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문턱에 사람의 체온을 놓는 이 ― 김록환 교수의 실천적 휴머니즘과 인류공동선의 구축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도의 문턱에 사람의 체온을 놓는 이 ― 김록환 교수의 실천적 휴머니즘과 인류공동선의 구축 2026.08.05
□ 김록환 교수와 외국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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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문턱에 사람의 체온을 놓는 이
― 김록환 교수의 실천적 휴머니즘과 인류공동선의 구축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록환 교수의 삶은 하나의 직함으로 묶이지 않는다. 그는 노동행정 현장에서 구직자의 길을 살핀 직업지도관이었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외국인력의 입국과 정착을 지원한 행정가였으며,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개발해 학벌보다 능력이 존중받는 사회의 기초를 다진 정책 전문가였다. 대학에서는 다문화교육과 진로교육을 가르쳤고, 행정사로서는 외국인 주민이 복잡한 출입국 행정의 문턱을 넘도록 도왔다. 노래와 웹툰, 축제와 책을 통해 정책과 다문화의 의미를 시민의 언어로 번역해 온 문화실천가이기도 하다.
그의 여러 활동은 서로 흩어진 이력의 조각이 아니다.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직업을 찾는 사람, 낯선 나라에 도착한 외국인 근로자, 결혼을 통해 국경을 건너온 이주여성,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다문화가족, 능력보다 학력으로 평가받는 청년이 있다. 김록환 교수는 제도가 미처 품지 못한 사람의 자리에 다가가 행정과 교육, 문화예술을 연결해 왔다.
본고는 김록환 교수의 생애와 활동을 실천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살피고, 그의 선한 영향력이 어떻게 개인적 봉사를 넘어 사회통합과 인류공동선의 구축으로 확장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Ⅰ. 들어가는 말
―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제도의 문을 여는 사람
세상에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
그보다 귀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 낮은 곳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더 귀한 사람은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계단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이 올라오게 하는 사람이다.
김록환 교수의 이력을 처음 마주하면 수많은 직책이 눈에 들어온다. 노동부 직업지도관, 한국산업인력공단 외국인력국 한국어시험팀장과 입국지원팀장, 국가직무능력표준 표준개발실장, 강원지사장, 정보화지원국장, 서울남부지사장, 서울서부지사장, 대학 교수, 다문화교육본부장, 사회통합위원, 행정사, 다문화 큐레이터, 국가정책홍보가수.
명함 한 장에 다 적기 어려운 이력이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직책의 수는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직책들이 향한 방향이다. 수많은 이름표의 화살표가 한곳을 가리킨다.
사람이다.
직업이 필요한 사람,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 낯선 언어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 체류서류 한 장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 문화적 차이로 마음 둘 곳을 잃은 사람이다.
김록환 교수는 제도를 운용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제도 안에 사람의 숨결이 흐르게 했다. 규정이 너무 높으면 디딤돌을 놓았고, 행정의 문장이 너무 어려우면 생활의 말로 풀었다. 정책이 시민의 귀에 닿지 않으면 노래를 만들었다. 문화의 차이가 벽이 되면 축제를 열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게 했다.
그의 삶은 행정의 표정이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편의 긴 사례이다.
Ⅱ. 직업지도관
― 한 사람의 일자리는 한 가족의 내일이다
김록환 교수의 공적 생애는 노동행정 현장에서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는 노동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직업지도관의 길을 걸었고, 1997년 제1회 노동부 ‘올해의 직업지도관’으로 선정된 경력을 지닌다.
직업을 소개하는 일은 빈자리와 사람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작업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직업은 월급명세서보다 크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이며, 가족에게 돌아갈 때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당당함이다. 자신의 능력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회적 증명서이기도 하다.
구직표 한 장에는 숫자로 적히지 않는 사연이 숨어 있다.
누군가는 가족의 병원비를 마련해야 한다. 누군가는 오랜 실직으로 자신감을 잃었다. 누군가는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년이다. 누군가는 퇴직 뒤 두 번째 생을 준비한다.
직업지도관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 정보만이 아니다. 사람의 형편을 읽는 눈, 가능성을 발견하는 마음, 실패한 이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김록환 교수는 이 현장에서 일의 본질을 배웠을 것이다. 직업은 노동력을 사고파는 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사회적 자리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후 활동이 외국인 근로자, 직업능력, 진로교육, NCS, 다문화사회로 넓어진 것은 우연한 이직의 결과가 아니다. 최초의 출발점에 이미 한 사람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 능력이 필요한 자리까지 동행하려는 정신이 들어 있었다.
