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길러낸 사람, 사람을 살리는 숲이 되다 ― 김종수 선생의 자연수행과 실천궁행, 참부모 교육론과 홍익생명사상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산이 길러낸 사람, 사람을 살리는 숲이 되다 ― 김종수 선생의 자연수행과 실천궁행, 참부모 교육론과 홍익생명사상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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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길러낸 사람, 사람을 살리는 숲이 되다
― 김종수 선생의 자연수행과 실천궁행, 참부모 교육론과 홍익생명사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종수 선생의 삶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생애가 아니다. 자연을 가장 큰 스승으로 모시고, 그 가르침을 몸과 생활로 번역해온 실천의 역사다. 전남 보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상경한 뒤 생활의 여러 고비를 통과했다.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와 격투기로 몸을 단련했으며, 이후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산사와 깊은 산중에서 수행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강원도 부연동 가마골에서 약 3년 동안 문명의 편의를 최소화한 채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경험은 그의 생명관과 교육관을 형성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자연에서 배운 철학은 자녀교육으로 이어졌다. 두 아들을 획일적인 제도권 교육의 틀에만 맡기지 않고 홈스쿨링과 자연 체험을 통해 길렀으며, 늦게 얻은 막내딸 또한 어린 시절부터 산과 맨발로 교감하도록 이끌었다. 막내딸은 서너 살 무렵부터 북한산을 맨발로 오르기 시작해 중학교 1학년이 된 현재까지 약 천 차례에 이르는 산행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수 선생은 현재 북한산 기슭 송추계곡에서 자연 발효식품을 연구·개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활동은 식품 제조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보는 생활문화를 나누며, 치유·상생·홍익인간의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데 뜻을 둔다.
본고는 김종수 선생의 삶을 ‘자연을 스승으로 삼은 생명관’, ‘몸을 통한 수행’, ‘시련을 건너온 효의 정신’, ‘자연 중심의 자녀교육’, ‘발효에 담긴 기다림의 철학’, ‘실천궁행의 스승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그의 삶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적 구호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몸과 가정과 사회 속에 되살리려는 실천적 생명사상임을 밝히고자 한다.
Ⅰ. 들어가는 말
― 자연은 그에게 풍경이 아니라 경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을 찾아간다.
도시의 소음에 지치면 산에 오르고, 마음이 답답하면 바다를 바라본다. 자연은 잠시 머물다 돌아오는 휴식처가 되고, 사진 속에 담아오는 아름다운 배경이 된다. 사람은 자연에서 위로를 받으면서도 다시 도시의 속도와 욕망 속으로 돌아간다.
김종수 선생에게 자연은 그런 방문지가 아니다.
그에게 산은 관광지가 아니라 스승이며, 계곡은 물이 흐르는 지형이 아니라 생명의 문법을 가르치는 교실이다. 나무는 말없이 서 있는 식물이 아니라 기다림과 내어줌을 가르치는 철학자다. 흙은 발아래 밟히는 물질이 아니라 몸의 오만을 낮추고 인간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오래된 경전이다.
그는 자연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듯 계절을 넘겼고, 문장을 외우듯 산길의 굴곡을 몸에 새겼다. 바람의 방향에서 절제의 뜻을 배우고,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에서 순환의 이치를 익혔다. 겨울나무가 잎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비움이 결핍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위한 준비임을 받아들였다.
자연은 그에게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몸으로 답하게 했다.
추위 앞에서는 체온을 지키는 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고, 배고픔 앞에서는 욕망과 필요를 구별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는 눈보다 귀를 열어야 했으며, 고독 속에서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소리를 견뎌야 했다.
김종수 선생의 삶은 자연을 찬양하는 말의 생애가 아니다. 자연이 요구하는 질서를 몸으로 감당해온 시간이다.
그의 철학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돌에 부딪힌 발과 추위에 굳은 손, 홀어머니를 모시며 감내한 생활의 무게, 자녀와 함께 걸은 산길, 발효 항아리 앞에서 기다린 수많은 날이 그의 사상을 빚었다.
Ⅱ. 보성의 흙에서 시작된 생명의 감각
― 어린 날의 자연이 한 사람의 뿌리가 되다
전남 보성은 차밭의 초록으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다. 산과 들, 바람과 햇빛이 사람의 일상 가까이에 머무는 곳이다. 김종수 선생의 어린 시절은 그 자연 속에서 시작되었다.
