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사람과 사물의 곁을 오래 지키는 시인 ― 우병기 시인 시의 순진무구, 연민, 기억의 미학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과 사물의 곁을 오래 지키는 시인 ― 우병기 시인 시의 순진무구, 연민, 기억의 미학 2026.09.02
사람과 사물의 곁을 오래 지키는 시인 ― 우병기 시인 시의 순진무구, 연민, 기억의 미학

□ 우병기 시인

사람과 사물의 곁을 오래 지키는 시인

― 시인 우병기 시의 순진무구, 연민, 기억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여는말

작은 것 곁에 오래 머무는 시선

좋은 시인은 세상을 멀리서 보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가까워 아무도 오래 바라보지 않는 것 곁에 머무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웃음

바다 위에 엎드린 작은 섬

늦가을 풀밭 위에 떨어진 은행잎 몇 장.

대부분의 사람은 지나간다.

우병기는 지나가지 않는다.

천상병의 얼굴 앞에서는 그가 남긴 문학사적 이름보다 먼저 한 아이 같은 웃음을 본다.

작은 섬 앞에서는 지형의 크기보다 혼자 엄마 쪽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외로움을 본다.

은행잎 앞에서는 떨어진 낙엽보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 하는 노랑나비의 몸짓을 본다.

이 세 편은 대상도 다르고 정조도 다르다.

「천상병」 은 한 시인을 향한 헌사이고

「작은 섬」 은 자연을 인간적 존재로 읽어낸 시이며

「은행잎」 은 만추의 낙엽에서 떠남과 기억의 의미를 찾은 작품이다.

그런데 세 작품 안에는 하나의 마음이 흐르고 있다.

좋은 것을 보면 가까이 앉고 싶어 하는 마음

외로운 것을 보면 쓰다듬고 싶은 마음

떠나는 것을 보면 머물 자리 하나 내어주고 싶은 마음.

이것이 우병기 시인 시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원형이다.

그의 시에는 세상을 해부하는 칼보다

세상 한쪽을 만져보는 손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 손은 천상병에게 막걸리 잔을 건네고

작은 섬을 천천히 밀어주며

은행잎 몇 장을 책갈피 속에 데려온다.

우병기의 삶의 가치철학은 바로 이 손의 방향에서 읽을 수 있다.

사람을 높이기보다 가까이 앉히고

외로운 존재를 구경하기보다 곁에 가며

떠나는 것을 붙잡기보다 기억 속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

세 작품은

사랑하는 법과 함께 있는 법과 보내는 법을 말하고 있다.

□ 가운뎃말

  1. 맑음을 사랑하는 법

― 「천상병」 과 순진무구의 인간학

우병기의 「천상병」 은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천상병이라는 시인의 문학사적 위상이 아니다.

우병기는 그를 ‘위대한 시인’이라는 높은 자리에 세우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얼굴로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있고

막걸리 잔이 있으며

세상의 고통을 겪고도 다 닳지 않은 어린 영혼이 있다.

까불까불

우헤헤, 내사 어린이

처진 눈매 아래 크게 벌린 함박웃음

고뇌조차 씻어버린 환한 얼굴

아가였다

나이는 환갑 언저리

맑은 영혼의 그림자는

두꺼운 성경 어디쯤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을 만든다

순진무구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은 막걸리 잔

트림으로 쏟아낸

감탄의 시어들은 거룩하다

순백의 바늘로 뜨개질하셨겠지

좋아함만큼 많지 않음이 안타까워라

또다른 소풍은 어떠신가요

아름다우신 가요

그 대답이 듣고 싶은 지금

감히, 함께 해장하고 싶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ㅡ시 「천상병」 전문

작품의 첫머리부터 매우 우병기답다.

“까불까불

우헤헤, 내사 어린이”

천상병을 근엄하게 소개하지 않는다.

문학사의 거장이라는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웃는 얼굴부터 보여준다.

이어지는

“아가였다

나이는 환갑 언저리”

라는 두 행은 이 작품의 중요한 미학적 중심이다.