그에게 노동행정은 서류의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이 자기 삶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공공의 손이었다.
Ⅲ. 국가직무능력표준
― 학벌의 벽을 낮추고 능력의 문을 열다
김록환 교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가직무능력표준, 곧 NCS의 표준개발실장을 역임했다.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화하여 일과 교육훈련, 자격을 연결하고 능력중심사회의 기반을 마련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뒤에는 한 가지 절실한 질문이 놓여 있다.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누구를 아는가. 얼마나 화려한 이력서를 지녔는가.
이러한 질문이 사람의 운명을 지나치게 오래 지배해 왔다. 이름난 학교를 나오지 못한 청년은 능력을 보여 줄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현장에서 오랜 세월 기술을 익힌 노동자의 손은 학위증 한 장보다 낮게 평가받기도 했다.
NCS는 그 오래된 평가의 문법을 바꾸려는 사회적 시도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자는 일이다. 간판보다 역량을, 배경보다 직무능력을, 추상적인 스펙보다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을 평가하자는 선언이다.
김록환 교수가 이 표준의 개발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NCS 개발은 단순한 직무분류 작업이 아니다. 산업현장의 언어를 교육의 언어로 옮기고, 교육의 결과를 채용과 자격의 기준으로 연결하는 국가적 설계다.
표준이라는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다.
잘 만든 표준은 사람을 획일화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던 능력을 사회가 알아볼 수 있도록 이름을 붙여 준다. 이름 없이 흘린 땀에 공식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학교 밖에서 익힌 기술도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받게 한다.
김록환 교수는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을 만들면서 동시에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금을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
그 눈금이 조금 더 공정해질 때, 한 청년은 출신학교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한 숙련공은 자신의 손이 지닌 역사를 인정받는다.
한 경력단절자는 다시 일어설 근거를 얻는다.
이것이 제도를 통한 공동선이다.
공동선은 거대한 구호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Ⅳ. 외국인력 행정
― 국경을 건너온 노동자의 이름을 불러 주다
김록환 교수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외국인력국에서 한국어시험팀장과 입국지원팀장을 맡았다. 이후 강원지사장, 정보화지원국장, 서울남부지사장, 서울서부지사장 등을 역임하며 직업능력개발과 외국인력 지원, 지역 산업인력 행정을 두루 경험했다.
외국인 근로자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수많은 문턱을 만난다.
언어의 문턱, 체류자격의 문턱, 고용계약의 문턱, 산업현장의 문턱, 주거와 의료의 문턱이다.
고향에서는 한 집안의 아들이고 딸이며,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던 사람이 낯선 나라에 도착한 뒤 ‘외국인력’이라는 행정용어 하나로 불린다. 사람의 얼굴이 제도의 분류표 뒤로 사라질 위험이 생긴다.
김록환 교수의 외국인력 업무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어시험은 단순한 언어평가가 아니다. 한 사람이 한국의 노동시장으로 들어오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첫 관문이다. 입국지원은 항공편과 서류를 관리하는 업무만이 아니다. 낯선 사회로 건너오는 사람에게 국가가 처음 내미는 손의 표정이다.
첫 손길이 차가우면 국가는 벽으로 기억된다.
첫 손길이 따뜻하면 국가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 사회는 자신의 인간성도 함께 낮춘다. 그들이 공장과 농촌, 건설현장과 서비스업에서 흘린 땀은 이미 한국사회의 일부다. 노동은 국적을 먼저 확인하지 않는다. 땀에는 여권의 색깔이 없다.
김록환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의 직업과 직장에 관한 인식 연구에도 참여했다. 관련 연구에서는 기술과 지식의 습득, 작업환경, 복리후생, 고용안정, 경제적 보상 등이 외국인 노동자의 직업생활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다뤄졌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닌 성장과 안정, 존중을 원하는 직업인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한국사회에 노동을 주고 있다.
시간을 주고, 젊음을 주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희생을 주고 있다. 한국사회가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은 임금만이 아니다. 안전과 존중, 배움과 성장,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다.
