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로 국경을 지우고, 음악으로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예술가 ― 소프라노 김현정 교수의 삶의 가치철학과 음악세계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목소리로 국경을 지우고, 음악으로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예술가 ― 소프라노 김현정 교수의 삶의 가치철학과 음악세계 2026.08.03
□ 김현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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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국경을 지우고, 음악으로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예술가
― 소프라노 김현정 교수의 삶의 가치철학과 음악세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의 문명이 될 때
성악가의 목소리는 단순히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정확하게 이어 붙이는 악기가 아니다.
그 목소리 안에는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배움, 절제와 인내, 언어와 문화, 실패와 성취가 함께 울린다. 어떤 목소리는 귀에 머물고, 어떤 목소리는 가슴으로 내려가며, 드문 목소리는 한 시대의 미감을 바꾸어 놓는다.
소프라노 김현정 체칠리아의 음악은 세 번째 경우에 가깝다.
그의 노래는 소리의 화려함만으로 청중을 압도하지 않는다. 음 하나를 어떻게 태어나게 할 것인가, 언어의 자음과 모음이 인물의 감정 속에서 어떤 체온을 얻어야 하는가, 한 곡의 역사적 배경과 시적 정서를 오늘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 있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 피아노로 시작되었다.
네 살의 작은 손이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함께 익혔다. 열일곱 살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 살레르노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파르마 국립음악원에서 성악교수과를 이수했다. 아르페지오네 아카데미아에서는 성악을, 아르츠 아카데미아에서는 오페라 코치과를 졸업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유학 이력이 아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감각과 본능에 머물지 않고 학문과 기술, 언어와 해석의 집을 얻어 가는 과정이었다.
마에스트로 레나토 구엘피와 조지프 지아르디나를 사사하며 정통 벨칸토 발성을 체득한 그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의 언어적 결까지 노래하는 성악가로 자리 잡았다.
그에게 노래는 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의 인간을 오늘의 무대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Ⅱ. 벨칸토는 기교가 아니라 인간의 숨을 존중하는 철학이다
김현정 교수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벨칸토를 살펴야 한다.
벨칸토는 흔히 ‘아름다운 노래’로 번역된다. 이 말은 단순히 예쁜 음색이나 높은 음을 잘 내는 기술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유연한 호흡, 균형 잡힌 발성, 가사의 명료한 전달, 음과 음 사이를 잇는 섬세한 선율,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를 포함하는 종합적 미학이다.
김현정 교수에게 벨칸토는 목소리를 과시하는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숨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태도다.
한 음을 억지로 밀어 올리지 않고, 호흡이 스스로 꽃을 피우도록 기다린다. 높은 음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물의 감정이 가장 깊어진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빛으로 만든다.
그의 소리는 칼처럼 청중을 베기보다 비단처럼 감싸고, 폭풍처럼 몰아치기보다 강물처럼 흐른다.
이러한 발성은 오랜 훈련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벨칸토의 아름다움은 자유롭게 들리지만 그 자유 아래에는 엄격한 절제와 반복, 정확한 호흡과 신체의 통제가 놓여 있다.
좋은 목소리는 타고날 수 있다.
좋은 성악가는 자신의 재능을 매일 다시 훈련하는 사람이다.
김현정 교수의 음악세계는 이 점에서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자유는 방종에서 나오지 않고, 충분한 절제 뒤에 얻어진다. 아름다움은 우연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오랫동안 다듬어진 질서 속에서 태어난다.
그의 노래가 섬세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까닭은 감성과 훈련이 서로의 등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Ⅲ. 대중적 인기보다 작품의 진실을 먼저 선택하는 예술가
오늘의 예술계는 빠른 주목과 대중적 반응에 민감하다.
짧은 영상과 강렬한 장면, 즉각적인 감동과 화려한 기교가 쉽게 소비된다. 성악 역시 높은 음과 폭발적인 성량, 극적인 몸짓이 먼저 주목받을 수 있다.
김현정 교수는 대중적 인기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작품의 본질과 예술적 진정성을 먼저 선택해 왔다.
