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업의 중심에 세우고, 추억을 시의 심장에 놓은 사람 ―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생애 · 공동체 경영 · 문학정신에 관한 고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을 기업의 중심에 세우고, 추억을 시의 심장에 놓은 사람 ―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생애 · 공동체 경영 · 문학정신에 관한 고찰 2026.08.03
□ 구자관 책임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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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업의 중심에 세우고, 추억을 시의 심장에 놓은 사람
―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생애 · 공동체 경영 · 문학정신에 관한 고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여는말
ㅡ높은 곳에 이르렀으나 끝내 낮은 곳의 체온을 잊지 않은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하는 일은 그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랐는지를 헤아리는 데 있지 않다. 그 높이에서 누구를 바라보았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누구의 삶을 일으키는 데 사용했는지, 성공의 열매를 어느 그릇에 나누어 담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기업인의 성취를 매출과 계열사의 수, 고용 규모로만 기록한다면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생애는 거대한 성공신화로 요약될 수 있다. 1968년 식당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작은 일에서 출발한 기업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시설관리, 생산 · 물류, 보안, 식음료, 복지서비스와 정보기술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2024년 기준 연결 매출은 약 2조 4천억 원, 계열사는 30여 개를 넘어섰고, 임직원 규모는 4만 명대에서 5만 명에 이르는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 숫자만으로는 이 기업과 창업자의 본질을 설명하기 어렵다.
구자관 대표의 진정한 성취는 회사를 크게 만든 데만 있지 않다. 사회가 하찮게 여기던 노동을 존엄한 직업으로 세우고, 이름 없이 일하는 사람에게 ‘선생님’과 ‘여사님’이라는 존칭을 돌려주며,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새긴 데 있다. 그는 자신을 회장이나 소유주보다 ‘책임대표사원’이라 불러 왔다. 권한은 구성원에게 맡기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뜻이 그 직함에 담겨 있다.
보통 직함은 사람을 높이는 의자다. 구자관에게 직함은 자신의 어깨에 더 많은 무게를 올려놓는 멜빵에 가깝다. 대표가 된다는 것은 맨 위에 앉는 일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의 생계를 등에 지는 일이라는 믿음이다.
그의 삶을 읽다 보면 기업가와 시인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기업에서는 사람의 오늘을 지키고, 시에서는 사람의 어제를 보존한다. 경영의 자리에서는 사원의 생활을 살피고, 시의 자리에서는 어린 날의 박꽃과 모깃불, 어머니의 품과 별똥별을 되살린다.
삶과 경영과 시가 한 뿌리에서 자라는 사람, 그 뿌리의 이름은 인간에 대한 경외다.
□ 가운뎃말
Ⅰ. 밑바닥이 삶의 교과서가 되다
― 청소의 현장에서 배운 인간 존엄의 문법
구자관 대표는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충분한 학업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구두닦이와 청소를 비롯한 여러 궂은일을 경험했다. 1963년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군 복무 뒤인 1968년 청소 일을 바탕으로 삼구아이앤씨의 전신을 창업했다.
그의 출발점에는 번듯한 사무실도, 투자자도, 세련된 사업계획서도 없었다. 누군가는 피하고 싶어 하던 화장실과 식당의 뒤편, 도시가 사용한 하루의 오염을 닦아 내는 자리가 그의 첫 경영 현장이었다.
그는 밑바닥에서 출발했다기보다 밑바닥을 닦으며 세상의 구조를 배운 사람이다.
청소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람들은 깨끗해진 공간은 보지만 그것을 닦은 손은 좀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환한 건물은 칭찬받지만 새벽부터 바닥을 쓸고 화장실을 닦은 사람의 이름은 남지 않는다. 구자관 대표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노동의 편에서 세상을 배웠다.
그에게 노동은 신분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표찰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행위였다. 건물을 청소하고 지키며, 기계를 관리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물류를 옮기는 사람은 기업의 주변부가 아니라 사회의 하루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이 체험은 훗날 그의 사람 중심 경영을 만든 원초적 토양이 되었다. 지하 작업장에서 빗자루와 걸레를 만들며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경험했고, 그 기억이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경영관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밝힌 바 있다. 본사에서는 대표와 중역의 공간을 줄이고, 청계천이 보이는 좋은 자리를 직원 휴게공간으로 내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공간 배치가 아니다.
