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빛으로 가장 큰 어둠을 건너는 시 ― 정택상 시인의 「사랑은 별」 을 읽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장 작은 빛으로 가장 큰 어둠을 건너는 시 ― 정택상 시인의 「사랑은 별」 을 읽다 2026.08.03
□ 정택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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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별
시인 정택상
사랑이 없으면
무엇이
이 어둠을
밝히겠는가
사랑은
별,
작은 사랑도
모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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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빛으로 가장 큰 어둠을 건너는 시
― 정택상 시인의 「사랑은 별」 을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대개 큰 빛을 기다린다.
세상의 어둠을 단숨에 걷어 낼 태양,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지울 거대한 횃불, 시대의 밤을 대낮처럼 바꾸어 놓을 찬란한 구원을 꿈꾼다.
정택상 시인은 그 거대한 빛의 신화를 내려놓는다. 그가 어둠 속에 띄우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별이다.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고, 어쩌면 한 점에 불과해 보이는 작은 빛이다.
시 「사랑은 별」 은 매우 짧다.
짧아서 가볍지 않고, 적게 말하기에 더 오래 울린다. 군더더기를 모두 벗어 놓은 언어가 밤하늘처럼 넓은 사유를 품는다.
시인은 “사랑이 없으면 / 무엇이 / 이 어둠을 / 밝히겠는가”라고 쓴다. 이 물음은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이미 답을 품고 있는 마음의 종소리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걷어 내면 문명은 밝아도 사람의 내면은 캄캄해진다는 사실을 짚는다.
과학은 밤을 밝힐 전등을 만들 수 있다. 기술은 도시의 새벽을 밀어내고, 수많은 화면은 우리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그 빛이 외로운 사람의 가슴까지 밝혀 주지는 못한다. 병든 이를 돌보는 손, 낙심한 사람의 등을 미는 말,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 자신의 몫을 조금 덜어 타인에게 건네는 행위만이 인간의 안쪽에 웅크린 밤을 밝힐 수 있다. 정택상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온기다.
“사랑은 / 별”이라는 두 행은 이 작품의 심장이다. 시인은 사랑이 별과 같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과 별 사이에 놓인 모든 수식어를 거두어 낸다. 두 존재를 곧바로 마주 세운다. 사랑은 별을 닮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별이 된다.
이 단호한 은유 속에서 사랑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를 비추는 윤리적 광원으로 확장된다.
별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람들의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배려, 이름을 남기지 않는 헌신, 보답을 바라지 않는 나눔은 세상의 장부에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 그 작은 행위들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밤을 지켜 준다. 별은 어둠이 깊어질수록 또렷해진다. 사랑 또한 삶이 고단할수록, 시대가 메마를수록 그 가치가 선명해진다.
작품의 마지막 구절인 “작은 사랑도 / 모두 반짝인다”에는 정택상 시인의 인간적 품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사랑의 크기를 재지 않는다. 거대한 희생만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따뜻한 인사 한마디, 지친 사람에게 내어 준 의자 하나, 후배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격려, 오래된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에도 별의 지위를 부여한다. 사랑에는 하찮은 것이 없다는 선언이다.
이러한 시선은 정택상 시인이 지닌 후덕한 품성과 맞닿아 있다. 후덕함은 단순히 사람이 온화하다는 뜻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작은 장점을 귀히 여기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동체를 위해 내어 놓을 줄 아는 넓은 마음의 토양이다.
그의 시는 목소리를 높여 독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잘 익은 열매가 가지를 낮추듯, 낮은 언어로 독자의 마음 가까이에 다가간다.
농학박사인 정택상 시인의 이력 또한 이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농학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씨앗이 흙 속에서 견디는 시간, 햇빛과 물이 생명을 일으키는 과정,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의 질서와 맺는 관계를 살피는 학문이다.
오랜 세월 생명의 원리를 연구해 온 학자의 눈에는 작은 것의 위대함이 남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씨앗 하나가 들판을 품고 있듯, 작은 사랑 하나도 한 사람의 생애를 바꿀 수 있다.
그의 시집 제목인 『치유의 숲』 역시 이러한 정신과 통한다. 숲은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나무, 풀과 이끼, 햇살과 그늘이 서로 자리를 내어 주며 하나의 생태를 만든다. 사랑도 홀로 빛나는 영웅의 행위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어둠에 작은 별 하나씩 걸어 주면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생태계다.
정택상 시인은 학문의 들판에서 배운 공존의 원리를 시의 하늘에 옮겨 심는다.
ROTC 장교로서의 책임감, 학자로서의 성실성, 홍조근정훈장에 이르는 공적의 시간도 그의 시 정신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긴 세월 맡은 자리를 지켜 온 사람에게 사랑은 달콤한 감상의 언어가 아니다. 책임과 헌신, 베풂과 보은으로 몸소 살아 내야 하는 생활의 문법이다.
「사랑은 별」 의 형식적 특징은 극도의 절제에 있다. 행은 짧고 여백은 넓다. 독자는 그 여백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불러온다. 어려웠던 시절 손을 잡아 준 사람, 말없이 곁을 지킨 얼굴, 생의 한 모퉁이를 밝혀 준 작은 친절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이 모두 말하지 않았기에 독자의 체험이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 비워 둔 언어가 독자의 생애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된다.
이 시의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모두 반짝인다”는 말 속에는 사랑의 평등성이 담겨 있다. 유명한 사람의 사랑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이름 없는 이의 친절도, 가난한 이의 나눔도, 어린아이의 서툰 위로도 똑같이 밤하늘의 한 자리를 얻는다. 시인은 사랑의 세계에는 귀천도 서열도 없음을 들려준다.