이 선택은 고집이 아니다.
예술가가 시대의 유행보다 작품의 생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그는 익숙한 레퍼토리만 반복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가곡과 프랑스 예술가곡, 영어권 예술가곡과 한국 예술가곡, 푸치니와 레스피기, 리스트와 토스티의 작품을 꾸준히 탐구하고 음반으로 남겼다.
새로운 언어와 작품을 익힌다는 것은 발음 몇 개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 언어가 태어난 문화와 감정, 역사와 시적 리듬을 몸 안으로 들여오는 일이다.
그가 여러 언어의 음악을 꾸준히 음반으로 남기는 태도에는 예술가의 성실성과 탐험정신이 함께 들어 있다.
김현정 교수에게 레퍼토리는 소유한 목록이 아니다.
아직 만나야 할 세계의 지도다.
한 곡을 부를 때마다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고, 한 언어를 익힐 때마다 인간의 감정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을 얻는다.
Ⅳ. 언어를 아는 성악가에서 언어를 살리는 해석자로
김현정 교수의 음악적 강점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에 대한 높은 이해다.
성악에서 언어는 선율 위에 얹힌 장식이 아니다. 언어 자체가 음악의 일부다. 자음은 리듬을 만들고, 모음은 음색을 열며, 단어의 강세는 감정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이탈리아어의 호흡 없이 부르면 멜로디는 남아도 인물의 피는 흐르지 않는다. 프랑스 가곡을 언어의 미세한 색채 없이 부르면 음정은 맞아도 시의 안개가 사라진다.
김현정 교수는 노래를 번역된 감정으로 부르지 않는다.
원어가 가진 결을 살려 작품의 본래 체온을 되찾는다.
그가 오페라 해설가와 번역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해 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노래할 뿐 아니라 작품과 관객 사이에 언어의 다리를 놓는다.
오페라 「타이스」, 「안드레아 셰니에」, 「레 빌리」, 「다빈치의 판타스틱 애니멀스」 등을 번역한 작업은 성악가의 부수적 활동으로 볼 수 없다.
작품을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 그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지적 노동이다.
번역은 단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한 문화의 심장을 다른 문화의 가슴에 옮겨 심는 일이다.
그의 음악세계는 이처럼 소리와 언어, 무대와 해석을 하나로 잇는다.
Ⅴ. 오페라 무대에서 축적된 인간 이해
김현정 교수는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카르멘」, 「가면무도회」, 「코지 판 투테」, 「라 보엠」, 「리골레토」, 「시뇨르 브루스키노」, 「미친 사람들의 섬」, 「전화」, 「라 트라비아타」 등 수십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오페라는 노래만 잘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한 인물의 사랑과 욕망, 질투와 절망, 희망과 몰락을 목소리와 몸, 표정과 침묵으로 살아 내야 한다.
성악가는 악보에 적힌 음을 부르지만, 그 음 사이에 적히지 않은 인간의 내면까지 해석해야 한다.
비올레타의 사랑을 부를 때에는 사랑의 황홀만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죽음의 그림자를 함께 품어야 한다. 미미의 노래에는 가난과 사랑, 젊음과 죽음이 한 호흡 안에서 교차한다.
오페라의 인물들은 선하거나 악한 한 가지 얼굴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고, 욕망하면서 후회하며, 웃는 순간에도 슬픔을 품는다.
김현정 교수는 수많은 배역을 통하여 인간을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오페라는 음악으로 쓴 인간학이다.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인물을 통과하며 단순한 음향을 넘어 인간의 복잡성을 품는 그릇이 되었다.
Ⅵ. 세계의 무대에서 확인된 예술적 깊이
김현정 교수는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성악콩쿠르와 로시니·도니제티 오페라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다.
유럽과 이탈리아, 러시아와 국내의 무대에서 오페라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볼쇼이 오페라 갈라와 움베르토 조르다노 갈라를 비롯해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 울란우데 내셔널 오케스트라, 슬로바키아 오케스트라, 함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 판테온 오케스트라, 나폴리 오케스트라, 코모 오케스트라, 베오그라드 내셔널 오케스트라, 베를린 챔버 오케스트라, 비엔나 왈츠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다.