사장실의 면적을 줄여 직원의 휴게실을 넓힌다는 것은 기업 안의 빛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상징적 선택이다. 권위의 방을 줄여 사람의 숨을 넓히는 경영이다. 높은 의자의 다리를 조금씩 깎아 구성원 모두가 같은 눈높이에서 회사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다.
구자관 대표는 가난과 노동을 성공담의 배경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그것을 오늘의 근로자를 이해하는 감각으로 보존했다. 슈퍼마켓을 찾아 밀가루와 라면, 달걀 가격을 살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물가를 알아야 직원들이 받은 급여로 어떻게 살아갈지 헤아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는 경제지표를 책상 위 숫자로 읽지 않고, 한 가정의 밥상에 놓인 달걀의 개수로 읽는 경영이다.
그에게 물가는 통계가 아니라 사원의 저녁이었다. 임금은 비용 항목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녀가 내일도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이어 주는 생활의 다리였다.
Ⅱ. 불길을 통과한 사람의 재기
― 상처를 흉터로만 남기지 않는 생의 의지
구자관 대표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청소용품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을 세웠으나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으며 경제적 위기까지 겪은 것으로 여러 자료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 위기 뒤에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수익성이 낮고 힘든 폐기물 처리 업무를 오랜 기간 감당하면서 부채를 갚고 기업을 다시 일으켰다.
불은 공장만 태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 온 꿈과 자신감, 앞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까지 검게 그을렸을 것이다.
전신 화상은 피부에만 남는 상처가 아니다. 삶의 모든 감각을 통증으로 바꾸어 놓는 재난이다. 빚까지 겹친 상황에서 다시 청소도구를 들고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낙관적인 성공담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불길에서 살아남은 뒤 불을 원망하는 데 생을 쓰지 않았다. 그 불을 자신을 더 단단하게 굽는 가마로 바꾸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삶은 부활이라는 말보다 재건이라는 말에 가깝다. 부활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기적처럼 들리지만, 재건은 무너진 벽돌을 한 장씩 다시 쌓는 노동이다. 구자관의 삶은 기적을 기다린 생애가 아니라, 기적이 올 자리를 자신의 노동으로 마련한 생애였다.
그가 위기의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던 힘은 신용과 신뢰였다. 삼구라는 이름은 사람 · 신용 · 신뢰를 갖춘다는 의미로 설명된다. 회사도 공식적으로 이 세 가지를 경영의 근본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신용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신뢰는 그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고 타인이 믿게 되는 시간의 축적이다. 사람은 그 두 가치가 존재할 이유다.
구자관 대표는 물건보다 사람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사업을 해 왔다. 생산설비보다 구성원의 태도와 숙련, 성실과 책임이 기업의 품질을 결정하는 업종이다. 그러한 기업에서 신뢰는 추상적인 표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대기업 고객사와 장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심, 대한항공, 신세계 등과 수십 년간 거래를 이어 온 사례가 보도되었으며, 현장의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서비스의 질과 고객 신뢰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성공은 속도의 승리가 아니다. 오래 약속을 지킨 사람이 시간에게서 받은 신임장이다.
Ⅲ. ‘책임대표사원’이라는 혁명적 직함
― 소유주의 왕관을 내려놓고 책임의 멜빵을 메다
구자관 대표가 스스로 사용하는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직함에는 그의 경영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대표이사나 회장은 기업의 위계를 떠올리게 한다. 책임대표사원은 자신도 사원 가운데 한 사람이며, 다만 더 큰 책임을 맡은 대표라는 뜻을 품는다. 그는 CEO를 학교에서 궂은일을 맡던 ‘소사’에 비유하며, 고객사와 함께 일하는 동료를 주인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아름다운 겸양의 수사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기업 권력에 대한 그의 실천적 재정의다.
