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봉인된 기록 위에 다시 세우는 사유의 집 ― 장준하 명예 회복과 《사상계》 복간의 역사적 · 현재적 의미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봉인된 기록 위에 다시 세우는 사유의 집 ― 장준하 명예 회복과 《사상계》 복간의 역사적 · 현재적 의미 2026.08.04
봉인된 기록 위에 다시 세우는 사유의 집 ― 장준하 명예 회복과 《사상계》 복간의 역사적 · 현재적 의미

봉인된 기록 위에 다시 세우는 사유의 집

― 장준하 명예 회복과 《사상계》 복간의 역사적 · 현재적 의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들어가는 말

ㅡ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아직 설명되지 않은 현재다

역사는 달력의 뒤편으로 사라진 시간이 아니다. 충분히 밝혀지고, 정당하게 기록되고, 공동체의 언어로 설명될 때에야 비로소 과거가 된다. 설명되지 않은 죽음은 오래된 사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며, 봉인된 기록은 먼지 쌓인 문서가 아니라 현재의 신뢰를 갉아먹는 침묵의 칼날이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장준하 선생이 숨졌다. 공식적으로는 산악 사고에 따른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닫히지 않은 문으로 남아 있다. 이는 단지 ‘사고인가, 타살인가’를 가르는 하나의 의문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을 조사한 국가는 어떤 자료를 근거로 결론에 이르렀는가. 조사 과정은 충분했는가. 서로 어긋나는 증언과 물리적 정황은 어떻게 검토되었는가. 관련 기록은 왜 장기간 공개되지 않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완성된 문장이 아니다. 흩어진 증언을 모으고, 기록의 문을 열고, 서로 충돌하는 판단을 검증하며, 국가가 자신의 과거를 국민 앞에 설명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장준하 선생의 명예 회복은 한 사람의 이름에서 먼지를 털어내는 추모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자신의 기록을 대하는 자세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민주주의의 척추가 얼마나 곧게 서 있는지를 점검하는 공적 작업이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발행인이 추진하는 진상 규명과 기념사업, 《사상계》 복간은 바로 이 자리에서 의미를 얻는다.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사적으로 해명하려는 일이 아니다. 한 시대가 감추거나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역사를 다음 시대의 공론장에 다시 올려놓는 일이다. 가족의 슬픔을 국가의 기록 윤리로 확장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한 집안의 족보에서 꺼내 민주주의의 책상 위에 펼쳐놓는 작업이다.

이 논고는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을 임의로 단정하지 않는다. 확인된 기록과 제기된 문제를 구분하며, 왜 이 사건이 아직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장준하의 삶과 사상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어떤 기준을 남기는지, 복간되는 《사상계》가 그 기준을 어떤 언어로 계승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Ⅱ. 장준하, 한국 현대사가 요구한 지성의 형식

장준하 선생은 한 시대의 논객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사상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 사상에 자신의 생을 담보로 맡긴 사람이었다. 그의 문장은 책상 위에서만 태어나지 않았다. 감옥과 거리, 광복군의 행로와 언론의 지면, 독재권력에 맞선 정치적 실천 속에서 피와 체온을 얻었다.

그의 지성은 차가운 칼날을 지녔으나 사람을 베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부조리한 권력과 거짓된 질서를 향해 날을 세웠을 뿐,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폭력의 언어로 기울지 않았다. 단호하되 잔혹하지 않았고, 비판적이되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념을 인간의 머리 위에 올려놓지 않았다. 모든 사상과 제도와 권력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장준하의 사유를 관통한 질문은 단순했다.

이 사상은 인간을 살리는가.

이 권력은 국민의 자유를 넓히는가.

이 제도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가.

이 문장은 시대의 거짓을 밝히는가.

그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의 편과 상대편을 달리 재지 않았다. 다수의 환호가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았고, 권력이 정한 합법이 언제나 정의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생애로 증언했다. 장준하의 휴머니즘은 부드러운 인정주의가 아니었다.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와 맞서기 위해 자기 안락을 내어놓는 적극적 윤리였다.