유년기에 만난 자연은 한 사람의 내면에 가장 오래 남는 모국어가 된다.
어린아이는 나무를 식물학적 개념으로 배우지 않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보고, 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맞으며, 열매의 단맛과 껍질의 거친 감촉으로 나무를 기억한다. 흙도 지질학의 대상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무릎에 묻는 냄새로 먼저 받아들인다.
김종수의 자연관 또한 어린 시절의 감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보성의 들과 산은 그에게 말보다 앞선 가르침을 주었다. 생명은 서두른다고 자라지 않으며, 뿌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가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은 매 계절 보여주었다.
봄은 씨앗이 땅속에서 견딘 겨울의 결과였다. 여름의 푸름은 뿌리가 어둠 속에서 감당한 노동의 얼굴이었다. 가을의 열매는 홀로 익은 것이 아니라 햇빛과 비, 흙과 바람이 함께 만든 공동의 작품이었다.
이러한 자연의 경험은 훗날 그의 상생사상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생명은 없다. 한 그루의 나무조차 흙과 햇빛, 벌레와 미생물, 구름과 바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 역시 독립된 섬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숨 쉬는 존재다.
김종수 선생이 강조하는 홍익과 상생은 관념적인 도덕률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보아온 생명의 실제 모습이다.
Ⅲ. 어머니를 모시고 건넌 도시의 겨울
― 효는 사상이 아니라 어깨에 지는 삶이었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상경했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일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익숙한 산과 들, 사람과 생활의 질서를 뒤로한 채 낯선 경쟁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는 일이다.
도시는 그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은 청년에게 도시는 거대한 문이었다. 그 문에는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고, 열기 위해서는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생활은 매일 새로운 문제를 내놓았으며, 젊은 날의 어깨에는 자신의 생존뿐 아니라 홀어머니의 삶까지 함께 놓였다.
그에게 효는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하루를 걱정하는 일이었고, 자신의 피로를 뒤로 미룬 채 생활을 견디는 일이었다. 밥 한 끼와 잠자리, 치료와 안부를 책임지는 구체적인 노동이었다.
효는 입술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을 떼어 부모의 시간을 지켜드릴 때 비로소 삶이 된다. 김종수 선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고난을 통과하며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웠다.
이 경험은 그의 후일 교육관과 치유관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뜻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손과 시간, 노동을 내어놓는 일이다. 그의 삶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수행이며, 효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행하는 최초의 홍익이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거대한 이상도 한 사람의 어머니를 귀하게 모시는 데서 시작한다. 가까운 생명을 외면한 채 먼 인류를 말하는 사상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김종수 선생의 홍익정신은 홀어머니의 삶을 자신의 어깨에 모신 자리에서 이미 싹을 틔웠다.
Ⅳ. 몸이라는 첫 번째 도량
― 테니스와 격투기로 익힌 절제의 문법
김종수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와 격투기를 통해 몸을 단련했다.
몸을 단련한다는 것은 근육을 키우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 안의 게으름과 두려움, 과도한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다.
테니스는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대와 호흡하는 운동이다. 힘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 공의 속도와 방향을 읽고,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며, 다음 움직임을 준비해야 한다. 순간의 판단과 긴 호흡, 공격과 방어의 균형이 필요하다.
격투기 또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로만 이해해서는 그 본질에 닿기 어렵다.
진정한 수련은 상대를 이기는 데 앞서 자기 안의 공포와 분노를 다스리는 데 있다. 몸에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알아야 하고, 앞으로 나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별해야 한다. 절제되지 않은 힘은 폭력이 되지만, 다스려진 힘은 자신과 타인을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그에게 몸은 최초의 도량이었다.
사찰의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운동장과 수련장에서 호흡을 배우고 중심을 세웠다. 땀은 몸이 써 내려간 수행일지였으며, 반복되는 훈련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공부였다.
많은 사람은 옳은 것을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다. 머리가 이해한 것을 몸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수 선생은 몸을 통해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힘을 길렀다. 이러한 신체적 수련은 훗날 산중생활과 자녀교육, 자연 발효 연구를 오래 지속하게 한 내적 기반이 되었다.
Ⅴ. 오대산에서 배운 침묵의 높이
― 월정사와 산사가 열어준 내면의 길
그는 한동안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산사에서 수행의 시간을 보냈다.
