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어둠에게 미안해지는 밤 ― 우병기 「산골 봉화 골짜기」 를 읽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둠에게 미안해지는 밤 ― 우병기 「산골 봉화 골짜기」 를 읽다 2026.08.24
어둠에게 미안해지는 밤 ― 우병기 「산골 봉화 골짜기」 를 읽다

□ 우병기 시인

산골 봉화 골짜기

시인 우병기

입추 지난 늦은 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생경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고요하다

홀로 선 외딴 가로등 아래를

그냥 천천히 걸었어

얼게미취 꽃들은 해맑게 웃고

잔솔가지 아래에서 노래하는 쓰르라미는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

가만히 사박이며 걷는 모랫길은 불빛에 반사된 무수한

반짝임들로 은하수 같았지

언덕 아래 개울물 소리는 여울지는

숨은 달이 미워서인가 밤은 자꾸 깊어지고

아슴한 산마루 능선이 부드럽게 누워있는 밤

우거지게 모인 어둠 때문에 불빛이 미안한 밤

저벅거리는 나도 미안한 밤

어둠 한가운데 한 점 같은 불빛

그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은

넓은 바다의 일엽편주(一葉片舟)

세상에 나 혼자 같았어

적막강산아 너는 주무시는가

대답도 깜깜하였지

□ 우병기

경북 영양 출생,

시인.

현대자동차(주) 연구개발본부(16년), 자동차부품 관련 회사 임원(11년) 근무.

한강문학, 동양문학, 대한시문학협회, 노벨시화협, 문학그룹샘문, 청암문학, 단테문학 등에서 활동.

일간지 신문의 초대시 코너와 문학지의 지면에

시 100여 편 발표.

《수상》

한강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 30회 동양문학상 수상.

2025년 APEC 기념 국회 초대전 문학상 수상.

어둠에게 미안해지는 밤

― 우병기 「산골 봉화 골짜기」 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둠에도 체온이 있다.

봉화의 밤은 그 체온을 함부로 깨우지 말라고

낮게 숨 쉰다.

우병기 시인은

가로등 하나와 발소리 하나를 들고

그 적막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산골은 풍경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대한 검은 거울이 된다.

우병기 시인의 「산골 봉화 골짜기」 는

밤을 묘사한 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밤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사람이 자기 존재의 소음을 조금씩 낮춰가는 시다.

시의 첫머리부터

어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생경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고요하다”

‘부끄러울 정도로 고요하다’는 표현이 눈에 걸린다.

고요가

부끄러운가?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고요는 낯선 사치다.

엔진음과 기계음과 사람의 말소리 속에서 오래 몸을 써온 사람에게

아무 소리 없는 밤은 외려 자신의 내면을 너무 크게 들려주는 거울이 된다.

우병기 시인의 이력을 함께 놓고 보면 이 시의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에서 16년

자동차 부품 관련 회사 임원으로 11년

그의 생은 오랫동안 속도와 정밀함과 기계의 질서 가까이에 있었다.

수치와 설계

성과와 책임

생산과 효율의 세계를 지나온 사람이

봉화의 산골 골짜기에서는 전혀 다른 언어 앞에 선다.

쓰르라미

모랫길

개울물

산마루

어둠

가로등 하나

기계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로

속도의 세계에서 멈춤의 세계로

정확성의 세계에서 감각의 세계로 건너간다.

이 전환이 이 시를 단순한 전원 서정시와 다르게 만든다.

특히

“얼게미취 꽃들은 해맑게 웃고

잔솔가지 아래에서 노래하는 쓰르라미는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

이라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깊은 산골의 밤인데도 생명은 모두 제 방식으로 깨어 있다.

꽃은 웃고

쓰르라미는 노래하고

개울물은 여울지며

모랫길은 은하수를 흉내 낸다.

사람만 외로운 줄 알았는데

자연은 이미 수많은 작은 존재들의 호흡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이라는 구절은 쓰르라미에게만 걸리는 말이 아니다.

시인 자신에게도 걸린다.

겉으로는 혼자 걷고 있지만

꽃과 벌레와 물과 능선과 어둠이 모두 동행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동반자다.

그 점이 좋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빛에 대한 태도다.

대개 사람은 어둠을 두려워하고

빛을 구원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병기 시인은 반대로 말한다.

“우거지게 모인 어둠 때문에 불빛이 미안한 밤

저벅거리는 나도 미안한 밤”

이 두 행이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 중 하나다.