권한은 위임하되 결과의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원칙, 사람을 채용했으면 그 역량을 믿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직함의 실질적 내용이다.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권한이 위에 머물고 책임이 아래로 떨어지기 쉽다. 구자관의 경영은 그 방향을 뒤집는다. 권한을 현장에 보내고 책임을 대표의 어깨로 끌어올린다.
그는 임직원을 ‘부하’라 부르지 않았다. 남성 구성원에게는 ‘선생님’, 여성 구성원에게는 ‘여사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도록 했다고 알려져 있다. 직장에서는 미화원이나 경비원일지라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존경받는 부모이며 한 사람의 귀한 생애라는 생각에서 나온 호칭문화였다.
언어는 조직의 보이지 않는 건축이다.
상대를 무엇이라 부르는가는 그를 어느 높이에 세우는가와 같다. ‘아줌마’, ‘아저씨’, ‘부하’라는 말이 사람의 생애를 직무의 작은 칸에 가둘 때, ‘선생님’, ‘여사님’이라는 호칭은 그 사람에게 사회적 존엄을 돌려준다.
구자관 대표는 기업문화를 거창한 선언문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매일 서로를 부르는 한마디에서부터 바꾸었다.
그가 현관 안내원이나 미화원을 만날 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다는 일화도 이 철학의 연장선에 놓인다.
허리를 숙이는 것은 몸으로 쓰는 문장이다.
말로 사람 중심을 외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몸을 낮춰 상대를 높이는 데에는 내면의 질서가 필요하다. 구자관에게 겸손은 자신을 못났다고 말하는 자기비하가 아니다. 상대의 존귀함을 인정하기 위해 자신의 높이를 조절할 줄 아는 인격의 기술이다.
Ⅳ. 회사를 공동체의 마당으로 바꾸다
― 지분 47퍼센트에 담긴 ‘함께의 소유’
구자관 대표의 공동체 경영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는 회사 지분 47퍼센트를 임직원들에게 나누어 준 일이다. 여러 언론과 대학의 공식 자료는 그가 가족이 보유하던 지분을 직원들에게 무상 양도했으며, 자녀에게 기업을 세습하기보다 재단과 장학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뜻을 밝혀 왔다고 전한다.
지분은 자본주의 기업에서 소유권의 언어다.
그 지분을 직원에게 나눈다는 것은 성과급을 한 번 지급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회사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바꾸는 일이다. 창업자가 씨앗을 뿌렸을 수 있으나 숲을 이룬 것은 수많은 구성원의 노동이라는 인정이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회사라고 말한 바 있다. 가족이나 친척을 경영진에 들이지 않고 공채 출신 사원들이 중역으로 성장하도록 했다는 설명도 전해진다.
이것은 기업을 혈연의 성곽으로 만들지 않고 능력과 신뢰의 광장으로 열어 놓으려는 선택이다.
많은 기업이 ‘가족 같은 회사’를 말한다. 때로 그 말은 직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수사로 변질된다. 구자관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방향이 보인다. 직원을 가족처럼 부르기 전에 가족이 누릴 수 있는 소유와 존중의 일부를 실제로 나누려 했다.
직원들이 위기 때 직접 경비복을 입고 청소도구를 들며 회사를 지켜 낸 경험이 지분 나눔의 계기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기업이 어려울 때 함께 버틴 사람을 위기가 끝난 뒤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기억이다.
구자관 대표는 성공의 열매를 창업자의 독점물로 만들기보다 위기의 겨울을 함께 견딘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자본을 피로 물려주는 대신 땀에 돌려주려 한 것이다.
이 경영관은 삼구아이앤씨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사람의 가치와 자리가 소중한 기업’, 구성원이 함께 마음과 생각을 나누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회사의 윤리규범에도 임직원의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고, 인재 육성과 자아실현을 지원하며, 원활한 의사소통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문화를 조성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그가 꿈꾼 기업은 거대한 배라기보다 넓은 마당에 가깝다.
배에서는 선장이 방향을 정하고 선원이 명령을 수행한다. 마당에서는 사람들이 같은 높이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구자관의 기업은 선장의 영웅담보다 구성원의 공동 서사를 지향한다.
