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온 ― 오래전 은사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
마음의 평온 ― 오래전 은사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 2026.08.18
■
마음의 평온
― 오래전 은사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
살다 보면
마음에도 길을 잃는 날이 있다.
무슨 큰일 하나가 갑자기 닥쳐서만은 아니다. 돈 걱정이 조금씩 쌓이고, 몸 한구석이 예전 같지 않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어긋나고, 내일의 형편마저 흐릿해질 때가 있다. 하나하나는 견딜 만한 일인데 그것들이 한꺼번에 마음으로 밀려오면 사람은 제 안에서도 설 자리를 잃는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마음이 어수선해 도무지 글 한 줄 제대로 써지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마음 한편이 자꾸 다른 곳을 향하던 때였다. 그럴 때면 가끔 옛 은사를 찾아뵙곤 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참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 마음이 어지러운 것이 꼭 마음 때문만은 아니네.”
짧은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찻잔을 내려놓으시며 천천히 말씀을 이으셨다.
“주머니가 비면 마음도 쓸쓸해질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생각도 약해질 수 있지. 집안에 걱정이 생기고 사람 사이가 틀어지면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네. 그러니 힘들 때마다 자네 마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몰아세우지는 말게.”
그 말씀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흔들릴 때
자신의 의지부터 의심한다.
“왜 나는 이 정도 일도 견디지 못하는가.”
“왜 이렇게 불안한가.”
“왜 남들처럼 담담하지 못한가.”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마음을 꾸짖기 전에 삶의 형편부터 살펴보라고 하셨다.
“마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네. 몸하고도 살고, 살림하고도 살고, 사람하고도 사는 것이지.”
지금도
그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은 삶에서 떨어져 나온 섬이 아니었다.
통장 잔고가 빠듯하면 전화 한 통에도 가슴이 철렁할 수 있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면 별것 아닌 말에도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가족의 일이 꼬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평소 같으면 넘겼을 일조차 크게 다가온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마음의 평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평온하다는 것이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네.”
그 말씀을
한참
생각했다.
선생님은 창밖을 한번 바라보시더니 덧붙이셨다.
“바다에 파도가 없어서 배가 가는 것이 아니지. 파도가 있어도 방향을 잃지 않으니까 가는 거야.”
그날 이후
내게 평온이라는 말의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평온은 근심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었다.
돈 걱정이 없어지고, 몸이 모두 나아지고, 사람 사이의 갈등이 풀리고, 앞날까지 훤히 보이는 날만 기다린다면,
어쩌면 평생 평온한 날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삶 전체를 한꺼번에 고치려고 애쓰지 말라고도 하셨다.
“오늘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병이 걱정되면 병원에 가고,
돈이 모자라면 오늘 줄일 것 하나를 찾아보고,
사람과 틀어졌다면 당장 모든 것을 풀려고 애쓰기보다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는 것부터 하라고 하셨다.
“내일 일까지
오늘 끌어안으면
마음이 먼저
늙네.”
그 말씀도
아프게 와 닿았다.
돌이켜보면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오늘의 짐만이 아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근심을 미리 데려와 등에 얹고, 이미 지나간 어제의 상처까지 다시 꺼내어 품고 살 때가 많다.
오늘 하나만 살아도 벅찬데 우리는 어제와 내일까지 데리고 하루를 걷는다.
선생님은
몸을 돌보는 일도 자주 말씀하셨다.
“마음이 힘들수록
밥부터 잘 먹게.”
처음에는 너무 평범한 말씀처럼 들렸다.
마음이 이토록 복잡한데 밥 한 끼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말씀이 얼마나 깊은 말인지 조금씩 가슴에 닿았다.
사람은 생각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제시간에 드는 잠
햇볕 아래 걷는 몇 걸음
마음을 터놓을 한 사람
그런 작고 평범한 것들이 무너진 사람을 다시 세우는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은 혼자 참는 것을 무조건 미덕으로 여기지 말라고도 하셨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라고
사람일세.”
힘든 이야기를 꺼낸다고 문제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빚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음의 무게는 조금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요즘
내가 조금
힘드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작은 창 하나가 생길 때가 있다.
비교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단호하셨다.
“남의 뜰을 오래 들여다보면
자기 뜰의 꽃을 놓치네.”
그 말 역시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남의 자식
남의 건강
남의 성공
남의 집
남의 노후를
오래 바라보다 보면 내 손안에 남아 있는 것들은 점점 작아 보인다.
겉으로 반듯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남에게 보이지 않는 밤이 있고,
늘 웃는 사람에게도 혼자 삼키는 눈물이 있다는 것이 세월을 살아보니 보였다.
선생님과 헤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현관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한마디를 더 하셨다.
” 김 군,
마음이 아주 힘든 날에는
인생 전체를
평가하지 말게.”
그 말씀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비 오는 날 하늘을 올려다보며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구름은 하늘의 일부이지
하늘 전부가 아니다.
사람의 불안도 그러할 것이다.
오늘의 어려움은 삶의 한때이지
삶 전체는 아니다.
지금도
마음이 어수선한 날이면 오래전 은사의 말씀을 떠올린다.
평온은 멀리 있는 높은 경지가 아니라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흔들린 뒤에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
오늘 먹을 밥을 챙기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 해내고,
감당할 수 없는 내일까지 미리 품지 않는 것.
그렇게
하루의 무게만큼만 살아보는 것.
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도
선생님의 말씀은 내 마음 한쪽에 작은 의자처럼 놓여 있다.
힘들 때 잠시 앉아 쉬어가는 자리.
말없이 숨을 고르는 자리.
바람 한 줄기 지나가고,
햇살 한 줌 머물 수 있도록
마음 한편을 조금 비워두는 자리.
어쩌면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던
마음의 평온은
아무 일도 없는 삶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와 앉을 자리를
가슴 안에 하나 남겨두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ㅡ 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