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문짝 하나가 책상이 되기까지 ― 청람서루에서

문짝 하나가 책상이 되기까지 ― 청람서루에서 2026.08.26
문짝 하나가 책상이 되기까지 ― 청람서루에서

문짝 하나가 책상이 되기까지

― 청람서루에서

서재 한가운데

오래된 소나무 책상 하나가 놓여 있다.

이름하여 청람서루의 책상이다.

반듯하지 않다.

윤이 반짝이는 고급 원목도 아니다.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고, 나뭇결 사이에는 오래된 집의 냄새가 아직도 배어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책상이었던 것도 아니다.

백 년이 훨씬 넘은 시골집의 부엌문이었다.

사람이 살아온 세월보다 사물의 족보가 더 길 때가 있다.

이 문짝이 그렇다.

경기도 광주 오포에서 아홉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집안의 부엌문이었다. 어느 할아버지의 손이 문고리를 잡았을 것이고, 이름조차 족보의 작은 글씨로만 남은 윗대 어른들의 손때도 묻었을 것이다.

새벽이면 아궁이에 불이 들고, 밥 짓는 연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갔다. 겨울이면 문짝 안쪽에 김이 서렸고, 배고픈 아이들은 솥에서 밥 익는 냄새를 기다리며 그 문을 몇 번이고 밀고 당겼을 것이다.

그 문은

한 집안의 밥을 지켜보았다.

가난도 보았고

출산도 보았고

제사도 보았고

누군가의 출가와 귀향도 보았을 것이다.

누대의 가난도 그 문을 드나들었다.

농사는 해마다 하늘과 흥정해야 했다.

비가 너무 와도 걱정이었고, 오지 않아도 걱정이었다. 풍년이 든다고 가난이 완전히 물러나는 것도 아니었다.

가난은 대물림되는 성姓처럼 한 집안의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그런 집안에서 아이 하나가 누구나 받음직한 임명장과 상장 한두 장도 받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종이 몇 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집안 어른들에게는 달랐다.

그 종이에는 한 아이의 성적만 적혀 있지 않았다.

혹시 이 아이는 우리 집안의 가난이 건너지 못한 강을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적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는 작은 가능성도 크게 보인다.

어른들은 임명장과 상장을 귀하게 간직했다. 자식에게 물려줄 논밭은 넉넉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공부만큼은 다른 유산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어렵사리 쌀 몇 가마를 팔았다.

농부에게 쌀은 곧 돈이면서 한 해의 땀이었다.

쌀가마를 판다는 것은 창고 속 곡식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허리를 굽혀 보낸 계절 몇 장을 시장에 내놓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한양 유학이 열렸다.

지금 돌아보면 집안 어른들은 가난을 없앨 방법을 알았던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 가난만큼은 내 대에서 한 번 꺾어보자고 생각했던 듯하다.

자신들이 입었던 헌옷은 물려주어도

가난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쌀 몇 가마가 한 소년의 서울행 차표가 되었다.

그 차표는 사실 한 집안이 가난에게 내민 작은 도전장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살던 방은 한 칸짜리 쪽방이었다.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었다.

사과 궤짝을 구해 벽돌 위에 올려놓았다. 그 위에 책 몇 권을 얹으면 팔꿈치 하나 놓을 자리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것이 책상이었다.

가난은 좋은 가구를 주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물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힘을 길러주었다.

사과 궤짝은 책상이 되었고

솔방울은 학교 난로의 연료가 되었으며

훗날 부엌문은 글 쓰는 탁자가 되었다.

가난한 집에서는 사물에게 생이 한 번뿐이지 않다.

첫 번째 쓸모가 끝나면 두 번째 생을 기다린다.

버릴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기억까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과 궤짝 위에서 안병욱 교수의 『고뇌를 넘어 환희로』 를 큰소리로 읽었다.

제목이 먼저 가슴에 박혔다.

고뇌를 넘어 환희로.

가난한 소년에게 그 말은 철학서의 제목만이 아니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마을의 이름 같았다.

언젠가는 꼭 도착하고 싶은 곳.

쪽방은 좁았으나 문장은 넓었다.

팔을 벌리면 벽에 닿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마음은 광야로 나갔다.