Ⅴ.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는 삶
― 늦깎이 학생이 보여 준 겸허의 지성
구자관 대표의 생애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축은 배움이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던 그는 사업가로 성공한 뒤에도 학업의 꿈을 놓지 않았다. 2004년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만학도로 입학하여 60대 중반에 졸업했고, 이어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대학 측 자료에는 그가 학생들과 같은 복장과 태도로 학교생활을 했고, 졸업 뒤에도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지속적으로 기부한 사실이 소개되어 있다.
성공한 기업인이 대학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경력을 말하기 위해 강단에 서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하며 학생의 자리에 앉는 길이다.
구자관은 두 번째 길을 택했다.
60대에 시험을 치르고, 젊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낯선 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감당하는 일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사회에서 이미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일수록 ‘모른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는 성공의 외투를 벗고 학생의 교복을 입었다.
배움이란 지식을 더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자관의 만학은 학위 취득을 넘어, 인간은 생의 마지막 계절까지 자신을 고쳐 쓸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 준다.
2025년 전주대학교는 그에게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대학은 식당 청소에서 시작해 연매출 2조 4천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 성과, 사람 중심 경영, 지분의 직원 환원, 화상이라는 위기를 이겨 낸 자기계발과 사회공헌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그가 받은 박사학위의 진정한 논문은 종이에 쓰이지 않았다.
청소도구를 들었던 어린 날부터 책임대표사원으로 살아온 반세기, 실패와 화상을 견딘 시간, 사원의 이름을 존칭으로 부르고 기업의 지분을 나눈 선택, 늦은 나이에 책상 앞에 다시 앉은 자세가 한 권의 살아 있는 논문이다.
Ⅵ. 기업을 넘어 사회로 흐르는 책임
― 장학 · 공익 · 도산정신의 실천
구자관 대표는 기업의 책임을 고용과 납세, 사회공헌으로 넓게 이해해 왔다. 그는 기업과 국가를 동반자 관계로 보며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고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회사의 공식 윤리규범 역시 고용 창출, 성실한 조세 납부, 사회공헌을 기업의 사회적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그는 도산아카데미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도산 안창호의 애기애타 정신과 리더십을 사회에 확산하는 일에도 참여해 왔다. 도산아카데미는 지도자 포럼, 청년 독서토론, 다문화가정 지원과 멘토 활동 등 여러 공익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애기애타’는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정신은 구자관의 경영과 잘 맞물린다. 자신의 삶이 귀하다면 직원의 삶도 귀하며, 자신의 자녀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면 형편이 어려운 타인의 자녀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필요하다.
그는 자신처럼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며 장학재단 구상과 장학사업에 대한 꿈을 밝혀 왔다. 용인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에 장학금을 기부해 온 기록도 확인된다.
구자관의 나눔은 남은 것을 건네는 자선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아프게 잃었던 것을 다른 사람은 잃지 않도록 해 주려는 생애의 보상이다.
그에게 배움의 결핍은 오래된 상처였다. 그는 그 상처를 타인에게 보여 주는 훈장으로 만들지 않고, 다른 학생이 건너갈 수 있는 다리로 바꾸었다.
Ⅶ. 변화의 파도 앞에서도 사람을 놓지 않는 경영
― 전통적 아웃소싱에서 AI 시대의 기업으로
구자관 대표의 경영은 따뜻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시대 변화에 대한 감각과 결단력도 보여 왔다.
삼구아이앤씨는 청소에서 시작하여 시설관리, 생산도급, 물류, 식음료, 호텔관리, 복지서비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왔고, 최근에는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을 접목하기 위한 기업 인수와 사업 전환을 추진했다. 2025년에는 SK커뮤니케이션즈를 비롯한 정보 · 복지 관련 기업의 인수를 통해 AI와 디지털 기술을 위탁관리 사업에 결합하려는 전략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니다. 인력 중심 산업이 기술 변화 앞에서 맞게 될 한계를 인식하고, 미래의 일자리를 준비하려는 선택이다.
