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여기에서 인간을 다시 부른다 ― 지은경 제17 시집 《여기, 그리고 지금》 에 나타난 존재 · 관계 · 증언 · 문명비평의 시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여기에서 인간을 다시 부른다 ― 지은경 제17 시집 《여기, 그리고 지금》 에 나타난 존재 · 관계 · 증언 · 문명비평의 시학 2026.08.16
여기에서 인간을 다시 부른다 ― 지은경 제17 시집 《여기, 그리고 지금》 에 나타난 존재 · 관계 · 증언 · 문명비평의 시학

여기에서 인간을 다시 부른다

― 지은경 제17 시집 《여기, 그리고 지금》 에 나타난 존재 · 관계 · 증언 · 문명비평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Ⅰ. 여는말

― 한 권의 시집이 의자를 끌어당긴다

시집을 펼쳤는데, 문장보다 먼저 의자 하나가 보였다.

아직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였다. 누군가 늦게 올 사람을 위해 남겨둔 자리 같았다.

지은경의 제17시집 《여기, 그리고 지금》 은 그 빈자리에서 시작된다.

그의 시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높이 서지 않는다. 세계를 오래 바라본 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조금 넓히는 쪽으로 움직인다. 자아를 응시하다가 사회의 상처로 넘어가고, 사회의 소음에서 자연의 적막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인공지능과 디지털 문명의 한복판으로 돌아온다.

그 이동은 방황이 아니다.

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걸어가는 사유의 궤적이다.

지은경은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이며 문학 연구자다. 철학을 공부했고 예술과 문학을 학문으로 연마했으며 오랜 세월 문예지를 만들고 문학 현장을 지켜왔다.

시집과 평론집, 수필집, 논문집, 칼럼집을 꾸준히 펴냈고 여러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며 창작자와 독자를 연결해 왔다.

이 이력은 단순한 경력표가 아니다.

그의 시세계가 왜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배경이다.

철학을 공부한 눈은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파고들고, 비평가의 눈은 사회의 균열을 살피며, 시인의 눈은 꽃과 나무와 저녁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문학운동가의 삶은 독자를 시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여기, 그리고 지금》 의 핵심은 제목 자체에 숨어 있다.

‘여기’는 위치가 아니다.

한 인간이 발을 딛고 책임져야 할 자리다.

‘지금’은 단순한 현재가 아니다.

어제의 변명과 내일의 유예가 통하지 않는 시간이다.

지은경의 시는 바로 그 두 좌표가 만나는 곳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본다.

Ⅱ. 경계에 선 의식

― 문은 닫히는 구조물이 아니라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얇은 벽이다

제1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문’과 ‘경계’의 이미지다.

「의식의 문」, 「시간의 문」, 「공간의 문」, 「진실의 무게」, 「진실은 업데이트 중」, 「숨은 얼굴」, 「보이지 않는 독법」 같은 작품 제목은 지은경 시의 기본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세계를 확정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보이는 것과 실제 사이에는 틈이 있고, 이름 붙은 것과 본질 사이에는 거리가 있으며, 우리가 진실이라 부르는 것조차 때때로 시대와 권력과 정보의 흐름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이에 지은경의 철학적 배경이 시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철학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장식으로 붙는 것이 아니다.

사물과 현실을 쉽게 믿지 않는 태도로 나타난다.

오늘의 사회는 확신이 과잉된 사회다.

짧은 영상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고, 몇 줄의 기사로 사건 전체를 단정하며, 검색창에 뜬 몇 개의 문장만으로 세계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 시대에 시인의 역할은 결론을 빠르게 내려주는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 뒤에 또 다른 층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진실은 업데이트 중」 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시대성을 압축한다.

과거의 진실이 돌판에 새겨진 문장처럼 인식되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진실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재배열된다.

기록은 남지만 동시에 삭제된다.

사실은 존재하지만 해석의 속도에 밀린다.

시인은 이 불안정한 현실의 표면에 손가락을 대본다.

그때 시는 대답보다 감각에 가까워진다.

무엇이 참인가를 선언하기보다 참이라고 믿어온 것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지은경의 시적 의식은 이 경계에서 출발한다.

Ⅲ. 고요의 깊이

― 소리가 사라진 곳에서 비로소 사람의 내부가 들린다

제2부의 세계는 앞선 장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흐른다.