오백여 회에 이르는 공연과 오페라 출연은 한 사람의 화려한 경력을 보여 주는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무대마다 다른 공간과 청중,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만나며 자신의 소리를 새롭게 조율해 온 시간이다.
성악가는 혼자 노래하지만 혼자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지휘자의 호흡과 오케스트라의 색채, 상대 배역의 감정과 극장의 울림을 함께 들어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능력보다 전체 음악 안에서 언제 앞으로 나아가고 언제 물러설지를 아는 판단이 중요하다.
김현정 교수의 음악은 독주적 자아를 과시하기보다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의 예술철학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과 자신을 절제하는 품격이 함께 있다.
Ⅶ. 니콜라 마르티누치와의 무대, 세계를 향한 재출발
귀국 이후 2010년 9월 30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세계적 드라마틱 테너 니콜라 마르티누치와의 듀오 콘서트는 김현정 교수의 예술적 역량을 국내 무대에 선명하게 보여 준 사건이었다.
세계적 성악가와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서로의 호흡과 표현, 음악적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그 무대 이후 김현정 교수는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기획자로서도 새롭고 창의적인 공연을 지속해 왔다.
그에게 귀국은 완성된 성악가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이 아니었다.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시작한 두 번째 출항이었다.
유럽에서 배운 전통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한국의 현실과 청중, 새로운 세대와 장르에 맞게 다시 번역하기 시작했다.
Ⅷ. 전통을 지키면서 장르의 벽을 넘는 창조성
김현정 교수는 정통 벨칸토 성악가이면서 크로스오버 그룹 CK크로스의 리더로 활동해 왔다.
전통과 크로스오버는 서로 반대되는 길처럼 보일 수 있다.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은 장르의 경계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은 고전의 규칙을 낡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김현정 교수는 두 극단 사이에서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전통을 충분히 익힌 사람이기에 전통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만이 먼 바람을 견디며 가지를 넓힐 수 있다.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을 쉽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언어와 리듬, 청중의 감각을 존중하며 새로운 만남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그는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만남을 통하여 성악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보여 준다.
CD 「Look Back」과 「Sentimental Cross」 등은 이러한 시도의 기록이다.
그의 크로스오버는 클래식의 옷을 벗어 버리는 일이 아니다.
클래식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창문을 여는 일이다.
Ⅸ. 재활용 악기로 만든 환경 오케스트라
음악이 사회적 책임을 입을 때
2016년 국제청소년창의음악축제에서 재활용 악기를 활용한 청소년 환경오케스트라를 기획하고 연주한 일은 김현정 교수의 음악철학을 잘 보여 준다.
버려진 물건이 악기가 되고, 폐기될 재료가 리듬과 선율을 얻었다.
이 공연은 단순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환경문제를 설교나 통계가 아니라 소리와 몸, 청소년의 참여로 전달한 예술적 실천이었다.
재활용 악기는 한 시대의 소비문명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버린 것들 안에도 다시 울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가 실패자와 낙오자라고 부른 사람 안에도 다시 음악이 시작될 빈 공간이 있다.
김현정 교수의 기획은 예술이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는 꽃이면서 시대의 상처를 바라보게 하는 창이어야 한다.
Ⅹ. 「엄마, 엄마, 우리 엄마」와 초절기교의 새로운 의미
작곡가 박영란의 「엄마, 엄마, 우리 엄마」는 국내 최초의 콜로라투라 성악가를 위한 초절기교용 연습곡으로 소개된다.
김현정 교수는 이 작품을 연주하며 또 한 번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초절기교는 흔히 성악가의 능력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의 연주에서 기교는 감정을 가리는 장식이 아니라 감정을 더 섬세하게 전달하는 언어가 된다.
‘어머니’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따뜻한 존재를 고도의 성악기교와 결합함으로써 기술과 정서가 서로 반대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기교는 감정을 억누르는 차가운 장치가 아니다.