그 무렵 경복고등학교에서 만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는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비행기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책이었지만, 읽을수록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이 무엇으로 견디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고독과 책임과 우정과 존엄이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을 들어 올리는가

그 물음들이 어린 가슴에 오래 남았다.

사과 궤짝은 좁았으나 그 위에 펼쳐진 《인간의 대지》는 넓었다.

그때부터 문학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대지를 읽는 일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한 사람

가난에 눌린 한 사람

사랑 때문에 우는 한 사람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한 사람

그 사람들의 마음을 문장으로 살펴보는 일.

문학에 뜻을 두게 된 까닭도 거기에 있었던 듯하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국어 교사가 되었다.

더구나 펜대를 잡은 학교는 백석과 소월, 춘원의 문학적 숨결이 배어 있는 오산학교였다.

돌이켜보면 묘한 인연이다.

사과 궤짝 위에서 문학을 꿈꾸던 소년이

수많은 문학인의 발자취가 남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와 소설과 문장을 가르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무렵 고향집의 부엌문이 다시 떠올랐다.

시골집을 개축하며 떼어낸 뒤 버리지 않고 한쪽에 세워두었던 소나무 문짝이었다.

약 사십 년 전쯤이다.

농사 짓는 형님에게 부탁했다.

“이 문짝으로 책상 하나 만들어주세요.”

부엌문은 그렇게 책상이 되었다.

밥을 드나르게 하던 문이 문장을 드나르게 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보다 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환생이 또 있을까.

한때 솥뚜껑 여닫는 소리를 듣던

나무 위에서

이제 시가 태어나고

평론이 태어나고

수필이 태어나며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태어난다.

밥과 글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밥이 몸을 살린다면

문장은 마음을 살린다.

한 집안의 부엌을 지키던 문짝이 한 사람의 문학을 받치는 책상이 되었으니, 이 책상은 가구라기보다 한 생애의 전환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청람 문학의 모태다.

그 책상에서 습작했다.

국어 교사가 된 뒤에도

문학평론을 쓰면서도

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도

마음이 산란한 날에도

문장이 끝내 열리지 않는 새벽에도

그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더 많은 책이 놓였고, 쓰는 글의 종류도 많아졌다.

이상하게도 문장이 막히는 날이면 눈길은 자꾸 책상 표면의 오래된 흠집으로 내려간다.

손끝으로 나뭇결을 만져보면 거기에는 활자로 남지 않은 집안의 역사가 있다.

아궁이의 재가 있고

부엌 연기가 있고

쌀가마를 팔던 어른들의 굽은 등이 있고

서울 가는 아이의 등을 바라보던 가족들의 눈빛이 있다.

그 흠집 어딘가에는 반장 임명장 한 장을 펴놓고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을 어른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상장 한두 장을 보며

우리 집에도 글공부하는 아이 하나 생겼다고

말없이 기뻐했을 얼굴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학자가 되기를 바랐는지

선생이 되기를 바랐는지

그저 굶지 않고 살기를 바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들에게까지 내려온 가난을 다음 아이에게는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

그 마음이 쌀 몇 가마가 되었고

쌀 몇 가마가 서울 유학이 되었으며

서울 유학이 책을 만나게 했고

책이 문학을 만나게 했으며

문학이 다시 이 책상으로 돌아왔다.

삶은 참 먼 길을 돌아 제자리로 온다.

청람서루의 책상 앞에 앉으면 때로는 글을 쓴다기보다 오래된 빚을 갚는 듯한 마음이 든다.

조상들에게 진 빚

가난한 부모 세대에게 진 빚

공부할 수 있게 쌀가마를 내어준 집안 어른들에게 진 빚

사과 궤짝 위에서도 책을 읽게 해준 가난에게 진 빚이다.

가난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가난은 때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했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줄였으며

꿈 앞에 오래 기다림을 세워두었다.

그럼에도 그 가난 속에서 배우게 된 것이 있다.

없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

사과 궤짝도 책상이 될 수 있고

솔방울도 교실을 데우는 불이 될 수 있으며

부엌문도 문학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문학도 그와 다르지 않다.

상처를 문장으로 바꾸는 일

가난을 사유로 바꾸는 일

눈물을 비유로 바꾸는 일

한 사람의 고독을 다른 사람의 위로로 바꾸는 일.