어린 장호권이 기억한 아버지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삶으로 보여주었고, 설명보다 행동을 앞세웠다. 집 안에서는 온화한 아버지였으나 불의 앞에서는 얼굴빛이 달라졌다. 눈가가 떨리고 눈썹이 한일자로 곧게 당겨졌다는 기억은 한 인물의 성격을 넘어 장준하 정신의 압축된 초상이다.

그의 분노는 사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기준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공적 윤리의 떨림이었다. 개인적 불쾌감 때문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와 인간의 존엄이 짓밟힐 때 침묵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장준하의 삶은 지식인의 품격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가에 있지 않고, 자신이 아는 진실을 위해 무엇을 감당했는가에 있음을 보여준다.

Ⅲ. 약사봉의 죽음과 설명되지 않은 기록

1975년 8월 17일 약사봉에서 발생한 장준하 선생의 사망은 당시 수사기관에 의해 실족사로 처리되었다. 현장 조사와 검안이 진행되었고, 사건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사고사로 종결되었다. 문제는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이후 제기된 여러 정황과 의문을 충분히 설명했느냐는 데 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사고 지점은 가파른 암벽 구간이었고, 시신은 아래쪽에서 발견되었다. 추락 사고라면 통상 예상할 수 있는 광범위한 외상이나 여러 부위의 골절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소지품의 파손 상태, 귀 뒤쪽의 손상 흔적, 신체 일부의 자국과 멍에 관한 기록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정황 하나하나가 곧바로 특정한 사인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사건의 일부 기록만으로 확정적 결론을 내리는 일은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 핵심은 의문을 낳는 자료가 존재했음에도 초기 조사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졌는지, 서로 다른 가능성이 공정하게 검토되었는지에 있다.

사건 당시 유일한 직접 동행자로 알려진 김용환의 진술도 논란을 키웠다. 산행 경로와 추락 지점에 대한 설명이 조사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는 지적이 있었고, 현장을 명확히 재현하지 못했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사건의 중심 참고인 진술이 흔들릴 경우 수사기관은 더욱 치밀한 물증과 교차 검증으로 그 공백을 채워야 한다. 당시 조사가 그 책임을 충분히 수행했는지는 여전히 검토의 대상이다.

증언은 사람의 기억에 의존한다. 시간은 기억의 모서리를 닳게 하고, 두려움은 기억의 입을 닫게 하며, 이해관계는 기억의 방향을 비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의 증언만이 아니라 기록과 물증, 절차와 공개를 중시한다. 국가의 기록은 사람의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공동체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용환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직접 증언을 보완할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이제 사건 규명의 무게는 더욱 기록으로 옮겨갔다. 살아 있는 입이 닫힌 자리에 문서가 말해야 하며, 기억이 흐릿해진 자리에 국가의 자료가 불을 밝혀야 한다.

Ⅳ. 2012년 유골 검시와 갈라진 법의학적 판단

사건 발생 약 37년 뒤인 2012년, 묘소 이장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 대한 검시가 이루어졌다. 두개골에서 원형의 함몰 흔적이 확인되었고, 신체 다른 부위에서는 추락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다발성 골절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소견이 제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 법의학자는 외부 충격에 의해 사망한 뒤 추락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른 법의학적 견해에서는 추락에 의한 손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법의학계의 판단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의견이 엇갈렸다는 이유로 사건을 다시 서둘러 닫아서는 안 된다. 학문적 판단이 갈릴수록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되어야 하며, 감식 방법과 판단 근거도 투명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불확실성은 조사 종료의 구실이 아니라 더 정밀한 검증을 요구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장준하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전문가의 말이 절대적인 판결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각 의견이 어떤 자료와 방법론 위에서 제시되었는지, 반대 의견은 무엇을 근거로 삼았는지, 당시 현장 기록과 초기 검안 자료가 얼마나 보존되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과학은 닫힌 결론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과정이다. 민주주의 또한 완성된 구호가 아니라 공개와 검증을 반복하는 제도다. 법의학적 견해가 갈라졌다면 국가는 그 갈림길에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한쪽을 임의로 지워버리거나,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길 자체를 폐쇄해서는 안 된다.