감정이 무너지지 않고 더 멀리 전달되게 하는 정교한 다리다.
김현정 교수의 음악세계에서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향한다.
높은 음과 빠른 패시지는 청중을 놀라게 하기 위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소리로 확장하기 위한 도구다.
Ⅺ. 음반으로 남긴 세계의 음악지도
김현정 교수는 「와인과 매너」, 「체칠리아 김현정과 함께하는 세계의 음악기행」 1·2·3집, 「Arie Antiche Italiane」, 「Nightingale Songs」, 한국예술가곡집, 「Sentimental Cross」, 프랑스 예술가곡, 푸치니·레스피기·리스트 가곡, 토스티 가곡집, 영어 예술가곡 등 다양한 음반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 음반 목록은 한 성악가가 얼마나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했는지를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음악적 세계관이 국경과 언어의 벽을 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의 햇빛과 프랑스의 안개, 독일 낭만주의의 사유와 한국 예술가곡의 정한이 그의 목소리 안에서 서로 만난다.
그는 한 나라의 음악을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각 언어와 문화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방식임을 존중한다.
세계의 음악을 부른다는 것은 많은 나라의 곡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각 문화의 마음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이다.
김현정 교수의 음반 작업은 음악으로 제작한 세계지도다.
그 지도에는 국경선보다 사람의 감정이 먼저 그려져 있다.
Ⅻ. 한·이 수교 140주년과 문화외교의 무대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공연 「예언의 정점―Oracle’s Peak」은 김현정 교수의 국제축제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드러낸 무대다.
국가 간 수교를 기념하는 행사는 외교적 의전에 머물기 쉽다.
그는 한국과 이탈리아 예술의 협업을 통하여 정치적 기념일을 살아 있는 문화적 만남으로 바꾸었다.
문화외교의 핵심은 자신의 문화를 자랑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문화가 같은 무대에서 상대를 수정하고 넓히는 데 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전통과 한국의 감성, 유럽의 음악어법과 한국의 창조성이 한자리에서 만날 때 새로운 예술이 탄생한다.
김현정 교수는 공연을 통하여 국가와 국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호흡과 화음, 언어와 서로를 향한 존중으로 만들어진다.
ⅩⅢ. 교육자로서의 가치철학
제자의 목소리를 자기 복사본으로 만들지 않는다
현재 김현정 교수는 수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원대학교 벨칸토아트센터 관장과 강남오페라단장을 맡고 있다.
성악교육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스승이 자신의 발성과 취향을 제자에게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다.
좋은 교육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닮게 만들지 않는다.
제자 안에 이미 존재하는 고유한 음색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김현정 교수의 교육철학은 정통 벨칸토의 원리를 가르치되, 학생마다 다른 신체와 호흡, 성격과 음악적 감수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소리는 지문과 같다.
사람마다 다르며, 그 다름이 결함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성악교수의 역할은 제자의 목소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안에 갇혀 있던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가 밖으로 나올 길을 열어 주는 일이다.
그가 연주자와 오페라 코치, 번역가와 기획자로 축적한 경험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발성법 이상의 교육을 제공한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법, 작품을 해석하는 법, 언어를 존중하는 법, 동료와 협업하는 법, 예술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법까지 가르칠 수 있다.
ⅩⅣ. 김현정 교수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철학
그의 음악과 활동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첫째, 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벨칸토의 원칙을 충실히 계승하되 새로운 청중과 장르, 시대적 질문을 만나게 한다.
둘째, 기교는 인간을 향할 때 아름답다
높은 음과 섬세한 테크닉은 자기과시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작품의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셋째, 언어를 존중하는 것은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일이다
외국어 가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번역하며 각 문화의 미세한 정서를 살린다.
넷째, 예술은 사회와 무관한 장식이 아니다
환경과 청소년, 교육과 문화교류를 공연 속으로 끌어들여 음악이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다섯째, 예술가는 한 장르 안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성악가와 번역가, 해설가와 칼럼니스트, 기획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여섯째, 세계성은 국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한국적 감성과 유럽의 전통을 만나게 하여 더 넓은 예술언어를 만든다.