김록환 교수의 행정철학은 이 교환을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상호적 공존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Ⅴ. 다문화 큐레이터
― 서로 다른 삶을 한 식탁에 앉히는 사람
김록환 교수는 자신을 ‘다문화 큐레이터’로 소개한다. 그는 삼육보건대학교 교수와 글로벌다문화교육본부장으로 활동했으며, 동서울대학교 특임교수, 한국진로교육학회 다문화진로교육위원장, 동강대학교 글로벌다문화교육위원회 위원장, 사회통합 관련 위원 등의 역할을 맡아 온 것으로 공개 프로필에 나타난다.
큐레이터는 흩어진 작품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관객이 그 관계의 의미를 읽도록 돕는 사람이다.
다문화 큐레이터는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 종교와 생활방식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만남의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을 베푸는 손이 아니다.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 앉는 무릎이다.
외국인 주민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만 규정하면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위에 서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아래에 놓인다. 참된 사회통합은 이러한 수직적 구도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된다.
당신의 문화도 귀하다.
당신의 언어도 이 사회의 소리다.
당신이 가져온 음식과 노래, 명절과 가족의 기억도 우리 공동체를 넓히는 자산이다.
이러한 인정이 있어야 공존은 비로소 생활이 된다.
김록환 교수의 다문화 활동은 한국문화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외국인 주민이 자신의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어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며, 내국인과 함께 무대를 만들도록 이끈다. 그가 참여해 온 다문화 문화봉사와 K컬처 관련 축제는 외국인을 관객석에 앉히는 행사가 아니다.
그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무대에 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통계 속 외국인이 아니다.
이름을 가진 가수이며, 자신의 문화를 설명하는 교사이고,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김록환 교수는 사람들을 한 식탁에 앉힌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서로 다르고, 기도하는 방식도 다르며, 어머니를 부르는 말도 다르다.
밥을 먹을 때의 배고픔은 같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같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도 같다.
인류공동선은 차이를 지우는 데 있지 않다. 차이를 지닌 채 서로의 존엄을 지켜 주는 데 있다.
Ⅵ. 행정사
― 서류 한 장 뒤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보다
김록환 교수는 글로벌행정사 대표행정사로서 출입국 민원과 외국인 주민의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관련 사회통합 활동에도 참여해 왔다.
행정서류는 종이 한 장이다.
그 한 장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허가가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취업을 계속할 수 있는 생명줄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한국에서 쌓아 온 삶 전체가 인정받는 문서다.
체류기간, 국적, 취업자격, 가족초청, 귀화, 각종 증명서.
용어를 아는 사람에게는 절차일 뿐이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높은 절벽이 될 수 있다. 서류 하나를 잘못 작성해 체류가 불안정해지고, 사업장 변경이나 가족결합이 늦어지며, 오랜 시간 준비한 국적취득의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김록환 교수는 행정을 사람의 언어로 번역한다.
어디에 서명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서류가 한 사람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진정한 행정은 규정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규정을 지키면서도 사람이 그 규정에 짓눌리지 않게 돕는 일이다.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통로를 찾아 주는 작업이다.
그가 『대한민국 국적취득을 도와드립니다』와 같은 실용적 저술을 펴낸 것으로 소개되는 이유도 이 현장성과 연결된다. 제도를 아는 사람이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지식은 소유할 때 권력이 된다.
나눌 때 길이 된다.
김록환 교수는 자신이 익힌 행정지식을 길로 바꾸었다.
Ⅶ. 국가정책홍보가수
― 보고서에 갇힌 정책에 날개를 달다
김록환 교수를 설명할 때 가장 낯설고도 인상적인 이름은 ‘국가정책홍보가수’다.
그는 정부정책과 사회문제를 노래로 만들어 시민에게 전달해 왔다. 저서 『나는 가수가 아니에요』에는 정책과 사회적 의제를 음악으로 풀어낸 그의 활동이 담겨 있다. 공개된 소개에는 정부혁신, 청렴사회, 일자리 창출, 해외취업, 물 부족, 다문화가정, NCS, 국가자격, 청년 격려 등을 주제로 한 여러 노래가 제시돼 있다.
정책은 대개 긴 문장으로 태어난다.
회의실에서 만들어지고, 보고서에 실리며, 전문용어를 입는다. 국민의 삶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정작 국민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서가 되는 역설이 생긴다.
김록환 교수는 이 딱딱한 정책의 외투를 벗겨 멜로디를 입혔다.