Ⅴ. 봉인된 기록은 국가가 만든 두 번째 절벽이다

약사봉의 암벽보다 더 가파른 것은 기록의 벽일 수 있다. 사람의 몸이 한 번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면, 진실은 비공개의 절벽 아래로 다시 떨어질 수 있다. 기록이 오랫동안 닫혀 있고,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국민은 사건의 실체뿐 아니라 국가의 태도까지 의심하게 된다.

장준하 사망 사건과 관련된 자료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장기간 비공개 상태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비공개 자료의 정확한 범위, 지정 근거, 해제 가능성은 법률과 기록관리 원칙에 따라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국가안보와 개인의 사생활처럼 보호할 가치가 존재할 수는 있다. 그 보호가 역사적 진실과 국민의 알 권리를 무기한 밀어내는 만능 열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사건 당시 국가권력기관의 움직임과 관련된 여러 정황이 거론되어 온 만큼, 관련 기록의 공개 여부는 더욱 신중하고도 투명하게 다뤄져야 한다. 어떤 일정이 있었는지, 어떤 기관이 현장에 접근했는지, 당시 보고 체계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수사기관이 어떤 자료를 확보했는지 등을 확인하려면 기록의 문이 열려야 한다.

여기서 섣부른 정치적 추론은 경계해야 한다. 특정 일정이나 기관의 움직임만으로 곧바로 범죄 개입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기록이 존재한다면 국가가 공개 가능한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비공개가 필요한 경우 그 사유와 기한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국가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설명할 수 있는데 설명하지 않는 침묵은 의심을 증식시키는 행위가 된다. 비공개 결정의 근거조차 공개하지 않는다면 기록은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그늘 속에 유폐된다.

장준하 사건을 둘러싼 핵심은 ‘결론이 없는 사건’이라는 데만 있지 않다. 국민이 납득할 만큼 설명되지 않은 사건이라는 데 있다. 법적 절차가 종료되었다고 역사적 질문까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의 종결 처분은 하나의 행정적 마침표일 수 있으나, 그 마침표가 잘못 찍혔는지를 검토하는 일은 민주사회가 가진 교정의 권리다.

기록을 공개하는 일은 국가의 체면을 깎는 일이 아니다. 국가의 성숙을 증명하는 일이다.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하는 국가, 부족한 조사가 있었다면 보완하는 국가, 국민 앞에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는 국가라야 미래를 말할 자격을 얻는다.

Ⅵ. 아들이 아버지를 훔쳐본다는 것

‘아들이 아버지를 훔쳐보다’라는 표현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훔쳐본다는 것은 정면에서 명령을 듣는 일이 아니다. 말없이 살아가는 한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그 삶의 문법을 익히는 일이다.

장호권 발행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을 훔쳐보았다. 부드러운 얼굴, 많지 않은 말, 불의 앞에서 곧게 당겨지던 눈썹,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몸짓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아이는 아버지의 사상을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상은 먼저 표정으로 왔고, 침묵으로 왔으며, 가족보다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선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질문 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에게만 남겨진 슬픔이 아니었다. 국가가 설명해야 할 역사였고, 시민이 함께 읽어야 할 기록이었으며, 다음 세대가 다시 검증해야 할 민주주의의 숙제였다.

장호권 발행인이 추진하는 진상 규명은 아버지를 영웅으로 신격화하기 위한 작업이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그 핵심도 숭배보다 검증에 놓여 있다. 그는 사인을 미리 정해놓고 국가에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닫힌 기록을 열고 판단의 근거를 다시 살펴보자고 요구한다.