「가을 명상」, 「산책」, 「고요에 잡혀 있다는 것은」, 「조락의 자리」, 「물명, 숲맹 그리고 나」, 「자리풀 내어주는 일」 같은 작품들은 지은경 시의 내향적 층위를 보여준다.

여기서 고요는 단순한 정숙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과 조직과 문학의 현장을 지나온 인간이 자기 내부의 소음을 가라앉히는 과정이다.

현대인은 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전화가 울리고, 화면이 번쩍이며, 메시지가 밀려오고, 의견이 쏟아진다.

말은 많아졌지만 마음은 더 쉽게 메마른다.

고요는 이런 시대에 사치가 아니라 회복의 방식이 된다.

지은경은 자연을 통해 그 고요에 접근한다.

산책은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속도를 낮추는 행위가 되고, 가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의 거울이 된다.

특히 ‘조락’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떨어지는 잎은 소멸처럼 보이지만, 나무에게는 다음 계절을 위한 비움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더 얻느냐보다 무엇을 덜어내느냐가 중요해진다.

관계의 과잉, 욕심의 과잉, 말의 과잉, 자기확신의 과잉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

그것이 지은경 시에서 고요가 갖는 수행적 의미다.

고요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불필요한 것이 빠져나간 뒤 남은 본질의 밀도다.

Ⅳ. 관계의 온도

― 사랑은 붙잡는 손보다 내어주는 자리에 더 오래 남는다

제3부 「관계의 온도」 에서 시는 다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여기, 그리고 지금」, 「사랑의 신화」, 「사랑은 고요하다」, 「저녁을 묻다」, 「혼밥의 미학」 등은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비춘다.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랑을 바라보는 태도다.

지은경의 사랑은 격렬하게 타오르는 감정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래 살아낸 사람의 사랑은 조금 다르다.

상대의 자리를 빼앗기보다 비워주고, 자기 목소리를 앞세우기보다 들어주며, 필요할 때 한 걸음 물러서는 법을 품는다.

「혼밥의 미학」 에 나타난 공동식사의 이미지는 그의 문학관을 압축한다.

문학은 혼자 차리는 밥상이지만 혼자 먹기 위해 차리는 밥상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한 자리를 남겨놓는 일.

이것이 지은경 문학의 윤리적 중심이다.

시인은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시 속에 빈칸을 남기고 독자가 그 자리에 자신의 경험을 앉혀볼 수 있도록 한다.

관계의 온도는 바로 이 여백에서 생긴다.

사랑은 소유할수록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놓아줄수록 오래 따뜻하다.

Ⅴ. 상처와 증언

― 시는 상처를 덮는 붕대보다 상처가 있었던 자리를 기록하는 지도에 가깝다

제4부에 이르면 시집의 공기가 달라진다.

「누명」 연작, 「스크린 중독 보고서」, 「폭력」, 「침묵의 나라」, 「현대판 문맹」, 「흔들리는 사다리」 등의 작품은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적 현실로 시선을 넓힌다.

지은경은 상처를 개인의 운명으로만 처리하지 않는다.

상처가 어디서 생겨났는지, 그 상처를 만든 구조와 분위기와 침묵을 함께 본다.

특히 누명, 폭력, 침묵은 모두 관계의 붕괴와 연결된다.

사실이 왜곡되면 한 사람의 삶이 흔들릴 수 있고, 폭력이 반복되면 인간의 존엄은 일상의 습관 속에서 무너진다.

침묵은 때때로 중립이 아니다.

외면이라는 방식의 참여가 될 수도 있다.

지은경의 사회시는 이 불편한 지점을 피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시가 단순한 고발문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힘은 그의 인간적 시선에 있다.

그는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상처받은 존재의 표정과 침묵을 바라본다.

그 점에서 그의 시는 판결문이 아니라 증언록에 가깝다.

법은 유무죄를 가리지만 시는 그 판결 뒤에도 남아 있는 사람의 떨림을 기록한다.

「현대판 문맹」 은 이 시집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 제목 중 하나다.

오늘의 문맹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의 아픔을 읽지 못하는 상태,

사실과 선동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

수많은 정보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놓치는 상태도 새로운 문맹이 될 수 있다.

지은경의 시는 그 문맹을 경계한다.

Ⅵ. 마음의 수행

― 세상이라는 대장간에서 한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벼린다

제5부에 이르면 외부의 상처를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자기 내부로 향한다.