청렴을 노래하고, 일자리를 노래하며, 해외취업의 꿈을 노래했다. NCS와 국가자격처럼 일반 시민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음악의 리듬 안에 담았다.
그가 “나는 가수가 아니에요”라고 말한 데에는 깊은 역설이 있다.
노래를 부르되 자신이 빛나기 위해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수의 자리를 목적지로 삼지 않고, 노래를 사람과 정책을 연결하는 다리로 삼는다는 선언이다.
좋은 노래는 귀에 머물다 마음으로 내려간다.
좋은 정책은 문서에서 출발해 생활로 들어가야 한다.
김록환 교수는 이 둘의 길을 하나로 연결했다.
정부혁신이 노래가 될 때 시민은 정책의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청렴이 멜로디가 될 때 도덕적 훈계는 일상에서 흥얼거리는 약속으로 변한다. 다문화가정의 아픔이 노래가 될 때 낯선 이웃의 사연은 내 마음 가까이 다가온다.
그는 정책을 홍보한 것이 아니다.
정책 안에 들어 있는 인간적 뜻을 되살렸다.
Ⅷ. 노래와 웹툰의 다문화교육
― 마음이 읽지 못한 문장을 그림이 읽게 하다
김록환 교수는 박점희·김가현과 함께 『노래와 웹툰으로 보는 다문화 이해』를 펴냈다. 이 책은 2024년 7월 출간됐으며, 노래와 악보, 웹툰을 통해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삶을 이해하도록 구성된 244쪽 분량의 저서다. 책에는 「우리 며느리」, 「바다 건너온 사랑」 등 다문화가족의 관계와 정서를 다룬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경계한다.
경계하는 동안 마음은 벽돌을 쌓는다.
벽돌이 오래 쌓이면 편견이라는 담장이 된다.
다문화교육은 이 담장을 허무는 일이어야 한다.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문장을 백 번 읽어도 한 사람의 사연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면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노래는 논리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다.
웹툰은 긴 설명 없이도 한 사람의 표정과 눈물을 보여 준다.
김록환 교수는 노래와 그림을 다문화교육의 교과서로 삼았다.
바다를 건너온 며느리의 마음, 낯선 음식을 배우는 가족, 서툰 한국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주여성, 서로 다른 풍습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노래와 웹툰 속에 담았다.
그 속에서 다문화가정은 연구 대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가족이다.
웃고, 다투고, 화해하며,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걱정하는 우리 이웃이다.
교육은 많은 것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이전과 다르게 보게 하는 일이다.
김록환 교수의 다문화교육은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시선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이라는 시선으로, 한국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시선에서 한국사회를 함께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옮겨 놓는다.
이 시선의 이동이 사회통합의 첫걸음이다.
Ⅸ. 가족을 기록하는 사람
― 공공의 길 끝에서 다시 한 사람에게 돌아오다
김록환 교수의 저술세계는 정책과 다문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31살 이등병 아들을 생각하며』 에는 늦은 나이에 군 복무를 하게 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결혼하는 딸에게―사랑스러운 5월의 신부』 에는 결혼을 앞둔 딸에게 전하는 축복과 삶의 지혜가 기록돼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그의 공적 활동과 동떨어진 사적 기록처럼 보일 수 있다.
실상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를 바라볼 때도 그는 누군가의 아들을 보았다.
결혼이주여성을 만날 때도 누군가의 귀한 딸을 보았다.
군대에 간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타국에서 일하는 청년의 부모가 밤마다 느낄 그리움을 헤아릴 수 있다. 결혼하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 낯선 집안의 며느리가 된 여성의 부모가 품을 염려를 헤아릴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좁은 울타리가 아니다.
바르게 확장될 때 타인의 가족까지 귀히 여기는 윤리의 학교가 된다.
김록환 교수의 공공성은 추상적인 이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한 아버지의 마음에서 출발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에게로 넓어진다.
그의 다문화 휴머니즘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제도로만 배운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배웠다.
Ⅹ. 실천적 휴머니즘
― 선한 영향력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다
김록환 교수의 삶을 관통하는 사상은 실천적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다.
휴머니즘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문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가 넘어야 할 문턱을 낮춰야 한다. 능력을 인정받을 기준을 만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을 풀어 주며, 체류서류를 도와주고, 문화적 편견을 줄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할 수 있다.