오대산은 사람의 목소리보다 나무와 물의 언어가 먼저 들리는 곳이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들은 위로 높이 솟아 있으면서도 서로의 하늘을 지나치게 빼앗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곧게 서되 숲이라는 더 큰 생명을 함께 이룬다.
산사는 세상을 버리는 장소가 아니다.
세상에서 묻혀온 소음을 씻고, 자신이 무엇을 좇으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자리다. 종소리는 산을 깨우기보다 사람의 잠든 내면을 흔든다. 목탁은 바깥의 악귀를 쫓는 도구가 아니라 흐트러지는 마음을 한 점으로 모으는 나무의 심장이다.
김종수 선생에게 산중 수행은 신비한 경지를 얻기 위한 장식적 이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과 욕망을 살피고,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가진 것을 줄이고, 필요한 것과 욕심을 가려내며, 침묵 속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사람은 소유한 것이 줄어들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 단둘이 남는다.
그때 나타나는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다시 세상의 소음으로 도망가게 된다. 수행은 그 고요를 피해가지 않고 통과하는 일이다.
그는 산에서 침묵이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침묵 안에는 바람과 새소리, 물의 흐름과 자기 심장의 박동이 가득했다. 말이 줄어든 만큼 생명의 작은 소리가 커졌다.
그가 자연을 스승이라 부르는 까닭은 자연이 정답을 설명해주어서가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곁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Ⅵ. 하늘 아래 첫 동네, 부연동 가마골의 삼 년
― 불을 줄이고 생명의 불씨를 찾다
김종수 선생의 삶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강원도 부연동 가마골에서 보낸 약 3년의 시간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깊은 산골에서 그는 문명의 편의를 최소화하고 자연과 마주했다. 불빛과 난방, 도시의 익숙한 설비에 기대지 않은 채 계절을 온몸으로 견뎠다.
불 없이 산다는 것은 단지 추위를 견디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편의에 기대어 살아가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밤이 오면 어둠을 받아들여야 했고, 겨울이 오면 추위를 피하기보다 몸의 지혜를 일깨워야 했다. 먹을거리와 잠자리, 물과 체온의 모든 문제가 생존의 본질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시간은 시계로 흐르지 않았다.
해가 뜨면 아침이 왔고, 새가 둥지로 돌아가면 저녁이 되었다. 달의 모양과 바람의 냄새가 계절의 달력이었다. 도시는 시간을 숫자로 잘게 나누지만 산은 시간을 생명의 변화로 보여준다.
가마골의 삼 년은 세상을 피해 숨어든 도피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무엇이 생존에 필요하며 무엇이 욕망이 만든 짐인지를 가려내는 극한의 공부였다. 그는 자연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시험했다.
산은 그에게 감상문을 요구하지 않았다.
추우면 견뎌야 했고, 배고프면 절제해야 했으며, 외로우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해야 했다. 자연은 말로 가르치지 않고 결과로 가르쳤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허락을 받아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임을 체득했을 것이다.
문명이 꺼진 자리에서 생명의 불씨는 더 선명해졌다.
Ⅶ. 자녀를 자연에 맡긴 참부모의 용기
― 가르치기보다 함께 살아 보이는 교육
김종수 선생의 자연철학은 개인적인 수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녀교육으로 이어졌다.
그는 두 아들을 획일적인 제도권 교육에만 맡기지 않고 홈스쿨링과 자연 체험을 중심으로 길렀다. 이는 학교교육 자체를 부정한 선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아이마다 다른 속도와 재능을 존중하고, 지식의 양보다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려는 교육적 결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교육은 아이들에게 같은 시간표를 나누어준다.
같은 나이에 같은 내용을 배우고, 같은 시험지 위에서 서로 다른 생명을 한 줄로 세운다. 아이의 질문보다 정답이 앞서며, 호기심보다 성적표가 더 큰 목소리를 낸다.
김종수 선생은 아이를 완성해야 할 제품으로 보지 않았다.
아이 안에는 이미 자기만의 씨앗이 있다고 믿었다. 부모의 역할은 씨앗을 억지로 잡아당겨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씨앗에 맞는 흙과 햇빛, 물과 기다림을 내어주는 데 있다고 보았다.
홈스쿨링은 부모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부모가 먼저 공부해야 하며, 아이의 하루를 함께 살아야 한다.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전에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김종수 선생은 자녀에게 자연을 설명하는 대신 자연 속에서 함께 살도록 했다. 산을 책으로 가르치지 않고 산길을 걸었으며, 생명을 도표로 설명하지 않고 흙과 바람, 물과 나무를 직접 만나게 했다.
