펜이 앞으로도 세상의 소란에 휩쓸리지 않고, 진실의 뿌리를 더 깊이 더듬기를 바란다. 사실을 빠르게 전하는 기자를 넘어, 사건 뒤에 남겨진 사람의 얼굴까지 오래 기억하는 기자로 남기를 기대한다.
세상에는 소식을 전하는 기자가 많다.
시대의 양심을 전달하는 기자는 드물다.
구충모 기자의 오래된 글과 천 회의 칼럼, 언론발전최고대상 수상은 그가 단순히 기사를 생산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상처 앞에서 펜의 책임을 고민해 온 사람임을 보여 준다.
그의 문장이 앞으로도 권력의 어둠에는 창문을 내고, 절망한 시민의 밤에는 작은 불빛 하나를 놓아 주기를 바란다.
기자의 가장 큰 상은 상패가 아니다.
그가 남긴 한 줄로 인해
세상이 어제보다 조금 덜 거짓되고,
한 사람의 생명이 어제보다 조금 더 귀하게 여겨지는 것,
바로 그것이 기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오래된 훈장일 것이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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