문학은 삶이 버리고 간 것들에게 두 번째 생을 주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청람서루의 책상은 내게 문학을 가장 오래 가르쳐준 스승이다.

그 책상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만 몸으로 가르친다.

문짝도 책상이 될 수 있다고.

쓸모가 끝났다고 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오래 버틴 나무에는 다음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청람서루에 들어와 그 책상을 바라보면 값비싼 명품 가구 앞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묘한 숙연함이 있다.

그 책상에는 가격표를 붙일 수 없다.

백 년 넘는 한 집안의 시간이 들어 있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보려 했던 어른들의 결심이 들어 있으며

쪽방의 사과 궤짝과 《고뇌를 넘어 환희로》 가 들어 있고

경복고 시절 탐독하던 《인간의 대지》가 들어 있고

국문학을 향한 꿈과

오산학교의 교단과

수십 년의 습작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상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함께 만든 한 권의 두꺼운 책이다.

표지는 소나무이고

본문은 흠집이며

행간에는 조상의 숨결이 들어 있다.

오늘도 그 앞에 앉는다.

예전처럼 글을 쓴다.

문장이 잘 풀릴 때도 있고

한 줄을 붙들고 오래 앉아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책상의 오래된 결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나뭇결은 잘 쓰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단한 작가가 되라고도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만 일러주는 듯하다.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말라고.

사람은 높은 곳을 바라볼수록 발밑을 잊기 쉽다.

문학도 이름이 생기고 경력이 쌓일수록 처음의 가난한 마음을 잊기 쉽다.

그때 책상은 발목을 잡아준다.

아니, 뿌리를 잡아준다.

반장 임명장 한 장을 귀히 여기던 집안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과 궤짝 위에서도 책이 좋았던 소년으로 돌아가게 하며

《인간의 대지》 를 읽으며 사람다운 사람이 무엇인지 생각하던 학생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돌아감이 바로 초심일 것이다.

돌아보면

집안 어른들이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것은 가난이었고, 뜻하지 않게 물려준 것은 더 귀한 것이었다.

견디는 법

아끼는 법

쓸모를 다시 찾는 법

배움을 귀하게 여기는 법

작은 가능성을 믿는 법.

가난은 끊고 싶었던 유산이었으나

그 가난을 건너는 과정에서 생긴 정신은 버릴 수 없는 유산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상은 가난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가난이 패배한 자리이다.

누대의 부엌문이 문학의 책상이 되었으니 그렇다.

밥을 지키던 문이 글을 지키게 되었고

쌀 몇 가마로 떠난 소년이

그 문짝 위에서 수십 년째 문장을 짓고 있으니 그렇다.

생은 때때로 아주 늦게 의미를 완성한다.

백 년 전 그 부엌문을 달던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손때 묻은 문짝 위에서 먼 후손이 시를 쓰고 평론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쌀가마를 내어놓던 집안 어른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 쌀이 훗날 책이 되고

책이 교단이 되고

교단이 문학이 되어

다시 오래된 문짝 위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이것이 삶의 신비다.

사라진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양을 바꾸어 돌아온다.

가난은 절약이 되어 돌아오고

고생은 사유가 되어 돌아오며

부엌문은 책상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청람서루 한가운데 놓인 이 책상은 그 오랜 귀환의 증거다.

문짝은 이미 오래전에 문으로서의 생을 끝냈다.

그런데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가난에서 문학으로

밥에서 글로

조상에서 후손으로

한 사람의 생애가 오가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

하여 이 책상은 가구가 아니다.

조상에게서 건너온 한 장의 오래된 편지다.

그 편지의 첫 문장은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네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한다

다만 여기까지 견뎌온 마음 하나는 남긴다

그 편지를 받은 뒤 수십 년이 흘렀다.

이제야 조금씩 답장을 쓰고 있다.

시 한 편으로

평론 한 편으로

사람을 위로하는 문장 한 줄로.

청람서루의 오래된 소나무 책상 위에서.

한때 밥을 드나르게 하던 문짝 위에서

오늘도

문장을 짓는다.

어쩌면 평생 써도 다 갚지 못할

조상에게 보내는

긴 답장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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