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목련에서 지구의 무게를 읽는 시인 ― 시인 김나옥 시의 은혜 · 관계 · 무아의 존재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송이 목련에서 지구의 무게를 읽는 시인 ― 시인 김나옥 시의 은혜 · 관계 · 무아의 존재미학 2026.09.02
□ 윤선 김나옥 시인 ㅡ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부총장

■
한 송이 목련에서 지구의 무게를 읽는 시인
― 시인 윤선 김나옥 시의 은혜 · 관계 · 무아의 존재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윤선 김나옥 시인의 시는
햇살, 목련, 눈빛, 손길, 전철 안의 낯선 사람, 떨어지는 꽃잎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과 장면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탐색한다.
그의 시세계는 거대한 관념이나 난해한 언어보다 평범한 사물에 오래 머무르는 시선을 중시하며, 그러한 시선은 삶의 은혜, 기쁨의 발견, 사랑의 실천, 공동체적 연대, 무아와 비움의 정신으로 확장된다.
본고는 「은혜」, 「목련」, 「말없이」, 「지구수비대」, 「낙화」 를 중심으로 김나옥 시의 내적 구조와 미의식을 살핀다. 이 다섯 작품은 각각 독립된 생활서정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한 흐름으로 놓고 읽을 경우 ‘받음→발견→나눔→연대→내려놓음’이라는 정신적 노정을 형성한다.
특히 「낙화」 의 “번지점프하듯 / 무아 연습”은 전통적인 낙화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신체 감각과 결합함으로써, 소멸을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자아의 무게를 벗어나는 행위로 전환한다.
또한 「지구수비대」 는 평범한 사람을 세계를 지탱하는 존재로 새롭게 호명함으로써 김나옥 시의 공동체적 휴머니즘을 잘 드러낸다.
윤선 김나옥의 시는 생활의 따뜻함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무엇을 받으며 살아가고, 어떻게 타자와 관계하며, 마지막에는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묻는 존재론적 서정으로 나아간다.
Ⅰ. 여는말
ㅡ작은 것을 한참 바라보는 시인의 눈
좋은 시인은 세상에 없던 사물을 새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있었으나 사람들이 너무 익숙하여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사람이다.
길가의 꽃 한 송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
말없이 잡아주는 손,
전철 맞은편에 앉은 이름 모를 사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보고 지나간다.
시인은 그 앞에서 잠시 멈춘다.
김나옥의 시가 시작되는 지점도 바로 그 멈춤이다.
그의 시에는 거대한 사건이 드물다. 세계사의 비극이나 거대한 이념, 복잡한 철학적 개념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햇살이 있고 목련이 있으며 사람의 눈빛과 손길이 있다.
전철 안의 낯선 사람이 있고, 마지막에는 떨어지는 꽃잎 한 장이 있다.
그런데 김나옥의 시선을 한 번 통과한 뒤에는 이 평범한 것들이 이전과 같은 사물로 남지 않는다.
햇살은 은혜가 되고
목련은 기쁨의 전언이 되며
눈빛과 손길은 사랑의 언어가 된다.
전철의 승객은 지구를 붙드는 존재가 되고
꽃잎은 자아를 벗어버리는 무아의 수행자가 된다.
김나옥 시의 미학은 이처럼 작은 사물의 존재론적 확대에 있다.
그는 큰 것을 크게 말하기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본다.
본고에서는 김나옥의 작품 가운데 「은혜」, 「목련」, 「말없이」, 「지구수비대」, 「낙화」 를 하나의 연속된 정신적 흐름으로 읽고자 한다.
그 순서는
은혜 → 기쁨 → 사랑 → 연대 → 무아
또 다른 언어로 옮기면
받음 → 발견 → 나눔 → 함께함 → 내려놓음
이다.
이 흐름은 김나옥 시가 생활의 따뜻함에서 출발하여 인간 존재의 성숙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Ⅱ. 시 「은혜」
ㅡ결핍의 셈법을 뒤집는 시
김나옥 시의 출발점에는 ‘받음’에 대한 감각이 놓여 있다.
「은혜」 는 짧은 작품이지만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다.
