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연대기》 한 권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ㅡ 청람 김왕식
《숨의 연대기》 한 권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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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연대기》
한 권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시 한 줄이 사람보다 오래 사는 밤이 있다.
사람은 늙어가는데, 말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 손등에는 세월의 강줄기가 늘어나고 눈앞의 글씨는 조금씩 흐려지는데, 원고지 위에 내려놓을 단어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까다롭다.
한 단어를 놓으면 다른 단어가 등을 돌린다.
한 행을 살리면 그 옆의 행이 숨을 잃는다.
보듬어보고, 자리를 바꾸어보고, 덜어내고, 다시 불러 앉혀도 시어들은 좀처럼 화해하지 않는다.
밤새 붙들었던 몇 줄을 새벽녘에 모두 지우는 날도 있다.
그러면 다시 흰 종이 한 장이 남는다.
젊은 날에는 오래 쓰다 보면 글도 손에 익을 것이라 여겼다. 목수가 대패를 오래 잡으면 나무결이 손끝에 들어오듯, 문장을 오래 다루면 말도 제 발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세월은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오래 쓸수록 말은 어려워졌다.
사람을 오래 바라본 까닭일 것이다.
한마디가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것도 보았고, 무심히 흘린 말 한 조각이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박혀 빠지지 않는 것도 보았다. 사랑한다는 말이 한 발 늦어 평생의 회한이 되는 생도 있었고,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끝내 입술을 넘지 못한 채 이별이 먼저 문을 닫는 순간도 있었다.
그 많은 사람과 시간을 지나오니 단어 하나라도 함부로 내놓기가 어려워졌다.
내 글의 시작을 굳이 찾아 올라가면 초등학교 시절의 글짓기 종이 앞에 닿는다.
그때는 문학을 몰랐다.
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흰 종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것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를 빌려 밖으로 나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이르러 문학은 조금씩 삶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책장을 넘기다 사람의 마음을 만났고, 시 한 편 앞에서 현실보다 더 선명한 현실을 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 한편에 씨앗처럼 묻혔다.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말의 세계는 더 깊어졌다.
말은 소리가 아니었다.
한 단어 속에도 사람의 역사와 눈물과 시대의 먼지가 묻어 있었다. 문학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오랜 공부였다.
그 뒤 서울 오산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문예를 맡아 아이들의 글과 시를 가까이했다.
돌이켜보면 그 교실은 아이들만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내 문장을 돌아보았고,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라 말하면서 내 글에는 과연 내 숨이 들어 있는지를 되짚었다.
한 줄을 더 써보라 권한 날, 내 원고에서는 두 줄을 지웠다.
화려한 표현을 칭찬해주면서도 속으로는 화려함보다 오래 견디는 말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교단은 직장이었으며 동시에 아주 긴 문학수업이었다.
1990년대 말, 그동안 써온 글 가운데 몇 편을 다시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지금의 《숨의 연대기》 씨앗이 놓여 있었다.
시집을 내겠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은 아니다.
살면서 마음 한켠에 내려앉았던 것들을 조금씩 종이에 옮겨놓고 싶었다.
어떤 시는 여러 번 고쳐 절반이 되었고, 어떤 시는 제목만 남았다. 몇 날을 붙잡았던 문장을 통째로 버리기도 했다.
그 글들은 곧바로 책이 되지 못했다.
오래 서랍 속에 있었다.
사람은 교단을 지나고, 여러 일을 지나고,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지나왔다.
글 위에도 세월이 내려앉았다.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오래 묵은 글과 숨들을 한데 묶었다.
그것이 《숨의 연대기》다.
첫 시집이다.
사람들은 흔히 처녀작이라 부른다.
그 말이 맞으면서도 어딘가 맞지 않는 듯하다.
첫 책이기는 하나 첫 글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에서 시작된 작은 문장, 중·고교 시절 품었던 문학의 꿈, 국문학 공부, 오산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문예의 시간, 1990년대 말 다듬어놓았던 원고, 그 이후 사람과 세상을 지나며 쌓인 생의 흔적이 한 권 안에 오래 겹쳐 있다.
《숨의 연대기》라는 제목에도 그 시간이 들어 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살아오지 않았다.
숨으로 살아왔다.