육체의 나이는 환갑 언저리인데

영혼은 여전히 아이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린이’는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세상을 많이 겪고도 탁해지지 않은 상태다.

세상을 몰라서 순진한 사람은 많다.

세상을 알고도 맑은 사람은 드물다.

우병기가 천상병에게서 사랑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맑은 영혼의 그림자는

두꺼운 성경 어디쯤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을 만든다”

라는 구절도 그래서 의미가 깊다.

천상병을 특정 종교적 교리 속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맑은 생이 경전 어디엔가 이미 적혀 있을 것 같은 인간적 신뢰를 표현한다.

시인은 여기서 삶과 문학을 분리하지 않는다.

좋은 시는 좋은 문장을 쓰는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생이 어느 정도 그 언어를 감당할 때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우병기는 천상병의 시보다 먼저

천상병의 맑음을 본다.

중반부의

“순진무구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은 막걸리 잔”

은 성과 속을 함께 품는 이미지다.

한 손에는 순진무구

다른 손에는 막걸리.

보통의 사고라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병기는 두 세계를 자연스럽게 한 몸 안에 놓는다.

이어

“트림으로 쏟아낸

감탄의 시어들은 거룩하다”

라고 한다.

‘트림’과 ‘거룩하다’의 결합은 매우 생활적이면서도 낯설다.

거룩함을 제단 위에서 찾지 않는다.

막걸리를 마시고 트림하는 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도 거룩함을 본다.

이것이 우병기 시의 중요한 가치철학이다.

삶의 진정한 품격은 세속을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다는 것.

마지막의

“감히, 함께 해장하고 싶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는 더욱 인간적이다.

죽은 시인을 먼 하늘에 모셔두지 않는다.

다시 만나 술도 마시고 해장도 하고 싶어 한다.

존경이 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경이 친밀함으로 내려오는 순간이다.

우병기는 사람을 높이 세워 사랑하기보다

곁에 앉혀 사랑하는 시인이다.

이 점은 다음 작품 「작은 섬」 에서 더 넓은 존재를 향한 연민으로 확장된다.

  1. 외로운 존재와 함께 있는 법

― 「작은 섬」 과 연민의 윤리

「천상병」 에서 사람에게 향했던 따뜻한 시선은 「작은 섬」 에 이르면 자연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시선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병기는 섬을 섬으로만 보지 않는다.

바다 위에 혼자 놓인 작은 존재의 외로움을 읽는다.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이 애처롬다

바다가 출렁이면 스스로는 온몸 흔들며

밤낮 엄마 쪽만 종일토록 바라보는

작은 섬

마주하면 쓰다듬고 싶다

다가가 두 손으로 밀어주고 싶다

밀면서 가고픈 곳 물어도 보고

쉬엄쉬엄 그곳도 데려다주고 싶다

저녁놀 따라 한참씩도 가 보고

자락 넓은 형 누나 섬들도 찾아 놀다가

이슥해지면 육지 엄마 기슭으로 데려와

밤새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싶다

그런 밤이면

엄마 앞자락 파도는 눈치껏 미리 잠들고

동무하자 손짓 없어도 별 몇은 찾아들고

달빛도 단박에 뛰어와 더할 나위 없겠지

두 손으로 천천히 밀어주며 듣노라면

홀로 삼키어 더 아릿한 가슴 절절하리라

한 번씩 쓰다듬고 밀어주고 싶다

ㅡ 시 「작은 섬」 전문

첫 연에서 작은 섬은 곧바로 생명을 얻는다.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이 애처롬다”

라는 표현에서 섬은 더 이상 지리적 대상이 아니다.

이어

“밤낮 엄마 쪽만 종일토록 바라보는

작은 섬”

이라고 한다.

육지는 엄마가 되고

작은 섬은 엄마와 떨어져 있는 아이가 된다.

이 의인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우병기의 시적 시선이 어떤 존재를 만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대상을 바라본 뒤 평가하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준다.

