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허만길 작가의 '아버지의 애국'을 읽고 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허만길 작가의 '아버지의 애국'을 읽고 2025.08.05
허만길 작가의 '아버지의 애국'을 읽고

한 시대를 가로지른 언어의 불꽃, 허만길 문학정신 ㅡ 허만길 작가의 ‘아버지의 애국’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만길 작가의 장편서사시 ‘아버지의 애국’은 단지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문학작품이 아니라, 침묵한 시대의 심장 소리이며, 지워진 이름들의 피 묻은 연대기다. 문학박사 허만길 시인의 붓끝은 단순히 역사를 서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끓는 진혼가이자,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민족의 등불이다. 아버지 허찬도의 생애를 통하여, 이 서사시는 ‘몸으로 쓴 역사, 숨으로 품은 민족정신’을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이는 기록이라기보다 생생한 증언이며, 흑백의 과거에 피와 숨결을 불어넣는 문학적 회복이다.

3·1 운동의 불씨 속에 열 살 소년이 던진 함성은, 야학의 설립으로, 양수기 설치의 공동체 실천으로, 군수공장 파업의 결단으로 이어진다. 그 일련의 행보는 신념을 품은 민초 한 사람이 어떻게 제국주의를 향한 비폭력 저항의 파동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삶을 아들은 시로써 되살리며, 단절된 세월을 시의 강으로 다시 잇는다. 이는 단순한 효심을 넘어, 역사의 곡진한 정수를 후세에 전달하려는 문학자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합문학’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실천한 허만길 문학박사의 정신은, 이 장편서사시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서사와 서정, 사실과 은유, 역사와 시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의 감각을 열어젖힌다.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체험을 문학의 언어로 치환해 낸 이 작업은, 시문학의 단조로운 지형에 중층적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시인의 필치는 ‘아버지’라는 사적 기억을 ‘민족’이라는 공적 서사로 승화시킨다. 독자는 이 시를 통해 ‘한 사람의 애국’이 곧 ‘한 민족의 의지’였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허만길 시인의 문학은 늘 실천적이었다. 국어사랑운동, 정신대 문제 제기, 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 환경교육, 진로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언어와 역사, 교육과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문학적 증거로 남겨졌다. 이러한 생의 궤적은 ‘아버지의 애국’이라는 작품을 통해 더욱 응집력 있게 집약된다. 시인은 이 장편서사시를 통해 아버지를 증언하는 동시에, 그 아버지를 품은 ‘민족’이라는 주체를 재정의한다.

이 시편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나열이 아니라, 시인의 육성으로 되살아나는 피와 땀의 변주곡이다. 가슴속 깊은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울림이자,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문학적 제사다. 조국의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수록된 이 작품은, 단지 하나의 특선 시가 아니라,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돌아볼 뿌리를 동시에 가리키는 문학의 나침반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애국’은 한 집안의 역사를 넘어, 이 민족의 고통과 희망, 그 격랑을 건너온 백 년의 노정을 시로 말하는, 위대한 증언서로 자리매김된다. 한 편의 장편서사시가 어떻게 한 시대의 혼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분명 한국 시문학사의 언저리에 금으로 새겨질 것이다.□

□ 허만길 시인

허만길 시인은 단지 시인이나 교육자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말과 글, 사유와 실천, 역사와 삶의 경계를 유유히 넘나들며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그려온 사람이다. 그의 삶은 곧 언어에 대한 예의이며, 그의 문학은 곧 인간에 대한 신념이었다. ‘은혜를 잊지 않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말로써 세상을 일으키는 것’—그것이야말로 허만길 작가의 일관된 문학적 미학이자 생의 철학이다.

그의 시작은 <빛이 반짝이는 소리>(1975)에서부터 이미 남달랐다. 청소년의 순수한 감성과 사회적 통찰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수필집은 삶의 구석진 자리에서 반짝이는 진실의 소리를 더듬으려는 한 작가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어 발표된 <음성언어교육의 영역설정 연구>(1979)와 <인류를 위한 참 얻음>(1980)은 문학과 교육, 그리고 인간 이해의 경계를 넘는 ‘복합적 사유’의 실천이었다. 세계 최초로 시도한 ‘장편복합문학’ <생명의 먼동을 더듬어>(1980)는 그의 사유가 얼마나 선구적이며 총체적이었는지를 증명한다.

특히 허만길 작가의 문학 진면목은 시집에 있다. <당신이 비칩니다>, <열다섯 살 푸른 맹세>, <아침 강가에서>, <역사 속에 인생 속에>로 이어지는 시집들은 하나의 테마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는 사랑과 자연, 역사와 민족, 청소년과 교육, 국가와 정의에 이르기까지, 존재와 시대를 교차하며 ‘말의 윤리’를 시어로 빚어왔다. “당신이 비칩니다”는 존재를 향한 궁극의 예찬이며, “아침 강가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생태적 울림이다.

그를 단지 서정시인으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일본군 ‘정신대’ 문제 제기와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 보존운동에 헌신한 실천적 작가이며, 이 땅의 잊힌 역사와 고통을 복원하려 한 민족문학의 투사였다. 그러한 역사 인식은 단순한 정치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정신적 기록이었다.

허만길 작가의 수필은 시의 여운을 품고 있으며, 소설은 시와 수필의 경계를 품은 듯 정서와 진실을 함께 간직한다. ‘원주민촌의 축제’, ‘노희의 자퇴’와 같은 단편들은 인간 내면과 사회 구조의 단층을 세밀히 비추며, 상처를 치유하려는 작가의 손길을 담고 있다. 또한 그가 작곡까지 겸하며 창작한 ‘백두산 바라보며’, ‘해운대 달밤’, ‘진주 아리랑’ 등은 언어와 선율의 통합을 이룬 ‘감성의 공공성’이라 할 수 있다.

수상 경력에서도 보듯, 그는 교육과 문학, 사회적 책임의 전 영역에서 공적을 인정받았다. 황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한글학회 이사장 표창, 순수문학 작가상 등은 모두 그의 실천이 단지 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실존의 울림이었음을 입증한다.

그의 시비가 대한민국 상하이임시정부 자리, 개화예술공원, 진주 비봉산에 서 있다는 사실은 곧 그의 정신이 이 땅의 자연과 역사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2015년 봉인된 허만길 타임캡슐은 100년 후에도 그 정신이 살아있을 것을 암시한다. 허만길은 일회적인 작가가 아니다. 그는 시간을 넘어서는 문학적 존재, 그리고 정신적 유산이다.

허만길 작가의 문학은 언제나 ‘기억’과 ‘존중’을 중심에 둔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바로 세우고, 타인을 존중함으로써 자아를 완성해 나가려는 윤리적 문학이다. 작가는 말했다. “말이 사람이 되게 하고, 시가 인간을 일으킨다.” 허만길 작가는 평생 그 문장대로 살았다. 그러니 그의 문학은 곧 인간학이며, 한 민족이 기억해야 할 정신의 등불이다.

그는 글로 시대를 밝혔고, 그 글은 사람을 기억하게 했다. 허만길, 그는 한국문학의 양심이자 한 인간의 온전한 증언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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