ㅡ
내 서 있는 햇살의 은혜를
노래하며
내 함께 한 사람들의 초상을
시로 그리며
내 가난하지 않음을
새로이 알고 미소 짓다
ㅡ 시 《은혜》 전문
이 작품의 중심은
“내 가난하지 않음을”
이라는 한 구절에 있다.
사람은 흔히 자신의 삶을 ‘없는 것’으로 계산한다.
가지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것
도달하지 못한 자리
만나지 못한 사람.
그렇게 없는 것을 하나씩 세다 보면 자신의 생은 어느새 결핍의 목록이 된다.
김나옥은 그 계산법을 뒤집는다.
오늘 자신이 햇살 아래 서 있다는 것.
함께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것.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시로 그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이미 가난하지 않다.
여기에서 ‘은혜’는 반드시 거대한 사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침이 오는 일
햇살을 받는 일
누군가와 함께 한 시절이 있다는 일이 모두 은혜다.
김나옥에게 풍요는 소유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시가 결핍의 철학보다 충만의 철학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삶은 더 가져야 충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알아볼 때 비로소 충만해진다.
이러한 시선은 다음 작품 「목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Ⅲ. 시 「목련」
ㅡ미래에 두었던 기쁨을 현재로 되돌리는 시
「은혜」 가 삶의 풍요를 발견하는 작품이라면, 「목련」은 그 풍요의 정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ㅡ
목련과 마주하여 미소짓는다
꽃송이는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
먼 하늘 이어
목련이 전해 주는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기쁨은
한번도 나를 안고 있는 손을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기쁨 속에 있다 하네
ㅡ 시 《목련》 전문
목련은 한국 서정시에서 매우 익숙한 소재다.
순결, 봄, 흰빛, 낙화 같은 이미지와 자주 결합되어왔다.
김나옥은 목련을 단순한 관상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목련에게 목소리를 준다.
그 목소리는 기쁨이 한 번도 자신을 놓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의 사유가 깊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쁨을 미래에 둔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고
형편이 좋아지면 웃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얻으면 삶이 충만해질 것이라 기대한다.
김나옥은 기쁨을 미래에서 현재로 데려온다.
기쁨은 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을 품고 있었다.
문제는 기쁨의 부재가 아니라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의 부재다.
따라서 「목련」 은 꽃에 관한 시인 동시에 인간의 인식에 관한 시다.
목련은 기쁨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삶 속에 존재하고 있던 기쁨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다.
이에서 「은혜」 와 「목련」 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은혜」 가 이미 가진 풍요를 발견하는 시라면
「목련」 은 이미 주어진 기쁨을 발견하는 시다.
둘 다 획득의 시가 아니라 발견의 시다.
Ⅳ. 시 「말없이」
ㅡ언어보다 오래 남는 체온
김나옥의 시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기쁨에 머물지 않는다.
「말없이」 에 이르면 그 감정은 타자에게로 이동한다.
ㅡ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아십니까
가만히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으로
더 많이
말할 수 있습니다
따뜻이
잡아주는 손길로
더 많이
말할 수 있습니다
ㅡ시 《말없이》 전문
이 작품은 매우 간결하다.
그 간결함 자체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킨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시 역시 말을 줄인다.
눈빛과 손길만을 남겨둔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이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교훈에 그치지 않는다.
핵심은 현존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곁에 온전히 있어주는 일이다.
인간은 아픈 사람 앞에서 종종 말부터 찾는다.
무엇을 말해야 위로가 될지 고민한다.
때로는 그 고민이 오히려 상대의 슬픔을 가린다.
김나옥은 사랑의 언어를 말 이전의 자리로 되돌린다.
눈빛.
손길.
체온.
머무름.
말없이 옆에 앉아주는 행위.
그러한 작은 행동이 때로는 수백 마디 위로보다 깊다.
「말없이」 는 김나옥 시의 관계미학을 잘 드러낸다.
사람은 말로만 연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침묵으로도 연결되고
체온으로도 연결되며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아픔에 참여할 수 있다.
김나옥의 시에서 사랑은 감정의 선언이라기보다 관계의 자세다.
Ⅴ. 시 「지구수비대」
ㅡ평범한 사람이 세계의 중력이 되는 순간
「말없이」 의 사랑이 가까운 타자를 향한 것이라면, 「지구수비대」 에서는 그 사랑의 범위가 낯선 사람에게까지 확장된다.
