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가을에는 ㅡ청람 김왕식

가을에는 2026.09.05
가을에는

가을에는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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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저녁 하늘에 풀리면

아이들은 노을을 밟으며 집으로 왔다

논둑마다 메뚜기 한 철 뛰어오르고

책가방은 자꾸만 들판 쪽으로 기울었다

감나무 우듬지 빨간 감 하나

해보다 늦게까지 마을을 밝혔고

장독대 곁 봉숭아 씨방은

손끝에서 작은 폭죽처럼 계절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멍석 위에 햇고추를 펴고

햇살의 붉은 살점을 뒤집어 말렸으며

아버지는 어둑해진 들녘에서

볏짚 냄새 묻은 저녁을 지고 돌아왔다

굴뚝 연기 피어오르는 집집마다

숟가락 부딪는 소리가 불빛처럼 번졌다

귀뚜라미가 담장 밑 밤을 켜면

숨바꼭질하던 아이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대문 앞에 서면

어머니 목소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가을밤은 어찌 그리 넓었던가

평상 하나에 온 식구와 달빛까지 앉았으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의 눈에

별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등불이었다

그때의 가난은 빈 그릇이 아니었다

서로의 몫을 조금씩 덜어 채우는 밥상이었다

세월은 그 집을 가져가고

그 목소리와 그 얼굴도 데려갔지만

가을만 오면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먼저 돌아온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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