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과자가 되는 순간 ― 청운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연기가 과자가 되는 순간 ― 청운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2026.08.18
□ 정덕현 시인
■
구름 과자
시인 靑雲. 丁德鉉
당신은 구름 과자를 알고 계시나요?
구름 과자는 옛날에는 어른들이 즐겨 먹었습니다
하나 요즘 세상에는 여자들 어린애들도 즐겨 먹고 있는 세상이래요
과자는 원래 간식으로 입이 궁금할 때
하지만 구름과자는 남 녀 노소 어른 아래가 없어요
아무리 세상이 변해간다고는 하지만
옛날에는 어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긴 담배대에 불을 붙여 피웠지요
옛날에는 할아버지, 할머
니 어른들이 즐기셨지요
긴~ 담뱃대에 봉초를 구겨 넣어 불을
붙이면서 폼을 잡고
어른 행세를 했다지요
나도 예전에 구름과자를 선호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냄새조차 역겨워 싫어지는데
즐기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습관,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해
상식을 벗어난 이기심이 아닐까요
구름과자 맛은 쓰고 고급 케이스에
자신의 몸을 불구덩이 속에 태워가며
마음의 심장까지 불태우는 맛
먹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맛있는 과자 구름 과자

■
연기가 과자가 되는 순간
― 청운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담배는 불에 타지만,
이 시에서
먼저 타는 것은
사람의 오래된 습관이다.
청운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는
담배를 직접 호명하지 않는다.
대신 ‘구름 과자’라는 익살스럽고도 역설적인 이름을 앞세운다.
이 명명 하나가 시의 문을 연다.
과자는 대체로 달고 즐거운 것이다.
어린 시절의 간식이며,
입안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작은 행복이다.
담배는
그와 정반대다.
쓰고,
태우며,
끝내 몸에 흔적을 남긴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것을 ‘구름 과자’라 부른다.
바로
이 어긋남에서
시의 풍자가 생긴다.
- 달지 않은 과자, 먹을수록 사라지는 몸
“구름 과자”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담배를 가리키는 익살스러운 은어로 쓰여 왔다. 정덕현 시인은 이 익숙한 말을 가져와 한 사람의 기억과 세대의 풍속을 함께 펼쳐 보인다.
시의 첫머리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당신은 구름 과자를 알고 계시나요?”
이 질문은 가볍다. 마치 옛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려는 듯하다. 독자는 잠시 미소를 띠게 된다.
그 뒤에는 풍속의 시간이 따라온다.
긴 담뱃대
봉초
불을 붙이던 손
담배를 피우며 ‘어른 행세’를 하던 모습
담배는 여기서 기호품이면서 하나의 시대적 표정이 된다.
과거의 담배는 지금과 의미가 달랐다. 사랑방의 풍경이기도 했고, 어른의 권위를 드러내는 소품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담뱃대를 드는 행위 속에 나이와 신분과 체면이 묻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정덕현 시인은 그 오래된 장면을 꺼내 현재와 맞세운다.
시 안에는 결국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담배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간과,
담배가 경계의 대상이 된 시간이다.
그 사이를 건너온 것이 바로 시인 자신이다.
- “나도 예전에”라는 한마디의 힘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뜻밖에도 거창한 문장이 아니다.
“나도 예전에 구름과자를 선호했던 때가
있었다”
이 두 행이다.
이 고백 때문에 이 시는 단순한 훈계에서 벗어난다.
담배를 한 번도 피운 적 없는 사람이 흡연자를 꾸짖는다면 그의 말은 쉽게 바깥의 충고가 될 수 있다. 정덕현 시인은 자신을 심판자의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가 시의 윤리를 바꾼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 역시 한때 저 자리에 서 있었다는 고백이 먼저 놓인다.
좋은 비판에는 자기 경험의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리고 남의 현재만 나무라는 문장은 쉽게 차가워진다. 자신의 흔적을 인정한 뒤 건네는 말은 조금 다르다.
「구름 과자」 에는 바로 그 체온이 있다.
- 연기는 위로 올라가는데 몸은 아래로 무너진다
담배 연기는 묘하다.
몸에서 나왔는데 몸에 남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입을 떠난 연기는 가볍게 천장으로 올라간다. 형체도 오래 남지 않는다. 조금 지나면 어디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사람은 잠시 착각한다.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정덕현 시인의 시는 바로 그 착각을 건드린다.
후반부의 표현은 상당히 강렬하다.
“자신의 몸을 불구덩이 속에 태워가며
마음의 심장까지 불태우는 맛”
여기서 담배 한 개비는 작은 화장터처럼 변한다.
종이가 타고,
담뱃잎이 타고,
불씨가 앞으로 이동한다.