산, 외줄, 대장간, 밤낚시, 캘린더, 나무와 같은 소재들이 이 장을 이룬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사물이지만 한 방향으로 모인다.

삶을 견디고 다듬는 과정이다.

「세상의 대장간」 이라는 제목은 이 부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쇠는 불에 들어가고 망치에 맞는다.

뜨거워지고 식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쇠는 전혀 다른 밀도를 갖는다.

인간의 삶도 그렇다.

상처를 겪었다고 모두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어떤 언어로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통과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결이 달라진다.

지은경의 시에서 수행은 종교적 금욕에 한정되지 않는다.

흔들리면서 중심을 되찾는 일,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일,

결과가 없었던 하루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즐거운 외줄 타기」 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외줄은 본질적으로 흔들린다.

완벽한 균형이란 없다.

삶의 균형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사회, 자유와 책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사람은 계속 기울어진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흔들린 뒤 다시 중심을 찾는 힘이다.

밤낚시의 이미지 역시 의미 깊다.

낚시는 잡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시 쓰기도 그렇다.

좋은 문장 하나가 오기까지 수많은 문장을 버려야 하고, 한 줄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오래 침묵해야 한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밤조차 시인의 내면을 깊게 만든다.

제5부에서 지은경은 삶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삶과 화해하며 그 안에서 자기 모양을 다듬어가는 수행의 장으로 바라본다.

Ⅶ. 자연과 순환

― 꽃은 피는 순간보다 지는 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품는다

제6부에서 시집은 자연의 결로 이동한다.

해바라기, 나무, 가을, 메밀꽃, 복수초, 폭설 같은 자연물이 등장한다.

이때 자연은 장식이 아니다.

인간의 시간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지은경의 자연시는 ‘아름답다’는 감탄에서 멈추지 않는다.

꽃 한 송이에 피기 전의 기다림과 진 뒤의 소멸을 함께 본다.

나무 한 그루에서 여름의 무성함보다 잎을 내려놓는 가을의 자세를 오래 바라본다.

그의 자연시에서 가을은 특별하다.

가을은 잃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내어주는 계절이다.

나무는 열매를 내주고 잎을 내려놓는다.

자신을 비운 뒤에야 겨울을 통과한다.

노년의 삶과도 닮아 있다.

오래 살아갈수록 더 많이 가지는 일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을지가 중요해진다.

「가을, 선한 열매」 같은 작품은 이 생의 윤리를 자연의 순환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복수초는 또 다른 상징이다.

눈과 추위 속에서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미는 작은 꽃.

절망은 폭설처럼 온다.

길 전체를 덮는다.

희망은 대개 그렇게 크지 않다.

복수초처럼 작은 틈 하나를 밀어 올린다.

그 작은 틈 때문에 다시 봄을 생각하게 된다.

지은경의 자연시는 거대한 희망을 외치지 않는다.

작은 생명이 살아남은 장면 하나를 내어놓는다.

그 장면이 독자의 내부에서 오래 번진다.

Ⅷ. 문학의 자리

― AI가 문장을 만드는 시대에 시는 인간의 체온을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제7부에 이르면 지은경의 시는 오늘의 문명과 정면으로 맞선다.

「AI 시대의 눈동자」, 「WWW」, 인간 이후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 국가와 역사와 사회적 이념의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들이 이 장을 구성한다.

이 대목에서 지은경의 시가 가진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그는 기술을 단순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깊은 곳을 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지고 있는가.

화면의 해상도는 높아지는데 사람의 마음을 보는 해상도는 낮아지고 있지는 않은가.

수천 명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한 사람의 눈물을 읽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AI 시대의 눈동자」 라는 제목은 바로 그 문제를 함축한다.

기계는 눈을 가질 수 있다.

카메라도 이미 인간보다 멀리 보고 정밀하게 본다.

그런데 눈동자는 다르다.

눈동자에는 체온과 망설임과 두려움과 연민이 들어 있다.

시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이 눈동자의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문학은 문장 생산의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누가 더 빨리 쓰느냐의 경쟁으로 가면 인간은 곧 불리해질 것이다.

문학이 남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상실을 견디는 방식,

죄책감을 품는 방식,

타인을 용서하려 애쓰는 방식,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방식,

죽음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방식.

이런 영역은 단순한 정보처리와 다르다.

「WWW」 가 보여주는 것도 연결의 역설이다.

세계는 연결되었지만 사람은 고립될 수 있다.