AI는 반복 업무를 대체하고, 로봇은 청소 · 경비 · 시설관리의 일부를 맡게 될 것이다. 구자관은 이 변화가 사람을 밀어내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새로운 업무와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사람 중심 경영은 기술을 거부하는 일이 아니다. 기술의 목적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기계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인간주의가 아니라, 기계로 얻은 효율이 사람의 더 나은 삶과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주의다.
구자관의 기업가 정신은 과거의 미담에 머물지 않는다. 어린 날 빗자루를 들었던 손으로 AI 시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만 그 문 너머에서도 사람의 자리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Ⅷ. 여든을 넘어 지켜 낸 동심
― 「한여름밤의 추억」과 기억의 윤리
ㅡ
두메산골 도라지꽃 피던 그날.
하이얀 달빛 아래
호박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저녁이면,
가난했지만 궁색하지 않았던
넓은 마당에는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쑥대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그 곁에는 멍석이 깔리면
동네 형아들은 모여
여름살이 다림질에 한창이었다.
한 여름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에도 짧은데
문득
헛간 지붕 위
달빛을 머금은 하얀 박꽃은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아닌 밤중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놀라
선잠 깬 아가는
엄마 품을 파고들 때
나는
여름밤 하늘을 후두둑 스쳐 내리는
별똥 별을 하나둘 헤아리곤 했다.
그 여름밤은
가난했지만 풍요로웠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추억 하나를 깊고 깊게 심어 주었다.
ㅡ 구자관 시인 시 「한여름밤의 추억」 전문
ㅡ
구자관 대표의 시 「한여름밤의 추억」 은 그의 기업가적 생애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일 수 있다. 거대한 기업을 이끄는 사람이 두메산골의 도라지꽃과 쑥대 모깃불, 하얀 박꽃과 별똥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실상 이 시야말로 그의 삶을 가장 깊은 곳에서 설명하는 내면의 자서전이다.
“가난했지만 궁색하지 않았던
넓은 마당”
이 구절은 그의 문학적 인식이자 경영철학의 압축이다.
가난과 궁색함은 같지 않다. 가난은 가진 물질이 적은 상태이지만, 궁색함은 타인에게 내어 줄 마음의 자리가 좁아진 상태다. 어린 날의 마당에는 물질이 많지 않았으나 이웃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있었다. 곳간은 작았으나 인정은 컸고, 장난감은 없었으나 별빛이 있었다.
구자관의 기업도 이 마당의 기억에서 멀지 않다.
회사는 수만 명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적 마당이다. 직원은 임금을 받기 위해 잠시 들르는 타인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함께 짓는 이웃이다. 옛 멍석 위에 형과 동생이 같은 높이로 앉았듯이, 기업에서도 직함을 넘어 인간의 존엄은 동등해야 한다.
시 속의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쑥대 모깃불”은 가난한 공동체의 작은 중심이다. 연기는 눈을 맵게 했지만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기를 쫓는 불이면서 하루 동안 몸에 달라붙은 고단함까지 태워 주는 생활의 화롯불이었다.
그 모깃불은 오늘날 구자관이 기업 안에서 피워 온 신뢰와 배려의 불씨를 닮았다.
사람들은 따뜻한 곳으로 모인다. 급여와 제도만으로 조직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는 어렵다.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믿음, 어려울 때 외면받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있어야 공동체가 된다.
“여름살이 다림질”이라는 표현도 각별하다.
낮 동안 구겨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멍석 위에서 펴진다. 사람은 다리미가 아니라 사람의 체온으로 구김을 편다. 구자관의 경영 역시 직원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생활의 주름을 헤아리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이처럼 시의 언어와 경영의 언어는 서로를 비춘다.
헛간 지붕 위의 하얀 박꽃은 구자관 시정신의 핵심적 상징이다. 박꽃은 낮의 화려함을 탐하지 않는다. 밤이 깊어질수록 달빛을 받아 흰 얼굴을 연다. 세상에서 주목받지 않는 곳에 피어 있으면서도 제 존재를 과장하지 않는다.