그래서 곧바로

“마주하면 쓰다듬고 싶다”

라는 반응이 나온다.

‘쓰다듬고 싶다’는 표현은 우병기 시세계의 중요한 동사다.

정복하고 싶다

가지고 싶다

설명하고 싶다가 아니다.

쓰다듬고 싶다.

이것은 힘의 언어가 아니라 돌봄의 언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행이다.

“밀면서 가고픈 곳 물어도 보고

쉬엄쉬엄 그곳도 데려다주고 싶다”

이 두 행에는 우병기의 관계철학이 깊게 스며 있다.

시인은 섬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먼저 결정하지 않는다.

“가고픈 곳”을 묻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의 방향을 대신 정하지 않는다.

먼저 묻고

그가 원하는 곳으로

“쉬엄쉬엄” 함께 가겠다고 한다.

이 ‘쉬엄쉬엄’이 매우 중요하다.

사랑은 때로 상대보다 앞서간다.

도와준다는 이유로

충고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자신의 속도에 맞추려 한다.

우병기의 사랑은 다르다.

그의 손은 강제로 끌고 가지 않는다.

천천히 밀어준다.

떠미는 손과 밀어주는 손은 다르다.

떠미는 손에는 자기 목적이 있고

밀어주는 손에는 상대의 방향이 있다.

「작은 섬」 은 바로 이 차이를 매우 부드럽게 형상화한다.

중간부에 이르면 세계 전체가 작은 섬 하나를 위해 가족이 된다.

큰 섬은 “형 누나 섬들”이 되고

육지는 “엄마”가 되며

파도는 눈치껏 잠든다.

별은 부르지 않아도 찾아들고

달빛은 “단박에 뛰어온다”.

이 장면에는 우병기 특유의 만물친화적 상상력이 살아 있다.

외로운 존재 하나가 있으면

별이라도 와야 하고

달빛이라도 곁에 앉아야 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작은 섬 하나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움직이는 듯하다.

여기에 그의 삶의 가치철학이 있다.

어떤 존재도 혼자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

마지막에서 시인은 “두 손으로 천천히 밀어주며 듣노라면”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다시 ‘듣는다’는 것이다.

위로하려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동안 “홀로 삼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우병기의 연민에는 우월감이 없다.

불쌍한 존재를 구해주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곁에 가서

가고 싶은 곳을 묻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 밀어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다.

「천상병」 에서 사람의 맑음을 사랑했던 시선이

「작은 섬」 에서는 외로운 존재를 보듬는 손으로 변한다.

그 손은 다시 「은행잎」 에서 떠나는 존재에게 기억의 자리를 내어주는 손으로 이어진다.

3.. 떠나는 것을 보내는 법

― 「은행잎」 과 기억의 미학

늦가을의 은행잎은 오래도록 소멸의 상징이었다.

잎이 떨어진다는 것은 한 계절이 끝난다는 뜻이고

생명의 푸름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우병기는 그 익숙한 의미를 조금 비튼다.

떨어진 은행잎을 죽은 잎으로 보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친구

노랑나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존재로 본다.

만추의 바람 살갑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친구들은 떠나는데

풀밭에 떨어진 친구들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잘 있어, 하며 애톳한 인사 나눌까요

풀잎 잡은 손 아쉬워 쉬 놓지 못할까요

고갯짓만 얄랑얄랑

노랑나비 무리의 하늘거림

봄인지 가을인지 잠시 어리둥절

날씨마저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새순 움트고 곱게 물들 때까지 줄곧

한 곳에 살았으니

이제는 날갯짓하며

꿈꾸던 곳으로 날아가고 싶을까요

노랑나비 손짓은 바람의 꼬드김

나도 예쁜 놈 몇 골라 손잡고

살가운 바람맞으며

책갈피에 데려왔습니다

이곳도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책갈피 들추면

꼭꼭 숨어있는

너와 나의 샹그릴라

ㅡ시 「은행잎」 전문

첫 연에서 은행잎은 ‘친구’다.