일곱째, 가르침은 자신의 소리를 복제하는 일이 아니다
제자마다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발견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ⅩⅤ. 김현정의 음악은 무엇을 향하는가
김현정 교수의 음악은 박수의 크기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의 노래는 작품의 진실과 인간의 내면,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과 다음 세대의 성장으로 향한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예술적 중심을 가볍게 바꾸지 않는다. 대중과 만나되 작품을 낮추지 않고, 전통을 지키되 청중에게 문을 닫지 않는다.
이 균형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예술적 자존과 소통의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의 음악은 높은 성벽 위의 클래식이 아니다.
전통의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오늘의 사람들과 나누는 예술이다.
무대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릴 때 한 시대의 작곡가와 시인, 한 인물의 사랑과 절망,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함께 살아난다.
그의 성대는 단순한 발성기관이 아니다.
시간과 국경을 건너는 작은 문이다.
ⅩⅥ. 맺음말
목소리는 사라져도 그 목소리가 연 세계는 남는다
공연은 끝나면 사라진다.
마지막 음이 극장의 천장으로 올라가고, 조명이 꺼지며, 청중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음반과 영상이 남아도 무대에서 태어난 순간의 호흡은 다시 완전히 재현되지 않는다.
성악은 사라짐을 운명으로 가진 예술이다.
그 짧은 사라짐 속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영원처럼 느끼게 한다.
김현정 교수는 수많은 무대와 오페라, 음반과 번역, 교육과 기획을 통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한 개인의 재능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언어를 한국의 청중에게 데려왔고, 한국의 예술적 감성을 세계의 무대와 만나게 했다. 버려진 물건을 환경오케스트라의 악기로 다시 태어나게 했고, 정통 벨칸토를 크로스오버와 창작음악, 청소년 교육과 국제문화교류로 확장했다.
그에게 예술은 유리 진열장 속의 보석이 아니다.
사람과 시대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비추는 살아 있는 빛이다.
김현정 교수의 삶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전통을 깊이 배운 사람만이 전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예술가만이 다른 문화와 만나도 자신을 잃지 않으며, 다른 문화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높은 음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한 음이 청중의 마음에 내려가 잊고 있던 감정을 흔들고, 다른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게 하는 순간 완성된다.
그의 삶의 가치철학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다.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목소리 안에 더 많은 세계를 품어라.”
김현정 교수는 자신의 소리를 크게 만드는 데만 몰두하지 않았다.
언어를 품고, 시대를 품으며, 다른 장르와 청소년, 환경과 세계의 문화를 자신의 예술 안으로 초대했다.
그의 목소리는 혼자 빛나는 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태어날 하늘을 넓혀 주는 별이다.
무대의 박수가 그친 뒤에도
그의 예술이 열어 놓은 문은 닫히지 않는다.
그 문을 지나
또 다른 젊은 성악가가 세계로 나아가고,
한 청중은 오페라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며,
서로 다른 문화는 음악이라는 공용어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소프라노 김현정 교수의 음악세계는
벨칸토의 전통 위에 세운 한 채의 성이 아니다.
수많은 언어와 장르,
사람과 시대가 서로 왕래하는
넓고 깊은 소리의 항구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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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현정 교수님께 드리는 글
교수님의 삶과 음악의 노정을 살펴보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세계를 품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네 살의 어린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시간부터, 선화예술중·고등학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함께 익히고, 열일곱의 나이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정통 벨칸토의 깊은 우물을 찾아 나선 날들까지, 교수님의 생애에는 예술을 향한 한결같은 열정과 자기 절제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살레르노와 파르마의 음악원, 여러 아카데미에서 이어진 학업은 단순한 유학의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언어와 역사, 기술과 철학을 입어 가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노래가 특별한 까닭은 아름다운 음색과 뛰어난 기교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가 지닌 고유한 결을 깊이 이해하고, 한 단어의 자음과 모음, 시어와 악구 안에 담긴 인물의 숨결까지 살려 내는 해석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노래를 부르시는 데 머물지 않고, 작품이 태어난 문화와 시대를 오늘의 청중에게 온전히 건네고 계십니다.