이것이 그의 실천궁행 교육이다.
말로 훈계하기보다 몸으로 먼저 행하고, 아이가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게 하는 교육이다.
참부모는 자녀의 앞길에서 모든 돌을 치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돌을 만났을 때 넘어지지 않는 발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마음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Ⅷ. 맨발로 북한산을 읽은 막내딸
― 천 번의 산행이 써 내려간 살아 있는 교과서
늦게 얻은 막내딸은 김종수 선생의 자연교육 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존재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막내딸은 서너 살 무렵부터 맨발로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약 천 차례에 이르는 산행을 이어왔다.
천 번의 산행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두 번의 산행은 특별한 체험이 될 수 있다. 천 번에 가까운 산행은 생활이며 습관이고, 몸에 새겨진 또 하나의 언어다.
아이의 발은 흙의 온도를 기억했을 것이다. 비 온 뒤의 부드러운 땅과 겨울의 단단한 흙, 마른 솔잎과 차가운 돌의 차이를 책보다 먼저 배웠을 것이다. 계절은 교과서의 네 단원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읽는 생명의 변화가 되었을 것이다.
맨발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마지막 벽을 걷어낸다.
신발을 신은 발은 땅을 밟지만, 맨발은 땅의 표정을 읽는다. 조심하지 않으면 돌에 찔리고, 중심을 잃으면 미끄러진다. 발은 눈보다 먼저 길의 위험을 감지하고, 몸 전체에 균형을 명령한다.
다만 맨발 산행은 지형과 기후,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상처나 감염 등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권할 방식은 아니다. 김종수 가족의 경험은 오랜 적응과 보호자의 세심한 관찰 속에서 이루어진 개별적 교육 사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맨발 자체가 아니다.
자녀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존중하며 교감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이는 산을 정복하는 법보다 산의 허락을 구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정상에 빨리 오르는 것보다 자신의 호흡을 듣고, 약한 생명을 밟지 않으며,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몸으로 익혔을 것이다.
천 번의 산행은 천 번의 시험이었다.
시험지는 없었고 등수도 없었다. 산은 아이에게 매번 다른 질문을 내놓았다.
오늘의 몸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힘이 들 때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함께 걷는 사람의 속도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막내딸은 답을 글자로 쓰지 않고 발걸음으로 제출했다.
Ⅸ. 송추계곡에서 익어가는 생명의 시간
― 발효식품 연구와 기다림의 철학
김종수 선생은 현재 북한산 기슭 송추계곡에서 자연 발효식품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발효는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은 재료를 고르고 환경을 마련할 뿐, 실제 변화는 미생물과 시간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발효는 흐트러지고, 방치하면 부패로 기울 수 있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 청결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발효에는 자연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압축되어 있다.
인간은 주인이 아니라 조력자다. 생명의 변화를 명령할 수 없으며, 다만 변화가 바르게 일어날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다.
김종수 선생이 발효식품을 연구하는 일은 그의 생애와 맞닿아 있다.
그 자신도 긴 시간의 발효를 거쳐온 사람이다. 보성의 자연, 도시의 고난, 어머니를 모신 세월, 운동을 통한 단련, 오대산과 가마골의 수행, 자녀와 함께한 교육의 시간이 그의 내면에서 천천히 익었다.
고난은 그를 썩게 하지 않고 깊게 만들었다. 고독은 그를 메마르게 하지 않고 안으로 향하게 했다. 기다림은 그의 시간을 늦춘 것이 아니라 향기를 더했다.
발효는 시간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빠르게 완성하려 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믿고 기다린다. 오늘의 사회는 모든 결과를 즉시 요구하지만 생명은 명령으로 익지 않는다.
아이도 그러하다.
관계도 그러하다.
사람의 내면도 그러하다.
김종수 선생의 발효 연구에는 이러한 기다림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가 개발하는 식품은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발효식품은 균형 잡힌 식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으나, 특정 질환의 치료나 회복을 보장하는 것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의 활동이 지닌 본질적 의미는 자연의 원리를 존중하는 식생활과 자기 돌봄의 문화를 나누는 데 있다.
그는 항아리 속에서 음식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연의 시간을 다시 신뢰하도록 돕는다.