공동선이 되려면 구조가 되어야 한다.
김록환 교수는 선의를 제도로 옮겼다.
직업지도관으로서 구직자의 가능성을 찾았다.
NCS 개발 책임자로서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기준을 세웠다.
외국인력 행정가로서 국경을 건너온 노동자의 입국과 정착을 지원했다.
교수로서 다문화와 진로교육을 가르쳤다.
행정사로서 외국인 주민이 제도의 문턱을 넘게 했다.
다문화 큐레이터로서 서로 다른 문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국가정책홍보가수로서 어려운 정책을 노래로 번역했다.
저자로서 경험과 지식을 책으로 나누었다.
하나하나 떼어 보면 서로 다른 직업이다.
한 줄로 이어 보면 한 사람이 평생 써 내려간 한 문장이다.
사람은 출신과 국적, 학력과 언어가 아니라 그가 지닌 존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선한 영향력은 자신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알리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만난 사람의 삶이 조금 덜 외로워지고, 조금 더 공정해지며,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김록환 교수의 선한 영향력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닮았다. 물은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 메마른 땅에 스며들어 씨앗을 깨우고, 목마른 사람의 몸 안에서 생명이 된다.
그의 행정은 서류에 이름을 남기기보다 사람의 삶에 길을 남겼다.
그의 교육은 지식을 과시하기보다 편견을 덜어 냈다.
그의 노래는 박수를 얻기보다 정책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이것이 참된 선한 영향력이다.
Ⅺ. 인류공동선의 구축
― 다름을 지우지 않고 함께 사는 기술
인류공동선은 거창한 국제회의의 선언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한국인과 외국인 근로자가 서로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일,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부모의 국적 때문에 놀림받지 않는 일, 결혼이주여성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학벌이 낮아도 능력으로 평가받는 일, 행정용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
이러한 작은 정의가 쌓여 인류공동선이 된다.
김록환 교수의 활동은 공동선을 세 가지 차원에서 구현한다.
첫째는 기회의 공동선이다.
직업지도와 NCS를 통해 출신 배경보다 능력과 가능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했다. 누구에게나 일할 기회,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신념이다.
둘째는 관계의 공동선이다.
다문화교육과 문화축제를 통해 내국인과 외국인 주민이 시혜자와 수혜자의 관계를 넘어 동등한 이웃으로 만나게 했다.
셋째는 이해의 공동선이다.
정책과 행정을 노래, 책, 웹툰으로 번역하여 전문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도 공공정보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공동선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르더라도 누구도 인간 이하로 취급받지 않는 상태다.
김록환 교수는 차이를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차이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다리가 놓이면 사람은 건너가 상대의 풍경을 보게 된다.
풍경을 본 사람은 함부로 돌을 던지지 못한다.
그 집에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람도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류평화는 거대한 이념보다 이러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Ⅻ. 맺는말
― 한 사람이 만든 작은 세계정부
김록환 교수에게는 대통령의 권한도, 국제기구의 거대한 조직도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하나의 작은 세계정부가 보인다.
직업을 잃은 이에게 일의 길을 찾아 주는 노동부가 있고,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교육부가 있으며, 외국인의 입국과 정착을 돕는 출입국 행정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를 만나게 하는 문화부가 있고, 노래로 정책을 알리는 방송국이 있으며, 가족의 사랑을 기록하는 작은 문학관도 있다.
그 모든 기관의 청사는 한 사람의 가슴 안에 세워져 있다.
그 정부가 지키려는 헌법의 첫 문장은 단순하다.
사람은 누구나 귀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귀하다.
바다를 건너온 사람도 귀하다.
높은 학력을 지닌 사람도 귀하다.
학교 밖에서 기술을 익힌 사람도 귀하다.
한국어가 유창한 사람도 귀하다.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오래 숨을 고르는 사람도 귀하다.
김록환 교수의 생애는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명제를 현실에 옮기는 과정이었다.
그는 제도의 높은 문 앞에 사람의 키에 맞는 계단을 놓았다. 정책의 굳은 문장을 노래의 새로 날려 보냈다. 외국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의 얼굴을 세상 앞으로 불러냈다. 다문화라는 추상명사에 밥 냄새와 웃음소리, 눈물과 고향의 노래를 돌려주었다.
그가 구축해 온 인류공동선은 아직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다.
한 사람을 존중할 때마다 벽돌 한 장이 놓인다.