가로등 불빛조차 어둠에게 미안해진다.

자기 발소리마저 적막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감상적 표현이 아니다.

존재가 자기 크기를 줄이는 순간이다.

사람은 도시에서는 늘 공간의 주인처럼 행동한다.

불을 켜고

길을 만들고

산을 깎고

강을 막고

어둠까지 몰아낸다.

그런데

봉화의 골짜기에서는 한 인간이 거꾸로 어둠 앞에서 작아진다.

자기 불빛이 너무 밝지는 않은지

자기 발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살핀다.

이것은 자연 앞의 겸손이며

동시에 우병기 시의 중요한 미의식이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그 안에 잠시 허락받아 들어온 사람처럼 서 있는 태도,

그 태도가

시를 품위 있게 만든다.

“어둠 한가운데 한 점 같은 불빛

그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모습은

넓은 바다의 일엽편주”

여기서

산골은 갑자기 바다가 된다.

빛 하나는 등대가 되고,

사람은 한 척의 작은 배가 된다.

산과 바다가 서로 뒤집히는 이 비유는 매우 효과적이다.

봉화 골짜기의 적막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고,

그 넓음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보여준다.

우병기 시인은

자신을 거대한 주체로 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한 점

한 척

한 사람으로 줄인다.

이 축소의 미학이 좋다.

사람이 작아질수록 자연은 커지고

자연이 커질수록 시의 공간도 넓어진다.

마지막의

“적막강산아 너는 주무시는가

대답도 깜깜하였지”

라는 대목은 해학과 적막이 절묘하게 만난다.

산에게 말을 걸었는데,

대답마저 ‘깜깜하다’

이 얼마나 우병기 시인다운 생활어인가?

거창한 철학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침묵의 존재론

자연과 인간의 합일

우주의 무응답

그런 식으로 어렵게 닫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대답도 깜깜하였지”라고 끝낸다.

쉽다.

재미있다.

그런데

오래 남는다.

바로 이런 곳에서 시인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의 시는 자연을 우러르되 지나치게 장중하지 않고,

고독을 말하되 비애에 빠지지 않으며

적막을 다루되 해학 한 점을 놓친 적이 없다.

우병기 시인을 엿보면,

오랜 기간 산업 현장과 기업 조직에서 살아온 이력이 눈에 띈다.

그 삶은 분명 빠른 판단과 정교한 계산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시에 와서는 오히려 느림을 택한다.

“그냥 천천히 걸었어.”

이 한마디는 어쩌면 그의 후반 생애를 압축하는 문장처럼 읽힌다.

젊은 날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걸으며 듣는 것이 중요해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가를 바라본다.

속도를 올리기보다

발자국을 낮춘다.

그 변화가 시를 깊게 한다.

그의 작품에는 연구개발자의 세밀한 눈과

시인의 느린 귀가 함께 있다.

모랫길의 반짝임을 은하수로 보는 눈

숨은 달을 미워하는 밤을 감지하는 귀

산마루 능선이 “부드럽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감각,

이런 것은 단순한 풍경 관찰이 아니다.

한참

사물을 정확히 보아온 사람의 습관이

문학 안에서 정서로 바뀐 경우에 가깝다.

하여,

「산골 봉화 골짜기」 는 산촌의 밤을 노래한 시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이 오랜 사회적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자기 존재를 자연 속에서 다시 측정하는 시다.

도시에서는 직함이 있고

회사에서는 역할이 있으며

사회에서는 이름과 경력이 있다.

허나,

깊은 산골 밤에 들어서면 그 모든 것이 잠시 벗겨진다.

남는 것은

한 사람

한 걸음

한 줄기 불빛뿐이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크기를 다시 본다.

우병기 시인의 시가 매력적인 까닭은 이 철학을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로등 하나

쓰르라미 한 마리

모랫길의 반짝임

개울물 소리

이런 작은 것들로 충분히 깊은 곳까지 간다.

시심은 깊지만 문장은 살아 있다.

관념이 앞서지 않고

현장이 먼저 숨 쉰다.

해서

읽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쉽다고 가볍지 않다.

외려

오래 산업 현장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질량이 문장 밑에 눌려 있다.

그것이 이 시의 힘이다.

「산골 봉화 골짜기」 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결국 ‘미안함’이다.