Ⅹ. 치유·상생·홍익의 생활철학
―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의 새로운 번역
홍익인간은 흔히 거대한 국가이념으로 불린다.
김종수 선생의 삶에서 홍익은 높은 단상 위의 구호가 아니다.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건강한 생활의 지혜를 주변과 나누는 작은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치유는 한 사람의 몸만 고치는 일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잇는 일이다. 몸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피며, 자신의 호흡과 생활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다.
상생 또한 추상적인 미덕이 아니다.
발효가 다양한 미생물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듯 인간사회도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갈 때 건강해진다는 믿음이다. 누구 하나를 제거하여 얻는 번영이 아니라, 각자의 생명이 제자리를 얻는 공동의 성장이다.
김종수 선생의 홍익은 ‘멀리’보다 ‘가까이’에서 시작한다.
홀어머니를 모신 삶에서 시작해 자녀를 자연 속에서 기른 교육으로 이어지고, 건강한 생활문화를 이웃과 나누는 활동으로 확장된다.
그는 세상을 구하겠다고 큰소리치기보다 자신의 생활을 먼저 바꾸었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연 속의 불편을 견뎠고, 교육을 논하기 전에 자녀와 산길을 걸었으며, 건강을 말하기 전에 몸을 단련하고 식생활을 연구했다.
이것이 실천궁행이다.
알고 있는 것을 직접 행하고, 말한 것을 삶으로 증명하는 태도다. 생각이 발까지 내려오지 못하면 철학은 장식이 된다. 김종수 선생의 사상은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다.
Ⅺ. 참부모에서 참스승으로
― 자신의 삶을 교재로 내어놓은 사람
스승은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실제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참스승이다. 말과 행동 사이의 거리가 짧고, 제자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신이 먼저 감당하는 사람이다.
김종수 선생은 자연을 사랑하라고 말하기 전에 자연에서 살았다. 몸을 단련하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몸을 오랫동안 훈련했다. 인내를 가르치기 전에 산중의 추위와 고독을 견뎠다. 자녀에게 산을 오르게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산의 사람이 되었다.
이 점에서 그는 참부모다.
자녀에게 좋은 조건만을 마련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려 한 부모다. 자녀의 성취를 자신의 명예로 삼지 않고, 아이가 자기 고유의 길을 발견하도록 기다려준 부모다.
그는 부모의 권위를 명령에서 찾지 않았다.
함께 걷는 데서 찾았다. 아이에게 산을 오르라고 말한 뒤 아래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돌길을 걸었다. 교육은 앞에서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곁에서 걸으며 속도를 맞추는 일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부모됨은 사회적 스승의 자리로 확장된다.
사람들에게 건강과 자연을 말하면서 자신의 생활은 소비와 편의에 맡기는 사람이 아니다. 삶 전체를 하나의 실험실로 삼고, 검증되지 않은 과장을 경계하며, 자연의 원리를 일상에서 구현하려 애쓴다.
참스승은 자신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안의 자연과 스승을 만나도록 길을 내어준다.
Ⅻ. 김종수 생명사상의 핵심
― 산처럼 서고, 물처럼 살며, 발효처럼 기다리다
김종수 선생의 삶의 철학은 세 가지 자연의 이미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산이다.
산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비와 눈,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자기 자리를 지킨다. 김종수 선생의 생애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의 고난을 견딘 산의 인내가 있다. 몸을 단련하고 수행을 지속한 중심의 힘이 있다.
둘째는 물이다.
물은 높은 곳을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단단한 바위를 한 번에 깨뜨리지 않지만 오랜 시간 지나며 길을 만든다. 그의 치유와 상생의 철학은 사람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생활의 물길을 마련하는 데 있다.
셋째는 발효다.
발효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의 협력을 믿으며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그의 자녀교육과 인간관에도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이 놓여 있다. 사람을 정해진 틀에 넣기보다 각자의 생명이 익어갈 시간을 존중한다.
산은 그의 중심이고,
물은 그의 관계이며,
발효는 그의 시간이다.
이 세 가지가 만나 김종수 선생의 생명사상을 이룬다.
ⅩⅢ. 맺음말
― 그는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이 아니라 자연을 사람에게 데려온 사람이다
김종수 선생의 삶을 단순히 자연인이나 수행자의 생애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는 자연 속에 머문 사람인 동시에 자연에서 배운 것을 가정과 교육, 식생활과 사회적 나눔으로 옮긴 실천가다.