명예 회복은 훈장을 하나 더 다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씌워진 왜곡을 걷어내고, 그가 왜 싸웠으며 무엇을 남겼는지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정당하게 배치하는 일이다. 장준하의 명예는 그를 흠 없는 성인으로 만드는 데서 회복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죽음을 사실에 근거해 투명하게 검토하고, 국가가 다하지 못한 설명 책임을 수행할 때 회복된다.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만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나라의 얼굴을 되찾으려 한다. 장호권의 발걸음이 개인적 효심을 넘어 공적 실천으로 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Ⅶ. 《사상계》는 잡지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 기관이었다

장준하 정신의 가장 분명한 집은 《사상계》였다. 《사상계》는 글을 모아 제본한 정기간행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이 국민의 입을 막던 시대에 문장이 숨을 쉬던 광장이었으며, 지식인이 자신의 책임을 시험받던 공론장이었다.

잡지는 종이로 만들어지지만 사상지는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글을 싣느냐보다 어떤 침묵을 거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주장하느냐보다 어떤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인기 있는 견해를 좇느냐,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사상지의 운명이 갈린다.

장준하가 이끈 《사상계》는 자유와 민주주의, 민족의 자주성과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놓았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대의 병든 부위를 짚었으며, 지식인이 안락한 관찰자로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 글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했고, 사상은 현실의 고통을 통과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 살지 않는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문장과 영상과 주장이 쏟아진다. 말의 양은 폭발했으나 사유의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사실보다 진영이 먼저 선택되고, 논증보다 분노가 먼저 유통되며,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제거하려는 언어가 공론장을 뒤덮는다.

사상이 없는 시대가 아니다. 사상을 감당할 윤리가 빈곤한 시대다. 각자의 주장은 선명한데 그 주장으로 상처받는 인간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자유를 말하면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허용하며,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반대 의견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큰 확성기가 아니다. 말의 속도를 늦추고, 사실을 검증하며, 인간을 진영보다 앞세우는 사유의 기준이다. 《사상계》 복간이 필요한 이유도 이 지점에서 선명해진다.

Ⅷ. 복간은 과거의 표지를 복제하는 일이 아니다

《사상계》의 복간은 옛 잡지의 제호를 다시 인쇄하는 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장준하의 얼굴을 표지에 올리고 그의 문장을 반복 인용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계승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이름을 빌려 현재의 권위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계승이 아니라 소비다.

진정한 복간은 장준하가 자신의 시대에 했던 일을 오늘의 조건 속에서 새롭게 수행하는 일이다. 그가 독재권력에 질문했다면 오늘의 《사상계》는 정치권력뿐 아니라 자본권력, 플랫폼권력, 언론권력, 기술권력, 집단적 혐오와 진영의 독점적 언어에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준하가 민족과 자유를 고민했다면 오늘의 《사상계》는 분단과 평화, 인공지능과 인간 존엄, 기후위기와 생태 정의, 고령화와 돌봄, 청년의 좌절, 지역 소멸, 노동의 변화, 언론의 신뢰 붕괴, 불평등의 세습을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복간 《사상계》가 지켜야 할 첫째 원칙은 독립성이다. 특정 정당이나 진영의 기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권력의 말을 반복하기 쉬우며, 후원에 기대면 후원자의 침묵까지 떠맡을 수 있다. 재정과 편집의 독립을 제도적으로 분리하고, 편집권을 투명하게 보장해야 한다.

둘째 원칙은 검증이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다루는 일에서도 사실과 의혹, 증언과 추정, 확인된 기록과 해석을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이 과장과 단정의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을 위해 싸우는 매체일수록 자신의 주장부터 가장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셋째 원칙은 인간 중심성이다. 《사상계》는 사상을 다루되 사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거대한 담론 아래 가려진 노동자와 농민, 소상공인, 청년과 노인, 장애인과 이주민, 이름 없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면의 중심으로 불러와야 한다.

