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가난의 마당에 인간의 별빛을 심은 시 ― 구자관 시인의 「한여름밤의 추억」에 나타난 휴머니즘과 공동체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난의 마당에 인간의 별빛을 심은 시 ― 구자관 시인의 「한여름밤의 추억」에 나타난 휴머니즘과 공동체의 미학 2026.08.02
가난의 마당에 인간의 별빛을 심은 시 ― 구자관 시인의 「한여름밤의 추억」에 나타난 휴머니즘과 공동체의 미학

□ 구자관 시인

한여름밤의 추억

시인 구자관

두메산골 도라지꽃 피던 그날.

하이얀 달빛 아래

호박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저녁이면,

가난했지만 궁색하지 않았던

넓은 마당에는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쑥대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그 곁에는 멍석이 깔리면

동네 형아들은 모여

여름살이 다림질에 한창이었다.

한 여름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에도 짧은데

문득

헛간 지붕 위

달빛을 머금은 하얀 박꽃은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아닌 밤중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놀라

선잠 깬 아가는

엄마 품을 파고들 때

나는

여름밤 하늘을 후두둑 스쳐 내리는

별똥 별을 하나둘 헤아리곤 했다.

그 여름밤은

가난했지만 풍요로웠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추억 하나를 깊고 깊게 심어 주었다.

가난의 마당에 인간의 별빛을 심은 시

― 구자관 시인의 「한여름밤의 추억」 에 나타난 휴머니즘과 공동체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구자관 시인의 「한여름밤의 추억」 은 지나간 유년을 불러내는 단순한 회고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물질의 빈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던 시대, 소유의 넓이보다 마음의 마당이 더 컸던 시절을 복원하는 인간학적 서정이다. 도라지꽃과 호박꽃, 쑥대 모깃불과 멍석, 박꽃과 뻐꾸기 울음, 어머니의 품과 별똥별은 추억의 장식물이 아니라 한 인간의 품성과 삶의 철학을 비추는 내면의 등불이다.

시의 첫 문장인 “두메산골 도라지꽃 피던 그날”은 기억의 문을 여는 푸른 열쇠다. 도라지꽃은 척박한 산골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는 꽃이다. 화려한 정원보다 돌 많은 산비탈을 삶의 자리로 삼고,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아도 하늘을 향해 작은 종을 매단다. 그 꽃의 성정은 구자관 시인의 삶과 닮아 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애쓰는 사람들의 수고를 먼저 알아보는 마음이 도라지꽃의 여린 빛 속에 배어 있다.

“가난했지만 궁색하지 않았던 넓은 마당”은 이 작품의 정신적 중심이다. 가난은 가진 것의 적음을 뜻하지만 궁색함은 나눌 마음의 자리가 사라진 상태다. 그 시절의 마당은 살림으로는 비어 있었으나 사람으로 가득했다. 곳간은 넉넉하지 않았어도 인정은 넘쳤고, 가진 것은 많지 않았어도 서로에게 내어 줄 자리는 넓었다.

오늘의 집은 커졌으나 함께 앉을 마당은 좁아졌다. 불빛은 밝아졌으나 사람의 얼굴에 내려앉은 그늘을 읽는 눈은 흐려졌다. 구자관 시인은 이 한 구절을 통해 풍요의 기준을 다시 세운다. 풍요는 소유의 총량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마음의 면적이며, 삶의 품격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얼마나 따뜻하게 나누었는가에 놓여 있다.

쑥대 모깃불은 이 시의 가장 따뜻한 심장이다.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는 유년의 밤이 지닌 양면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는다. 연기는 눈을 맵게 했으나 사람들을 한자리로 모았고, 모기를 쫓으면서 고단한 하루의 피로까지 태워 주었다. 그 불은 작은 모깃불에 머물지 않는다. 이웃과 가족을 둥글게 앉히는 공동체의 화롯불이며, 가난한 마당에 피어난 인정의 봉화다.

“여름살이 다림질에 한창이었다”는 표현은 생활의 풍경을 낯선 시적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하루 동안 논밭과 일터에서 구겨진 몸과 마음이 멍석 위에서 반듯하게 펴진다. 사람은 사람의 온기로 자신의 주름을 편다. 웃음 한 자락이 피로를 다리고, 이웃의 말 한마디가 마음의 구김을 펴 준다. 이 구절에는 구자관 시인이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깊이 들어 있다.