서로의 문화를 인정할 때마다 창문 하나가 열린다.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때마다 기둥 하나가 선다.
어려운 사람에게 제도의 길을 알려 줄 때마다 문 하나가 생긴다.
그 집은 특정한 민족만의 집이 아니다.
여권을 검사하지 않는 집이다.
학력을 묻기 전에 손을 내미는 집이며, 서툰 발음도 끝까지 들어 주는 집이다. 각자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는 집이다.
김록환 교수는 그 집을 짓는 사람이다.
망치 대신 행정을 들었고, 벽돌 대신 교육을 쌓았으며, 창문 대신 노래를 달았다. 지붕에는 다문화라는 넓은 하늘을 얹었다.
세상은 큰 영웅 한 사람이 단번에 바꾸지 않는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사람을 귀히 여긴 이들이 세상의 기울기를 조금씩 바로잡는다.
김록환 교수의 삶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공직은 권한이 아니라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이며, 학문은 지식을 높이 쌓는 탑이 아니라 사람이 건너갈 수 있도록 몸을 낮춘 다리라는 사실을.
노래는 자신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대신 전달하는 입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문화는 먼 나라 사람을 위한 특별한 정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가 익혀야 할 공존의 문법이라는 사실을.
김록환 교수는 사람과 제도 사이에 서 있다.
그가 한쪽 손으로는 국가의 제도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제도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붙든다.
두 손이 맞닿는 자리에서 행정은 휴머니즘이 된다.
교육은 환대가 된다.
문화는 평화가 된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그렇게 인류공동선의 첫 문장이 된다.
김록환 교수는 아직 그 문장을 쓰고 있다.
노래로 쓰고, 책으로 쓰며, 강의와 봉사로 쓴다.
무엇보다 사람의 가슴에 쓴다.
종이에 쓴 문장은 언젠가 빛이 바랠 수 있다.
사람의 가슴에 새겨진 문장은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간다.
그렇게 한 사람의 선의는 이웃의 선의가 되고, 이웃의 선의는 공동체의 문화가 되며, 공동체의 문화는 인류가 함께 살아갈 미래의 윤리가 된다.
김록환 교수의 참된 업적은 그가 거친 직책의 높이에 있지 않다.
그를 만난 사람들의 삶에 생긴 작은 변화에 있다.
두려움이 안도로 바뀌고, 낯섦이 이해로 바뀌며, 편견이 환대로 바뀌는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김록환 교수는 오늘도 인류공동선을 짓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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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사람이 남긴 깊은 발자국
― 김록환 교수님께
교수님을 뵙고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교수님의 모습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지닌 직함과 경력, 세상에 알려진 이력을 먼저 살핍니다. 어디에서 일했는지, 무슨 일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많은 자리에 이름을 올렸는지를 헤아립니다.
교수님을 뵈었을 때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러한 이력의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맑은 분이시구나.
그것은 오랜 대화를 나눈 뒤에 내린 분석도 아니었고, 여러 자료를 읽은 뒤에 정리한 평가도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의 눈빛과 미소,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에서 먼저 전해진 직감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은 그가 살아온 시간을 숨기지 못합니다.
기쁨도 머물고, 상처도 머물며, 믿음과 실망도 작은 그늘이 되어 남습니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사람의 눈빛이 맑다는 것은 그가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일을 겪고도 마음을 탁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육십 대 중반에 이르셨음에도 눈빛이 소년처럼 맑으셨습니다. 미소에도 계산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기보다 먼저 믿어 주려는 빛이 있었고, 자신을 높이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온기가 있었습니다.
세월은 교수님의 얼굴에 나이를 새겼을지 모르나, 마음속 소년의 창문까지 닫지는 못한 듯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셔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마음 한쪽이 오래 저렸습니다.
한 걸음을 내디디는 일이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으실 터인데도 교수님의 얼굴에는 고통을 앞세우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몸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으나 정신은 누구보다 반듯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조심스러운 발걸음 속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숭고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지팡이는 단순히 다친 다리를 지탱하는 도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붙들어 주셨던 분이 잠시 자신의 몸을 맡기는 작은 동반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삶의 지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이에게 길을 안내하셨고, 학력과 배경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새로운 기준을 세워 주셨습니다. 낯선 나라에 온 외국인 근로자에게 입국과 정착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다문화가족에게는 제도의 언어를 생활의 언어로 풀어 주셨습니다.