보성의 자연에서 생명의 언어를 처음 배웠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책임의 무게를 익혔다. 테니스와 격투기로 몸을 단련하며 절제의 문법을 익혔고, 오대산과 월정사에서 침묵의 깊이를 배웠다. 부연동 가마골의 삼 년은 문명의 겉옷을 벗고 생명의 맨몸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의 수행은 산에서 끝나지 않았다.
두 아들의 교육으로 내려왔고, 막내딸과 함께한 천 번에 가까운 북한산 산행으로 이어졌다. 송추계곡의 발효 항아리 속에서 다시 익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고 있다.
그는 자녀에게 자연을 설명하지 않았다.
자연과 함께 살게 했다.
그는 홍익을 외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를 기르며, 사람들의 건강한 생활을 돕는 가까운 자리에서 홍익을 행했다.
그는 스승의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먼저 교재로 내어놓았다.
김종수 선생에게 자연은 세상에서 달아나기 위한 은신처가 아니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큰 학교다. 산은 그에게 높아지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많은 생명을 품을 만큼 깊어지라고 가르쳤다.
나무는 그에게 이름을 남기라고 하지 않았다. 지친 사람이 쉬어갈 그늘을 남기라고 했다.
발효는 빨리 성공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익을 때까지 정성을 다해 기다리라고 했다.
김종수 선생은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이 아니다.
자연이 잊힌 시대에 자연의 가르침을 인간의 생활 속으로 다시 데려온 사람이다.
한 발은 산의 흙에 딛고,
한 손은 자녀의 손을 잡으며,
한 마음은 아픈 이웃을 향해 열어둔 사람이다.
그의 삶에는 거창한 간판이 없다.
오래 걸은 발이 있고,
어머니를 모신 어깨가 있으며,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른 숨이 있고,
익어가는 항아리를 기다리는 손이 있다.
그 발과 어깨와 숨과 손이 한 문장을 이룬다.
배운 것을 행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살리는 삶.
그것이 김종수 선생이 몸으로 써 내려가는 실천궁행의 경전이며, 참부모의 교육학이고, 이 시대 참스승이 보여주는 품섬의 미학이다.
그는 오늘도 북한산 기슭에서 도를 닦는다.
도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한 사람의 건강한 하루로 익혀내며,
사람을 자연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잠든 자연을
다시 깨어나게 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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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말씀을 삶으로 옮겨 쓰신 김종수 선생님께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아침이 된 지금도 마음에서 오래 떠나지 않습니다.
밤은 깊어졌으나 말씀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오랜 산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맑은 숨과, 삶의 모서리에 수없이 몸을 부딪쳐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단단한 온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선생님께서는 자연을 이야기하셨으나, 실은 사람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산과 나무, 물과 흙을 말씀하셨으나, 그 안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가르침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자연은 잠시 찾아가 마음을 달래는 휴식처가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두고 배우는 큰 학교였으며, 욕망을 덜어내고 생명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스승이었습니다.
보성의 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갖은 어려움을 견디신 이야기를 들으며 한 사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느꼈습니다. 뿌리는 땅속에 있어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까닭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흙을 붙들고 있는 뿌리의 힘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삶을 지탱한 뿌리에는 어머니를 향한 효심과 생활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은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효를 입으로 말하기보다 어깨로 감당하셨고, 사랑을 감정으로 표현하기보다 삶의 무게로 받아내셨습니다. 그 세월이 오늘의 선생님을 산처럼 깊고 넉넉한 분으로 빚어놓았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와 격투기로 몸을 단련하셨다는 말씀에서도 선생님의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몸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힘을 자랑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게으름과 두려움을 다스리고,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훈련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몸을 하나의 도량으로 삼으셨습니다. 땀을 경전처럼 읽고, 반복되는 수련 속에서 절제와 인내의 문장을 익히셨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발과 손이 직접 행하게 만드는 공부를 오래 해오신 것입니다.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산사에서 수도하신 이야기,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부연동 가마골에서 약 삼 년 동안 문명의 불빛을 멀리하고 자연과 마주하신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불 없이 산다는 것은 단순히 추위를 견디는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욕망이 만들어낸 짐이 얼마나 많은지를 몸으로 가려내는 수행이었을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시계를 바라보지만, 산에서는 해와 달이 사람을 바라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자연을 관리한다고 여기지만, 깊은 산중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오만을 다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곳에서 자연을 소유하는 법이 아니라 자연의 허락을 받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더욱 귀하게 다가온 것은 선생님의 철학이 개인의 수행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아드님을 획일적인 교육의 울타리에만 가두지 않고 홈스쿨링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며 성장하도록 이끄신 선택에는 참부모의 용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자녀를 부모가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내는 대신, 아이마다 지닌 씨앗이 자기 빛깔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흙과 햇빛을 내어주셨습니다.