구자관 자신이 그 박꽃을 닮았다.
거대한 기업을 일구고도 자신을 책임대표사원이라 부르고, 성취의 공을 직원에게 돌리며, 안내원과 미화원에게 허리를 숙인다. 햇빛 속에서 자신의 색을 자랑하기보다 누군가의 어두운 밤 가까이에서 희게 피어나는 삶이다.
별똥별을 헤아리는 아이의 모습은 여든을 넘긴 시인의 내면에 아직 살아 있는 동심을 보여 준다.
동심은 철없음이 아니다. 세상을 아직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보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고 느끼며, 밤하늘을 스쳐 가는 빛 하나를 놓치지 않는 감각이다.
성공은 사람의 눈을 쉽게 무디게 한다. 숫자가 커질수록 작은 것을 보지 못하고, 직함이 높아질수록 낮은 자리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진다.
구자관은 여든을 넘어서도 어린 날의 박꽃을 기억한다. 그 기억이 살아 있기에 수만 명의 조직 속에서도 한 사람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의 동심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상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을 지키는 윤리다.
Ⅸ. 그의 시 정신과 경영철학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 작은 것을 작다고 여기지 않는 시선
구자관의 경영과 문학은 ‘작은 것을 작다고 여기지 않는 시선’에서 만난다.
기업의 현장에서 미화원 한 사람, 경비원 한 사람, 조리원과 물류직원 한 사람은 거대한 조직 속의 작은 숫자로 처리되기 쉽다. 구자관은 그 숫자마다 한 가정과 생애가 들어 있음을 본다.
시에서는 도라지꽃 한 송이, 쑥 연기 한 줄기, 선잠 깬 아기와 박꽃 한 송이가 한 시대의 정신을 담는 존재로 확장된다.
그는 현실에서는 이름 없는 노동자를 존중하고, 문학에서는 이름 없는 사물을 귀하게 호명한다.
이 두 행위는 본질적으로 같다.
존재를 배경으로 밀어내지 않고 중심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그의 시에는 거대한 산과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두메산골 마당과 헛간 지붕, 모깃불과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의 경영 담론에도 천재적 창업자의 독무대가 없다. 회사는 구성원들이 만들었고, 자신은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질 뿐이라는 고백이 놓인다.
이것이 구자관의 미학이자 윤리다.
자신을 중심에서 비켜 세워 다른 존재가 빛나게 하는 태도다.
좋은 시인은 언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한 걸음 물러서 사물과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사람이다. 좋은 경영자도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의 능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는 사람이다.
시의 여백과 경영의 위임은 서로 닮았다.
시에서 설명을 덜어낼수록 사물은 깊어지고, 경영에서 간섭을 덜어낼수록 사람의 책임과 창의가 자란다.
구자관의 시 정신과 경영철학이 맞물리는 자리에는 신뢰가 있다.
Ⅹ. 세계 기업인이 배울 수 있는 구자관 경영의 보편성
― 성장보다 존엄을 먼저 묻는 기업가정신
구자관 대표의 삶이 한국 기업의 한 성공사례에 그치지 않고 세계 기업인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까닭은 그의 경영이 특정 산업이나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노동하는 사람은 비용인가, 존엄한 동반자인가.
기술과 성장은 인간의 삶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가.
경영자의 권한은 특권인가, 더 큰 책임인가.
그는 이 질문에 이론보다 삶으로 답해 왔다.
직원을 존칭으로 부르고, 지분을 나누며, 가족 세습을 멀리하고, 어려운 학생의 배움을 지원하고, 대표의 방보다 직원의 휴게공간을 넓혔다. 기업의 성과를 자신의 능력보다 구성원의 공으로 돌렸고, ‘회장’보다 ‘책임대표사원’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러한 경영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ESG, 포용경영이라는 현대적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구자관은 그러한 용어가 널리 쓰이기 전부터 현장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아 왔다.
그의 경영에는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자본의 습관에 대한 깊은 반성이 담겨 있다.
기업이 사람의 시간을 구매할 수는 있어도 그의 존엄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 노동계약은 사람의 일부 업무를 약속하는 것이지, 그의 인격을 낮추어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다.