국가정책이 너무 딱딱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때에는 노래를 지어 들려주셨고, 문화의 차이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세울 때에는 축제를 열어 서로의 손을 맞잡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교수님은 지팡이를 짚고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지팡이 끝으로 세상의 굳은 문턱을 두드리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사정을 한 번 더 살펴 주십시오.”
그렇게 말입니다.
교수님께서 걸어오신 길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직자라는 통계 뒤에서 한 인간의 자존심을 보셨고, 외국인이라는 이름 뒤에서 한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셨습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행정용어 뒤에서 웃고 울며 살아가는 가족을 보셨으며, 국가정책이라는 어려운 문장 속에서 국민의 생활과 희망을 찾으셨습니다.
그러한 교수님의 삶을 살펴보며 저는 선한 영향력의 참뜻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자신이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널리 알리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만난 사람의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일입니다. 막혀 있던 길 하나가 열리고, 절망했던 사람이 다시 내일을 바라보며, 낯선 사람이 이웃이 되는 힘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선한 영향력을 말로 설명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삶으로 증명해 오신 분입니다.
제가 교수님에 대해 알게 된 여러 모습 가운데 제 가슴을 가장 깊이 울린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존경하는 아버님을 천국으로 모신 뒤, 지금은 고향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시는 연로한 어머님께 매일 아침 빠짐없이 문안 인사를 올리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매일 아침입니다.
생각날 때 한 번이 아닙니다.
명절이나 생신날에만 드리는 전화도 아닙니다.
하루의 첫 문을 어머님의 안부로 여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큰일을 해낸 사람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우러러보고, 사회적 업적을 기록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 사람의 참된 크기는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아침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전화 한 통을 기다리는 어머니께는 하루의 해가 뜨는 일과 같을 것입니다.
“어머니, 밤새 편안하셨어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어머님께서는 아침을 기다리실지도 모릅니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닿는 순간, 고향집의 적막은 잠시 물러나고 방 안에 아들의 체온이 들어올 것입니다.
아들은 멀리 있어도 목소리는 문지방을 넘어갑니다.
효도는 거창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을 위해 큰 집을 마련해 드리는 일도 귀하고, 좋은 옷과 음식을 대접해 드리는 일도 소중합니다.
더 근본적인 효도는 부모님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시켜 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교수님의 하루는 세상을 향한 공적인 책임보다 먼저 한 어머니의 안부에서 시작됩니다.
국가의 정책을 알리고, 외국인 주민을 돕고, 다문화사회의 공동선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바로 그 순서에서 교수님의 인간적 진실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타인의 어머니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이 세상의 노인을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가족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밖으로 넓어질 때 사회적 책임이 되고, 더 멀리 번질 때 인류공동선이 됩니다.
교수님의 다문화 사랑과 외국인 주민에 대한 배려도 어쩌면 이 효심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타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청년을 보며 고향에서 기다리는 그의 어머니를 떠올리셨을 것이고, 바다를 건너온 결혼이주여성을 보며 멀리 떨어진 딸을 그리워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셨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 혼자만을 돕는 일이 아닙니다.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눈물까지 닦아 주는 일입니다.
교수님의 효심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미소가 번집니다.
어머님께서 어느 날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얘야, 나 잘 잤다. 너도 이제 전화 그만하고 밥부터 먹어라.”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웃으며 대답하실 듯합니다.
“어머니 목소리 들어야 밥맛이 납니다.”
어쩌면 어머님께서는 아들의 전화를 반기시면서도 겉으로는 무심한 듯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내가 어린애냐, 매일 전화하게.”
그 말씀 속에는 아들이 내일 아침에도 다시 전화해 주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은 때로 정반대의 말로 표현됩니다.
“오지 마라”는 말에는 보고 싶다는 뜻이 들어 있고, “전화 자주 하지 마라”는 말에는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말의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듯합니다.
교수님의 아내와 가족들께서도 이러한 삶의 곁을 오래 지켜 오셨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기까지는 그 사람 혼자의 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기다려 주는 사람, 바쁜 걸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 지친 날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챙겨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선한 영향력 뒤에는 교수님의 뜻을 믿고 함께 걸어온 아내와 가족의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교수님의 업적을 기억한다면, 저는 그 업적을 가능하게 한 가족의 조용한 헌신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교수님이 수많은 외국인과 다문화가족의 손을 잡아 주실 때, 교수님의 가족은 교수님의 등을 받쳐 주었습니다.