넷째 원칙은 논쟁의 품격이다. 서로 다른 관점을 한 지면에 세우고, 반론과 재반론의 문을 열어야 한다. 편집진이 동의하는 글만 모아놓은 잡지는 사상지가 아니라 합창단의 악보가 되기 쉽다. 사상계라는 이름에 합당하려면 불편한 견해도 근거와 품격을 갖춘 경우 공론장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원칙은 행동하는 지성이다. 글이 현실과 단절된 지적 장식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문제를 진단한 뒤 제도적 대안과 시민적 실천의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장준하의 지성은 관찰자의 언어가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의 언어였다.

계간지에서 격월간으로 발행 주기를 넓히고, 각 분야의 편집위원들이 함께하는 일은 기대를 품게 한다. 발행 횟수가 많아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밀도다. 편집위원의 수가 많은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지성이 권력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다.

장호권 발행인과 장원 편집인, 여러 분야에서 뜻을 모은 편집위원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한 권의 잡지가 아니라 장준하라는 이름 이후에 놓일 새로운 문장의 윤리다.

Ⅸ. 장준하를 기념하는 것과 닮아가는 것

위대한 인물을 기념하는 일은 쉽다. 사진을 걸고, 기념사를 낭독하고, 생애를 연표로 정리하면 된다. 그 인물을 닮아가는 일은 어렵다. 권력의 유혹을 거절해야 하고, 자기편의 잘못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준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가 지지하는 권력의 부정에도 침묵하지 않는가.

나는 상대 진영의 인간적 존엄을 인정하는가.

나는 확인되지 않은 말을 정의의 이름으로 유포하지 않는가.

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타인의 말할 권리를 빼앗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장준하를 이용하고 있는가, 그의 기준을 감당하고 있는가.

장준하의 정신은 동상 안에 들어가 편안히 잠들 수 없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판단 속에서 계속 불편해야 한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어느 진영이 우세하든 다수의 횡포를 감시하며, 언론이 시장과 정치에 포획될 때 문장의 독립을 요구해야 한다.

그를 기리는 가장 정직한 방식은 장준하를 신화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가 지녔던 기준으로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일이다. 장준하를 높이 올려다보느라 그의 발자국을 밟지 않는다면 기념은 아름다운 회피가 된다.

장호권 발행인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훔쳐보며 배운 것도 위인의 화려한 업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순간마다 지켜야 할 선, 불의 앞에서 피하지 않는 눈빛,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자세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장준하를 훔쳐볼 차례다. 그의 얼굴을 훔쳐보는 데 머물지 말고, 그가 시대를 바라보던 눈을 배워야 한다. 그의 문장을 암송하기보다 그 문장이 요구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Ⅹ. 명예 회복은 국가와 시민이 함께 쓰는 문장이다

장준하 선생의 명예 회복은 사망 원인에 관한 하나의 결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실 규명의 절차, 기록의 공개, 조사기관의 책임, 교육과 기념의 방식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관련 기록의 목록부터 투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어떤 기관이 어떤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지, 공개된 자료와 비공개 자료는 무엇인지, 비공개의 법적 근거와 해제 시점은 언제인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독립적인 전문가 검토도 요구된다. 법의학, 수사학, 기록학, 현대사, 법률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료를 교차 검증하되 정치적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아야 한다. 조사위원의 구성과 절차, 이해관계 충돌 여부도 공개되어야 한다.

증언 자료의 체계적 보존 또한 시급하다. 사건 관계자와 당시 수사 · 보도 · 의료 관계자의 증언을 가능한 범위에서 수집하고, 진술 간 차이를 숨기지 않은 채 기록해야 한다. 증언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도 역사의 중요한 자료다.