구자관은 청소노동을 직접 해 본 사람이기에 이 진실을 관념이 아닌 몸으로 안다.
세계의 기업이 기술 경쟁과 생산성 향상에 몰두할수록 그의 경영은 더 중요한 메시지를 갖는다. 미래 기업의 경쟁력은 가장 앞선 기술만이 아니라, 기술 변화 속에서도 사람을 버리지 않는 신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말한다.
기업의 크기는 매출로 측정할 수 있으나, 기업의 높이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로 결정된다.
□ 맺음말
사람의 마음에 회사를 세우고, 시간의 지붕 위에 박꽃을 피운 귀인
구자관 대표의 생애는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간 성공담만이 아니다. 정상에 이른 뒤에도 밑바닥의 기억을 버리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다.
가난으로 어린 나이에 노동의 현장에 섰고, 화장실과 식당을 청소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공장의 화재와 전신 화상, 부채와 경영 위기를 통과했다. 신용과 신뢰를 지키며 기업을 다시 세웠고, 수만 명의 구성원이 함께하는 종합 위탁관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도산경영상 등을 받았고, 여러 산업단체의 책임을 맡았으며, 만학과 장학사업, 도산아카데미 활동을 통해 배움과 사회적 책임을 이어 왔다.
그 모든 성취보다 더 깊은 곳에는 한 사람의 오래된 마음이 있다.
두메산골의 여름밤, 쑥대 모깃불 곁에 펼쳐진 멍석, 어머니의 품을 찾는 아기, 달빛을 머금은 박꽃, 하늘을 스쳐 가는 별똥별을 바라보던 아이의 마음이다.
구자관은 그 아이를 여든이 넘도록 잃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어린 날의 자신을 버린다.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고생했던 장소를 지우며, 낮은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잊는다.
구자관은 어린 날의 가난을 감추지 않았다. 그 기억을 경영의 뿌리로 삼았다. 가난했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 힘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그의 「한여름밤의 추억」에서 넓은 마당은 단순한 고향의 풍경이 아니다. 그가 평생 만들고자 한 기업공동체의 원형이다.
쑥대 모깃불은 사람을 한곳에 모으는 신뢰이며, 멍석은 모두가 같은 높이에 앉는 평등이고, 어머니의 품은 구성원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돌봄이다. 박꽃은 자신의 선행과 성취를 앞세우지 않는 겸허이며, 별똥별은 한 사람의 가슴에 심어 주고자 한 희망이다.
구자관의 회사와 시는 이렇듯 서로를 닮았다.
그는 경영으로 사람의 하루를 닦아 주고, 시로 시간의 먼지를 닦아 낸다. 기업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세상의 중심으로 데려오고, 문학에서는 사라져 가는 추억을 언어의 마당에 다시 앉힌다.
그를 이 시대의 귀인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많은 부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에게 모인 부와 권한, 경험과 명예를 사람에게 돌아가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귀한 사람은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다시 빛나도록 자신의 빛을 나누는 사람이다.
구자관 대표는 기업이라는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나는 존중받는 사람’이라는 작은 집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를 썼다. 그보다 더 깊은 시는 그의 삶 자체다.
한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경영, 노동자의 이름을 존칭으로 부른 언어, 소유를 구성원과 나눈 결단, 늦은 나이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은 겸손, 어린 날의 순수를 여든 너머까지 간직한 마음이 그의 생애를 한 편의 장시로 만든다.
시간의 헛간 지붕 위에 하얀 박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그 꽃은 자신을 위해 빛나지 않는다.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에게 아직 세상에는 따뜻함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피어 있다.
구자관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박꽃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을 기업의 중심에 세우고, 공동체를 가슴에 품으며, 성공의 정상에서도 어린 날의 별빛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경영철학과 시 정신은 한국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잊어 가는 세계 기업에 오래 남을 하나의 문장을 건넨다.
사람을 잃고 얻은 성장은 성공이 아니며,
사람을 살리며 함께 이룬 성장이야말로
기업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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