그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이면서도 자신을 사원들 위에 놓지 않는 사람이다. 평사원의 마음으로 그들의 형편을 살피고, 말로 다 꺼내지 못한 어려움까지 헤아리려는 사람이다. 직원 한 사람의 고단함을 단순한 업무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 뒤에 놓인 한 가정의 저녁과 자녀의 내일, 부모의 근심까지 바라본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그의 시적 시선과 한 뿌리에서 자란다. 이름 없이 일하는 사원의 수고를 알아보는 눈과 헛간 지붕 위 박꽃 한 송이를 발견하는 눈은 서로 다르지 않다. 작아서 지나치기 쉬운 존재를 귀히 여기는 마음, 낮은 자리의 생에도 눈부신 존엄이 있음을 믿는 마음이 그의 경영과 문학을 함께 관통한다.

헛간 지붕 위의 하얀 박꽃은 작품의 가장 눈부신 상징이다. 박꽃은 낮의 화려함을 탐하지 않는다. 어둠이 깊어질 때 비로소 달빛을 받아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그것은 자신을 자랑하는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는 겸손한 빛이다.

구자관 시인의 인품 또한 이 박꽃과 닮아 있다. 높은 직함을 햇빛처럼 앞세우기보다 어려운 사람의 밤 가까이에서 흰빛을 내어 주는 삶이다. 자신의 선행을 알리기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이다. 큰 나무가 제 그늘을 설명하지 않듯, 깊은 우물이 제 물맛을 자랑하지 않듯, 그의 배려는 말보다 삶에서 먼저 증명된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과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가의 모습은 이 시에 인간적 체온을 더한다. 어머니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피난처다. 집의 지붕이 비를 막는다면 어머니의 품은 두려움을 막는다. 시인은 이 작은 장면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궁극의 힘이 보호와 돌봄임을 보여 준다.

구자관 시인의 기업철학 또한 이 돌봄의 윤리와 닿아 있다. 그에게 회사는 성과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의 하루가 모여 사는 집이다. 직원은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한 생애를 지닌 존엄한 존재다. 대표의 자리는 가장 높은 의자가 아니라 가장 많은 무게를 나누어 져야 하는 어깨다. 그가 사원의 어려움을 섬세히 살피는 까닭은 연민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 경영의 근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별똥별을 하나둘 헤아리는 아이의 모습은 이 작품을 개인의 기억에서 보편적 서정으로 끌어올린다. 아이는 떨어지는 별을 세었지만 실은 사라져 가는 시간을 세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짧게 스친 빛은 수십 년 뒤 시인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나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문학은 없어진 것을 억지로 되살리는 기술이 아니다. 사라진 듯 보이는 것이 아직도 우리 안에서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구자관 시인의 별똥별은 유년의 하늘에서 떨어졌으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꺼지지 않았다. 그 빛은 사람을 섬기는 경영철학으로 이어지고, 작은 존재를 존중하는 시적 미의식으로 다시 피어난다.

“가난했지만 풍요로웠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추억 하나를 깊고 깊게 심어 주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작품 전체의 사유를 한곳에 모은다. 여기서 추억은 과거를 장식하는 액자가 아니다. 훗날 한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씨앗이다. 어린 시절 공동체에서 받은 온기가 성인이 된 뒤 타인의 어려움을 품는 힘으로 자라고, 멍석 위에서 배운 평등이 기업 안에서 사람을 같은 높이로 대하는 경영철학으로 이어진다.

구자관 시인의 시는 화려한 언어를 앞세우지 않는다. 작은 생활의 사물에 오래 묻어 있던 인간의 온기를 닦아 보여 준다. 그의 시적 미의식은 소박함의 미학이며, 배려의 미학이고, 사람을 가장 귀한 존재로 놓는 휴머니즘의 미학이다.

그는 시에서 고향의 마당을 펼치고, 삶에서는 기업이라는 더 넓은 마당을 연다. 시의 멍석 위에는 도라지꽃과 박꽃,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앉고, 경영의 마당에는 직함과 서열을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자리가 마련된다.

구자관 시인의 참된 아름다움은 시와 삶이 서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삶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에 시에서도 작은 존재가 빛난다. 기업에서 사원의 마음을 보살피기에 그의 시에는 낮은 곳의 체온이 살아 있다. 자신의 높이를 말하지 않기에 그의 언어는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한여름밤의 추억」 은 가난한 산골의 밤을 노래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구자관 시인의 인간적 초상이다. 쑥대 모깃불은 그의 따뜻한 배려이며, 넓은 마당은 사람을 품는 마음이고, 박꽃은 드러내지 않는 겸손이며, 어머니의 품은 사원을 보살피는 돌봄의 철학이다. 별똥별은 그가 사람들의 삶에 심어 주고 있는 희망의 불씨다.

한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경영은 이미 한 편의 시다. 이름 없는 존재의 삶을 귀하게 바라보는 시는 이미 세상을 선하게 운영하는 하나의 경영이다.