기념사업 역시 한 인물을 영웅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준하의 광복군 활동, 언론 활동, 민주화운동, 정치적 실천을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그가 고뇌했던 민족과 자유, 통일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오늘의 청년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상계》는 이 모든 작업을 연결하는 살아 있는 기록기관이 될 수 있다. 진상 규명의 진행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고, 서로 다른 전문가의 견해를 싣고, 자료 공개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며, 장준하 정신을 오늘의 사회문제와 접속시킬 수 있다.

명예 회복은 과거에 내려진 판결문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다. 공동체가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읽고, 잘못된 침묵을 수정하며,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그것은 국가가 쓰는 문장이면서 시민이 함께 교정하는 문장이다.

Ⅺ. 맺는말

ㅡ 진실은 봉인된 문서 속에만 있지 않고, 그것을 여는 태도 속에 있다

장준하 선생의 약사봉 사망 사건은 아직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외부 충격 가능성을 제기했고, 다른 견해에서는 실족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증언은 일치하지 않았고, 초기 수사의 충분성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관련 기록의 비공개 문제는 사건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질문으로 붙들어 두고 있다.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성급한 단정이 아니다. 더 넓은 공개, 더 엄밀한 검증, 더 정직한 설명이다. 사고사라는 결론이 옳다면 그 결론을 떠받치는 자료가 국민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 가능성 역시 공정한 절차 안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진실은 누군가의 확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대되는 자료와 견해까지 견디며 검증을 통과할 때 공적 진실이 된다. 국가의 권위는 비밀을 오래 지키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국민이 요구하는 질문 앞에 자신의 기록을 내놓을 수 있을 때 생긴다.

장호권 발행인의 진상 규명 노력과 《사상계》 복간은 이 점에서 깊은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려는 아들의 길은 어느새 한국 민주주의의 기록을 바로 세우는 길과 맞닿았다. 아들이 어린 시절 훔쳐보았던 아버지의 등은 이제 한 시대가 건너야 할 다리가 되었다.

《사상계》는 과거의 영광을 진열하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대의 상처에 손을 대고, 권력의 언어를 검증하며, 진영의 소음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살아 있는 사유의 집이 되어야 한다. 빠른 판단보다 깊은 성찰을 택하고, 선동보다 검증을 앞세우며, 편 가르기보다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장준하 선생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권력과 양심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현재의 기준이다. 그의 삶은 지성의 높이가 얼마나 멀리 내다보았는가보다 얼마나 낮은 곳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는가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약사봉의 그날은 아직 완전히 말해지지 않았다. 말해지지 않은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봉인된 문서의 가장자리에서, 남겨진 사람의 가슴에서, 정의를 갈망하는 시대의 입술에서 계속 자신을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 아니다.

공개다.

필요한 것은 추측의 증폭이 아니다.

검증이다.

필요한 것은 한 인물을 높이 세우는 동상이 아니다.

그가 지켰던 기준을 오늘의 삶 속에 세우는 일이다.

장준하의 명예 회복은 한 사람의 이름을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양심을 복원하고, 언론의 책임을 복원하며, 지식인의 용기를 복원하는 일이다. 《사상계》의 복간 또한 낡은 제호 하나를 되살리는 출판사업이 아니다. 잃어버린 사유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역사적 실천이다.

장호권 발행인과 장원 편집인, 복간을 위해 뜻을 모은 모든 편집위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종이와 잉크만이 아니다. 말하지 못한 역사의 입술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민주주의의 문장이다.

부디 새롭게 태어나는 《사상계》가 어느 편의 북소리보다 시대의 양심을 깨우는 맑은 종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권력이 문을 닫을 때 기록의 창을 열고, 세상이 편을 가를 때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며, 모두가 쉬운 침묵을 선택할 때 가장 어렵고도 필요한 말을 적어 내려가기를 바란다.

그때 장준하의 정신은 기념관의 유리벽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한 아들이 오래도록 훔쳐보았던 아버지의 눈빛은

새로운 《사상계》의 활자마다 살아날 것이며,

봉인된 역사의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곧은 문장이 될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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