불빛이 어둠에게 미안하고

발소리가 적막에게 미안하다.

사람이 자연 앞에서 이 정도로 작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품격이다.

세상에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

우병기 시인은 반대로 간다.

자기 발소리조차 줄이고

어둠의 잠을 깨울까 걱정한다.

그 낮아짐 속에서 외려 시인의 존재가 더 선명해진다.

이 시를 숙독하면

봉화 골짜기 하나가 마음 안에 남는다.

그곳에는 가로등 하나가 있고

그 아래 한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수십 년을 바쁘게 살아왔지만,

그 밤만큼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아무것도 설계하지 않으며,

그저 어둠의 허락을 받아 천천히 걷는다.

바로 그때

시가 시작된다.

우병기 시인의 「산골 봉화 골짜기」 는 밤을 밝히는 시가 아니라

자기 안의 불빛을 조금 낮추어

비로소 어둠의 얼굴을 보게 하는 시다.ㅡ청람

우병기 시인님께

선생님의 「산골 봉화 골짜기」 를 읽고 난 뒤,

한동안 마음에 남은 것은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한 사람의 자세였습니다.

세상은 대개 자신을 더 밝히려 합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이름을 드러내며, 성취를 앞세웁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시에는 반대의 품격이 있습니다.

불빛이 어둠에게 미안하고

발소리가 적막에게 미안한 마음.

이 얼마나 귀한 감각인지요.

그 미안함은 약함이 아니라 절제이고, 겸손이며, 오래 세상을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산업 현장과 기업의 중심에서 살아오셨습니다. 빠른 판단과 정확한 계산, 책임과 성과가 요구되는 세계를 오랜 세월 건너오셨습니다.

그 긴 시간을 지나 이제 시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자연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쓰르라미 한 마리

모랫길의 작은 반짝임

산마루의 낮은 곡선

강물의 졸음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선생님 삶의 깊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에는 기계를 움직이고 조직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한 줄의 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속도를 만들던 손이 이제는 고요를 만지고 있는 셈입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문득 선비 정신을 생각했습니다.

선비란 벼슬이나 학식으로만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한쪽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옳다고 여긴 길을 묵묵히 걷되, 그 올곧음이 타인을 베는 칼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

강직하되 거칠지 않고

곧되 완고하지 않으며

자기 목소리보다 세상의 작은 소리를 먼저 들을 줄 아는 사람.

선생님의 시에서 그런 선비의 결을 봅니다.

특히

「산골 봉화 골짜기」 에서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잠시 허락받아 들어온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을 보고도 자기 생각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어둠 앞에서도 불빛을 자랑하지 않으며

적막 속에서는 발소리조차 낮춥니다.

이런 태도는 시의 기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먼저 그렇게 살아야 문장에도 그런 낮은 빛이 스며듭니다.

선생님의 시가 쉽고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깊은 곳까지 데려갑니다.

철학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을 사유하게 합니다.

웃음 한 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문장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쉬워 보여도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문학의 질량입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 올곧은 마음과 깊은 시심으로 세상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선생님의 빛은 가로등처럼 큰소리로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 아니라, 어둠의 자리를 존중하면서 그 곁을 살며시 비추는 불빛이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시는 이미 그렇게 빛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빨라질수록 천천히 걷는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낮게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시대일수록 먼저 듣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시심은 단순한 개인의 서정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시는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의 마음을 조금 부드럽게 하고, 한 사람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며, 자기 안의 소음을 한 톤 낮출 수는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한다면, 시는 이미 세상의 일부를 밝힌 셈입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그런 시를 많이 남겨주시길 소망합니다.

산골의 어둠을 함부로 깨우지 않는 마음으로

사람의 상처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쓰르라미 한 마리의 울음까지 귀하게 듣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작게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오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시가 독자들에게 이렇게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큰 빛을 자랑하지 않았으나

사람이 길을 잃지 않을 만큼은 늘 밝혀준 시

우병기 시인님.

올곧은 선비의 정신을 잃지 않으시고, 그 강직함 사이에 따뜻한 바람 한 줄을 품은 채 오래 시를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걸음이 느려질수록 시는 더 깊어지고, 말이 적어질수록 그 침묵은 더 많은 것을 말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봉화의 깊은 밤에서 한 점의 불빛이 어둠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듯,

선생님의 시심 또한 세상을 눈부시게 밝히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넘어지지 않을 만큼 오래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람 김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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