ㅡ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맞은편에 앉은
낯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지구가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는
질긴 힘을 느낀다
어쩌다
마주앉아
그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매
문득
지구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꽉 붙들고 있는
힘세고 건강한 손이
그대였음을 느낀다
내가 알고 있는 그대
혹은 내가 모르는 그대
ㅡ 시 《지구수비대》 전문
이 작품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지구수비대’라는 말은 어린 시절의 만화나 SF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이 지구를 구하는 서사를 예상하게 한다.
김나옥은 그 기대를 완전히 뒤집는다.
그의 지구수비대는 전철 안에 앉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하루를 살아낸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출근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며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고
누군가는 학생을 가르치고
누군가는 병자를 돌본다.
이 평범한 일들이 모여 세상을 지탱한다.
과학의 언어로 지구를 붙드는 것은 중력이다.
김나옥의 시적 상상력은 또 하나의 중력을 발견한다.
사람이 사람을 책임지는 힘이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대
혹은 내가 모르는 그대”
여기에서 ‘그대’는 무한히 확장된다.
가까운 사람뿐 아니라 이름 모르는 타자까지 포함된다.
인간은 서로 독립된 존재처럼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타인의 노동과 배려 위에 서 있다.
누군가 농사를 지었기에 밥을 먹고
누군가 전기를 관리하기에 밤에도 불을 밝히며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의 도움 속에서 살아간다.
「지구수비대」 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연대의 구조를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김나옥의 시는 이 작품에 이르러 개인적 서정을 넘어 공동체적 휴머니즘에 도달한다.
Ⅵ. 시 「낙화」
ㅡ무게를 벗는 마지막 공부
김나옥 시의 정신적 노정에서
가장 깊은 곳에 놓일 작품은 「낙화」 이다.
ㅡ
저무는 봄날
꽃잎이
소리없이
가볍다 가볍게
떨어져 내린다
저렇게
한 짐 꽃잎으로
가벼이
허공에 안기기 위해
헛디뎌가며
숨넘어가며
허우적거리며
뛰어내린다
그래
처음엔
모두
번지점프하듯
무아 연습
시작하지
ㅡ 시 《낙화》 전문
낙화는 오래도록 이별과 죽음, 허무를 상징해왔다.
김나옥은 낙화를 단순한 상실로 보지 않는다.
그는 꽃이 떨어지는 행위에서 ‘놓음’을 본다.
특히
“한 짐 꽃잎으로
가벼이”
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긴장을 형성한다.
꽃잎은 가볍다.
그런데 한 짐이다.
그 안에는 한 계절의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을 견디고
꽃눈을 만들고
햇빛과 비를 받아
마침내 피어난 시간이 꽃잎 안에 들어 있다.
그렇게 충분히 피었던 것이 마지막에는 자신을 붙들고 있던 가지를 놓는다.
사람도 평생 무엇인가를 짊어진다.
이름
경력
명예
재산
관계
사랑
상처
기억.
인생의 대부분은 채우는 연습이다.
김나옥은 꽃이 떨어지는 순간에서 반대의 공부를 본다.
“놓는 공부.
비우는 공부.”
특히 마지막의
“번지점프하듯
무아 연습”
은 작품의 시적 성취가 집중되는 부분이다.
고전적인 불교적 개념인 ‘무아’와 현대적이고 육체적인 ‘번지점프’를 연결한 발상이 신선하다.
무아를 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꽃잎이 몸으로 보여준다.
자기를 붙들던 가지를 놓는다.
그 순간 추락은 동시에 해방이 된다.
여기에서 김나옥의 무아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기 자신만을 끝까지 움켜쥐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다.
이 작품은 앞선 네 작품의 결론처럼 읽힌다.
「은혜」 에서 받은 것을 발견하고
「목련」 에서 기쁨을 확인하고
「말없이」 에서 사랑을 나누고
「지구수비대」 에서 타자와 연대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놓을 수 있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떠나는 것은 도피일 수 있다.
충분히 사랑한 사람이 놓는 것은 자유가 될 수 있다.
김나옥 시의 무아는 공허의 무아가 아니라 충만 뒤의 비움이다.
Ⅶ. 교육자의 이성과 시인의 감성
김나옥은 교육학적 수련과 교육 현장의 경험을 가진 시인이다.