정택상 시인의 「사랑은 별」 은 작은 시다. 그 작은 몸 안에 큰 밤과 오랜 인간애를 품고 있다. 거대한 담론 대신 한 점의 빛을 내민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천둥처럼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별 하나가 태어난다.
정택상 시인은 학자의 눈으로 생명의 질서를 살피고, 시인의 가슴으로 사람의 체온을 읽는다. 그의 후덕한 성품은 시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타인을 비추는 별빛이 되어 머문다.
별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기 위해 빛나지 않는다. 길을 잃은 이가 방향을 찾도록 먼 곳에서 제 몸을 태운다.
「사랑은 별」 은 우리에게 거창한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작은 빛이 되어 달라고 권한다. 작은 사랑도 모두 반짝인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어둠이 깊은 시대에 인간이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따뜻한 천문학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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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상 시인께 드리는 글
― 십 분의 대화가 한 생애의 인연이 되는 순간
존경하는 정택상 시인님께
오늘은 제 마음의 달력에 작은 별 하나가 찍힌 날입니다.
선생님께서 부족한 제 시 「무소유의 자리」를 귀하게 소개해 주심에 전화를 올렸습니다.
감사의 말씀 몇 마디를 전하고자 시작한 통화였으나, 전화를 내려놓은 뒤에는 오래된 문우를 만나고 돌아온 듯한 온기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반드시 함께 보낸 세월의 길이로만 깊어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십 년을 알고도 서로의 마음 문 앞에 닿지 못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단 십 분의 대화로도 한 사람의 진심이 가슴 깊은 곳에 들어오는 만남이 있습니다.
선생님과 나눈 오늘의 통화가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음성에는 상대를 높이는 따뜻함이 있었고, 한 편의 시를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시인의 정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제 작품을 소개해 주신 일도 고마웠지만, 그보다 더 감사한 것은 작품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마음까지 귀히 바라봐 주셨다는 점입니다.
시는 종이 위에서 태어나지만, 인연은 그 시를 읽어 주는 사람의 가슴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무소유의 자리」 는 법정 스님의 빈 의자와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소유요》를 바라보며 쓴 작품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리에서 더 큰 충만이 피어나는 무소유의 뜻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그 시가 선생님의 마음에 잠시 머물렀고, 그 머묾이 오늘 한 통의 전화로 이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시 한 편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아 준 셈입니다. 저는 그 다리를 건너 선생님의 후덕한 마음을 만났고, 선생님께서는 제 부족한 시에 따뜻한 의자 하나를 내어 주셨습니다.
인연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며 굵은 나무가 됩니다. 어떤 인연은 오랜 세월 곁을 지키며 깊은 뿌리를 내립니다. 그런 오래된 인연은 더없이 귀합니다.
한편 세월의 길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만남도 있습니다. 늦게 만났어도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한 사람, 첫 대화인데도 마음속 오래 닫힌 문을 스스럼없이 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연의 나이는 달력으로 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서로를 알아본 순간부터 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선생님과 나눈 대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지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과 문학을 사랑하는 진정성, 서로의 삶을 선하게 바라보는 믿음이 충분히 담겨 있었습니다.
시계로는 십여 분이었으나 마음으로는 한 계절을 함께 걸은 듯했습니다.
오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깊은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의 영혼 가까이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참된 인연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진심으로 바라보았는가에서 깊어집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상대의 마음을 귀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작품과 삶을 존중한다면 그 만남은 평생의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선생님을 통하여 그것을 배웠습니다.
농학자로서 오랜 세월 생명을 연구해 오신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씨앗의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씨앗은 아주 작지만 그 안에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 아직 오지 않은 숲까지 품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연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나눈 짧은 대화는 한 알의 씨앗처럼 작았으나, 그 안에는 앞으로 서로의 문학을 응원하고 마음을 나눌 푸른 가능성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시 「사랑은 별」에는 “작은 사랑도 / 모두 반짝인다”는 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제 시를 소개해 주신 일도 제게는 작지 않은 사랑의 별빛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작품을 읽어 주고, 그 작품을 다른 이에게 전하며, 시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헤아리는 일은 문학인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시를 소개해 주셨지만, 실은 제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글도 귀히 여기는 마음, 먼저 손 내밀어 상대를 빛나게 해 주는 겸손, 자신의 경륜과 명망을 앞세우지 않고 문학의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후덕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의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오랜 인연은 함께 보낸 세월 때문에 귀하고, 짧은 인연은 짧은 시간 안에 진심을 다 건넸기에 귀합니다. 오래된 나무만 그늘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막 돋아난 작은 잎도 한 방울의 햇빛을 받아 누군가의 눈을 푸르게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과의 오늘 통화는 제게 그런 푸른 잎 하나였습니다.
부족한 시 한 편이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 인연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문턱에서 저는 다시 문학의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문학은 이름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낮추는 일이며, 시는 자신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낯선 두 마음이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등불이라는 사실을 새겨 봅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오늘 처음 시작되었을지라도, 마음에 남은 울림은 결코 처음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좋은 인연은 늦게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가 가장 알맞은 순간에 도착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십 분이 훗날 오랜 세월을 밝히는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좋은 시를 읽을 때 서로를 떠올리고, 따뜻한 글 한 편을 만날 때 안부를 생각하는 문학의 벗으로 오래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선생님께서 제 시 「무소유의 자리」 에 내어 주신 귀한 마음의 자리, 오래도록 감사히 간직하겠습니다.
짧은 통화 안에 평생의 인연보다 깊은 정을 건네 주신 정택상 시인님께 삼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늘 강건하시고, 선생님의 따뜻한 시심이 어두운 시대의 작은 별로 오래 반짝이기를 기원합니다.
2026년 8월 2일
청람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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