교수님이 세상의 지팡이가 되어 주실 때, 가족은 교수님의 마음을 붙들어 주는 지팡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참된 가족은 한 사람의 빛을 독점하지 않습니다.
그 빛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창문을 열어 줍니다.
교수님의 삶에는 정직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정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사람 앞에서와 사람 뒤에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삶입니다.
매일 아침 어머니께 문안드리는 일은 누가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닙니다. 상을 주는 일도 아니며, 약력에 크게 기록되는 업적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 간다는 것은 교수님의 성품이 얼마나 반듯한지를 보여 줍니다.
교수님의 정직성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따로 나누지 않습니다.
국가의 일을 할 때도, 한 사람의 민원을 살필 때도, 가족을 대할 때도 같은 마음으로 임하셨을 것입니다.
큰일에는 반듯하고 작은 일에는 소홀한 사람은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작은 약속을 귀하게 여기기에 큰 책임도 감당할 수 있었던 분입니다.
매일 아침 어머니께 드리는 전화 한 통은 교수님의 모든 이력을 떠받치는 가장 깊은 뿌리일지도 모릅니다.
교수님의 맑은 눈빛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아내와 가족을 귀히 여기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몸을 낮추고, 오랜 세월 정직하게 걸어온 삶이 눈빛으로 피어난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문장이 됩니다.
교수님의 얼굴에는 맑음이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미소에는 환대가 쓰여 있었고, 지팡이에 의지한 발걸음에는 인내와 품격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어머니께 드리는 문안에는 효심이라는 가장 오래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장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되어 교수님의 얼굴과 삶 속에 함께 묶여 있었습니다.
교수님을 뵙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통해 공동선을 구축하는 사람이 바로 김록환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공동선은 거대한 국제회의에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로한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는 일, 아내와 가족을 귀하게 여기는 일, 낯선 이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 주는 일, 능력이 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교수님께서는 그러한 작은 정의를 평생 쌓아 오셨습니다.
그 작은 정의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한 가정의 미래를 지키며, 한 사회의 편견을 허물었습니다.
교수님의 발걸음은 지금 다소 조심스러울지 모릅니다.
교수님께서 세상에 남기신 발자국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 발자국을 따라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있고,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있으며, 낯선 한국에서 용기를 얻은 외국인 주민이 있습니다.
편견을 내려놓고 이웃의 문화를 바라보게 된 사람도 있고, 교수님의 노래와 책을 통해 정책과 공동체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한 이들도 있습니다.
고향에서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아침 전화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수님의 인생은 이미 따뜻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큰일을 한들 부모님의 가슴에 외로움을 남긴다면 그 성공에는 빈방 하나가 남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세상을 향해 넓게 걸으시면서도 고향집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오솔길을 한 번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교수님의 위대함은 얼마나 빠르게 걸어오셨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는가에 있습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오르셨는가보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낮은 곳을 바라보셨는가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름이 알려졌는가보다,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얼마나 성실했는가에 있습니다.
김록환 교수님께서는 평생 사람을 일으켜 세워 오신 분입니다.
이제 교수님의 발걸음 곁에도 사모님과 가족의 따뜻한 손길이 더욱 오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부디 다치신 다리가 온전히 회복되어 지팡이를 내려놓고 편안히 걸으실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그날이 오면 교수님께서 지팡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셔도 좋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네. 이제 자네도 좀 쉬게.”
지팡이도 아마 서운한 척하면서 기쁘게 물러날 것입니다.
교수님의 맑은 눈빛과 따뜻한 미소가 더 많은 이의 마음에 닿기를 바랍니다. 낯선 사람들이 이웃이 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식탁에서 웃으며,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안부를 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넓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교수님을 뵌 것은 제게 한 사람을 만난 일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맑음이 어떻게 삶의 품격이 되는지, 효심이 어떻게 사회적 사랑으로 확장되는지, 정직한 한 사람이 어떻게 인류공동선의 작은 기둥이 되는지를 배운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어머님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모님과 가족 모두에게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의 삶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세상의 낮은 곳을 따뜻하게 밝히는 맑은 등불로 오래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존경과 감사, 가슴 깊은 감동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2026년 8월 5일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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