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바람의 위로 ㅡ청람 김왕식

바람의 위로 2026.08.26
바람의 위로

바람의 위로

바람은

상처 난 나무에게

어디가 아픈지 묻지 않는다

부러진 가지 곁을 지나며

남은 잎 몇 장만

가볍게 흔들어 준다

위로는

쓰러진 것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쓰러진 자리에도

하늘 한 칸 남아 있음을

모른 척 보여주는 일

떠난 사람의 빈자리에는

말보다 먼저 바람이 들어와

의자에 남은 체온을

조금씩 바깥으로 옮겨 놓는다

붙잡지 않는 것이

더 오래 곁에 머무는 날이 있다

바람은 꽃을 가지지 않고

향기를 데려가고

구름을 붙들지 않고

먼 곳까지 건너간다

마음에 문을 너무 많이 달면

들어오는 것보다

갇히는 것이 많아진다

잃은 것은

한동안 창밖에 두고

남은 것은

햇빛 쪽으로 돌려놓을 일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바람이 머물다 갈 자리

빛이 눕다 갈 자리

누군가의 침묵이

잠시 신발을 벗어둘 자리

오늘도 바람은

아무 말 없이

풀잎의 허리를 낮추고 지나간다

낮아진 자리마다

하늘이 조금씩

깊어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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