늦게 얻으신 영특한 막내따님이 서너 살 무렵부터 맨발로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약 천 번이나 산을 올랐다는 이야기는 놀라움을 넘어 숙연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천 번의 산행은 단순한 횟수가 아닙니다. 한 아이의 발바닥에 계절을 새겨 넣은 천 번의 수업이며, 흙과 돌과 나무가 함께 써 내려간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자녀에게 자연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연 속에서 직접 걷게 하셨습니다. 인내를 훈계하지 않으셨습니다. 힘든 산길을 함께 오르며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교육은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곁에서 같은 바람을 맞으며 걸어주는 일임을 선생님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산 기슭 송추계곡에서 자연 발효식품을 연구하고 개발하신다는 말씀도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발효는 재료를 억지로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적절한 환경을 마련한 뒤 생명이 스스로 변화할 시간을 믿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너무 서두르면 익지 않고, 지나치게 개입하면 본래의 맛을 잃습니다.
선생님의 삶 또한 오랜 발효의 시간을 거쳐온 듯합니다.
보성의 자연과 서울의 고난, 어머니를 모신 세월과 몸의 수련, 산사의 침묵과 가마골의 고독, 자녀와 함께 오른 수많은 산길이 선생님의 내면에서 천천히 익어 깊은 향기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선생님을 메마르게 만들지 않고 사람을 품는 넓이로 변했다는 사실이 귀합니다. 수행이 세상과 멀어지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는 길로 이어졌다는 점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치유와 상생, 홍익인간의 정신도 거창한 표어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와 함께 걷고, 자연에서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는 생활의 언어로 다가왔습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은 먼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생님의 삶이 보여줍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귀히 여기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세우며, 한 사람의 건강한 하루를 돕는 자리에서 홍익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보다 실천이 앞서는 분이셨습니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연의 추위와 고독을 견디셨고, 건강을 말하기 전에 몸을 단련하셨으며, 교육을 논하기 전에 자녀와 같은 산길을 걸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천궁행의 참뜻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머리에만 머물면 지식에 그치지만, 발끝까지 내려오면 삶이 됩니다. 선생님의 철학에는 산길의 흙이 묻어 있고, 계곡물의 맑은 소리가 흐르며, 오래 익은 발효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어젯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참스승이란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삶을 길로 내어놓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승의 자리를 높이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의 손을 잡고, 자연의 작은 생명과 호흡하며 몸소 걸어오셨습니다.
산은 높지만 자신을 높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은 많은 생명을 살리면서도 자신의 공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늘을 내주면서도 쉬어간 이의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이 그 산과 물과 나무를 닮았습니다.
어젯밤 늦도록 이어진 대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이라는 큰 경전에서 선생님께서 평생 읽어오신 몇 장의 귀한 말씀을 나누어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밤이었으나 그 안에는 긴 산길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고난과 수행, 부모로서의 책임과 스승으로서의 실천이 별빛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귀한 말씀을 들려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송추계곡에서 가꾸고 계신 생명의 공부가 더 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자연과 인간이 다시 손을 잡는 따뜻한 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의 걸음마다 산의 중심이 함께하고, 선생님의 손길마다 물의 맑음이 머물며, 선생님의 삶에서 익어나는 향기가 지친 이들의 마음에 오래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다시 뵙는 날에는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산길과 발효의 시간, 자녀들과 함께 써 내려가신 자연교육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을 뵙고 돌아온 마음에는 한 문장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자연을 스승으로 모신 사람은 높아지려 하지 않고, 더 많은 생명을 품을 만큼 깊어집니다.”
김종수 선생님께서는 자연 속에서 도를 찾으신 분이 아니라, 자연이 가르쳐준 도리를 가정과 이웃과 세상 속에서 살아내고 계신 분입니다.
귀한 인연에 깊이 감사드리며, 늘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정성 다해 기원드립니다.
2026년 8월 4일
청람 김왕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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