구자관 시인은 경영으로 사람의 오늘을 지키고, 문학으로 사람의 어제를 지킨다. 그 두 손이 만나 더 따뜻한 내일을 만든다.

그가 어린 날 바라본 박꽃은 지금도 시간의 헛간 지붕 위에서 환하다. 그 빛은 높은 곳을 비추기보다 낮은 곳에 먼저 내려앉는다. 사람이 있는 곳, 마음이 지친 곳, 다시 일어서야 할 누군가의 곁에 오래 머문다.

그것이 구자관 시인의 삶이며, 그의 시가 지닌 소중한 인간의 빛이다. ㅡ청람

시보다 먼저 사람의 향기를 만났습니다

― 구자관 시인께 드리는 글

구자관 시인님께.

아직 시인님을 직접 뵙는 인연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는 얼굴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이는 명함으로 먼저 오고, 어떤 이는 소문으로 먼저 오며, 참으로 깊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마음의 향기로 먼저 찾아옵니다.

저는 며칠 전,

구충모 기자를 통하여 시인님의 「한여름밤의 추억」을 접했습니다. 더불어 한 기업을 이끄시는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계시면서도 스스로를 사원들의 대표로 여기시며, 구성원들의 어려움을 세심히 살피고 따뜻하게 품어 오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두메산골의 달빛과 박꽃이 보였고, 두 번째에는 쑥대 모깃불 곁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더 오래 읽자 작품의 행간에서 시인님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작은 것을 작다고 여기지 않고,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의 숨결을 지나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를 소유와 지위로 헤아리지 않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시의 뿌리마다 깊이 내려 있었습니다.

「한여름밤의 추억」 은 유년의 풍경을 아름답게 복원한 회상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작품은 무엇이 참된 풍요인가를 되새기게 하는 한 편의 인간학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궁색하지 않았던 넓은 마당”이라는 구절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가난은 살림의 형편일 수 있으나 궁색함은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일 것입니다. 가진 것이 적어도 이웃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한 장의 멍석 위에 여러 사람의 웃음을 받아들이며, 어둠 속에서도 별 하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삶은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시인님께서 기억하시는 옛 마당은 물질로는 비어 있었으나 사람으로는 충만했습니다. 곳간은 넉넉하지 않았을지라도 인정은 넘쳤고, 전깃불은 희미했을지라도 서로의 얼굴을 밝혀 주는 마음의 등잔은 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큰 집과 더 밝은 불빛을 얻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함께 앉을 마당은 도리어 좁아졌습니다. 시인님의 시는 잃어버린 그 마당을 다시 펼쳐 보입니다. 독자에게 오래된 고향을 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일러 줍니다.

쑥대 모깃불은 작품 속에서 작고 따뜻한 심장으로 피어납니다. 매캐한 연기는 눈을 맵게 하면서도 사람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읍니다. 그 불 곁에서 낮 동안 구겨진 삶은 천천히 펴지고, “여름살이 다림질”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처럼 사람은 사람의 체온으로 마음의 주름을 다립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시인님의 경영철학을 함께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이끈다는 것은 숫자를 관리하고 성과를 높이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 사람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살피고, 말하지 못한 근심이 어느 마음속에서 깊어지고 있는지 헤아리며, 구성원이 다시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일이야말로 경영의 가장 인간적인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시인님께서는 그룹의 최고경영자이시면서도 자신을 사원 위에 놓기보다 사원들을 대신하여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대표로 여기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씀에서 저는 참된 지도자의 자세를 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많습니다. 그 높이를 낮은 곳을 더 멀리 살피는 전망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많은 권한을 가진 이는 많으나 그 권한을 어려운 사람의 무게를 덜어 주는 데 사용하는 이는 귀합니다.

시인님의 겸손은 자신의 성취를 작게 말하는 태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크게 세워 주는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시인님의 배려 또한 잠시 건네는 호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어려움 뒤에는 한 가정의 저녁과 자녀의 내일이 놓여 있음을 헤아리는 책임의 윤리일 것입니다.

회사에서 이름 없이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원을 귀하게 바라보는 눈과, 시 속에서 헛간 지붕 위의 박꽃을 발견하는 눈은 한 뿌리에서 자랍니다.

세상은 화려한 꽃과 높은 곳의 빛을 먼저 바라봅니다. 시인님께서는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야 순백의 얼굴을 여는 박꽃을 바라보십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 피었으나 달빛 하나를 온몸으로 받아 내는 그 꽃에서 눈부심을 발견하십니다.