그러한 면에서 교수님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이기 전에 오래 다듬어진 번역의 다리라 여겨집니다.
한 나라의 언어와 정서를 다른 나라의 가슴에 옮겨 놓고, 오래전 작곡가와 시인이 남긴 마음을 오늘의 무대 위에 다시 숨 쉬게 하는 다리입니다.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과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오백여 회에 이르는 공연은 교수님의 예술적 역량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성취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이미 이룬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레퍼토리와 무대, 새로운 장르와 교육의 길을 끊임없이 열어 오셨다는 점입니다.
정통 벨칸토를 중심에 두면서도 크로스오버와 창작음악, 환경과 청소년을 결합한 공연에 도전하신 모습에서 저는 참된 예술가의 용기를 봅니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옛것을 유리 진열장 안에 보존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전통이 오늘의 사람과 만나 다시 생명을 얻도록 새로운 창문을 내는 일일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전통의 뿌리를 깊이 내리신 채 시대의 새로운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지를 넓혀 오셨습니다.
재활용 악기를 활용한 청소년 환경오케스트라와 CK크로스의 활동, 새로운 창작곡의 연주는 음악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 환경과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교수님의 예술세계에서는 기교도 인간을 향합니다.
높은 음은 성악가의 능력을 자랑하는 불꽃이 아니라, 언어로 다 말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더 멀리 보내는 날개가 됩니다. 빠른 패시지와 섬세한 장식음도 청중을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내면을 더욱 세밀하게 그리는 붓이 됩니다.
성악가와 번역가, 오페라 해설가와 칼럼니스트, 공연기획자와 교육자의 길을 함께 걸어오신 교수님의 모습도 깊은 존경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오페라 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해설하시는 일은 음악을 소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언어와 문화, 역사와 인간학의 차원에서 깊이 탐구해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번역은 단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한 문화의 심장을 다른 문화의 가슴에 무리 없이 옮겨 심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을 음악가의 귀와 학자의 눈, 예술가의 감성으로 수행해 오셨습니다.
교육자로서 제자들을 길러 내시는 모습에도 교수님의 가치철학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를 자신의 목소리와 닮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고유한 목소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정통 발성의 원칙을 가르치시면서도 사람마다 다른 음색과 신체, 성정과 감성을 존중하시며 각자의 목소리가 제 길을 찾도록 이끌고 계실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복사본이 아니라 스승을 통하여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사람입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 성악가들이 세계로 나아가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펼칠 때, 교수님의 음악은 무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숨결 속에서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현정 교수님.
교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단순한 재능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아름다움은 긴 수련과 절제, 낯선 언어와 문화에 대한 존중,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태어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성취를 넘어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할 때, 그의 음악은 개인의 재능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 됩니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혼자 높이 빛나는 별이 아닙니다.
여러 언어와 문화, 전통과 창조, 스승과 제자, 무대와 청중이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넓은 하늘입니다.
그 하늘 아래에서 이탈리아의 햇빛과 프랑스의 안개, 한국 예술가곡의 정한과 세계 여러 나라의 시정이 한 목소리 안에 머뭅니다.
한 곡의 마지막 음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그 음이 열어 놓은 사람의 마음과 문화의 길은 오래 남습니다.
교수님께서 지금까지 열어 오신 수많은 음악의 문을 통하여 더 많은 청중이 클래식의 깊은 아름다움을 만나고, 더 많은 젊은 예술가가 자신의 소리를 발견하며, 서로 다른 문화가 음악이라는 언어로 가까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도 교수님의 목소리가 사람의 내면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교수님의 교육과 기획이 우리 음악계에 새로운 길을 여는 넓은 창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의 무대에서 쌓아 오신 빛나는 성취와, 그 성취를 다음 세대와 사회에 돌려주시는 고귀한 예술정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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