기쁠 때 가빠졌던 숨,
사랑 앞에서 떨렸던 숨,
억울함을 참으며 삼킨 숨,
가족을 바라보며 내쉰 따뜻한 숨,
사람 하나를 떠나보낸 뒤 목울대 밑에 오래 걸려 있던 숨,
교실에서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던 숨,
삶이 버거운 날 혼자 길게 내쉬었던 한숨,
새벽 원고지 앞에서 한 단어를 기다리며 잠시 멎었던 숨.
그 숨들의 작은 연대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고도 마음 한쪽에는 묘한 머뭇거림이 남아 있다.
앞으로 또 시집을 낼 수 있을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 한 줄 쓰기가 예전보다 쉬워진 것도 아니다.
외려 더 어렵다.
어쩌면 《숨의 연대기》 한 권이면 족할지도 모른다.
한 평생 글다운 시집 한 권을 남겼다면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일 것이다.
책의 권수가 문학의 깊이를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십 권을 남기는 일보다 한 권 속에 자신의 생애 한 조각이라도 거짓 없이 눕혀놓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한 권이면 어떠랴.
그 한 권 속에 한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다면.
지금껏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적지 않은 글을 써왔다.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사람의 작품을 읽고 평론했으며,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글로 남겼다.
그 글들을 모두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습작이다.
습작이라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외려 오래 붙들고 싶은 이름이다.
습작은 서툰 글이라는 뜻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직 자신의 문장이 완성되었다고 믿지 않는 자세이며, 말 앞에서 계속 배우는 사람으로 남으려는 태도다.
글을 오래 쓴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은 자신의 문장이 완성되었다고 여기는 때인지도 모른다.
문장은 사람이 스스로 대가라 부르는 순간부터 숨이 얕아질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 글들을 습작이라 부른다.
내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어들이 화해하지 않는 밤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한 단어를 붙잡고 오래 머뭇거릴 것이고, 몇 줄을 써놓았다가 모두 지우는 일도 거듭될 것이다.
그런 밤이 꼭 실패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지워진 문장도 시의 일부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땅속의 뿌리처럼 남아, 겨우 살아남은 몇 줄을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한 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그 시 뒤에 사라진 수십 편을 함께 기억한다.
쓰지 못한 시,
지운 시,
너무 예뻐서 버린 말,
너무 힘이 들어가 내려놓은 문장,
마음에는 있었으나 끝내 글자가 되지 못한 한 줄.
어쩌면 내게 가장 두꺼운 시집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 책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책상 앞에 다시 흰 종이 한 장이 놓여 있다.
다음 시집의 첫 장인지,
평생 아무것도 적히지 않을 빈 종이인지 알 수 없다.
그대로 두려고 한다.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시집 한 권을 더 만들기 위하여 시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채우기 위해 문장을 생산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늙은 나무의 갈라진 껍질에서 한 생애가 보이고, 바람에 뒤집힌 낙엽 한 장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시간이 보이며, 어느 노인의 손등에서 오래 흐른 강줄기 하나가 가슴을 건드릴 때—
말이 먼저 찾아온다면 그때 종이를 펼칠 것이다.
시어들은 다시 싸울 것이다.
밤새 화해시키다가 결국 모두 돌려보낼 수도 있다.
그것으로도 괜찮다.
한 평생 문학 곁에 있었다는 것은 많은 글을 남겼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말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것.
한 단어를 세상에 보내기 전 오래 만져보았다는 것.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앞에 두려 했다는 것.
쓸 말이 없을 때에는 빈 종이를 억지로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
그 정도이면 좋겠다.
초등학교의 작은 글짓기 종이에서 시작된 길이 반세기를 훌쩍 넘어 이 한 권 앞에 이르렀다.
《숨의 연대기》.
한 권뿐이어서 작지 않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젊음과 교단과 사랑과 상처와 기다림과 늙어가는 시간이 제대로 숨 쉬고 있다면, 책의 수보다 더 귀한 무엇이 그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한 권이 올지는 말들에게 맡겨두려 한다.
오늘 밤에도 몇 개의 시어가 원고지 위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억지로 화해시키지 않으려 한다.
말에게도 제때가 있을 것이다.
끝내 화해하지 않으면 모두 돌려보내리라.
그러면 흰 종이 한 장이 다시 남을 것이다.
그 빈 종이를 오래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평생 내가 해온 문학의
가장 오래된 습작인지도 모른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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