그것은 문학적 감각에 앞서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작은 꽃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작은 목소리도 흘려듣지 않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의 수고를 알아보는 사람만이 이름 없는 꽃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님의 시에 등장하는 도라지꽃과 호박꽃, 박꽃, 아기의 선잠과 어머니의 품은 모두 작고 평범해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시인님의 언어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이것이 시인님 문학의 귀한 미덕이며, 삶과 경영을 관통하는 휴머니즘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시인님의 시에는 자신을 높이 세우는 언어가 없습니다. 유년의 마당과 가족, 이웃과 자연을 앞세우십니다. 자신은 별똥별을 헤아리던 한 아이의 자리에 머무르십니다. 이 겸허한 화자의 자세는 시인님의 삶의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참으로 큰 나무는 제 키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지친 이에게 그늘을 내어 줄 뿐입니다. 깊은 우물도 자신의 깊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두레박을 내릴 때 맑은 물로 응답할 뿐입니다.

제가 전해 들은 시인님의 삶 또한 그러했습니다.

사원의 어려움을 살피고 돕는 일을 특별한 공적으로 내세우지 않으시며, 자신은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담담한 말씀 안에는 어떤 화려한 경영 구호보다 깊은 사람 중심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만으로 오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구성원들의 신뢰와 존중, 서로의 삶을 함께 지켜 준다는 공동체적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시인님께서는 회사를 사람들의 노동이 거래되는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가정의 희망과 내일이 함께 자라는 삶의 마당으로 바라보시는 듯합니다.

「한여름밤의 추억」에 펼쳐진 넓은 마당이 오늘날 시인님의 경영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옛 마당의 멍석에는 어른과 아이, 이웃과 형제가 같은 높이로 앉았습니다. 시인님의 기업이라는 마당에서도 직함의 높이보다 한 사람의 존엄이 먼저 놓일 것입니다. 옛날의 쑥대 모깃불이 사람들을 둥글게 모았다면, 오늘의 시인님께서는 신뢰와 배려라는 불을 피워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자리에 모으고 계실 것입니다.

시인님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인정과 돌봄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유년의 마당에 심어진 추억이 세월을 건너 사람을 섬기는 경영철학으로 싹튼 셈입니다.

그리하여 시인님의 시는 한 사람의 지나간 여름밤을 노래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풍요는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넓게 사람을 품었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성공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로만 평가되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 주었는가에 따라 비로소 인간적 의미를 얻는다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구자관 시인님.

직접 뵙지 못한 제가 시 한 편과 전해 들은 말씀만으로 시인님의 삶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섣불리 한 사람의 생애를 단정하는 일 또한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한여름밤의 추억」 에 스민 정서와 구충모 기자를 통해 들은 시인님의 사람 사랑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시 속의 넓은 마당과 현실 속의 기업이 한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박꽃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원의 어려움을 살피는 시선이 서로를 비추었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풍요를 발견하는 마음과 성취 속에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 품성이 하나의 뿌리에서 피어났습니다.

시와 삶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문학인에게 가장 귀한 덕목일 것입니다.

좋은 시는 아름다운 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인이 살아온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언어의 뒷면을 받쳐 줄 때 비로소 오래 남는 울림을 얻습니다. 시인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기교로 만들어진 온도가 아니라, 사람을 소중히 여겨 오신 생애의 체온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평론을 쓰면서 작품을 해부하기보다, 작품 속에 깃든 한 사람의 마음 곁에 엎드려 귀를 대고자 합니다.

시인님의 시 앞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박꽃의 흰빛 아래에는 겸손이 있었고, 모깃불의 연기 속에는 공동체의 온기가 있었으며, 어머니의 품 안에는 돌봄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별똥별이 스쳐 간 자리에는 사람의 기억을 귀하게 간직하는 시인의 따뜻한 영혼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뵙지 못했으나 시인님의 시를 통해 먼저 인사드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훗날 직접 뵙게 된다면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의 높이보다 사람을 섬기는 마음의 깊이에 먼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시인으로서 이루신 문학적 성취보다 삶과 시를 하나의 인간적 진실로 이어 오신 그 품격에 깊은 존경을 올리고 싶습니다.

시인님의 기업이라는 넓은 마당에 신뢰와 상생의 꽃이 더욱 환하게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시인님의 문학에도 도라지꽃과 박꽃처럼 소박하면서 오래 빛나는 작품들이 풍성히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이의 마음을 먼저 살피시는 따뜻한 경영과, 잊힌 삶의 체온을 언어로 되살리시는 귀한 문학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선한 향기를 전하기를 바랍니다.

시인님의 앞날에 건강과 평안이 늘 함께하시고, 경영의 길과 문학의 길마다 사람을 살리는 밝은 별빛이 이어지기를 삼가 기원드립니다.

뵙지 못한 거리보다 시로 먼저 이어진 마음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2026, 8, 2

청람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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