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2026.08.03
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덥다, 하여 이불을 덮다

태양이

하늘의 화로를 뒤엎었다

길은 제 몸을 녹이며

신발 밑창에 달라붙고

매미는

나무의 속살까지 파고든 불을

울음으로 퍼 나른다

덥다

하여

나는 이불을 덮는다

더위를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의 불길이 너무 환하여

내 안의 그늘이 들킬까 두려워서다

사람에게는

햇빛으로도 데울 수 없는 방이 있다

누군가 떠난 뒤

문이 닫히지 않는 방

용서하지 못한 말들이

서리꽃으로 피고

끝내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가

한여름에도 입김을 내뿜는 방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불은 가장 작은 밤이며

한 사람이 세상에서 잠시 지워지는

부드러운 무덤이다

그곳에서는

직함도 체면도 벗어 놓고

상처가 상처의 이름으로

가난하게 누울 수 있다

세상은 뜨거울수록

사람을 차갑게 만든다

불볕 아래서

서로의 그늘을 빼앗고

살기 위해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한철 늦은 눈보라가 된다

덥다

하여

나는 더욱 깊이 이불을 덮는다

몸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직 내 안에 남은

작은 온기 하나가

세상의 폭염에 증발하지 않도록

두 손으로 밤을 끌어당긴다

생은 어쩌면

뜨거운 세상에서

얼어붙지 않는 일

차가운 마음을 품고도

타인을 태우지 않는 일

나는 이불 속에서

한 사람의 겨울을 껴안는다

새벽이 오면

덮었던 어둠을 가지런히 개어

누군가 추워하는 자리 위에

가만히 놓아둘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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