교육과 시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은 설명을 요구한다.
시는 때로 설명을 줄여야 한다.
교육은 명료한 개념을 필요로 한다.
시는 개념보다 하나의 이미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김나옥의 작품에는 이 두 세계가 만나는 흔적이 있다.
그의 시에는 삶을 향한 가치지향이 분명하다.
감사
기쁨
사랑
연대
비움.
다만
그것을 직접 훈계로 제시하지 않는다.
햇살을 보여주고
목련을 보여주고
손길을 보여주며
전철의 사람과 떨어지는 꽃잎을 보여준다.
좋은 교육과 좋은 시는 이 점에서 닮았다.
답을 미리 주기보다 스스로 볼 수 있게 하는 것.
김나옥에게 교육자의 경험이 시적 설명으로 과도하게 흘러가지 않고, 인간을 오래 바라보는 눈으로 승화될 때 그의 시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Ⅷ. 김나옥 시의 미학적 특질
김나옥 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생활 속 사물의 존재론적 확대다.
작고 평범한 것에서 삶의 본질을 읽는다.
둘째, 투명하고 절제된 언어다.
그는 난해함을 지향하지 않는다.
쉬운 언어로 깊은 세계에 접근하려 한다.
셋째, 인간에 대한 신뢰다.
냉소보다 연민과 따뜻함이 그의 작품을 지배한다.
넷째, 관계 중심의 세계관이다.
인간은 독립된 섬이 아니라 서로를 떠받치는 존재다.
다섯째, 비움으로 향하는 정신성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가지려는 방향보다 마지막에는 놓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다섯 가지 특징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라봄’이다.
김나옥은 오래 바라본다.
그 오래 바라봄 속에서 사물은 의미를 얻는다.
Ⅸ. 김나옥 시세계의 정신적 궤적
다섯 작품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으면 김나옥 시의 정신적 구조는 보다 분명해진다.
「은혜」 는 받음의 시다.
「목련」 은 발견의 시다.
「말없이」 는 나눔의 시다.
「지구수비대」 는 연대의 시다.
「낙화」 는 내려놓음의 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다.
한 인간이 자신을 중심에 놓던 시선에서 점차 타자와 세계를 받아들이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마저 놓는 과정이다.
김나옥 시의 내적 움직임은
결핍에서 충만으로
충만에서 감사로
감사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무아로
나아간다.
여기에
그의 시가 가진 정신적 아름다움이 있다.
Ⅹ. 맺음말
ㅡ꽃잎 하나와 지구 사이
김나옥의 시는 거창하지 않다.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햇살
목련
눈빛
손
전철의 사람
꽃잎.
그런데 그 작은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닿는다.
무엇이 풍요인가.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마지막에는 무엇을 놓아야 하는가.
김나옥은 이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물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의 시가 가진 가장 귀한 힘이다.
시인은 독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지나친 것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사람이다.
김나옥의 시를 숙독하고 나면
전철 맞은편의 낯선 사람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저 사람이 오늘도 지구 한쪽을 붙들고 있을지 모른다.
목련 한 송이를 바라볼 때도 생각하게 된다.
기쁨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꽃잎을 볼 때에는 또 다른 생각에 닿는다.
떨어짐은 반드시 패배가 아니다.
충분히 피어난 존재가 자신의 무게를 놓는 마지막 자유일 수 있다.
김나옥의 시가 앞으로 더욱 깊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도 이 지점에 있다.
이미 가진 따뜻함을 버릴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따뜻함을 조금 덜 설명하고, 사물이 스스로 말하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다.
시인은 감동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동이 일어날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김나옥의 시가 가진 선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신뢰가 한층 절제된 언어와 낯선 이미지와 결합한다면 그의 시는 생활서정의 따뜻함을 넘어 존재의 깊이에 오래 남는 시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꽃잎 하나가 떨어진다.
전철 안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목련 한 송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언뜻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인다.
김나옥의 시 안에서는 모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꽃잎은 자신을 놓는 법을 보여주고
사람은 지구를 붙드는 법을 보여주며
목련은 이미 받은 기쁨을 보여준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은 하나다.
“삶을 충분히 사랑하되
끝내 움켜쥐지는 않는 마음.”
그것이
김나옥 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한참 남는 문장일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