길바닥에 떨어진 친구들은 이미 떠났고

풀밭의 친구들은 아직 머뭇거린다.

“풀잎 잡은 손 아쉬워 쉬 놓지 못할까요”

라는 표현에서 낙엽과 풀잎 사이에 손이 생긴다.

떠나는 친구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듯하다.

은행잎의 흔들림은

“노랑나비 무리의 하늘거림”

으로 변한다.

여기서 소멸의 이미지가 비상飛翔의 이미지로 바뀐다.

떨어짐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동의 시작이 된다.

두 번째 연에서 이러한 전환은 더욱 분명해진다.

“새순 움트고 곱게 물들 때까지 줄곧

한 곳에 살았으니

이제는 날갯짓하며

꿈꾸던 곳으로 날아가고 싶을까요”

이 대목은 낙엽의 존재를 완전히 새롭게 읽는다.

한 곳에서 오래 살았으니

이제는 세상 구경을 떠나고 싶은 존재.

죽음이 아니라 여행이다.

이때 바람은 떨어뜨리는 폭력이 아니다.

“바람의 꼬드김”이다.

참 우병기다운 생활어다.

바람이 은행잎에게

이제 한 번 떠나보라고

그만 나무에서 내려와 다른 세상도 보라고

살며시 등을 미는 듯하다.

여기에서 「작은 섬」과 중요한 이미지가 연결된다.

「작은 섬」 에서는 시인이 섬을 두 손으로 밀어주고 싶어 한다.

「은행잎」 에서는 바람이 은행잎을 꼬드겨 떠나게 한다.

둘 다 강요가 아니다.

움직일 수 있도록 살며시 힘을 보태는 것이다.

우병기의 세계에서 좋은 힘은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힘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은행잎 몇 장을 책갈피에 데려온다.

“나도 예쁜 놈 몇 골라 손잡고

살가운 바람맞으며

책갈피에 데려왔습니다”

여기에서도 소유의 언어가 없다.

‘주웠다’고 하지 않고

‘손잡고 데려왔다’고 한다.

은행잎은 끝까지 살아 있는 친구다.

더 따뜻한 것은

“이곳도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라는 한 줄이다.

자기 책갈피에 넣어두었으니 만족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은행잎이 그 자리를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작은 섬에게 “가고픈 곳”을 묻던 마음과 같은 마음이다.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

대상의 마음을 상상해주는 것.

이것이 우병기의 사랑이다.

마지막의

“너와 나의 샹그릴라”

는 기억의 본질을 보여준다.

떠나는 것은 붙잡을 수 없다.

가을도 붙잡을 수 없고

사람도

시간도 붙잡을 수 없다.

다만 기억 속에 작은 방 하나를 마련할 수는 있다.

우병기에게 시란 어쩌면 바로 이 책갈피와 같다.

사라지는 것을 억지로 되돌려놓지 않는다.

언어 속에 작은 자리 하나 마련해

가끔 들추어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이 그의 기억의 미학이다.

  1. 순진무구에서 연민으로, 연민에서 기억으로

― 세 작품을 관통하는 우병기의 삶의 철학

세 작품은 표면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한 편은 천상병이라는 사람을 노래하고

한 편은 작은 섬을 노래하며

한 편은 은행잎을 노래한다.

그런데 내면의 움직임을 따라가면 하나의 정신적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천상병」 에는 맑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우병기는 천상병의 문학적 성취보다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은 어린 영혼을 먼저 본다.

「작은 섬」 에서는 그 맑음이 연민의 행동으로 바뀐다.

외로운 존재를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다듬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묻고

천천히 밀어주고 싶어 한다.

「은행잎」 에서는 그 연민이 보내줌과 기억으로 성숙한다.

떠나는 것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대신 책갈피 속에 샹그릴라 하나를 만들어준다.

따라서 세 작품의 흐름은

맑음을 사랑함

→ 외로움을 보듬음

→ 떠남을 받아들임

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성숙 과정과도 닮아 있다.

젊은 날에는 좋은 것을 좋아하는 데서 출발한다.