접속은 쉬워졌지만 만남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팔로워가 많다고 곁에 남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이러한 과잉 연결 속에서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법을 가르친다.

스크롤을 멈추게 하고,

한 문장을 다시 읽게 하며,

말보다 침묵을 오래 품게 한다.

그 느림이야말로 오늘 문학이 가진 저항의 방식이다.

Ⅸ. 시의 친절과 위험

― 시작 노트는 독자를 위한 손전등인가, 해석의 울타리인가

《여기, 그리고 지금》 의 형식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마다 덧붙인 시작 노트다.

이 장치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현대시의 지나친 난해함으로 인해 독자가 시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 있는 시도다.

지은경은 독자를 문밖에 두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유에서 작품을 시작했는지 일정 부분 열어 보여준다.

이 태도는 그의 문학관과 맞닿는다.

문학은 혼자 쓰되 혼자 소유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다만 시작 노트에는 한 가지 긴장도 존재한다.

시는 해석이 열려 있을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지나치게 설명하면 독자가 들어갈 틈이 줄어들 수 있다.

그 점에서 시작 노트는 정답지가 아니라 방향표지판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답다.

숲의 입구를 알려주되 숲 안의 길까지 모두 지정하지 않는 것.

그 정도의 친절이 시와 독자 사이에 가장 좋은 거리를 만든다.

지은경의 이번 시집은 바로 이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보여준다.

Ⅹ. 지은경 시의 성취와 앞으로의 지평

― 사상이 커질수록 언어는 더 작아져야 한다

지은경의 제17시집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시선의 폭이다.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해 관계와 사랑, 사회적 상처, 자연의 순환, 인공지능과 문명비평까지 이동한다.

철학과 현실과 서정이 한 시집 안에서 서로 만난다.

오랜 연구와 비평 활동의 흔적도 곳곳에 나타난다.

다만 이러한 넓이는 시적 과제로도 이어진다.

사유가 넓어질수록 시가 개념을 설명하려는 유혹도 커진다.

사회적 메시지가 강해질수록 문장이 선언으로 기울 가능성도 생긴다.

지은경 시가 앞으로 더욱 깊어질 지점은 이미 가진 사상을 더 크게 말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사상을 더 작은 이미지 속에 숨기는 데 있다.

국가를 말하려면 나라 전체를 호명하지 않아도 된다.

낡은 서랍 속에 접혀 있는 태극기 하나면 충분할 수 있다.

노년을 말하려면 세월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비어 있는 약봉지 하나,

닳은 신발 한 켤레,

저녁 창문에 오래 걸린 햇빛 한 조각이 더 깊을 수 있다.

휴머니즘을 주장하기보다 추운 사람에게 밥 한 숟갈 더 내어주는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다.

시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은 사상이 사라질 때가 아니다.

사상이 사물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질 때다.

지은경은 이미 그 지점을 향해 오래 걸어왔다.

Ⅺ. 맺음말

― 문학은 결국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 불을 켜두는 일이다

《여기, 그리고 지금》 을 다 읽고 나면 처음 보였던 의자가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 아직 오지 않았다.

시인은 자리를 치우지 않는다.

불도 끄지 않는다.

그 한 자리 때문에 문학은 계속된다.

지은경의 열일곱 번째 시집은 한 시인의 성취를 정리한 기념비가 아니다.

외려 아직 진행 중인 이동의 기록이다.

자신에게서 출발해 타인에게 가고,

사회에서 자연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기술문명 속의 인간에게 돌아오는 긴 순환.

그 중심에는 한 단어가 남는다.

사람.

세상은 더 빠르게 연결되고, 기계는 더 영리해지며, 진실조차 실시간으로 편집된다.

그 와중에 문학은 아주 오래된 일을 계속한다.

한 사람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건넨다.

한 인간의 고독에 다른 인간의 체온을 연결한다.

보이지 않던 상처를 문장 속에 보이게 한다.

늦게 오는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남겨둔다.

지은경 시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이 기다림이 있다.

그 기다림은 화려하지 않다.

작은 찻집의 마지막 불빛과 닮았다.

북한산 기슭의 저녁처럼 오래 번지지도 않는다.

다만 길을 잃은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

문학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에서 사람을 다시 부르는 일.

지금, 서로의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일.

지은경의 《여기, 그리고 지금》 은 그 오래된 문학의 약속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세우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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