시인의 시선은 그것을 단순한 연소로 바라보지 않는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실은 자신의 시간을 함께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는 짧아지고,
재는 길어지고,
사람의 생 역시 조금씩 소모된다.
이에 ‘구름 과자’라는 우스운 표현은 갑자기 서늘해진다.
과자를 먹으면 과자가 사라진다.
구름 과자를 먹으면 무엇이 사라지는가.
시인은 그것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가 그 빈칸을 채우게 한다.
- 이 시의 중심에는 담배보다 ‘습관’이 있다
겉으로 보면 「구름 과자」는 금연시처럼 읽힌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시의 진짜 대상은 담배만이 아니다.
인간의 습관이다.
사람에게는 해로운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담배일 수 있고,
술일 수 있고,
분노일 수 있고,
욕심일 수 있고,
잘못된 관계일 수도 있다.
이성은 그만두라 하고,
몸도 신호를 보내는데,
습관은 내일 한 번 더 하자고 속삭인다.
시 속의
“습관,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해”
라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담배를 둘러싼 이야기가 어느 순간 인간 보편의 이야기로 넓어진다.
사람이 가장 이기기 어려운 상대는 타인이 아니다.
자신 안에서 오래 길들여진 자신이다.
남과 싸우는 전쟁은 승패가 보인다.
습관과 싸우는 전쟁은 전선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는 그 보이지 않는 싸움을 담배 한 개비에 압축해 놓는다.
- 조금 거칠기에 살아 있는 시
이 작품은 지나치게 다듬어진 시가 아니다.
문장에는 말하듯 이어지는 부분이 있고, 같은 의미가 반복되기도 한다. 산문적인 진술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이 작품의 결함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정덕현 시의 특징은 현학적인 시어보다 생활 언어의 직접성에 있다.
“긴~ 담뱃대”와 같은 표현에는 실제로 옛 어른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의 목소리가 묻어난다.
문법적으로 완벽하게 정제된 언어보다 삶에서 막 꺼내놓은 말의 질감이 살아 있다.
이 시인은 연기를 철학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이 피웠던 기억,
지금은 냄새마저 싫어진 변화,
흡연자를 바라보는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늘어놓는다.
그 투박함이 오히려 사람 냄새를 만든다.
시는 언제나 아름다운 문장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문장이 있다.
「구름 과자」 가 가진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
- 마지막의 역설 ― ‘맛있는 과자’가 남기는 쓴맛
마지막은 흥미롭다.
“먹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맛있는 과자 구름 과자”
앞에서는 담배의 해악을 말해놓고 마지막에는 다시 “맛있는 과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다.
중독의 가장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는 역설로 읽을 수 있다.
해롭다는 것을 안다.
냄새도 좋지 않다.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경험한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맛’으로 기억된다.
바로 그 기억이 사람을 다시 불씨 앞으로 데려간다.
중독은 이성보다 기억을 먼저 움직인다.
머리는 위험을 알고 있는데,
몸은 익숙함을 기억한다.
이 시의 마지막이 씁쓸한 이유다.
‘맛있는’이라는 말 뒤에 사실은 훨씬 더 긴 문장이 숨어 있다.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맛있다고 믿게 되는 것.
그것이 구름 과자의 슬픈 정체인지 모른다.
맺음말
― 한 개비의 연기가 보여주는 인간의 자화상
정덕현 시인의 「구름 과자」 는 담배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습관과 욕망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긴 담뱃대를 물던 옛 어른의 모습에서 시작해 현대의 흡연문화로 건너오고, 끝내 시인 자신의 경험에 닿는다.
이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담배를 적으로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때 자신 역시 그것을 가까이했던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리에서 풍자와 고백이 함께 생겨난다.
담배 한 개비는 몇 분이면 사라진다.
연기도 금세 허공으로 흩어진다.
사람들은 연기가 없어졌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상처받지
정덕현의 시는 그 사라지는 연기 뒤에 남겨진 것을 바라본다.
재떨이의 재만 남는 것이 아니다.
버리지 못한 습관,
자신과의 싸움,
지나간 시간,
몸속에 남은 흔적이 있다.
구름은 본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과자는 본래 먹으면 즐겁다.
그 두 말을 붙여놓은 ‘구름 과자’라는 이름 속에 이 시의 역설이 모두 들어 있다.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가벼워 보이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평생보다 무거운 것.
정덕현 시인은 그 무게를
불붙은 담배 한 개비 끝에 매달아 놓았다.
연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남은 사람만
자기 몸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그것이 「구름 과자」 가 끝내 독자의 입안에 남기는
달지 않은 뒷맛이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