조금 더 살아가면

아픈 것을 볼 줄 알게 된다.

더 깊이 살아가면

사랑하는 것을 붙잡지 않고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병기의 세 작품은 이 세 단계를 따뜻한 생활어 속에 담아낸다.

그의 시에서 반복되는 핵심 행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천상병」 에서는 함께 해장하고 싶어 한다.

「작은 섬」 에서는 쓰다듬고 밀어주고 싶어 한다.

「은행잎」 에서는 손잡고 책갈피에 데려온다.

모두 가까이 가는 행동이다.

우병기의 시에는 멀리서 평가하는 눈보다

가까이 가서 손을 내미는 몸이 먼저 있다.

이것이 그의 시가 가진 가장 큰 인간적 미덕이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생활어의 미학이다.

‘우헤헤’

‘해장’

‘쉬엄쉬엄’

‘눈치껏’

‘단박에’

‘꼬드김’ 같은 말들은 문학적으로 화려한 단어가 아니다.

우병기는 이런 평범한 말 속에 깊은 사유를 넣는다.

‘해장’에서 죽은 시인과의 인간적 우정을 만들고

‘쉬엄쉬엄’에서 타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윤리를 만들며

‘꼬드김’에서 떠남을 강제가 아닌 권유로 바꾼다.

그의 시적 성취는 어려운 말로 깊어지는 데 있지 않다.

쉬운 말을 조금 낯선 방향으로 돌려

사람 냄새 나는 철학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우병기의 시는 ‘생활의 언어로 쓰인 관계의 시’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현재와 기억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준다.

□ 맺음말

ㅡ시인은 세상의 작은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우병기의 세 작품을 읽고 나면

천상병도

작은 섬도

은행잎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천상병은 문학사의 이름 이전에

막걸리 잔을 들고 웃는 어린 영혼으로 돌아온다.

작은 섬은 바다 위의 지형이 아니라

엄마를 바라보며 혼자 무언가를 삼키는 아이가 된다.

은행잎은 한철을 마치고 떨어진 낙엽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꿈꾸며 날갯짓하는 노랑나비가 된다.

좋은 시가 하는 일은 어쩌면 이런 것이다.

사물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서

그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는 것.

우병기의 시에는 세상을 날카롭게 재단하는 칼보다

한 번 더 만져보려는 손이 있다.

그 손은 천상병에게 술잔을 건네고

작은 섬을 천천히 밀어주며

은행잎 몇 장에게 책갈피 한쪽을 내어준다.

세 행위는 모두 하나로 모인다.

자리를 내어주는 것.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외로운 존재에게 곁을 내어주고

떠나는 것에게 기억의 방 하나를 내어준다.

이것이 우병기 시의 가장 깊은 삶의 철학이다.

좋아하는 것을 높이 세우는 것보다

가까이 앉히는 것.

외로운 존재를 대신 살아주는 것보다

그가 가고 싶은 곳을 먼저 묻는 것.

떠나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것보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기억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

이러한 태도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한참 간다.

우병기의 시는 거창한 선언으로 인간애를 말하지 않는다.

막걸리 한 잔

두 손

책갈피 몇 장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그 작은 행위들이 모여

그의 시세계를 만든다.

천상병에게는 해장국 한 그릇을 내어주고

작은 섬에게는 달빛과 별 몇 개를 불러주고

은행잎에게는 책갈피 속 샹그릴라를 마련해주는 시인.

그런 시인의 세계라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외로운 것 하나쯤은

잠시 마음을 놓아도 좋을 듯하다.

우병기 시의 따뜻함은 바로 그곳에서 온다.

사람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고

외로운 것을 함부로 구경하지 않으며

떠나는 것을 함부로 잊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이 그의 시를

쉽게 읽히면서도 오래 남게 한다.

시인은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다만 세상 한쪽에서

아무도 보지 않던 것을 바라보고

아무도 앉히지 않던 존재에게

언어 한 칸을 내어줄 수는 있다.

우병기 시인의 시는

바로

그 한 칸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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